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에릭남, 치즈 - Perhaps Love)


***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다. 슬슬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교육사회학 강의를 듣고 함께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늦은 오후 수업을 끝내고 나니 도서관과 학교 근처 카페가 모두 만석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는 너무 시끄러워 공부하기에 영 좋지 못했고. 그렇게 이리저리 배회하다 결국 강다니엘이 내게 물어왔다.


“그냥 우리 집 갈까?”


그 말에 서로를 만지느라 과제에는 손도 대지 못했던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했던 약속. 앞으로 공부는 카페에서 하자는 말.


“…그래요.”


강다니엘은 그날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든 아니든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둘 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모르는 척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내일은 정말, 정말로 도서관에 가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스스로 새기면서.

.

.

.

이럴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기능주의니 신교육사회학이니 뭐니 하는 용어들과, 발음하기도 어려운 학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프린트를 파고들다가 결국 둘 다 넉다운 되고 말았다. 영화 한 편만 보고 다시 하자. 강다니엘의 그 말이 불씨가 되어 딴짓 타임이 시작됐다. 공부를 할 때는 느릿느릿 무겁던 몸이 왜 놀려고 마음먹으니 잽싸지는 걸까. 나는 어느새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에 잠시 부엌에 갔다 오겠다는 강다니엘. 기다릴게요, 하니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며 영화를 틀어주고 떠났다. 그렇다고 해도 먼저 볼 수는 없지. 강다니엘 몰래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부엌 쪽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더니 전자렌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걸까.


“잠만.”


잠시 후, 강다니엘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우리 둘뿐인데도 꼭 영화관에서처럼 조심스러운 모습. 몸에 배어버린 걸까. 귀엽다. 꿈틀꿈틀 옆자리를 내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그가 어느새 같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한쪽으로 기울어있던 매트가 평형을 이루었다. 느껴지는 안정감. 몸뿐만 아니라 마음 깊숙이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균형감각이, 어느새 내게도 생겨있었다.

강다니엘이 종이 봉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뭔가 싶어 들여다보니 팝콘이다. 집에 이런 것도 구비해두는 구나. 가만 바라보자니 내 입가에 들이밀어지는 팝콘. 손가락 끝까지 앙 물어버리니 으하하- 하고 그가 웃었다. 입 안에 들어온 팝콘 한 알을 어금니로 으깨며 영화를 재생시키니 그가 내 어깨에 팔을 감아왔다.


“먼저 보라니까.”

“같이 보고 싶은 걸 어떡해요.”


영화 로고가 화면 위로 뜨고, 검은 방 안에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마음도 부풀어 가기 시작했을 때, 강다니엘이 숨죽여 내게 속삭여왔다.


“훈아.”

“네?”

“내 먹는 거 방해 안 되나.”


아, 그제야 알았다. 아까의 조심스러웠던 몸짓은.


“시끄러울까 봐.”


몸에 밴 습관이 아니라,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잠시 영화에게 나눠줬던 신경을 옆 사람에게 온통 쏟기 시작했다. 강다니엘이 팝콘을 먹는 소리가 들린다. 손가락이 부스럭대며 수북한 팝콘 사이를 헤집고, 손 안 가득 성에 찰 정도로 집어 든 후, 한 입에 욱여넣고 우물거리는 그 모든 소리. 입안에 다 담기지 못한 한 톨이 내 쪽으로 굴러와 팔에 난 솜털을 스치는 느낌. 그와 함께 풍겨오는 고소한 향기.


“괜찮아요. 좋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오히려 거슬리는 일일 텐데. 그게 너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또 다시 깨닫는 마음. 내가 정말 사랑을 하고 있구나. 가슴이 포슬포슬 떨려왔다. 내가 대답하자 좋을 건 뭐고, 하며 내 볼에 입을 맞추는 강다니엘. 정말, 새삼스럽게도 나는 이 사람이 너무너무 좋다. 입가에 묻은 하얀 부스러기까지도. 내 손끝이 스칠 때 휘영청 굽어지는 저 입꼬리는 더더욱. 깨끗해진 입가에 뽀뽀하니, 강다니엘은 내 입술을 본인의 것으로 가볍게 물었다가 떨어져나갔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 나는 아직인데.

결국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화면 위의 주인공이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얼어버렸다. 한참동안이나 멈춰있던 그는 우리가 셀 수도 없이 뽀뽀한 후에야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모태솔로인 남자는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가문의 비밀을 듣는다. 바로, 이 집안의 남자들은 눈을 감고 집중하면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 주인공은 돈도 명예도 욕심이 없고, 오직 연인을 갖는 것이 꿈인 남자다. 그래서 자신의 그 특별한 능력을, 사랑을 쟁취하는 데 쓰기로 한다. 그러나 초능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한여름의 첫사랑.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그녀를 흘려보내게 된 남자는 깨닫는다.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서도 제 입맛대로 휘두를 수 없는 게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시간이 흘러 변호사가 된 남자는 런던으로 향하고, 암실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모태솔로인 그. 어색하고 바보같은 순간은 다시 되돌리면서 최고의 순간만을 여자에게 선물하기 위해 노력하고. 점점 서로에게 빠져 들어가는 두 사람.

그리고 화면 안에는, 남자가 드디어 자신의 애인에게 프로포즈하고 있다.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자고 있던 여자를 깨워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말하는 남자. 나랑 결혼해줄래? 그렇게 묻더니 대답하기 힘들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며, 예시를 들어주는 그. 잔잔하고 간질간질한 장면. 그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자, 옆에 있던 강다니엘이 턱을 괸 채로 내게 물었다. 지훈아.


“니는 만약에 프로포즈 받으면, 어떤 식이었으면 좋겠노?”


그의 얼굴을 남자주인공에게 겹쳐보았다. 내게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하자 말하는 강다니엘. 그런 날이 올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고작 내년에 스물두 살이 되는 대학생이니까. 그래서 그냥 막연하게 대답했다.


“지금처럼 편안한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이 마음에 들어서. 마음 너무 깊숙이까지 들어서, 영영 끄집어내고 싶지 않을 정도라.


“그래?”

“네.”


강다니엘은 깊이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따라 다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내 대답은…

-그래, 로 할래.


그렇게 대답했다.

.

.

.


“…눈물 날 뻔 했어요.”

“내도.”


마음이 너무 울컥거렸다. 특히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주인공의 얼굴 위에 강다니엘이 자꾸 겹쳐지는 바람에 나는 울음을 집어 삼키느라 혼이 났었다. 대체 얼마나 아팠을까. 그가 얼마나 쓰라렸을지 얕디얕은 나로서는 조금도 헤아릴 수 없다. 만약 영화주인공처럼 내게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하면, 나는 바로 열아홉의 강다니엘에게로 갈 텐데. 가서 내가 위로가 되어줄 텐데. 내 능력으로 그게 무리라면 그저 옆에라도 있어주고 싶다. 홀로 쓸쓸히 괴로워하던 그 긴 시간을 내가 보듬어주고 싶다. 나는 왜 이제야, 형을 알았을까.


"눈물 날 ‘뻔’이라면서.”

“…안 울어요.”

“진짜로?”

“진짜예요…!”

“그래, 그래-”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울고 있지 않았다. 정말, 그냥, 약간, 울고 싶은 게 다일 뿐. 그런 내 눈가를 강다니엘은 눈물을 닦듯이 다정하게 엄지로 쓸어주었다. 그게 내 오히려 내 샘을 자극한다는 걸 그는 모른다. 밀물처럼 다시 몰려오려는 걸 꾸역꾸역 집어넣고 나는 강다니엘에게 물었다.


“형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궁금하다. 강다니엘이 가장 간절한 순간은 언제일지. 나는 진지하게 궁금했는데, 그는 한숨처럼 새어가는 소리로 웃었다. 고개까지 절레절레하면서.


“아직도 내를 그래 모르나.”

“뭐가요…?”

“내가 어딜 가노. 지금 옆에 누가 있는데.”


아아- 아직도 부끄럽다고요, 전. 애원하고 싶어진다. 직설적인 표현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어 닥치면 나는 또 휘청거리고 마는 것이다. 벌개졌을 게 분명한 귓바퀴를 숨기고, 급하게 줄행랑을 쳤다.


“어딜 가려고.”

“…저 씻고 올게요.”


급하게 땅을 딛는 발가락 사이로 카펫이 간지럽게 파고들었다. 하하-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도망가는 내 뒷모습을 사랑스러운 웃음소리가 똑똑, 두드렸다. 슬쩍 뒤를 바라보니 웃고 있는 강다니엘. 이미 열린 문이라 짐작했는데, 더 활짝 열리고 마는 나.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딱 좋은 온도였다. 온수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는데, 밖에서 누군가 눌러준 것이 분명했다. 고양이의 솜방망이가 닿기엔 조금 힘든 높이에 있으니, 분명 강다니엘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분 좋게 젖고 말았다. 샤워볼에 한껏 거품을 내서 문지르니 공간 가득 부케향이 퍼진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강다니엘을 만난 후 내게 스민 습관이다. 기분이 좋으면 참지 못하고 흥얼거리는 건.

오늘도 품이 커서 헐렁거리는 강다니엘의 옷을 빌려 입고 샤워실 밖으로 나왔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있자니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인영. 탁상에 놓여있던 스킨을 손바닥 위에 덜더니 말도 없이 내 얼굴을 톡톡 두드린다.


“형.”

“잠깐만. 입에 들어가면 맛 없데이.”


입을 합 다물었다. 얼굴 전체를 덮는 손바닥에 눈을 뜨지 못하겠다. 잠시 손길이 가시더니 다시금 닿아왔다. 이번엔 로션이었다. 또 어버버 눈을 감고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데 코앞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훈아, 내 밖에서 다 들었는데.”

“뭐를요?”

“니 흥얼거리는 거.”


아… 다 들렸나보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방음이 정말 별로다, 이 집. 조금 부끄러워져서 계속 눈을 감고 있고 싶었는데, 임무를 다 마친 손이 아예 얼굴에서 떠나버렸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강다니엘.


“노래는 잘 못하던데.”


샐샐 웃는 얼굴에 놀리는 기색이 다분하다. 얄밉다 정말.


“…형 싸움 잘 해요?”


야무지게 주먹을 쥐어보였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 게 뻔하다. 때릴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뭐. 역시나 웃음이 터져버린 강다니엘. “어이구, 무서워라.” 내게 장단 맞추며 벽에 등이 닿을 때까지 뒤로 물러나는 그를 보자니, 앙 쥐었던 주먹이 포실포실 풀어졌다. 결국엔 나 역시 그냥 웃어버리고. 따라 웃는 나보다도 오래 웃음을 그치지 못하던 강다니엘은 겨우겨우 갈무리하더니 말했다.


“아- 진짜 잘 부르는 건 아닌데, 이상하지. 왜 매일매일 듣고 싶을까.”


그리고는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지훈아.”

“…네?”


그리고,

그리고…


“우리 같이 살래?”



@@@


'형, 제 첫인상 어땠어요?'

'처음 봤을 때?'

'네.'


음……. 어땠더라. 네 처음을 나는 어떻게 느꼈더라. 아, 기억났다.


'텅 비었는데, 또 꽉 찬 느낌.'


그래, 딱 그런 느낌이었지. 스스로도 꽤 만족스러운 표현이라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너는 영 이해불가라는 표정이다.


'…자다 깬 모습이요?'


아, 맞다. 그제야 애매모호한 네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모르지. 내가 기억하는 너와의 처음은, 오직 나만의 것이었으니.

.

.

.

너는 우리의 첫 만남을 어느 비 내리는 봄날이라고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이 반직선의 시작은 눈이 새햐얗게 세상을 덮은 어느 겨울날이었다.


‘강다니엘 학생?’

‘…네.’

‘자기소개 해보세요.’


두 번째 겪는 일임에도 익숙해지지 않은 입시. 그리고 면접.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기나 한 건지, 빠르게 나에 관한 서류를 넘기던 면접관들. 이름이 불리는 것조차 아득하게 느껴지던 그 짧은 시간을 버티고 문밖으로 나왔다. 춥다. 눈이 하얗게 깔린 바깥보다도 냉한 석조건물의 공기를 한껏 들어 마시며 걸었다. 이 짓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내년에 다시 겪어야 할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면서.

대리석일지 화강암일지 모를 돌덩이로 지어진 건물은 대체로 무채색이었다. 그 안에서 오직 푸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처럼 낡아빠진 초록 게시판. 유독 이질적인 기분이라 나는 홀린 듯 그 앞을 향해 다가갔고, 거기서 처음 너를 봤다. 너의 글을.


‘이름’

제목이 이름이었지.


네 글이 내 마음을 울리게 된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먼 예전의 일을 가지고 와야 한다. 내가 태어났던 그 때부터.

네가 아는 나는 강다니엘이지만 사실 내게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강의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내 불리던 그 이름이 싫었다. 지어준 사람에게조차도 제대로 불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 사람들 특유의 발음에 따라 주위 사람들은 나를 ‘으건이’, ‘으건아’, 이렇게 발음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이름을 놓지 않고 붙잡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칭얼거리던 어린 내게 하시던 말씀.


‘내가 니 태어나기 전에 뭐라 부르면 좋을까 며칠이나 고민한줄 아나.’

‘…얼마나 걸렸는데요?’

‘한 달. 자그마치 한 달이다.’

‘헉, 한 달이나요?’

‘오야, 따라해 봐라. 뜻 의 자에 굳셀 건.’

‘뜻 의, 굳셀 건….’

‘그래, 항상 품는 뜻이 단단하라고. 내 그래 지었다.’


우리 으건이, 튼튼한 으건이. 그 말을 하실 때의 아버지는 기쁘고 자랑스러워 보이셨고, 항상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기 때문에, 그래도 그 순간에나마 나는 내 이름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TV에 나와 현란하게 몸을 놀리던 어느 댄서를 보고 그 모습에 반해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보잉을. 밤새 부모님을 졸라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나는 그 누구도, 나 스스로조차 예상하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소질이 있었다.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나는 예고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홀로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다르다고 느낀 건, 말이었다.


‘강의건!’

‘의건아-’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네모반듯하던지. 각진 빌딩들이 가득한 곳에서 살아서 그런가, 아무도 나를 ‘으건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그게 좋았다. 글자 그대로의 내 이름이. 그런데 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허해지던 나.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었다.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밤이 점점 추워져만 갔다. 그럴수록 내가 기댈 곳은 춤과 연습뿐이었고. 그렇게 열아홉, 그 밤이 찾아왔다. 이가 떨릴 정도로 시린 밤. 아버지가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난 그 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이름을 바꿨다. 도저히,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살 수가 없었다. 급하게 바꾼 이름에 깊은 뜻은 없었다. 그냥, 조금이나마 익숙한 세례명이었던 '다니엘'로 불리길 택했다. 그리고 바로 군대로 떠났다. 지금까지처럼 서울에서 살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자신이 없었다. 다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없을 거라서. 그게 무서웠다. 사실 엄마와 누나를 생각하면 그렇게 떠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난 어렸고 그래서 나 자신이 가장 먼저였고, 무너지는 세상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그냥 눈을 감고 말았다.

스물두 살. 제대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사회에 나가면 앞으로 무얼 하면 좋을지. 춤, 을 다시 이어가기엔 너무 겁이 났고 새로 시작할 게 필요했다. 어머니께 공부하고 싶다고, 대학에 들어가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후회 하지 않겠냐며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묻는 엄마께 목소리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무서웠다. 뒤돌아보며 눈물 쏟는 날이 내 앞에 있을까봐. 눈앞에 보이는 것이 교사뿐이어서, 그래서 결정한 거였다. 엄마도 누나도 교사였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수많은 사색의 밤이 꼭 확신어린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쉽게 허물어질 결심이라 할지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했으니.

나는 공부를 시작했고, 그 해 입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몸만 쓰던 놈이 머리 쓰겠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해서 바로 문이 열린다면, 대한민국이 그렇게 악명높은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전혀 쓰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생각보다는 덤덤할 수 있었다. 다시 참고서를 펼치고 사프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한데 창밖으로 또다시 계절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스물세 살의 끝자락. 다시 도전한 입시. 첫 번째 학교의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걸음. 겨울의 시작과 동시에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인 건물의 대리석바닥을 밟았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초록 게시판이 저 멀리 시야 구석에 걸쳤다가,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점점 커졌다.

그리고 무심코 그 앞에 섰을 때 너를 만났다.


“…….”


지훈아, 내가 너를 만났어.



이름


존재가 나를 부르는 일은

강을 건너는 내 영혼의 발걸음마다

반질하게 빛나는 조약돌을

소리 없이 던지는 일


어미 품에서 밀려난 아기 물방울이

내 뺨에 찰싹 안길 때마다

촉촉이 젖은 솜털들이

환대로 몸을 부르르 떠는 일


그러나

부름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시간


나는 이제 무엇이 되어



마지막 행. 그 미완의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멍하니 아버지를 떠올렸다.


‘우리 으건이.’


온 마음으로 나를 부르던 유일한 사람.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불렀을 때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기억들이 수면위로 몰려왔다. 면접관이든, 친구들이든,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내가 진정 불린다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나를 부른 게 아니라 그저 내 이름을 말했을 뿐이라서, 그래서. 이름을 불렀더니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처럼, 네 글이 다가와 내 안에서 깊은 잠을 자던 공허를 깨웠다.

…어떤 시인의 글일까.

바로 핸드폰을 들어 검색해보았으나, 어느 비슷한 문장 하나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그 글을 훑는데 구석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그마한 필기체로 적혀있는 말.


박지훈

사범대 시 동아리

<시동>

학문관 403호


몇 번의 깜빡임 동안 그 이름이 내 눈 안에 담겼다. 동아리에서 쓴 글이구나. 그냥 그렇게 끄덕이고는 나는 건물 밖으로 나섰다. 여러 발자국이 지저분하게 찍혀있는 하얀 눈밭과 흩날리는 입김. 네 존재도 그렇게 금방 날아가겠지 했다. 그런데 시 제목이 ‘이름’이어서 그랬나. 예상치 못하게, 그 후 막막하게도 종종 네 이름이 떠오르고는 했다. 그 겨울 내내. 박지훈. 박지훈.


“박지훈….”


개강 첫 날 새벽, 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는 중이었다. 큰일을 앞뒀을 때면 아버지의 납골당을 찾는 습관 그대로 전날 부산을 찾았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아버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잘할게요, 지켜봐주세요. 열 글자가 채 되지 않는 말을, 어둠이 서서히 밝아오는 내내 나는 아껴 말했다. 해가 뜨기 전에 기차에 올랐다. 아직도 창밖은 새벽이라고 말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래, 그 푸른 어스름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너를 떠올리지 않았지. 긴장한 채로 오리엔테이션을 들을 때에도 네 이름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첫 강의를 마치고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다시금 내 빈틈을 파고드는 네 이름.


“…….”


그날 나는 조금 멍했다. 비가 와서 그런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로비에 있던 대자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고, 그 위에 적혀있던 동아리방으로 무작정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네가 아는 처음을 맞이했다. 네가 기억하는 대로 자다 깬 너와 눈이 마주쳤고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동아리, 가입하러 왔는데요.”


.

.

.


폭풍같이 지나가던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어이없게,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천장 위에 초면이었던 네 얼굴이 떠올랐다. 담요를 덮고 자던 모습. 일어나 뒷머리를 꾹꾹 누르던 손길. 그리고…


“……아.”


아까 나를 보면서 웃었지. 자기소개를 하랬더니, 뜬금없이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운다고 말하던 내가 웃겼는지. 나는 왜 그렇게 긴장을 했을까. 압박면접도 이미 수차례 해본 난데, 그 어수선하고 얼떨떨한 면접이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고양이 좋아하시나 봐요.’


먹구름으로 그늘진 공간에서 희미하게 빛났던 하얀 네 미소.


‘좋아하는 시 혹시 있나요?’


사실 동아리 그거, 계속 떠오르는 시 한편이 궁금해져서. 그래서 그냥 한 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동아리 부장 형한테 연락처 보내드릴게요.’


…갑자기 간절해졌다. 조금 무겁게.


.

.

.


‘내랑 어디 좀 갈래?’


호수를 앞에 두고 누가 들어도 어색한 욕설을 입술 새로 흘리는 너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널 이끌고 한강에 데리고 오고 말았다. 원래 그렇게 대중없이 구는 사람이 아닌데.


‘제가, 호불호가 흐릿한 편이라서요.


스스로를 흐릿하다 말하는 네 모습이 왜 그렇게 위태로워 보였는지. 3월의 바람은 아직도 매서웠고, 나는 네가 꼭 그 바람에 흩어져버릴 것 같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거 내도 아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네 기분을 끌어올리려 나를 내려놓고 별의별 말을 다 하고 있더라. 왜 너는 관심도 없을 옛 별명 얘기나 줄줄 늘어놓고 있는 건지.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필사적인 걸까, 스스로도 궁금했는데 그건 금방 증발했다. 잠긴 네 얼굴을 보니 또 웃기지도 않은 말을 하느라 마음이 급해져서.

맥주를 각각 두 캔씩 비웠을 때, 그 정도는 술도 아닌데 괜히 술기운이라고 속으로 이유를 대며 네게 핸드폰을 내밀었을 때, 그리고 네가 번호를 찍어 다시 그걸 돌려줬을 때. 나는 내가 왜 지금까지 필사적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여기요.’


또. 희미하게 빛나던 네 미소.

내 안에 낮게 피어있던 네 향기를 둔감한 내 코는 그제야 눈치채고. 웃는 네 얼굴을 보겠다고 그렇게 발버둥 친 게 확실해진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언어로 정의내리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부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

.

.


하얀 눈밭 같던 내 안에 찍힌 너의 발자국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그 자리 그대로 오히려 처음보다 짙고 깊어지면서.


사실 아주 처음 너와 눈이 마주치기 전부터, 나는 너를 담고 있었다고.

눈보다 마음에 먼저 담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고, 마지막일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아직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이 이상으로는 좋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때, 그때 선물처럼 건네줘야지. 그때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놀라서 그 맑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볼까? 아니면 네 글을 읽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푹 숙이고 나를 바라보지도 못할까? 부끄러움이 많은 너니까. 이런저런 네 모습을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네 모습까지도 이미, 전부, 모두, 사랑하고 있으니까. 네 글 하나만으로 너 한 사람을 담게 된 그 시작처럼.


“아직도 내를 그래 모르나.”


너는 모르겠지.


“내가 어딜 가노. 지금 옆에 누가 있는데.”


내 안에 흩뿌려진 너를 손바닥으로 조심조심 쓸어 모으면, 그게 곧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는 걸.


“…저 씻고 올게요.”


여전히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와 같이 부끄러워하는 너는, 나를 피해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와서 할 일이 네가 더 부끄러워할 일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게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이 났다.

욕실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 네가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는 소리와 촉촉이 젖은 네가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


“노래는 잘 못하던데.”

“…형, 싸움 잘 해요?”


나는 예전부터 노래가 싫었다. 마치 불행의 전조 같아서 무서웠다.


“이상하지. 왜 매일 매일 듣고 싶을까.”

“…….”

“지훈아.”


그런데 왜 너만은 좋을까. 사실 안다, 그 이유는 그냥 너라서. 간지러운 말을 하면 흘기던 시선도 감춰버리는 너라서.


“…네?”


내 부름에 젖은 머리가 찌르는 줄도 모르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너.

너는 항상 대답이 느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저번에 말했듯이, 너만 보면 없던 참을성도 나는 만들어낼 수 있다고. 기다려 달라 하면 얼마든지 바라만 볼 수 있고, 네가 모르겠다하면 매일매일 귓가에 속삭여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나를 가슴 떨리게 해왔던 그 미소로 대답해주면 좋겠다.


“우리, 같이 살까?”


내 안에 담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네가, 나와 함께 해주겠다고.


@@@


“우리, 같이 살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강다니엘은 하얀 벽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살자고. 그 말이 귓구멍을 파고들어, 머릿속을 헤집더니, 마음을 온통 흔들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봄으로부터 벌써 이렇게 바람이 불어온다. 한 마디를 채 이을 수 없다. 그런 나를 보며 강다니엘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대답할 말이 생각 안나나. ‘그래요’, ‘싫어요’, ‘내 인생에서 꺼져주세요’. 많으니까 함 골라봐라.”


능청맞은 목소리에 온통 떨리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강다니엘은 아까 봤던 영화의 청혼 장면을 따라하고 있었다. 자고 있던 여자에게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하던 말.


-나랑 결혼 해줄래?

-대답할 말이 생각 안 나?

-‘그래’, ‘싫어’, ‘내 인생에서 꺼져’ 등등의 답변이 있어.


강다니엘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저 시선이 저런 따뜻한 색을 띨 때는 오직 나를 바라볼 때뿐이라는 걸. 태연함을 가장하는 저 눈빛이 사실은 아주 많은 떨림을 품고 있다는 걸.


“다른 대답해도 되죠?”

“맘대로.”


맘대로, 라고 여유로운 척 했으면서, 눈여겨보니 주먹 쥔 그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잡아주고 싶게, 정말. 나는 강다니엘에게 다가갔다. 푹신푹신한 카펫 위를 걷는데도 외줄을 타는 것처럼 자꾸 후들거렸다. 그 몇 발자국이 뭐라고 그렇게 떨리는지. 한 발짝, 한 발짝, 나는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

“…….”


분명 내가 다가가는데, 그가 내게 다가오는 기분. 쿵쿵 울리는 한 걸음 앞의 존재감.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 정현종


“…….”

“…지훈아.”


드디어 닿았다. 수백만의 걸음을 건너 지금 내 눈앞엔 나를 올려다보는 강다니엘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그의 오른손을 붙잡아, 양 손으로 문질러 쓰다듬었다. 내가 그를 모르던 24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그의 손금들을.


“왜 떨고 그래요.”

“…니가 떨리게 하잖아.”


죽겠다, 진짜. 강다니엘이 한숨처럼 말했다. 사실 나도 딱, 그 정도였다. 죽겠다며 탄식하고 이대로 털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 이 말이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태연한 척 하는 나를 그는 알까.


“다니엘 형.”


이미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름을 불러봤다. 똑똑히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말이 많지 않은 편이다. 말은 텅텅 비었고, 그 안을 차지하는 건 단지 마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을 다 채울 수 없다면 감히 가볍게 아무 말이나 내뱉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와서야 나는 벅차게 강다니엘에게 전해주고 싶다. 내 대답은…


“사랑해요.”


아, 저질렀다.


“…….”

“…….”


한참의 침묵. 그리고 와락, 부드러운 옷자락이 서로 맞붙는 소리.

하나, 둘, 셋. 그렇게 아마 3초 정도 지났을 때, 강다니엘은 내게 안겨들었다. 단단한 두 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목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는 그. 매끄러운 콧대와 사근사근한 입술이 부딪쳐오는 게 살갗 위로 느껴졌다. 그리고 강아지처럼 끙끙 앓는 소리와, 흐느낌처럼 내 옷을 적시는 뜨거운 한숨소리. 내 품에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함께할 미래가 안겼다. 매일 이렇게 시도때도없이 끌어안기면 어떡하지. 너무 벅차도록 행복한 무게라, 깔려죽을까 무서울 정도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살살 머리를 쓰다듬으니 강다니엘이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눈이 마주쳤다. 한 번의 깜박임 없이 서로를 담고 있다. 와르르 둑이 무너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 내 안에 수많은 언어들이 물살처럼 스쳐가고 있다. 그걸 두 팔 가득 끌어 모아서 하나로 꽁꽁 뭉친다면 무엇이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지훈아.”


강다니엘.

무력한 이 손으론 그려낼 수도 적어내릴 수도 없어, 그저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내 사람.


“내가 더.”


늘 옆에 있는 사람. 늘 듣는 말.

아, 그러나 매번 버겁게도 나를 짓누르는 이 무게란.


“으아!”


무게를 실어 강다니엘에게 안겼다. 아무렇게나 한 데 엉긴 두 몸이 반동으로 뒤로 넘어간다. 덩어리가 된 몸이 두어 번 통통 튀었다. 성인 남성 두 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 스프링이 울었다. 놀란 강다니엘의 손이 허리를 세게 붙잡아도 입술이 더 근지럽다. 큰일이다. 한 번 하니 계속 하고 싶어져서.


“형, 사랑해요.”


결국, 참지 못하고 뱉은 말. 강다니엘은 대답이 없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안에 어룽거리는 내 모습. 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다. 마치 딱 맞는 액자를 얻은 것처럼.


“정말, 진짜로.”


한참 오가는 시선 끝에 뜬금없는 말이 뚝 떨어졌다.


“내가 밥 할게.”


그리고 이어지는 말.


“청소도 내가 하고, 빨래도 널고, 분리수거도 할게.”

“그러면 저는 뭐하라고요.”

“모르겠다 내는… 그냥 내가 일 하면 옆에 앉아서 그 말 또 해도.”

“…무슨 말이요?”


실은 알면서도 물어봤다.


“사랑한다고.”


나도 다시 한 번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지막하고 망설임 없는 목소리.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몸이 허물어진다. 그의 위에 바짝 볼을 대고 납작하게 엎드렸다. 그러자 손바닥과 뺨을 통해서 그의 가슴팍이 사정없이 펌프질하는 게 느껴졌다. 더 가까이 듣고 싶어서 그의 갈비뼈에 팔을 둘러 안았다. 그러자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내 허리를 바짝 당기는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느껴지고. 사랑해, 다시 한 번 속삭이는 목소리. 숨을 흡- 들이쉴 때는 가만히 내 등을 도닥이는 손길.


아아….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은 파도 위를 부드럽게 두드리고, 요동치는 바다는 튕겨나가는 작은 빗방울들까지도 남김없이, 모조리 껴안고 있었다.


-------------------------

내일 아마 마지막 화 올라갈 것 같아요! 마지막화는 에필로그식으로 조금 짧을 예정이에요! 다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진짜 진짜 감사해요! 좋은 꿈만 꾸셔야해요 다들ㅠㅠ

+)오늘 분량이 짧은 이유는 마감에 쪼들려 에피소드 하나를 디디디에 각색해서 내버리는 바람에ㅠㅠ! 내일 추가할건데 이미 읽으신 분들은 굳이 다시 안 읽으셔두 되구요.....★ 아무튼 그렇답니다 헤헤 그럼 이만 가볼게요!


























RPS 녤윙

모닥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