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바쿠] 열등감

@gagru_G




 내가 너의 아픔을 다 감싸안고 싶었다. 너를 괴롭게하는 많은 것들에서부터 너를 보호하고, 너를 너 스스로 안전하다 느낄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히어로로써의 성공'이었다.



"그만할래."



 너를 괴롭히는 것들이 전부 없어졌으면 했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너이니까 너를 괴롭히는 것은 나에게있어 빌런과 다름이 없잖아. 그냥 너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냥 다 관두고 싶어."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그게 너의 의지야?"



 잔뜩 피곤한 얼굴을 한채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저번 주 히어로 폭살왕의 납치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몇 번째 보도인지 모를 지겨운 소식을. 너를 납치했던 빌런이 그저 개인의 소동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이번 납치극의 주범은 '시가라키 토무라'로, 5년 전 올마이트의 마지막 대전의 공모자이자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히어로 폭살왕 납치극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경찰은 과거 히어로 올마이트와 싸웠던 '빌런연합'의 브레인은 아직도 별 이상 없이 투옥 중이며...


 뉴스 화면에 네가 텅 빈 얼굴을 한 채 경찰서로 들어가는 모습이 반복된다. 너는 아직도 가만히 앉아서 너의 손만을 내려다볼 뿐이고.


-...따라서 이번 사건은 시가라키 토무라를 우두머리로 한 제 2의 빌런연합의 소동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경찰은 5년 전 빌런연합에서 검거된 실질적 행동파들이 없다는 점과, 그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다는 점을 두고...


 너와, 너를 보호하고 있는.


-...히어로 데쿠를 중심으로 히어로 폭살왕 탈환작저,


 쾅.



"씨발."
"...카츠키."
"씨발. 씨발. 씨발."
"...카츠키..."



 나였어야 했다. 내가 너를 구했어야 했다. 내가 미도리아를 대신했어야 했다. 내가 넘버원 히어로가 아니니까 그 작전에 투입되지 못했던 거지. 넘버투 히어로를 구하는덴 당연히 넘버원 히어로가 필요하니까. 나의 열등감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능력이 있었다면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미도리야를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너라도 넘어섰더라면 내가 널 구하러 갈 수 있었을텐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다는 것 마저 잔뜩 기분이 상한다. 나의 나약함에 내가 굴복하고 있는 것 같아.

 분함에 몸을 떠는 널 끌어안는데도 너는 미동이 없다. 괜찮으니까 꺼지라던가,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라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내게 가만히 안겨있는 너를 느끼면서도 수만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나의 열등함에 나는 오늘도 내가 한없이 싫어져.



"...미안해."



 쥐어짜듯 뱉어진 그 말에 너는 나를 확 밀치곤 벌떡 일어섰다. 잔뜩 상처받은 눈을 하곤 나를 바라보는 너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아. 이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깨닫고 나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의 눈빛이 나를 얼게하고, 어느 새 차올라 넘쳐 흐를 듯한 네 눈물에 아무생각도 하지 못하고. 너의 그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동자가 나를 상처입히고 또 상처받은 자신에 열등감을 느끼며 다시 나로 하여금 상처받는다.

 빠른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간 네가 다시 성큼성큼 큰 발소리를 내며 걸어나왔다. 네가 자주 쓰던 검정 모자와 마스크를 들고, 얇은 옷가지를 입으며. 그제서야 바보같이 허겁지겁 뛰어 너를 잡았다.



"카츠키!!!"
"씨발 이거 안 놔?!"
"갑자기 어딜 가는건데!!!"
"내가 어딜가든 니가 뭔 상관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놔!!!"



 강하게 뿌리쳐진 손이 열로 조금 화끈거린다. 괜히 이 폭발도 아닌 조금의 화상에 가슴이 저릿하다. 빌런에게 잡혀들어가 그저 권유만 당했을 뿐인 5년 전과는 달리, 바쿠고는 무언가의 약을 투입당했고 그 후 재활치료를 받고있다. 아직은 히어로 일을 재개하지 못할 정도이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두 달 안에 다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에서 떠들지 못하는 극비사항이 떠오르면서 또 다시 우리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도대체가.



"차라리 내가 나갈게. 내가 보기싫어서 지금 나가려는 거라면, 내가 나갈게."
"...왜? 지금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머저리라서 그런거냐? 어?!"
"그런게 아니야!!!"



 잔뜩 일그러진 너의 슬픔을 똑바로 바라봐주고 싶다. 그러기위한 훈련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나는 지금 널 잡을 수도 없네. 마음이 일렁인다. 아직도 널 지킬 수 없는 내가 이렇게나 한심해서 어떡하지. 그렇다면 적어도 네가 안전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신을 주고 가줘.

 자기관리가 철저한 네가 치료를 미루는 일은 절대 없을테니까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안식처를 찾고자한다면 당연히 친숙한 히어로인 편이 좋다. 우리보다 더 노련하고 더 능력있는. 게다가 이 상황은 물론 우리를 잘 알고있는. 이 사건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지.

 역시, 올마이트가 아니라 아이자와 선생님이다.



"아이자와 선생님께 연락해줄게. 적어도, 네가 안전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게 해줘."
"......"



 대답하지 않는 너에게 간신히 침묵을 얻어낸 것 만으로도 절반쯤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슬며시 텅 빈 네 손을 잡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손을 이렇게 잡아보는 것도 아마, 오랜만이지. 이 손을 잡고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일을 사는데 말이야.



"...네. 죄송해요 이 새벽에. 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
"아이자와 선생님께서 와 주신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2-30분은 걸릴 것 같다고 하시는데 벤치에라도 앉아있을까?"
"...그러던가."



 갑작스럽게 감정을 쏟아내며 소란스럽게 뛰쳐나온 것 치곤 조용하고 고용하다. 곧장 헤어질 것 처럼 고래고래 소리질렀는데 우습게도 난 데이트를 할 때처럼 손을 잡았고 너도 이번엔 뿌리치지 않는다. 잡은 손을 놓치않고 근처 벤치에 가 앉았다. 손을 통해 전해져오는 온기가 그새 좋아서 힘있게 잡았다. 이렇게 손을 잡고 있다는 것, 네가 내 손을 같이 잡고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우리의 결속력을 느껴. 이것 하나만으로도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언제 돌아올거야?"
"몰라."
"나한테 오기 전까지 나는 카츠키한테 가면 안되는거야?"
"......."
"...아이자와 선생님 주변엔 히어로들도 많고 치료 받으러 다니기에도 제격이니까 걱정은 덜겠지만 나 아이자와 선생님께 매일 안부인사 드릴거니까."
"......."
"걱정을 던다는 건 말이야, 카츠키.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니까. 걱정할거야. 네가 또 널 과도로 몰아붙이고 있는게 아닐지, 널 망치는 생각을 하고있진 않을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다 걱정할거야. 물론 전혀 마냥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냥..."
"......."
"그냥..."
"...멍청이."
"...응."



 그냥 네가 너무 힘들면 내게 기대줬으면 하니까 하는 말이야. 한 번 구하러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널 놓았다는 게 아니니까. 혼자 두고싶지 않아.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



"...나 문자는 해도 돼?"
"...전화도 해."
"매, 매일 해도 돼?"



 상당히 톤이 누그러진 허락의 말에 신이 나서 널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더니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계속 걸라는 말 아니다."
"응!"



 아마 곧 아이자와 선생님 오시겠지.



"카츠키."
"......."
"키스 한 번만 하게해줘."



 이렇게 울적하고 우울한 분위기에서 우리가 이렇게나 조용했던 적도 드물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우리는 언제쯤 성장하는 걸까. 이것도 성장하는 과정인걸까.

 아마 손을 마주잡는 것 만큼이나 오랜만일 키스를 했다. 아이자와 선생님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떨어지려는 너를 잡아 가득 끌어안았다. 내가 널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돌아오는데 오래걸려도 나는 지치지 않으니까."
"...멍청이가."
"나도 그냥 있지는 않을거야. 몸도 마음도 다시 정비할거라구."
"그래. 열심히 해봐라."
"...찾아가지 않을게. 그냥 기다릴게. 그러니까 네가 괜찮아지면 언제든 말해줘."
"...오냐."



 아이자와 선생님께 간단히 죄송하다며 인사드리고 차 문을 열기 직전 다시 널 잡았다. 네 눈이 조금, 평소보다 조금 더 붉어져있다.



"보고싶을거야."
"....... ...나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지만 똑똑히 들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괜찮아.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네가 나에게 맞춰준다니. 생각보다도 훨씬 너의 불안함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건 좀 많이 아프네.



"죄송하지만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졸업도 한 마당에 아직도 말썽이냐 너네는."



 아이자와 선생님의 차가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집으로 들어와 한참을 울었다. 우리의 열등감은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 지금마저도 회복의 과정일까.

 그래도 언제까지고 울고만 있을 순 없으니 부서져버린 텔레비전 잔해를 치우고는 3시간 남짓을 잤다. 잠들기직전, 너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옆에 누워 자고있어야할 너가 없어서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언제나와 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달궜다.

 나는 나의 열등감보다 너를 더 사랑하니까, 가만히 지체되어있을 수 만은 없잖아. 그러니 기다려 카츠키. 나는 반드시 너를 지키는 히어로가 될 테니까.

@gagru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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