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XX년, 히스이지방의 축복마을.


이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무시무시한 일이, 지금 이 축복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공의 뒤틀림.'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신의 힘을 이용해 히스이지방 전체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자가 벌였던 일의 영향으로, 아직도 이따금씩 히스이지방에서 일어나는 괴현상이다.


이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시간대의 포켓몬이나 희귀한 물건들이 나타나는 이상하고도 위험한 검은 반구의 공간.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축복마을, 금강부락, 진주부락, 그 안에서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마을 안에서만큼은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사람들의 그 안일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지 축복마을 전체를 삼키는 엄청난 크기의 시공의 뒤틀림이 생겼고, 이것이 일어나자마자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컴컴해지고 위험한 포켓몬들이 사방에서 소환되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포켓몬의 공격을 피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달아나던 한 여인이 실수로 아이의 손을 놓쳐버렸고, 그 아이는 퍽석 소리를 내며 흙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여인은 얼른 다시 아이에게로 돌아가 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들을 쫓아오던 포켓몬이 아이의 바로 뒤까지 따라왔기에 그녀는 이도 저도 못하고 겁에 질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캬오오-!


" 꺄악! 엄마, 도와줘요! "


" 아악! 아가, 안 돼!!! "



결국 그 포켓몬이 아이를 덮치려는 순간-



" 글라이온, [제비반환]! "


그롸아아아-!



촤좌좍-



크, 크와악?!


" 좋아요! 잘했습니다, 글라이온! 다음은 [스톤에지] 입니다! "


그롸샤-!!



콰과앙-!!!



크르윽... 그와앙-!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 허리춤에 걸어놓았던 자신의 몬스터볼을 던져 글라이온을 불러내 넘어진 아이를 지켜냈고, 아이를 공격하려던 포켓몬을 순식간에 제압하고는 그 자리에서 멀리 쫓아버렸다.


공포심에 차마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여인은 포켓몬이 물러나자 재빨리 딸에게 뛰어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펴보고는 그제야 찾아온 안도감에 털썩 주저앉아 제 아이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러자 아까 아이를 도와준 그 사내가, 방금 전의 패기는 온데간데없는 순박한 얼굴을 하고 울고 있는 모녀에게로 쭈뼛쭈뼛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저... 괜찮으십니까? 일어나실 수 있겠나요? "


" 아...! 누구신가 했는데 상행 님이었군요. 아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저희 딸을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상행 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여인이 사내가 내민 손을 잡아 일어나면서 그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자, 상행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괜찮다면서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하였다.


여인은 자신의 딸에게도 그에게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라 시키고는 다시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하고 아이의 손을 더 단단히 잡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갔다.



" 상행 님! 이쪽은 전부 해결되었어요! 이제 방목장 쪽의 포켓몬들만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



상행이 모녀를 안전히 피신시키고 한숨 돌리고 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소녀가 그를 부르며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상행은 제 머리의 모자를 똑바로 고쳐 쓰며 소녀에게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윤슬 님! 어서 가도록 합시다! "



함께 마을의 방목장까지 간 상행과 윤슬은 그곳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포켓몬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거나 몬스터볼로 잡으며 그들이 더 이상 마을에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파직... 파직...



" 어? 저건... "



포켓몬 한 마리를 포획한 상행은 자신의 바로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눈을 잔뜩 찌푸려야 겨우 보일 만큼 조그만 균열이 생겨 있었다. 상행이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한 손을 펼쳐 눈썹 위에 대는 순간-



파앗-



파쬬오오오-!!!


" !!! "



갑자기 그 안에서 스파크가 튀다가, 아주 작은 포켓몬 한 마리가 팍 튀어나오더니, 비명을 지르고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상행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날개도 없어 보이는 저 포켓몬이 바닥에 부딪혀 버리면 분명 죽거나 살아나더라도 크게 다칠 거라고 생각해 그 포켓몬의 예상 추락 지점으로 얼른 뛰어가 손을 뻗어 안전하게 받아주었다.



타앗-



" 허억... 허억...! 다, 다행입니다, 겨우 받아냈군요...! 저기요 당신, 괜찮습니까? "


파쬬오...😵‍💫



아무래도 그 포켓몬은 균열에 휘말린 여파로 정신이 오락가락한 모양이었다. 작고 샛노란, 그리고 온몸에 보들보들한 털이 잔뜩 나있는 그 포켓몬은 뱅글뱅글 도는 눈을 하고 잠시 동안 헤롱헤롱하더니 곧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휘둘러 정신을 차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 파... 파쬬! 파쬬옥~!!



곧 눈을 꿈뻑거려 정면을 쳐다본 그 포켓몬은 상행의 얼굴을 보자 엄청나게 흥분하여 상행의 손 위에서 톡톡 튀며 울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상행의 눈에는 자신을 만나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본인이 히스이지방에서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이 작은 포켓몬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궁금해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덧 자신이 맡은 포켓몬들을 모두 정리한 윤슬이 상행에게로 다가와 상행의 두 손에 올려져 있는 앙증맞은 포켓몬을 보고 꺄악- 소리를 내어 귀여워하며 말했다.



" 어머, 세상에! 이 포켓몬은 파쪼옥이잖아요? 방금 상행 님이 잡으신 아이인가요? "


" 앗, 아니요, 윤슬 님. 딱히 볼을 사용해 잡은 것은 아니지만... 어째선지 저를 보자마자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군요. 전 분명 이 아이를 지금 처음 보는데... 그나저나 이 포켓몬 이름이 파쪼옥이라고요? 꽤 귀여운 이름이네요. "


... 파쬬...?



파쪼옥이라는 이름의 그 포켓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상행은 제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은 이 파쪼옥의 모습과 하는 행동이 퍽 귀여워 보여 한 손을 들어 올려 검지를 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상행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 응? 이제 보니 이 아이,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군요. 너무 조그매서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이게 대체 뭘까요? "



상행은 안 그래도 작은 파쪼옥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하얀 물체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올려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상행의 옆에서 함께 관찰하던 윤슬이 그것과 상행의 모자를 번갈아보더니,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 으음~ 크기만 작다 뿐이지, 제가 보기에는 상행 님의 모자와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요? 물론 상행 님의 모자는 검은색이고 이건 하얀색에다 완전 새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에요. "


" 역시 윤슬 님께서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저도 똑같이 생각하던 차였습니다만... 대체 이 포켓몬이 어째서 저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



상행과 윤슬이 파쪼옥을 두고 여러 가지를 추측하고 있던 그때였다.



우르릉...



" 응? 상행 님, 방금 무슨 소리가- "


" ! 윤슬 님! 위험합니다!! "



파악-



" 꺄악-?! "



꽈과앙-!!!



아까 균열에서 튀어나온 파쪼옥을 끝으로 이제 더 이상 포켓몬도 나타나지 않고 완전히 잠잠해진 줄로만 알았던 시공의 뒤틀림이 작은 천둥소리를 내더니, 곧 상행과 윤슬이 있는 쪽으로 어마어마한 벼락이 떨어졌다.


다행히 벼락이 대지를 강타하기 직전 상행이 재빨리 파쪼옥을 윤슬의 손에 들려준 후, 그녀를 강한 힘으로 밀쳐내 윤슬과 파쪼옥은 벼락으로부터 무사했지만 상행은 그 벼락을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 사, 상행 님!!! "



상행이 벼락을 맞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윤슬은 사색이 된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이내 다리의 힘까지 풀려버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어, 어떡해... 상행 님이...! "


파쬬-! 파쪽쬬-!!


" ... 어...? "



윤슬은 상행이 자기를 구하려다가 벼락을 맞았다고 생각해 그에게 죄책감이 들어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파쪼옥이 자신 주변을 통통 튀며 상행 쪽을 보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았다.


분명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행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윤슬의 눈에 보인 것은 포푸니 한 마리.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포푸니의 외형이었다.


보통의 포푸니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눈 아래의 깊은 주름, 턱 아래로 자라 있는 회색의 염소 수염, 그리고 독특한 칼날 모양의 옆머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는 그 포푸니의 몸에 걸쳐져 있는 옷! 그것은 분명 상행이 입고 있던 너덜너덜한 모자와 코트, 그리고 연보라색의 진주단복이었다.



" 서, 설마... 말도 안 돼...! "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던 윤슬은 손으로 두 눈을 부비적거리고 볼을 꼬집어 혹시 이게 꿈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정말 확실했다.


상행이 포푸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포, 포푸우...



잠시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던 상행이 꿈틀거리다 눈을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지끈지끈한 머리에 손을 대고 꾹꾹 눌렀다.



" 저... 상행 님...? "


푸, 푸니이-?!



아까부터 상행의 행동을 지켜보던 윤슬도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상행은 분명 자기보다 한참 키가 작았던 윤슬이 갑자기 거인이 된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상행의 바로 앞까지 온 윤슬은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춰 작아진 상행과 눈높이를 맞추고 제 파우치에서 손거울을 꺼내 상행에게 지금 그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푸, 푸니... 푸니이-?!



거울을 통해 자신이 포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행은 방금 윤슬이 보인 반응과 똑같이 이게 사실일 리 없다며 부정하다가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큰 울음소리를 내며 오열했다.



푸니야아아아아아아아앙-!!!

(신오님 맙소사아아아아아아-!!!)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상행이라고 합니다.

진주단의 캡틴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사람이 아니라

포푸니가 되어버렸거든요.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축복마을에 일어난 시공의 뒤틀림 안에서

이상한 벼락을 맞아 하루아침에

사람에서 포켓몬으로 변한 저를 두고

축복마을의 은하단

제가 몸담고 있는 진주단

그리고 홍련습지의 금강단

이 세 곳 전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히스이지방에서 시공의 뒤틀림이란 현상이

나타난지도 꽤 오래되었건만,

지금의 제 상황과 같은 일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혹시 신오님께서 저에게 시련을 내리시는 걸까요?

그러면 이 시련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걸까요?


어쨌든 진주단 소속인 제가

축복마을에서 사람들을 돕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은하단의 수장 전목 님께서

저희 진주단의 두령이신 주혜 님께

어떻게든 책임지고 저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하여

저는 계속 축복마을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은하단에는 포켓몬에 대해

조예가 깊으신 라벤 박사님이 계시니

어쩌면 금방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어 저도 이곳에 있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지금은 라벤 박사님의 연구실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중입니다만...


박사님 역시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신가 봅니다.

벌써 며칠을 저의 몸을 관찰하며 고민하시고

다른 지방에서 가져온 여러 자료들과

서적들을 밤새도록 뒤져보셔도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양이니까요.


괜히 제가 평소에도 포켓몬 연구로 바쁘신

라벤 박사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제게는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상행~! 심심하지 않아~?

나랑 이야기하자~ 으응~? "


" ... "



그 과제란 다름 아닌 바로 이 파쪼옥입니다.


이 아이는 제가 포푸니로 변한

바로 그 시공의 뒤틀림 안에서

균열을 통해 떨어진 포켓몬입니다.


제가 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껏 균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포켓몬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되기도 했지만

몇 년 전, 미래의 시간대에서 오신

윤슬 님이 이 아이의 종류를 알아보고

'파쪼옥' 이라는 이름을 말씀하셨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때는 제가 아직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켓몬인 이 아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왜 저를 보고 이토록 반가워하나, 했습니다만...


나중에 제가 포푸니가 되고 나서

그가 다시 저를 보고 말하기를,


" 난 하행! 너의 쌍둥이 남동생이야! "


... 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XX년 전,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이 히스이지방으로 떨어져

제가 누구였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심지어는 가족이 있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겨우 이곳 생활에 적응한 지 벌써 XX년.

그런데 갑자기 정체도 알 수 없는

포켓몬이 저를 두고 자신의 형제라 하다니...

선뜻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요.


만약 사람의 모습으로 만났었다면,

그의 말로는 저희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하니

완전히 똑같이 생긴 얼굴로

알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현재로서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제가 파쪼옥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그는 굉장히 충격받은 얼굴로

울먹울먹거렸습니다.


그는 꽤 오랫동안 구석에 숨어서

슬피 울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어쨌든 오랜만에 저를 만난 것 자체가

너무 기쁘다면서 자신과 함께 지내며

차차 기억을 찾아가자더군요.


... 그런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그가 제 형제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은 그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와 거리를 두고

천천히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는 저와는 달리 엄청 들이대는 성격인 것 같군요.

일란성 쌍둥이면 성격도 비슷한 줄 알았는데...

역시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여하간 오늘도 그는 제 모자 위에

찰싹 달라붙어 저를 향해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막 라벤 박사님의

오전 조사를 도와드리고

그것이 끝난 후 잠시 쉬기 위해

박사님이 저를 위해 준비해 주신

부드러운 방석에 엎드려 누워

낮잠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이번에도 편히 쉬기는 그른 것 같군요.


참다못한 저는 결국 그에게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 저기, 파쪼... 아니, 하행 님.

저는 조금 있다가 다시 라벤 박사님의

연구를 도와드리러 가봐야 합니다.

그 사이에 느긋하게 휴식 좀 취하도록

배려해 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


" 이잉... 그치만 너무 심심하단 말이야!

상행 너, 예전에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틈틈이 짬을 내서 나랑 얘기도 하고

포켓몬 승부도 해줬으면서! "


" 그러니까, 저는 예전 일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니까요?

아무리 당신이 그렇게 주장해도

당신과 제가 형제라는 명백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믿어달라고만 하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


" ... "



저는 이 무례한 작은 포켓몬에게

슬슬 화가 나서 일부러 그렇게

냉정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시무룩해지는 그.


그는 조용히 제 머리에서 내려와

뽈뽈 벽을 기어 올라가더니,

연구실 천장 한쪽에 나 있는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구멍은 바로 바깥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그는 곧 밖의 창문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꽁무니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그것을 타고 땅으로 내려가

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 제가 그에게 좀 심하게 대했던 것일까요?

이제 시끄러운 그가 사라져서

편히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여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 휴우... 어쩔 수 없군요. "



결국 저는 엎드려 있던 방석에서 일어나

그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곧 라벤 박사님이 연구실에

돌아오실 시간이긴 하지만

그를 찾지 못한다면

오후 내내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차

박사님의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겁니다.


... 그래요!

절대 그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단지 연구에 지장이 갈 것과

혹시라도 그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 데나 전기를 쏘아댈 것이 걱정되어서

찾아 나서는 것뿐이란 말입니다!






파쬬... 훌쩍...



라벤의 연구실에서 상행에게 매정한 말을 듣고 잔뜩 풀이 죽어 그곳에서 나온 하행은 은하단 본부 건물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야외 훈련장까지 나와 바위 틈에 숨어서 울고 있었다.


그는 상행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지만 자신을 경계하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억지로 없는 텐션까지 끌어올려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상행에게 이렇게나 미움받을 줄은 몰라서 좀처럼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 상행 진짜 너무해... 내가 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기억을 잃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문전 박대할 필요는 없잖아! 그 이상한 털모자를 쓰고 있는 까무잡잡한 아저씨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대하면서,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거야?! '



하행은 지난 며칠간 상행에게 쌓여온 서러운 마음이 펑 터져버려서 계속 울고 울다가 지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버렸다.






하행은 하나지방에서 실종된 자신의 쌍둥이 형, 상행을 찾아 아주 오랜 시간을 방황해 왔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던 것에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상행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이만 그의 사망신고서를 쓸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때,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상행의 흔적에 대한 단서를 듣게 되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짐을 챙겨 하나지방에서 멀고 먼 신오지방으로 떠났다.


무작정 신오지방으로 오기는 했지만 당최 어디서부터 상행의 흔적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던 하행은 우선 '사람이 모여드는 행복한 마을' 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는 축복시티로 향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표어가 표어인 만큼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정보를 얻기 쉽겠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축복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이 되어 포켓몬센터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짐을 풀던 도중, 갑자기 센터 밖에서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나가보았다.



" 이, 이게 도대체 뭐야...? "



저녁이라고는 해도 아직 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아 아직은 황혼의 영향으로 주변이 밝을 시간대였는데, 순식간에 포켓몬 센터를 제외한 마을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가장 이상한 점은, 이것이 축복시티 안에서만 일어난 괴현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당황한 하행이 아직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포켓몬 센터에 다시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에 있는 TV에서 긴급 방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뉴스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후, 하행은 다시 센터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포켓몬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축복시티의 시민들을 센터로 긴급 대피를 시키고 있었다.



쿠르릉...



" 어...? "



하행은 위에서 들리는 희미한 천둥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상하게 갈라진 커다란 균열이 있었고, 하행이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거기에서 큰 벼락이 내리쳤다.



콰광-!!!



" 커허윽...?! "



벼락은 큰 소리를 내며 하행의 바로 위에 떨어졌고, 그것을 목격한 축복시티의 사람들은 경악하며 소리 질렀다.



" 이럴 수가...! 사람이 벼락에 맞아서 죽었어! "


" 아, 아니야, 잠깐만 저기를 좀 봐! "


" 엥, 뭐야 뭐야?! 아까 그 사람은 어디 가고 저게 웬 파쪼옥이야?! "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오직 한 곳으로만 시선을 보냈다. 거기에 쓰러져 있던 작은 파쪼옥 한 마리, 그러니까 균열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포켓몬이 된 하행은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지방의 고층 빌딩들보다도 더 커져 있는 것을 보고 겁을 먹어 사방으로 톡톡 톡톡 튀며 당황함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그는 센터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실은 사람들이 커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터무니없이 작아진 것이라는 걸 깨닫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으아아...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사람이 벼락을 맞았다고 해서 포켓몬이 될 수가 있는 거야?! 게다가 그 많은 포켓몬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파쪼옥인거야?! 물론 파쪼옥이 나처럼 엄청 귀엽기는 하지만!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으으... 어쨌든 이제 어쩌지...? 앞으로 이 작은 몸으로 어떻게 상행을 찾아다녀야 해?! '



하행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때, 또다시 하늘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번에는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며 균열 아래에 있는 것들을 힘껏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파, 파쬬오-?! 파쬬-!!!



사람들은 두 손으로 주변의 구조물을 단단히 붙잡아 끌려가지 않았지만 이제 막 파쪼옥이 되어서 그 눈곱만한 발톱으로 뭘 잡아야 할지도 몰랐던 하행은 결국 공중으로 떠올라 소용돌이 바람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우으응... 뭐지? 꿈...?


아... 나, 깜빡 졸았나 보구나...

으음...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아.

이만 돌아갈까...?


하지만 돌아가면 뭐해?

어차피 상행은 날 반겨주지 않는걸.

하... 다시 생각해도 또 우울해지네...



" ... 님...! 하행 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행 님~! "



어? 이건... 상행의 목소리?

나를 찾고 있는 거야?!

어째서...?


...



뽈.. 뽈.. 뽈...



" 아...! 여기에 계셨군요, 하행 님.

세상에, 이런 좁은 돌 틈에

숨어 계셨던 건가요?

답답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아, 어쨌든 어서 제게로 오세요.

얼른 연구실로 돌아가야죠. "


" ... "


" 어... 하행 님...? "


" 상행 너는... 웃는 게 참 서툴렀어. "


" 네? "


"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포켓몬 배틀에

집중해서 네 포켓몬들과 짠 전략으로

싱글트레인이나 슈퍼싱글트레인에서

도전자를 이기고 나면

그렇게 환희에 찬 얼굴로 웃을 수 있다는걸,

나는 똑똑히 알고 있어. "


" 어엇... 저기... "


" 그렇게 잔뜩 흥분한 너는

이 감탄사를 곧잘 내뱉곤 했지. "


Bravo~! Super Bravo~!!


" ! "


" 어때? 혹시 너는 지금도 무의식중에

이 대사를 하고 있지는 않아, 상행? "



...


" 맞습... 니다... 분명해요...

매일 훈련장에서 윤슬 님과

승부를 마치고 나면, 후끈 달아오른 몸에

저도 모르게 그 감탄사를 외칩니다. "


" 히히... 거 봐, 그렇지?

자, 그럼 다시 말할게.

난 하행, 서브웨이마스터를 하고 있어.

더블 배틀을 좋아해.

두 마리 포켓몬의 콤비네이션을 좋아해.

그리고 승리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좋아해!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이 있어.

그게 뭔 줄 알아, 상행?

그건 바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쌍둥이 형 상행, 바로 너야! "


" ...! "



***



상행은 하행이 방금 했던 말을 천천히 되새겨보았다. 이 대사, 귀에 익다. 분명하다.


승리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좋아해!


이것은 자신이 몇 년 전 윤슬과 함께 천관산을 오르면서 미혹의 동굴을 지날 때 그녀에게 자신이 해 주었던 말이 아닌가!


예전의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소중한 하얀 빛.


자신은 분명, 그때부터 그 빛을 그리워하며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는데...



" 아... 아아... "



상행은 손을 펴 두 눈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갑자기 상행이 제 앞에서 목놓아 울자 하행은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으며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하행은 작디작은 파쪼옥의 몸. 곤란해하던 하행은 엉덩이를 꿍실거리더니 톡! 튀어 올라서 포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상행의 가슴 부분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행의 행동에 상행은 살짝 놀라서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고 자신의 진주단복, 그것도 정확히 진주단 마크에 붙은 하행을 내려다보았다.



" 상행, 왜 울어...? 울지 마, 응?

네가 울면 나도 마음 아프단 말이야... "



하행은 네 개의 팔다리를 쫙 펼쳐 자신의 몸 전체를 이용해 상행을 안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아직 눈물 흘리고 있는 상행을 보며 말했다.


상행은 잠시 하행을 더 보고 있다가 눈물을 닦고 두 손으로 하행의 동그란 몸을 부드럽게 쥐어 갈고리 손톱 위에 그를 올려두고 자신의 눈앞까지 들어 올려 하행의 눈을 마주 보았다.


상행의 돌발행동에 이번에는 하행이 당황해서 몸의 노란 털을 퐁실퐁실 부풀리며 땀을 뻘뻘 흘렸지만 상행은 하행의 보들보들한 털을 자신의 까슬까슬한 혀로 샥샥 그루밍해주어 다시 원위치시키고 그를 품 속에 폭 안으며 말했다.



" 하행, 정말로 미안합니다.

아무리 포켓몬의 모습으로 만났다고 해도,

어떻게 제가 당신을 잊을 수가 있었을까요... "


" 사, 상행, 너 설마...! "


" 네... 방금 당신의 말을 듣고,

이제서야 예전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희가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함께 일했던 배틀서브웨이,

그곳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도전자들,

그리고 그 도전자들을 마주할 때

가끔씩 저의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바로 당신... "



상행은 잠시 하행을 안던 팔을 풀고 다시 그를 손에 들어 눈을 맞추고 말했다.



" 제 동생, 하행...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죠?

이제는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게요.

비록 우리가 평생 포켓몬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라도,

계속 당신과 함께 있어줄게요. "


" 상행...! "



하행은 상행이 드디어 자신을 기억해 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뻐서 또다시 상행의 손 위에서 톡톡 튀다가 그보다 더 높이 점프해서 상행의 볼에 착 달라붙었다.


상행은 제 볼에 보들보들한 털을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하행이 너무나 귀여워 손을 들어 그의 등을 쓰담쓰담 해주었다. 그리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 어쩜... 당신은 참 한결같군요.

예전에도 전기 포켓몬들 중

파쪼옥을 그렇게나 좋아하시더니

이제는 본인이 직접 파쪼옥이 되신 건가요? "


" 히히... 그러게 말이야!

처음에 파쪼옥이 된 걸 알고는

몸이 너무너무 작아져서

불편한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몸에 적응하니까

할 수 있는 게 참 많네! "



상행의 기억도 되찾고 서로의 관계도 회복한 두 형제는 이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그동안 자신이 지내왔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며 라벤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며칠간 상행과 하행은 라벤의 연구실에서 지내며 사람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영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둘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제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자신의 형제가 바로 곁에 있으니 딱히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상행이 가끔 자신의 머리에 하행을 태우고 마을 산책을 나서면 마을의 아낙네들이 상행을 알아보고는 굉장히 귀여워하며 그를 쓰다듬으러 우르르 몰려오는데, 이에 겁먹은 상행을 도와주러 하행이 [전기쇼크]를 쏘아서 아낙네들을 쫓아주기도 했다.


지금껏 히스이에 살아오면서 아낙네들의 구애에 적지 않게 시달려 온 상행으로서는 하행이 자신의 구세주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의 도움을 받은 날이면 상행이 해주는 그루밍의 강도가 몇 배는 더 강해졌다.


하지만 아낙네들은 그렇게 기술을 써서 쫓아낼 수 있을지언정, 차마 아이들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만약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마주치는 날은 둘 다 털이 엉망진창으로 꼬일만큼 엄청난 쓰다듬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 상행은 마을 안이 아니라 경비병의 눈을 피해 바깥까지 나가서 넓은 흑요들판을 하행과 함께 느긋이 산책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비록 때때로 야생 포켓몬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흑요들판에 돌아다니는 포켓몬들 정도야 이미 히스이에서 상당한 경험치를 쌓아온 상행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 레벨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놀아주다가 대드는 강도가 조금 심해진다 싶으면 그의 [바위깨기]나 [독찌르기]로 위협을 줘서 쫓아내면 그만이었다.


오늘도 둘은 들판을 거닐면서 초원에 핀 작은 꽃들의 향기를 맡거나 나무 열매를 따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르릉... 고릉...


파쬬... 드르렁... 쿨...



함께 딴 맛있는 나무 열매를 먹고 배가 통통해진 상행과 하행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곳의 바위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상행은 바위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 두 다리를 쭉 뻗어 그 위에 하행을 올려놓고 손으로 그를 아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골골거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하행은 상행의 무릎 위에서 동그란 배를 까고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며 꿀잠을 자고 있었다.



쿠르릉...



그런데 그들의 주변에 예고도 없이 시공의 뒤틀림이 생기더니, 거기에 뜬 균열에서 또다시 그 불길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 으응...? 이 소리는...? "



하행은 너무 깊게 잠들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반쯤 잠들어 있던 상행은 납작한 보라색 귀를 쫑긋 세우고 이리저리 좌우로 돌리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의 주변이 아닌 하늘 위에서 난 소리라는 생각에 상행은 눈을 뜨고 머리 위를 쳐다보았다.



파지직.. 파직...


콰광-!



" 으아악-!? "


" 끄악-?! "



역시나 그 벼락은 상행이 하행을 안고 피할 새도 없이 단숨에 내리쳐 두 형제에게 떨어졌고, 벼락을 맞은 그들은 짧은 비명을 지르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 ... 으윽... "


" 아야야... 머리야... "



잠시 후, 그들은 동시에 깨어나 비틀거리며 어질어질한 정신을 똑바로 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자신의 형제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든 상행과 하행은 둘 다 깜짝 놀랐다.



" 하행! 다, 당신...! "


" 어?! 상행, 너도...! "



둘은 어느샌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행은 무사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에 기뻐 와아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으나 상행은 기억이 돌아오고서 처음으로 보는 하행의 진짜 얼굴을 다시 마주한 것에 너무 감동하여 거의 오열하며 하행을 힘껏 끌어안았다.



" 케헥-! 사, 상행! 기쁜 마음은 알겠지만, 이... 이것 좀 놔 줘! 나 수, 숨 막혀...! "


" 헉...! 죄, 죄송합니다, 하행! "



하행의 칭얼거림에 상행은 얼른 그를 놓아주었고 하행은 몇 번 더 켁켁거리다 다시 형의 얼굴을 보고 싱긋 웃으며 이번에는 그가 팔을 벌려 상행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 상행, 드디어 너를 제대로 안아보는구나! 진짜 이게 얼마 만인지... 파쪼옥의 모습도 나름 괜찮았지만 역시 너랑 똑같은 모습이 아니면 뭔가 어색하단 말이지! "


" 하행... 네, 저도 그래요. 역시 우리는 쌍둥이인 만큼, 같은 모습으로 있어야죠. 원래대로 돌아와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



두 형제가 서로 손을 맞잡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있던 그때, 아직 닫히지 않고 있던 균열이 점점 넓어지더니 그 안에서 지난번 하행을 신오에서 히스이로 끌고 왔던 폭풍이 또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행과 하행은 재빨리 몸을 낮추어 아까 상행이 등을 기대고 있던 그 바위를 붙잡았지만 폭풍의 힘을 이기기는 역부족이었고 둘이 함께 공중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팔을 뻗어 이번에는 절대 서로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서로의 손을 잡고 힘을 꽉 주었다.


그들의 몸이 점점 떠올라 마침내 균열 속으로 사라지자, 균열은 닫히고 시공의 뒤틀림도 끝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평화로운 들판의 모습만 비쳤다.


다만 형제가 마지막으로 있던 그 자리에는 상행이 지금껏 오른팔에 차고 있던 캡틴의 팔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저기요... 두 분 괜찮으세요? "


" 당신들, 하나지방의 서브웨이마스터 맞으시죠? 왜 이런 곳에 쓰러져 계시는 겁니까? "


" 너 그거 못 들었어? 얼마 전에 하행 님이 우리 신오지방에 형님을 찾으러 오셨다가 축복시티에서 이상한 폭풍에 휘말려 실종되셨다는 것 말이야. 꽤 큰 사건이어서 한동안 뉴스에서 떠들썩했는데... "


" 엥? 그랬어?! 왜 난 그동안 전혀 몰랐지? "


" 그야 너는 맨날 뉴스는 안 보고 포플릭스로 영화만 보니까 그렇지! 게다가 어쩌다 포튜브를 켜도 네 성격에 그런 뉴스 관련된 걸 한 번도 안 찾아봤으니 당연히 알고리즘에도 안 떴을 거고! "


" ...? "



상행과 하행은 어느 풀숲에 엎드려 쓰러진 채 기절해 있다가 몇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수다를 떨고 있다는 걸 깨닫고 부스스 눈을 떴다. 상행은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아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저기... 당신들은 누구시죠? 여기는 대체 어딥니까? "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더 심한 거지꼴을 하고 있는 상행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일단 자신들에게 질문을 했으니 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 어... 일단 여기는 신오지방이고요, 잔모래마을과 축복시티 사이의 길인 202번 도로에요. 초보 트레이너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 그렇게 레벨이 높은 포켓몬이 있지는 않아도 두 분 지금까지 기절해 계셨는데 괜찮으셨던 건가요? "


" 아... 그런가 보군요. 운 좋게도 저희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야생 포켓몬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상행은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자신들이 원래 살던 현대 시대로 넘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상행이 먼저 사람들과 한창 대화하고 있을 때, 아직 비몽사몽하던 하행도 고개를 좌우로 휘휘 흔들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떠올리고 크게 소리쳤다.



" 아, 맞아! 내가 축복시티에 있을 때 헤어져 버린 내 포켓몬들! 혹시 걔네들 어디 있는지 알아?! "


" 그 포켓몬들이라면 지금 여경님들이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


" 이거 신세를 지게 됐군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



상행과 하행은 앉아있던 흙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사람들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하행의 포켓몬들을 무사히 되찾았다.


그들은 당장 하나지방으로 돌아갈 경비가 없었기에 신오의 여경들에게 돈을 빌려 비행기를 타고 하나지방으로 가서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한 후 그들에게 연락하여 돈을 갚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상행은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히스이지방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신오지방의 포켓몬 챔피언이자 역사학자인 난천을 만났다.


난천은 히스이 역사의 산증인인 상행을 만나 매우 기뻐했고, 그에게 자신이 역사책에서 본 상행과 하행이 히스이에서 신오로 돌아온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상행이 처음에 걱정했던 대로 진주단의 캡틴인 그가 균열에서 나타났다던 파쪼옥과 함께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러나 그곳에 남아있는 또 다른 미래의 존재, 윤슬이 자신의 아르세우스폰에 뜬 신오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그들은 상행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왔으며 그가 가장 아끼는 존재와 함께 원래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무사히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캡틴으로서 돌보던 포푸니크도 새로운 캡틴을 만나 잘 살았으며, 그가 그곳에서 잡았던 포켓몬들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야생으로 돌아가거나 새 주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모든 것이 다 잘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상행은 그제야 안심하며 이야기를 들려준 난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하행이 기다리고 있는 기어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형제는 히스이에서 상행이 하행에게 약속했던 대로 더는 서로 떨어지는 일이 없이 굳건하게 서브웨이마스터의 자리를 지키며 쭉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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