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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네가.”



정확히 3년 전 김용선이 그랬다. 뙤약볕 아래에 우두커니 선 그때의 김용선은 짧은 전화를 마친 뒤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문별이를 쳐다봤다. 왜, 뭐. 몇 초 뒤 벌어질 일은 꿈에도 모르고 심드렁하게 물은 문별이는 얼마 못 가 막힌 숨을 토했다.

‘야, 너 여자 좋아해?’

뜬금없는 물음이 과하게 날카로웠다. 아무런 대답도 꺼내놓지 못한 채 눈만 감았다 뜨는 문별이를 본 김용선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시발 반응 봐, 맞네. 결국은 된소리가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미친, 너 왜 그걸 이제 말 해!’

버럭 소리친 김용선이 자리에 주저앉아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미친 거 아냐, 문별이?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가득 묻어난 원망에 할 말이 없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본인이 말한 것도 아니었다. 평생 말할 생각도 안 했는데 발도 안 달린 소문이란 게 김용선 귀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상황이었냐면 3년 전 이맘때쯤, 같은 동네 출신 소꿉친구인 김용선과 문별이는 나란히 취뽀에 성공했고 둘 다 별 생각 없이 ‘같이’ 살 자취방을 알아보던 그때, 하필이면 부동산에서 잔금을 다 치르고 나온 그 타이밍에 재수 없게 아웃팅 당했단 말이었다.


“또 뭐, 왜.”

“너 내 아이스크림 먹었지?”



김용선에게 미쳤냐의 크기는 딱 저랬다. 본인이 먹으려고 사둔 아이스크림을 스틸 당했을 때, 꼬꼬마 코흘리개 시절부터 붙어살던 하나뿐인 절친의 생각지 못한 성향을 알았을 때. 물론 후폭풍은 후자가 더 컸다. 지금이야 고작 5분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저를 괴롭히겠지만 그때는 장장 보름을 저와 말도 섞지 않았다.


“냉동실 뒤져봐, 나 안 먹었거든?”

“없으면 뒤져, 진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주먹을 들어 보이고 쿵쿵대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몇 분이 지난 후에도 조용한 걸 보면 아마 한쪽 구석에 짱박혀 있었던 본인 취향 아이스크림을 찾은 게 분명했다. 아흐, 언제 철들려고 쟤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털썩 앉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김용선이 소파에 몸을 던진다. 악, 씹…. 무방비한 상태에서 제 허벅지를 고스란히 내어준 문별이가 입술을 꽉 물며 신음했다. 아프긴 저도 마찬가지인지 머리핀을 붙잡은 김용선도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 좀 해라 제발.”

“너는 입 좀 곱게 써, 기지배가.”



머리카락에 콕 매달려있던 머리핀을 테이블 위로 툭 집어던진 김용선이 에고, 하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직도 제 허벅지는 총 맞은 것마냥 화끈거리는데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아작 깨무는 얼굴이 황당했다. ‘너 뭐 내 허벅지 맡겨놨냐?’ 검지를 튕겨 귓바퀴를 툭 치자 예민하게 어깨를 튕긴 김용선이 천장을 향해 홱 돌아누우며 저를 올려다본다. 씨익 입꼬리를 올리자 턱에 보조개가 폭 들어간다.

‘왜? 떨려?’

또 시작이네. 상대할 의지를 잃은 문별이가 하, 하고 짧은 숨을 끊어 쉬며 소파에 등을 푹 기댄다.


“너 진짜 또라이 같은 거 알지.”

“아님 말고.”



픽 코웃음까지 친 김용선이 그제야 미적거리며 상체를 일으킨다. 뭐 좀 재밌는 거 안 하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리모컨을 이리저리 누르던 용선이 금세 흥미를 잃은 채 소파에 길게 엎드려 눕는다. 너 그러다 진짜 눈 나빠진다. 코앞까지 휴대폰을 들이밀고 토독거리고 있는 품새를 본 문별이가 혀를 끌끌 찬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리모컨을 들고 볼만한 영화를 물색하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뭐야, 이거 왜 이래?”



TV가 맛탱이 간 건지 리모컨이 맛탱이 간 건지. 암만 버튼을 연타해도 꼼짝하지 않고 멈춰선 화면 덕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자동재생된 예고편 영상에서 자극적인 소리가 줄줄 흘러나오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든 용선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가 곧 극혐의 눈빛으로 순식간에 뒤바뀐다.


“별, 미친.”



깔고 누워있던 쿠션을 야무지게 말아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야, 네가 해 봐! 고장 난 거라고! 버럭 지른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문별이의 어깨를 퍽 내려친 용선이 제 방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와, 진짜 개빡치네. 마지막으로 꾹 누른 리모컨 전원이 그제야 먹혀들어 TV화면이 시커멓게 꺼진다.

진짜 존나 억울하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볼을 꾹 누른 문별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그대로 엎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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