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두뇌를 따라가지 못하는 성장기의 17살 토니와 산전수전 다 겪은 22살 피터의 이야기.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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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자, 다들 긴장하지 말고. 즐기자고!"

"즐겁게!!"

즐겁기는 개뿔.

모두가 기합을 넣고 오케스트라 뒤편에서 각기 악기를 정리하는 와중에, 토니는 아주 불안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다리까지 달달 떨고 있었다.

"이봐, 스타크. 너무 긴장 하지 마-"

간간이 말을 주고받았던 동료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받은 토니는 대꾸도 하지 않고, 덩달아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즐기려고 노력하는 대학교 축제 날이라고.

토니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2년밖에 안 다니긴 했지만-축제를 전혀 즐기지 않았다. 어차피 친구도 없었고, 사람 많은 곳에서 애매하게 끼는 것보단 랩실에서 더미와 놀기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토니 스타크에게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고,

'피터가 올까?'

누군가를 이렇게 간절하고, 또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도 처음이라는 소리다.



[젊토니피터] 나 혼자 두지 마 (中)



피터 파커.

그는 아주아주 바쁜 사람이었다. 어렸을적 부모님을 잃고 벤 삼촌과 메이 숙모 밑에서 자라, 좋은 형편은 아니었지만 행복하게 자랐다. 어려운 형편이었기 때문에 피터에게는 사춘기조차 사치였고, 그는 빠르게 철드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딱 하나 욕심을 부리는 게 있었다면,  학구열이었다. 마침내 그는 비싼 명문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철드는 법을 일찍 배운 그는 항상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그의 욕심이 과했을까.

'파커럭'은 그에게 휘몰아치듯 엎어졌다. 이상한 거미에 물리질 않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벤 파커, 그의 삼촌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형태로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나름 피터 파커는 메이 숙모와 그럭저럭 살아갔다.

피터가 성인이 되자마자 메이가 급격한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피터는 속죄를 해야만 했다. 그들의 죽음에 책임과 죄책감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인생 처음으로 일탈을 했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벤과 메이가 알았으면 하지 말라고했을 일을 했다. 소소하게라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 친절한 이웃이 되는 것. 비참하게도 그의 강박증에서 '히어로'는 탄생했다.

피터는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일이 곧 속죄라고 믿었다. 공부, 돈, 친절한 이웃으로써의 모든 짐을 그가 지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피터는 아주 바빴고, 시간이 없었으며, 당연히 무엇이든 빠르게 적응하는 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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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 그 토니 스타크 말이야?"

"그렇다니까. 갑자기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다니. 뭐, 부잣집 도련님의 변덕 정도로 생각하고있지만-"

아무리 세간에 관심이 없던 피터라도, 토니 스타크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약 2년 전, 토니가 MIT에 입학한다는 소식에 언론은 물론이고 학교 전체가 들썩였기 때문이다. 단시간 알바로 MIT입학식을 준비하던 피터는, 입학식에 그렇게 많은 사람과(기자 포함) 카메라가 설치된 광경은 처음이었다-피터가 제 친구에게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는 멍청한 질문했을 때, 그 친구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 작네.'

토니에 대한 피터의 첫 인상은 그랬다. 애기티도 못 벗은 15살의 소년이었던 토니는, 가장 어린나이에 작은 키였음에도 입학식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 얼굴도, 그럭저럭-'

"파커!"

"아, 미안."

무엇보다 토니에게 관심이 간 이유는, 얼굴이 피터의 취향이었던 것도 한몫 했다.

삐익-!

그렇게 2년만에 마주한 토니는 키가 정말 많이 커있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성장기라니. 미국 뉴욕시의 평균 남성키에 아깝게-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도달하지 못한 피터는 토니 스타크가 조금 부러웠다. 일평생 누군가를 굳이 부러워하며 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토니 스타크는 부러웠다.

"이게 누구야!"

그날 피터는 곤란해 보이는 토니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토니를 제이크로부터 구해주었다. 토니가 자꾸 우물쭈물하자, 피터는 토니와 시간을 보내줬다. 오후 수업까지 남은 시간동안, 오늘의 친절한 이웃은 한 꼬마를 위해 휴식할 참이라는 소리였다.

몇 살이냐 묻는 토니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이 대학교에서 가장 어린 이 소년이 자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의심스럽게 쳐다본 덕분이었다. 

표정을 전혀 숨길 줄 모르는군. 토니에 대한 피터의 두 번째 감상이었다.

"22살이야."

"뭐?"

당황한 토니가 재미있었다. '그' 토니 스타크가 피터 파커 앞에서 당황하는 꼴이라니. 자신만만하게 정보를 털어버린다느니 입을 털기에 화끈하게 주민등록번호까지 내놓겠다고 했더니 급 쭈굴해져서는, 입을 다물고 눈을 돌리기 바빴다. 오호, 불편한 모양이지? 도망가는 토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바쁜 몸 피터 파커께서는 이미 이 불쌍한 양에게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피터는 아쉽게도 토니와의 인연은 이 만남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니가 묻는 말에 최대한 성실히 대답해 줬다. 아직 이 꼬마 신사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또 우물쭈물하면서도 계속 붙어오는 그가 마냥 귀여울 수 밖에.

여기서 피터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토니 스타크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

"피터! 웬일이야. 바쁜 거 아니었어?"

"음, 오늘 좀 시간이 남아서."

피터는 동아리에 오고 싶었다. 바빠서 자주 못 나오던 전과 다르게, 피터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아리를 나왔다. 왜? 피터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에 갸우뚱하다가,

뿌우-

어설픈 클라리넷 소리에 입술 위로 호선을 그렸다. 와우, 훨씬 잘하네.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피터는 토니와 또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제이크가 토니에게 뭐라 속닥거리는지, 피터의 발달한 청각은 그 먼 거리도 단숨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런. 피터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빠르게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이후 피터는 정말정말 많이 바빴다. 밀린 친절한 이웃 노릇을 하기도 벅찼지만, 곧 시험에다, 학기가 끝나면 취업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 지금 사는 집보다 썩 괜찮은 집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없는 피터가 동아리를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을 굳이 동아리까지 와서 회장에게 전달한 이유는,

"내가 누구 때문에 이제까지 연습을 했는데......"

"누구?"

"으악!"

자꾸 연락이 오는 이 꼬마의 클라리넷 때문에. 어이없게도 피터는 그 짧게 마주한 토니의 얼굴에 만족했는지-토니는 전혀 아니었지만- 인사도 하지 않고 곧장 제 할 일을 하러 동아리방을 나갔다.

이후 피터는 아주 큰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덕분에 며칠 동안 토니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피터는 몇 번이나 붕대를 갈았고, 또 몇 번이나 결석 사유를 작성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겨우 밖에 나갈 수 있는 몰골이 되자 피터는 곧장 나갈채비를 했다. 일단 교수님을 뵙고, 집에 먹을게 없어서 오늘 저녁은 밖에서 해결해야 했다. 혼자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피터가 시계를 봤을 땐, 교수님의 퇴근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피터는 거미줄을 타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장학금! 그렇게 허름한 쫄쫄이를 입고 피터는 하늘 높이 날았다.

여름이 끝나간다기는 하나, 날씨는 여전히 더웠다. 슈트를 입고, 붕대를 잔뜩 감은 모습을 들킬 수 없어 품이 큰 후드티와 긴바지를 입은 피터는 더웠지만, 아슬아슬하게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또 선을 긋는데, 토니가 문득 물어왔다.

"......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이래?"

토니 스타크는 예리하다. 토니에 대한 피터의 세번째 감상이었다.

사실 피터는 어느정도 토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 감각을 피했기 때문에, 멍청하게 피터는 실수를 했다. 토니의 입장에선 곤욕이 따로 없을 정도로, 피터는 그에게 애매하게 굴었다. 물론 피터는 토니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걸 토니가 못 느끼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터가 묘하게 선을 그은 탓이었다.


피터가 왜 토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처음 시작은 '그 토니 스타크'였기 때문이 맞았다. 하지만 토니는 생각보다 너무 어린 아이같았고, 그 아이같음이 피터에게 유일한 휴식이 된것도 맞았고, 어쩌다보니 혼자 사회생활을 해가면서 유일하게 기대게 된 사람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래서 이 어린 소년이, 그 토니 스타크가 하필이면 온몸이 쑤셔 정신없는 와중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애정을 갈구하는 말이어서, 피터는 답해줬다.

"나 아무한테나 안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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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서, 축제날 피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아주, 무사히, 완벽하게-토니는 그 부분을 상당히 강조해서 생각했다. 그래야 피터가 후회할 거라는 생각에......- 잘 마쳤지만, 토니는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토니는 혹시 피터가 시간을 잘못 알지 않았을까 싶어 2시간이나 공연장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축제가 슬슬 정리될 무렵까지, 피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피터, 나 두 통만 더 걸면 부재중 50통이거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 문자를 보면 답장 좀 해줘. -T.S]

토니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결국 문자를 남겼다. 부재중 50통을 채워 말아? 토니는 조금 협박적인 생각을 하며 제 자리에서 탁탁, 발을 5번 정도 굴리고는 제 머리를 마구 쥐어 뜯었다.

"젠장!"

[피터, 차라리 내 자취방으로라도 찾아와줘. 연락이 이렇게 안 되는건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 오늘 오케스트라가 있는 걸 잊은 건 아니지? 우린 우리 관계에 대해서 아주 깊은 대화를 해야할 필요가.....]

"아니, 아니지.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토니는 또 다시 말을 곱게 내뱉는 법을 배우지 못한 제 자신을 한탄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성을 못 느낀 탓에, 굳이 배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피터파커에게 만큼은 잘 대해주고 싶었다.

[무슨 일 있어? 통화로 못할 말이면 내 집으로 찾아와도 좋아.]

"좋아, 이거야."

몇 번의 수정 끝에 토니는 꽤 정상적인 문장을 고른 자신이 기특했다. 뒤이어 제 집 주소를 적어 피터에게 전송했다. 토니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가령 피터가 초인종을 누르고 웃으며 자신을 마주해 주거나, 정말 집으로 들어와서 아주아주 사적이고 심각한 얘기를 해준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되도록 오늘 새벽에라도 찾아올거라 믿으며 토니는 졸린 눈을 하고 꾸역꾸역 잠을 참았다. 더미와 대화하는 것도 지쳤고-일방적인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넷북으로 시덥잖은 게임을 하기에도 지쳤다. 바닥에 뒹굴뒹굴 구르다, 눈앞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티비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화면을 켜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낮 3시경, 퀸즈의 빌딩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빌딩의 3층 사무실을 근무하다 얼마전에 해고를 당한 사원의 범행이었는데요......"

빌딩이 무너지다니? 생각보다 큰 이슈에 토니가 힐끔, 눈을 돌렸다. 이어지는 자료 화면에 토니는 눈을 찡그렸다. 끊임없이 터지는 폭탄과 무너지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급히 대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높은 빌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안의 사람들이 전부 살아 남기에는 꽤나 위협적인 규모였다. 고약한 빌런짓이구만. 토니는 빌런의 범행임을 알곤 지겹다는 듯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귀에 '그'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는.

"-현장에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대피를 돕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약 40명의 부상자를 구출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은 실종됐다는 소식인데요-"

"뭐?"

토니가 벌떡 일어나 다시 뉴스를 주시했다. 빨간 쫄쫄이가 빌딩 사이사이 거미줄을 치며 건물이 완전히 붕괴하려는 것을 막고 있었다. 뉴스는 이미 스파이더맨이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득한 속보를 흘려보내고 있었으며, 주민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저를 구급대원 앞에 내려놔주고, 건물로 뛰어들었어요. 오, 세상에! 그가 뛰어들자마자 건물이 모두 무너졌어요. 무너졌다고요! 정말이에요. 그는 살아남지 못했을거예요......"

스파이더맨의 손에 구해진 마지막 생존자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어지는 자료화면은 정말 처참했다. 토니는 화가 났다. 사망도 아니고, 실종이라며? 왜 다들 그렇게 죽었다는 듯이 말하는지. 그는 히어로야, 메타 휴먼이라고! 토니는 노트북으로 포털 사이트에 스파이더맨에 대한 기사를 모조리 훑었다. 대부분 죽었을거라 예측했지만, 토니처럼 그가 살았을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토니가 흥분해서 스파이더맨 사망 기사에 댓글을 달려던 순간,

쿵-!

".....?"

테라스에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몇 초간 토니는 멍하니 굳어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탓이었다. 그가 부리나케 일어나며 부엌에서 손에 짚이는 대로 후라이팬을 찾아들었다. 강도? 신고해야하나? 혹시 새가 부딪힌건 아닐까?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며 토니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새겠냐, 멍청한 토니 스타크! 테라스에 쳐진 커튼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저게 독수리가 아닌 이상, 새일 확률은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형상인 것이 뚜렸했다.

토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나 죽는 건가? 여기서 고작 후라이팬 들고 죽는 거야?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에 토니는 아까 읽었던 수많은 기사들을 상기했다. 그래, 스파이더맨이 죽었다는게 더 확률이 높겠네..... 그의 사고회로는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찼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아버지 상속은?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슬퍼할까? 빌어먹을 눈물이라도 흘려는 주겠지, 영감탱. 어머니는...... 아, 죽으면 안되는데. 피터는? 피터가 내 끝내주는 클라리넷 연주를 들으면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 자기가 키웠다는 둥 자랑스러워 할지도. 그 녀석 의외로 영감같이 구는 구석이-

똑똑-

토니가 몸을 움찔 떨며 화들짝 놀랐다. 정신차리라는 듯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토니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기 충분했다. 강도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테라스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래, 어쩌면 강도가 아닐지도......."

토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테라스 커튼을 걷었다. 오른손은 언제든 후라이팬을 휘두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그저 살려달라는 기도만이 가득했다. 제발, 제발, 제발!

"...... 세상에."

토니는 요란하게 후라이팬을 제 손에서 놓쳤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도 토니는 굳이 반응해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커튼을 거두자 보인것이 빨간색 쫄쫄이였기 때문에!

"이런 미친!"

슈트가 여기저기 찢겨진 채 피를 잔뜩 흘리는 스파이더맨이 제 테라스에 쓰러지듯 앉아있었다. 토니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죽었나? 였다. 멍청하게 서있는 토니에게 살아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스파이더맨의 가슴팍은 오르락내리락했다. 숨을 쉬고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 이후로는 토니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없이 그를 제 집으로 들였고, 그 와중에 스파이더맨의 머리를 탁자에 박아버렸다는 것, 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멍청하게 넘어지는 토니 위로 스파이더맨의 몸뚱이가 아슬아슬하게 토니를 빗겨간 것. 토니는 거칠어진 호흡으로 우왕좌왕하며 구급차를 부르려 휴대폰을 들었다. 그 와중에 어떻게 정신을 차린 스파이더맨은 토니의 손목을 덥썩 잡아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구겨 버렸다-토니는 스파트폰이 종잇조가리마냥 구겨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는 표현인 건 알았지만, 토니는 허망하게 구겨진 제 휴대폰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아니, 저걸 왜 구겨?!

토니가 정신없이 구급상자를 뒤져 가져와 스파이더맨 옆에 앉았다. 넷북으로 응급처치하는 방법을 일일이 검색하며 엉성하게 붕대를 감았다. 쫄쫄이를 벗기느라 그가 몇 번 땀을 흘리기는 했지만,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토니가 치료를 하는 동안 스파이더맨은 몇차례는 신음을 흘렸다.

"윽-"

"미, 미안해요. 아파요?"

제대로 치료하는 법을 몰라 토니는 잔뜩 눈치를 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는건 어머니, 피터, 그리고 당신 뿐일 겁니다, 스파이더맨. 눈치를 볼만 하게도, 토니가 엉성하게 감은 붕대 사이로는 피가 줄줄 세어 나왔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세게 압박하는 바람에 피가 통하질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치료를 하고 있는 와중에 스파이더맨이 마스크 안으로 몇차례 기침을 하자 토니가 본능적으로 마스크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가면을 걷으려던 순간.

'걷어도...... 되는 건가?'

토니의 행동을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굳이 행동해줄 기운이 없는건지 스파이더맨은 요지부동이었다. 양심에 찔린 토니는 결국 알아서 마스크를 잡은 손을 거뒀다.

토니는 묵묵히 나름대로 치료를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피는 멈췄고, 스파이더맨이 기절하 듯 잠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체...... 이게 뭐지."

현관에서 피터를 마주할 준비를 했는데, 테라스에서 스파이더맨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피터가 오면 뭐라고하지? 그렇게 토니 스타크가 현실 자각에 빠진 틈에, 잠들었던 줄 알았던 스파이더맨이 말을 걸었다.

"...... 토니."

세상에. 스파이더맨이 내 이름을 부르다니, 토니 스타크 너 많이 유명하구나? 토니는 그런 단순한 감상에 젖으며 멍하니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를 쳐다봤다. 피터도 최근에야 겨우 불러주는 제 이름을 스파이더맨이 너무나도 쉽게 불러주자 토니는 괜히 심술이 나 대답하지 않았다.

"토니."

"...... 왜요."

"오케스트라 못 가서 미안해."

그대로 토니는 표정이 굳었다. 오케스트라? 내가 오늘 공연했던 오케스트라? 스파이더맨이 제 동아리를 알만큼 열혈한 팬이었던가? 아니, 토니 스타크에게 이렇게 열렬한 관심을 가진 이가 있었던가?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준적은 파다했지만,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정보를?

아니, 그보다, 이 목소리는,

"...... 피터?"

언제부터 낑낑대며 마스크를 벗고 있던 건지, 상처 가득한 스파이더맨의 얼굴이 토니 앞에 펼쳐졌다.

"...... 미안해."

토니는 놀라서 말을 잃었다. 상처가 가득한 얼굴은 처음 마주하는 얼굴이었지만, 빌어먹게도 피터 파커가 맞았다!

"너-"

토니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을 꺼냈지만, 이미 피터는 기절하듯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러면서도 토니는 착실하게 피터를 제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침대 위에 눕혀주면서도 믿기지 않는 현실에 토니는 양 손으로 제 머리를 감쌌다.

그럼 저 빌딩에서 약 40명을 구한게 피터였고, 그 무너지는 건물을 맨몸으로 지탱한 것도 피터였고, 무너지는 건물로 뛰어든 것도 피터였고, 모두가 죽었다고 지칭하는 것도 피터 파커였고!

묻고싶은 질문이 산더미였지만, 토니가 겨우 입을 열어 잠든 피터의 손을 붙잡고 무너지듯 건낸 말을 한마디였다.

"...... 죽지마, 피터."






연성~연성~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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