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garİbadov

유로비전(Eurovision Song Contest, ESC)을 시청한지 어언 9년, 또 2022년 5월이 되어 유로비전의 주간이 왔다. 1956년 시작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유럽에서 열리는 연중 행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행사일 것이다. 작년 우승 국가인 이탈리아의 모네스킨을 발견하시고 유로비전이 궁금해지신 분들께 유로비전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드리겠다.


한국에는 유로비전이란 개념이 생소하지만 이미 우리가 아는 유명한 노래 중 유로비전에서 왔거나 유로비전으로 유명해진 그룹이 부른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ABBA가 Waterloo로 1974년에 스웨덴에게 우승을 안겨줬었다. Epic Sax guy 밈을 아신다면 이것도 몰도바 2010년도 참가곡인 Run away란 곡에서 나온 색소폰 솔로 부분이다. 연주자 이름은 Sergey Stepanov.


40개 국가가 참가하는 유로비전의 색은 꽤나 강하다. 어떤 무대가 '유로비전 스러운' 무대냐고 묻는다면 대강 이렇다 :

- 한 10년 유행에 늦은 댄스곡

- 반짝이 의상

- 불, 불이 없으면 네온이라도

- 웃통깐 남자댄서

- 요상한 율동

- 하지만 노래가 좋음

- 가사가 희망차거나 평화, body positivity, LGBTQ+등의 소재 가사에 등장한다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덧붙여 자국 언어로 불렀거나 민족성이 드러나는 곡이라면 가산점이 있다. 2021년 Go_A의 Shum이 대중에겐 좋은 평을 받았다. 그리고 언제나 두 무대 정도는 성적 긴장이 완연하거나 헐벗은 사람들이 나오는 무대가 있다. 캣휠을 타거나, 트램폴린을 뛰거나, 그린스크린을 활용해서 투명 댄서를 만든다면 반응이 더 좋을 것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유로비전을 이기는 규칙을 잘 종합한 스웨덴 호스트 Måns Zelmerlöw 와 Petra Mede 의 Love Love Peace Peace 무대를 봐주시면 된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까지의 유로비전 기믹을 한번에 보실 수 있다.


하지만 저 조건을 갖췄다고 1등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9년까지 우승곡 중에 발라드 지분이 많았다. 최근 락이나 다른 하드한 장르가 우승한 것은 아마 Lordi와 Måneskin 정도 아닐까 싶다. 심사위원들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과격한 장르는 좋아하지 않는갑다. 몇 전까지만 해도 시청자들에 비해 심사위원이 투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우승곡이 더더욱 평이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작년에 Zitti e buoni가 시청자들 투표로 우승했으니 나는 더는 불만 없다.


- 지켜야 할 것이 꽤 있다. 가사에 자국의 정치적 이해를 옹호하거나 평화에 반대하는 내용이나 욕설이 들어가면 안된다. 무대에 여섯 명 이상이 설 수 없으며, 동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금지이다.

- 유로비전이지만 유럽 회원국이 아닌 나라도 참가 가능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Zero Gravity를 보시라.


- 많은 무대가 짧은 시간에 바뀌기 때문에 모든 악기는 MR로 대체된다. 무대에서 정말로 '음악적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은 보컬리스트이다. 아이슬란드의 Daði og Gagnamagnið는 그 점을 이용해서 개쿨한 원형 가짜 키보드를 만들어 연주하는 척을 했다.

- 이기고 싶은 나라와 이길 마음이 없는 나라가 무대에서 보인다. 솔로 한명 덜렁 보내서 지루하게 늘어지는 노래를 부르는데 뒤에 댄서도 없고 불도 없고 반짝이도 안날린다면 이 나라는 결승 포기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이번에 스위스가 그렇게 했는데 준결승을 통과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독일은 몇 년 간 이길 마음도 없고 독일을 뽑아줄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영국도 매번 0표 받고 싶어서 작정을 한 것 같았는데 이번 해에 들어줄만한게 나온다고 해서 기대 중이다.


준결승전 :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투표 결과가 나오고 뽑힌 10명의 나라만 호명. 빅 파이브라고 불리는 유로비전의 창립회원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는 준결승에 참가하지 않고 결승에 자동으로 나가게 된다. 아무리 빅파이브가 그지같은 무대를 들고 오더라도 우린 그 무대를 결승에서 봐야하는 것이다.


결승전 : 개표시 가장 적은 표를 받은 그룹부터 호명. 40개 국의 심사위원은 각 결승 참가국에게 0에서 12점을 줄 수 있다. 0에서 11까지는 곧바로 분배가 집계되며, 가장 큰 점수인 12점의 할당은 그 이후에 발표된다. 심사위원의 점수 분배가 모두 끝나면 시청자 점수가 합산이 돼서 진정한 우승자를 고르게 한다. 보통 심사위원이 높은 점수를 주는 곡과 시청자 투표 결과는 꽤 다르다. 우승국은 다음 해 ESC 주최국이 된다


- 유로비전의 공식 진행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그래서 개막식과 개표식에서 프랑스어를 들을 수 있다. 이번 해에는 다국어 사용자인 미카가 영어와 불어를 번갈아가며 사회를 봐서 이 면에선 하드캐리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몰도바, 리투아니아 쪽이 자주 edm이나 댄스쪽으로 재밌는 음악을 가지고 온다.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는 굉장히 지루하거나 굉장히 근사한 몸매의 여성밖에 내세울게 없는 무대를 가지고 온다. (이번 년에는 알바니아는 근사한 몸매의 여성이 나오지만 아주 흥미로운 무대를 가지고 왔고 세르비아는 팬데믹 시국의 세르비아의 의료 시스템을 고발하는 굉장히 신선한 무대를 가져왔다. 알바니아가 결승전까지 못 간것이 아쉽다)


- 핀란드는 메탈을 해... 당연함 Hevisaurus 들으며 자라는 어린이들의 나라임. 


- 아이슬랜드는 가족단위가 많이 나와... 당연함 아이슬랜드임.


- 북유럽 국가, 특히 스웨덴이 유로비전에 목숨을 건다. ABBA의 나라라 이거지. 개최국 못한지 10년 됐다고 벌써 시동 부릉부릉 거는 것 같다.


- 이 표가 각 나라의 외교적 관계에 따라서 굉장히 좌지우지된다. 보통 큰 나라를 제외하면 비교적 작은 국가들 (특히 동유럽쪽)에서 주변 국가에게 표를 많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들리긴 한다). 심사위원들이 정치적 우방에서 표를 주는 성향이 강하다. 작년에도 친러국가와 친이스라엘 국가가 어딘지를 투표 결과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브렉시트가 일어난 지난 해에 영국은 0표를 받았다.


결론 

유로비전 재밌게 보는 법

1. 유로비전은 예술제가 아님을 명심하라. 사실 유로비전은 약간 이 후진듯 괜찮은듯 이해할 수 없는 B급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센 노래가 많지만 가끔은 정말 일상생활에서도 듣기 괜찮을 것 같은 노래도 나온다.

2. 보면서 이 나라 대략 몇 위 할지 리스트를 짜본다. 준결승이라면 떨어질 것 같은 나라 리스트를 작성한다. 내기 좋아하면 뭐 과자내기같은거 하기.

3. 먹을 것 잔뜩 사놓기. 특히 결승이면 거의 4시간 이상 중계하기 때문에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한다.

4. 대략 유럽의 큰 정치적 문제를 파악하면 누가 상위권에 오르거나 광탈당할지 알 수 있다. 나는 귀찮아서 항상 친구들한테 물어본다.

5. 반짝이 의상 몇 번 나오나 세보기

6. 혼자 보는 것보단 친구와 함께 보거나 텀블러로 반응을 지켜보며 볼 때 제일 재밌다. 친구들과 소파에 앉아서 과자와 탄산음료를 늘어놓고 저딴 무대에 표를 줬냐고, 누가 이런 구린 취향을 가지고 있냐고 함께 분노하는 맛에 보는 것이다. 만일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외로운 저와 함께 떠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2022년 ESC 짧은 감상평

아무리 봐도 대중 투표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집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브르통 어로 노래하는 프랑스인이 그렇게나 싫으셨나요? 작년보다 다채로운걸 가져왔는데 뒤에서 2등이라구요 (작년 프랑스 엔트리 진짜 싫어하는 사람)?? 더 라스무스와 노르웨이에게 이렇게 표가 안간게 말이 안된다... 탑 쓰리는 좋았어요. 스웨덴과 스위스가 너무 순위가 높아서 의아합니다. 그리고 독일 노래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벨기에보다 낫잖아 이건 진짜 그냥 독일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하지만 세르비아 무대가 엄청나니까 한번 보세요. 예술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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