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치와 란, 카이토와 아오코는 그냥 소꿉친구의 관계로, 연애 감정은 없다는 설정 하에 쓴 글입니다







"......하아."


늦은 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현관에서부터 걸어오며 하나하나 불을 켠 카이토는 거실의 전등 스위치에 손을 대고 멈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쇼파에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은 2년 전부터 함께 동거하고 있는 룸메이트였다. 얌전히 내려앉은 눈꺼풀과 색색거리는 숨소리, 평소 얇게 잠이 드는 그로서는 드물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잠이 내려앉은 그 얼굴에 카이토는 말 없이 숨만 무겁게 내뱉었다. 모처럼 단잠을 자고 있는 그를 혹여 깨우기라도 할까 카이토는 스위치에 손을 올린채 그저 꼼짝 않고 있었다. 사실 거실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기에 발소리같은 건 날 리가 없었지만 이 정적을 제 발로 깨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자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카이토는 제 뒷편에 켜진 불에만 의존해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을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새액새액,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 차츰 어둠에 적응한 그의 눈이 서서히 그의 자는 얼굴을 조금씩, 조금씩 선명하게 채워넣는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그 얼굴을.


"...다녀왔어."


닿을 수 없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같이 살까?'


쿠로바 카이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상대가 끝내 알아채지 못 한 비밀 관계를 청산한 뒤, 성인이 되면서 함께 하게 된 그 사람은 저와 맥이 빠질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같은 대학을 다니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리고, 같은 집에 살게 되고. 동거 이야기를 먼저 꺼내온 것은 그 쪽이었다. 카이토는, 바란 적은 있지만 감히 넘본 적은 없는 그 내밀한 관계의 유혹에 숨이 턱, 막혀왔다. 조근조근 말하는 그의 입술이, 그의 혀가 마치 달콤한 유혹인 것만 같았다.


'응?'
'같이 살 거냐고, 우리. 너, 집도 먼데 우리 집에서 학교 다니는 게 더 낫지 않냐.'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누구의 제안인데, 어떤 제안인데.



이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짐을 옮기고, 방을 정하고, 당번을 정하고. 같이 살기 위한 준비는 착착,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저는 물론이고, 그 또한 많은 양보를 했기에 서로가 있는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다른 한 쪽의 얼굴을 봐도 놀라지 않게 되었고, 혼자 방에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물론, 놀라지 않는다는 것과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카이토의 입장에서 이는 긴장과 맞바꿔 얻은 행복이었다. 잔잔한 행복이었지만 평화로운 행복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기뻤지만 좀 더 많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했다. 집에서 자신은 언제나 마술사 그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했다. 사이는 가까울수록 멀어지기도 쉽고 빠른 법이었다. 여기서 선을 넘었다간,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게 남보다 못한 관계로 떨어져버릴 순 없었다. 조금 힘들어도 함께 있는 게 좋았다.
카이토는 항상 자신을 감추어야 한다는 현실에 순응했다.


'카이토, 욕실 비었어.'


반 나체의 모습에 익숙해져야했다. 카이토는 갑작스럽게 튀어오르는 충동을 억지로 잡아누르는 법을 배웠다. 설령 그가 알몸으로 그의 눈 앞에 떨어진다고 해도, 자신은 태연한 얼굴로 그를 일으켜줄 수 있어야 했다. 마치 그곳에 동전이 있으면서도 없는 척, 배짱 좋게 관객을 속이는 마술사와 같이, 분명 존재하는 이 감정을 없는 물건 취급했다. 카이토는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 출발하는 법을 배우려 했다.


'카이토, 이것 좀 봐줘.'


느닷없이 좁혀지는 거리에도 숨소리를 골라야 했다.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카이토는 기대를 이성으로 매도하는 법을 배웠다. 가끔 가다 맞붙게 되는 살결에 무심한 척을, 제법 잘하게 되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그에 대한 보답처럼 실력은 순조롭게 늘어갔다.


'카이토.'


사실 이름에 익숙해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언제부턴가 서로 부르게 된 이름. 그가 불러주는 자신의 이름에 설렜고, 그의 이름을 자신이 부를 때면 떨렸다. 자신이 그에게 특별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특별함은 자신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뻔뻔하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많은 것이 익숙해진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하면서도 냉정한 현실은 여전히 카이토을 비참하게 했다.


 

그와 다른 이의 키스를 목격했을 때에는, 아무래도 어딘가에 가서 화풀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설마 이런 것까지 봐야할 줄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눈물이 나올만큼 억울해서, 원래라면 그에게 들키기 전에 몸을 숨겼을 텐데도 그가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 상대와 떨어질 때까지 멍하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화가 났지만, 그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당황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 저도 모르는 새에 천연덕스럽게 손키스를 날리고 그 자리를 보란 듯이 벗어난 자신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반복된 훈련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게 했다. 집에 들어가서도 그가 언제 올지 몰라 울 수도 없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샤워를 하며 울음소리를 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직후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그마저도 못 했다. 


그가 그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 든 안도감은 카이토를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는 그 깊고도 추악한 감정을 자신에게 몇 번이고 느끼게 하진 않았지만, 그 감각은 상당히 깊숙하게 카이토를 갉아먹었다.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와 함께 살면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과 일상의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카이토를 진심으로 웃게 만들었다.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는 태연해지는 만큼 무덤덤해졌다. 반복된 훈련은 감정을 느낌표가 아닌, 하나의 서술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문자로 나타난 자신의 감정을, 카이토는 좀 더 쉽게 비웃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이 아닌, 책 속의 누군가의 것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져서였다. 여전히 그를 보고 설레고 두근거렸지만, 그 마음을 조롱하는 것도 쉬워졌다. 무덤덤해지려 노력했더니, 정말로 날뛰는 심장 소리를 다른 사람의 심장 박동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카이토는 좀 더 수월하게 그의 옆자리에 스며들었다. 친구라는 관계에 만족하고,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그랬기에 카이토는 지금의 이 기억들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사랑해,'


카이토는 술이 싫었다.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술이 너무나도 약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그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이성을 놓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감수할 수 없었기도 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제법 지난 지금까지도, 술을 입에 대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많이 마셔본 것이라고는 맥주 한 잔이 전부였다. 그것도 맥주잔이 아닌, 종이컵에.
그래서 그가 마시려고 내놓은 투명한 양주 한 잔을 물로 착각하고 먹은 것이 진정한 자살 행위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잠이 원수였다. 덜 깬 눈과 두뇌는, 냄새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했다.


'신이치, 사랑해.'
'카이토, 정신 차려.'
'응. 사랑해.'
'취했어?'
'사랑해.'


일단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대화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그가 뭐라고 말을 걸건, 자신은 무조건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말만 반복했다.


'사랑해.'
'카이토, 나 신이치야. 나 몰라?'
'응. 신이치, 사랑해.'


눈이 풀린 채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그에게 안겨들었다. 이렇게까지 저가 취한 꼴은 본 적 없던 그는 당황해하면서도 안겨드는 저를 착실하게 다독이며 쓰다듬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눈물은 났다.


'카이토, 울어?'
'응. 미안해, 신이치.'
'뭐가 미안해. 너 정말 술 취하면 안 되겠구나.'
'잘못했어.'
'괜찮아, 괜찮아. 속 안 좋아? 화장실 갈까?'
'미안해.'
'카이토.'
'미안해.'


그 와중에 미안하긴 했는지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과를 반복했다. 그것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친구 관계에 대한 사과였는지, 갑작스럽게 그를 놀래킨 것에 대한 사과였는지, 아니면 취해서 그에게 엉겨 붙은 것에 대한 사과였는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그 때의 자신은 참으로 그에게 미안했다.


'카이토. 너 취하면 아무 말이나 하는 타입인 거야, 아니면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는 타입인 거야? 헷갈리니까 그것만 알자.'
'신이치....'
'응.'
'사랑해.'
'.....그러니까 후자라는 거지.'


그는 남의 머릿속을 훤히 다 읽고 진실을 밝혀내는 그 천성답게 차분히 정답을 이끌어냈다.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머리가 아팠다.


'언제부터야.'
'사랑해.'
'가벼운 감정은 아닌 것 같고.'
'사랑해.'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조금 놀랍네.'
'신이치.'
'미안해, 카이토. 내가 널 너무 오래 힘들게 한 것 같다.'


자신을 안아주는 그의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정신이 없었던만큼, 그에게 더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이 벌이고 있는 만행에도 그는 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 건.


'.....카이토?'


잘은 모르지만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기는 한 건지 스스로도 눈을 감은 상태였다. 그리고 입술이 아주 조금 맞닿았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말을 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고, 그는 상황을 사고 회로가 따라갈 수 없어서인지 침묵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은 뭔가를 기다렸던 것 같지만 기대했던 것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알코올 때문에 입 안도, 목구멍도 뜨거웠다. 더운 혀는 밖으로 내밀려 어디론가로 기어들어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알코올로 덥혀져 있었던 자신의 몸이 그 순간 확 달아올랐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이내 이것이 키스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가벼운 키스가 아닌, 본격적인 그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것. 그것을 자각하자 숨이 가빠왔다. 그리고 직후, 달려들듯이 그에게 입 맞췄다.

서로의 보폭이 맞지 않아 비틀거리다 냉장고에 부딪혔다. 그 문 틈새로 희미하게 냉기가 느껴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냉장고에 등을 댄 그가 자세가 불편한지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머리를 받치고 허리를 감싸고, 입술을 삼키고 혀를 겹쳤다. 엉거주춤한 혀를 감싸안았다. 입술을 부비듯 빨았다.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섞이는 숨에 몹시 흥분했던 것 같다. 이 때 그가 저항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억나는 것은 그가 내 등을 토닥이던 그 손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불쌍했을까, 미안했을까. 어찌됐건 그는 조심스레 나를 껴안았던 그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을 타 그의 입술을 핥았다. 그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고, 훈련된 나의 몸은 그의 눈을 기계덕으로 태연하게 응시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와 입술을 포갰는데, 이 단계에서 아마 내게 있던 정이 다 떨어졌으리라 짐작한다. 이 때부터 그의 저항 섞인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득하게 그에게 달라붙었고, 그는 조금이나마 거리를 벌리려 내 몸을 밀어냈다.


'진, 정해, 카이토. 사람 말 좀... 들어!'


무모했다. 나는 정말 앞일 뒷일 생각지도 않는 무모한 놈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제정신이었더라면 겁이 나서라도 물러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단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기를 쓰고 나를 밀어내려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챘기에, 그 때의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고개가 옆으로 뚝, 꺾여버릴 듯이 나는 그에게 깊이 키스했다.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그렇게 했다. 우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그만.....해!'


그의 발길질에 맞아 나는 볼품 없이 나가 떨어졌다. 싱크대의 모서리에 등을 부딪히고, 무너지듯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가 숨을 몰아쉬는 거친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나는 다시 멍한 상태로 돌아와있었다.


'카이토, 정도가 지나쳤어.'
'..신이치.'
'......왜 이래,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신이치.'
'나 때문에 그래? 내가 원망스러워서?'
'사랑해.'
'카이토.'
'미안해.'



그리고 기억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카이토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선을 넘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자신을 갈고 닦아왔고, 괜찮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아주 잘 해내왔다.
어제까지는. 


".....신이치."

"왜."


딱히 대답을 염두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는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저하며 돌아본 뒷편에는 그가 서있다.


"신이치...?"
"이제 일어났네, 기다렸어."


머리 위로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의 표정이, 그의 눈빛이, 이미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빌어야 했다. 손발이 닳을 때까지 빌어야 했다.


"....미안해. 내가, 내가 무슨 짓을.."
"다행이네. 어제 일이 기억 안 날까봐, 그거 하나 걱정했어."
"미안해, 미안-"
"카이토."


그가 카이토의 말을 단칼에 끊었다.


"나 좋아해?"


알면서, 그는 알면서 굳이 물었다. 그게 탐정으로서 자백을 받고 싶어하는 습성의 일환인 건지, 아니면 그저 앞으로 내뱉을 서릿발 같은 말의 서두일 뿐인 건지. 어쨌든 그는 굳이 그것을 카이토에게 물었다.


"...응."
"언제부터?"
"오래 전부터..."
"정확하게 언제."
"....이 집에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런데도 내 동거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미안해."
"카이토, 왜 그런 거야?"
"거절..할 수가 없었어. 그렇지만, 절대 다른 마음을 품었던 건 아냐. 맹세해."
"글쎄, 어젯밤 일을 겪은 사람 입장으로서는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지은 죄가 있으니 아무 변명도 돌려줄 수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서 카이토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빨리 이 집에서 자신의 짐을 들어낼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카이토의 머릿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그가 인상을 쓰며 카이토의 눈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앞서 가지 마."
"흡-"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얼굴에 놀라 카이토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입을 손으로 막은 카이토에게서 히끅, 딸꾹질 소리가 났다.


"잘 한다."
"히끅, 미안, 히끅."
"됐다, 그냥 듣기만 해."
"히끅-"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토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가 눈빛을 가라앉힌 뒤 차분하게 말했다.


"카이토, 이유가 어찌 됐건 강제로 밀어붙이는 건 옳지 않아."
"....."
"네 마음만으로 정당화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거야."
"........미안해."
"네가 미안해하는 거 알아. 그렇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 거야, 너라면."
"응. 오늘 바로 나갈게. 지금이라도-"
"나가라고 돌려 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가 카이토의 말을 딱 잘라 부정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마."
".....응."
"알았어?"
"응. 잘못했어. .....미안해."


카이토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말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그를 오래 품어왔다고한들, 아무리 그가 제 마음을 눈치채주지 못했다고한들, 아무리 그렇다고한들, 그가 잘못한 일은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다. 품은 마음에 무조건 답해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고개 숙인 카이토를 말 없이 내려다 본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카이토."



그리고 그는 카이토를 껴안았다.


물론 껴안긴 본인이 심장이 멎을만큼 놀란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답답했을 거 알아. 네가, 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네 마음을 꽁꽁 숨겨왔을 것도 알아. 네가 날 위해 해준 모든 노력들을 이제는 알아."
"신이-"
"정 떼려면 어제 뗄 수 있었어. 그렇지만, 난 널 외면 못하겠더라. 날 위해 그동안 네가 얼마나 양보해왔을 지를 생각하니, 차마 냉정하게 등을 돌릴 자신이 없었어."
"아니, 그런 걸로 유세 부릴 생각은 없어. 내가-"
"화가 났긴 해도, 밉진 않아. 네가 좋기도 하고."
"..."
"카이토, 아까 나랑 한 약속. 그것만 지키면 돼."


그가 그제서야 굳은 얼굴 표정을 풀고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얼굴을 보게 된 카이토가 힘이 빠져 풀썩, 뒤로 주저앉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어제 일은 잊을게."
"...나랑 계속 친구로 있겠다고? 진심이야?"
"바보야, 그게 아니잖아."


그가 조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잊고 네 감정에 대해서만 신경 쓰기로 하겠다고."
"....뭐?"
"고백할 거야, 말 거야?"


카이토는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 숨이 막힐 수 있다는 것을, 그 덕분에 깨닫는다.


"자, 어쩔 거야?"
"조-"


입 밖에 내뱉는 순간, 입술이 떨려오고 손이 떨려온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이 혼란스럽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말이 목에 걸린 것처럼 턱턱 막혀 온다. 숨이 부자연스럽다.


"좋, 아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닌데."


눈 앞의 그가 짖궂게 웃었다. 그의 눈꼬리가 능청스럽게 올라간다. 얄밉지만, 그런 그도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좀 더 마음을 담은 말이 있을텐데..."
".....사랑해."
"그래, 좋아. 그 뒷말은?"
"제, 제-"


용기를 내자, 카이토는 떨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용기를 내자, 카이토.


"제, 연인이 되어주세요."


카이토는 용기를 내어 그렇게 말했다.


"사랑해요."



해야 할 말은 다 했다. 이 이상 긴장할 수도 없다. 심장이, 간지럽다고 느낄 정도로 떨린다.
남은 건 너의 대답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신과도 같은 너의 말이다.



"그래."


그리고 카이토의 신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좋아해, 카이토."






그리고 그것이 카이토가 신이치의 앞에서 보이는 두번째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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