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쪽으로 와

- 어....고마워.



먼저 트럭 위로 올라가 있던 레오가 쌓여있는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는 커다란 초록색 담요를 철판 바닥위로 깔았다. 운전석 뒤쪽에 기댈 수 있는 자리 앞으로 손짓하는 레오의 옆으로 다가가자 어디서 났는지 촌스러운 커다란 밀짚모자를 루카스의 머리 위로 눌러씌웠다. 



= 3시간은 넘게 걸릴거야.

- 멀다.

= 좀 잘 수 있으면 좋을텐데.



햇빛에 눈이 부신지 눈살을 찌푸린 레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빠진 짐도 없고, 사무실을 정리중인 에드워드만 트럭에 타면 출발할 것 같았다. 여기서 잠시 시내 사무실에 들러 다른 직원들을 몇명 더 픽업해서 최종 목적지인 호수로 향할 예정이었다. 담요 위에 앉아 등을 기대고 앉은 루카스가 서있는 레오의 팔을 잡아당기자 아래를 내려다본 레오가 루카스의 옆으로 털석 주저앉았다. 바닥이 딱딱해. 손으로 바닥을 짚어보는 레오가 다른 걸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루카스가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

= 한참 가야하는데..엉덩이 아프겠다.

- 불편하면 나중엔 그냥 누워버리지 뭐.

= 그게 더 낫겠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단 둘이 가는 건 아니지만, 또 한번의 여행이라 설레는 마음이 들어 루카스는 옆에 앉은 레오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사무실에서 나온 에드워드가 운전석 옆에 앉자 드디어 트럭이 학교를 출발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트럭의 뒤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자, 루카스도 크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시내가 가까워지자 비포장 도로에 한참을 시달린 엉덩이가 겨우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속도를 내는 자동차 옆으로 머리 위에 짐을 가득 얹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시내에 들어서자 매캐한 매연 냄새에 어깨에 두르고 있던 담요로 코를 막았다. 분명, 환경 기준에 맞지 않아 자국 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된 수준의 차를 모조리 아프리카로 수출하는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의 모든 차에서 저렇게 엄청난 수준의 자동차 매연을 뿜어낼 수는 없을테니까. 앞차에서, 옆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에 얼굴을 찡그린채 옆에 앉은 레오를 돌아보자 레오 역시 손등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 숨 쉬기가 괴로워.

= 아프리카에서 매연 문제로 힘들었다고 하면 안 믿을거야.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의 눈에 자동차들 사이로 걸어다니며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보였다. 제법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얹은 아이들이 루카스와 눈이 마주치자 마침 신호에 걸려 정차중인 자동차 옆으로 재빨리 다가왔다. 음료수나 과자 따위가 담겨있는 바구니, 조잡한 장난감이 담겨있는 바구니, 조각이나 그림 등의 기념품이 담긴 바구니들이 순식간에 루카스의 눈 앞으로 내밀어졌다. 저마다 재빨리 가격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제지하듯, 앞자리에 앉은 에드워드가 큰 목소리를 냈다. 



당황한 루카스의 미안한 시선이 아이들을 스치고 지나가자 레오가 재빨리 바구니 하나에서 콜라캔을 하나 꺼내들고 잔돈을 내밀었다. 차가 가 출발하기 직전에 돈을 받아든 아이는 큰 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제이슨, 사무실 직원인 빅터와 호프가 트럭 뒷칸으로 올라탔다. 처음 사무실로 왔을때 만났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루카스에게 먼저 아는체를 해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루카스와 레오가 앉아있는 쪽의 반대편 코너에 떨어져 앉은 빅터와 호프와는 달리 제이슨은 레오의 옆으로 오더니 좁은 공간 탓인지 레오 옆에 바짝 붙어앉았다.



= 왜 여기로 와. 저기 앉아. 구석에

= 불편해. 여기가 좋아. 

= 나도 불편해.



레오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제이슨이 팔을 뻗어 레오의 옆에 앉은 루카스의 밀집 모자를 툭.하고 건드렸다. 



= 레오가 골랐지? 뭐야, 이 못생긴 모자는. 하하하.

- 좀 촌스럽지. 

= 응. 얘는 티셔츠 취향도 그렇고. 하여튼 센스가 없어.

= 왕아! 그게 촌스러워?



설마, 예쁘다고 생각하고 가져온 건가...루카스는 잠시 멍하니 레오를 쳐다보고만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 레오의 낮은 탄식이 들려오고 그 위로 제이슨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겹쳐졌다.




**




몇시간이 걸려 도착한 호수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휴양지였다. 속해있는 단체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사무실 직원들만 초대해서 매년 같은 곳에서 연말 파티를 개최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사여서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기분이었다. 콘도식의 숙소에 배낭을 메고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있던 애나와 헤이디가 거실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차가운 타일바닥과 높은 천장의 콘도는 들어서자마자 바깥의 온도와는 다르게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 잘 있었어?

- 응. 테레사한테서는 소식 있었어?

= 잘 도착했다고 메일 왔어. 가자마자 살이 3키로나 쪘대.

- 하하. 큰일이네.



애나와 인사를 하는 사이 제이슨과 헤이디가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쟤들은 지치지도 않나봐. 만나면 싸워. 웃으며 이야기하는 애나를 따라 웃고 있는 사이 레오가 에드워드에게서 받은 일정표를 가지고 거실로 들어왔다. 



= 저녁까지는 자유시간. 

  다같이 저녁 먹고, 밤에는 불꽃놀이 한대.

- 재밌겠다. 

= 그럼..우리 먼저 산책하러 나갈까? 호숫가 구경도 할겸.

- 좋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느새 헤이디와 싸움을 끝내고 다가왔는지 제이슨이 루카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도 같이 가. 루카스가 제이슨의 말에, 레오가 제이슨의 팔에 신경이 쏠린 틈을 타 애나가 제이슨의 팔을 잡아당겨 루카스에게서 떼어냈다.



= 눈치도 없어. 

  넌 나랑 헤이디랑 갈거야. 우리 보디가드 해야지.

= 내가 왜?

= 닥쳐.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한 제이슨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정말 덩치는 곰만 해서는 순하기만 했다.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루카스를 쳐다봐도 어쩔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왠지 험상궂은 표정으로 제이슨을 쳐다보고 있는 레오의 손목을 잡고 팔짱을 꼈다. 구경하러 나가자.




발끝에 거슬리는 돌맹이를 툭.툭. 걷어차며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것 같은 레오의 뒤를 아무말 없이 따라걸었다.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밟고 싶어서 레오가 걷는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었다. 한낮의 더위가 겨우 비켜난 시간,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숫가에는 마치 바다처럼 철썩이는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갔다. 갈매기 대신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조용한 날개짓을 하며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고 휘파람 같기도 한 울음소리를 냈다. 조용한 호숫가의 파도소리는 마치, 한밤의 바람에 흔들리던 옥수수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연상하게 했다.



땅을 보며 걷고 있다가 갑자기 레오가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등에 머리를 부딪칠뻔 했다. 고개를 들어 레오를 쳐다보자 왠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던 레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 화난 거 아니야.

- 응? 화났었어?

= 아니! 아니라고.



알아, 알아. 웃음이 나온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마주보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채로 레오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는 다시 뒤돌아섰다. 레오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레오의 이름을 불러 세웠다. 



- 레오.

= 응.

- 더워. 배고파. 졸려. 



일부러 조금 짜증을 실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레오가 걸음을 멈추고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그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와서 입술을 깨물자 레오의 미간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다 천천히 흘러내렸다.



= 식당에 가볼까? 간단한 메뉴는 있는 것 같던데.

- 레오.

= 응?



당황함이 사라진 레오의 얼굴에 다정함이 묻어났다. 말꼬리를 내려 달콤함을 섞은 루카스의 부름에 고개를 조금 숙이고 말끝을 올린 레오의 대답은 부드럽게 귓가를 맴돌았다.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가 한걸음. 레오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티셔츠 끝을 잡아당겼다. 낡은 티셔츠는 목 언저리가 금방 늘어나 루카스가 당기는 대로 티셔츠 밑단이 아래로 내려왔다.



- 웃어봐.

= ..무슨 소리야, 갑자기.

- 얼른. 



루카스의 조르는 듯한 부탁에 천천히 레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광대가 조금씩 올라가고, 보일듯 말듯 보조개가 드러났다. 가늘어진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자 루카스가 조금 더 티셔츠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늘어지는 티셔츠를 따라 레오의 몸이 저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웃으며 레오의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 루카스가 천천히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큰일이다. 눈 앞에 있어도 이렇게 불안한데

  떨어져있으면 어쩌지..

= 누가 할 소리를.

  너는 싫다는 말도 잘 못하고..불편하다는 말도 잘 못하고.

  진짜, 걱정돼.

- 알아. 그러니까 내가 더 노력해볼게.

  낯가리는 것도 고치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술자리도 거절 안하고..말도 더 많이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노력하고.



말을 잘못 꺼냈다는 표정의 레오를 보자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정말이지 더 잘하고 싶었다. 레오는 루카스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으니까.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티셔츠를 다시 잡아당겼다. 빨리 밤이 되어 어둠이 우리를 가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새 달빛이 우리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넘쳐서 가슴 속에도 파도가 들이치는 것 같았다.



레오가 천천히 허리를 펴자 티셔츠를 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한걸음. 가까이 다가온 레오가 루카스의 옆으로 서서 어깨에 팔을 둘렀다. 묵직하게 어깨로 느껴지는 무게에 고개를 돌려 레오를 쳐다보자 웃으며 고개를 숙인 레오의 이마가 루카스의 이마에 와서 닿았다 떨어졌다. 햇볓에 달아오른 레오의 팔이 전해오는 열기 때문인지, 조금 전 가까이 다가온 눈빛의 다정함 때문인지, 루카스의 얼굴에도 금새 열이 올랐다. 제이슨하고는 다르다고...루카스가 중얼거리자 레오가 조금 더 팔꿈치에 힘을 주고 목을 조여왔다. 고개를 숙여 목 아래 무방비하게 자리한 갈색 팔을 깨물어줄까- 잠시 생각했지만 대신 턱을 올려 세게 문질렀다.



= 가자. 배고프다며.

- 과일 먹고 싶어.

= 찾아보자.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역시, 뒤를 따라 걷는 것보다 나란히 걷는 게 훨씬 좋았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보는 대신 옆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너머로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 아, 나중에 우리 방은 같이 쓰는거야?

= 당연하지.

- 빨리 밤이 되면 좋겠다.

= 왜? 

- 불꽃놀이.

=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방 얘기가 왜 갑자기 불꽃놀이로 넘어가?

- 불꽃이...꼭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건 아니지?

= 하하. 그리고 물론, 밤에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 나온김에 우리..



아차, 먼저 장난치는 게 아니었다. 루카스는 재빨리 레오의 팔을 세게 깨물었다. 아..아픈 소리를 내면서도 레오는 팔에 힘을 푸는 대신 더 세게 루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조금 더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이자 레오의 웃음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왔다.







- 꽤 비싸구나.

= 그러게. 하긴, 길거리 물가하고는 다르니까.



간단한 스낵류를 팔고 있는 카페테리아의 메뉴판 앞에서 적잖이 고민이 됐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가지고 나온 돈이 모자라 돌아서려는 레오와 루카스의 앞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클라이브! 여긴 어쩐 일이에요.

= 우리도 여기서 연말 행사를 해요. 

  이렇게 또 만날 줄은 몰랐는데, 반갑네요.

  레오, 루카스.

-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하는 레오의 옆에서 살짝 목례를 하자 클라이브가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레오를 흘낏 쳐다보았다가 손을 내밀자 클라이브가 가볍게 손을 잡았다 놓았다. 조금 전 루카스가 고민하던 팬케이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하는 클라이브에게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클라이브는 어느새 맥주까지 추가로 주문해버렸다. 



= 저도 늦게 와서 점심을 못 먹었거든요.

  같이 먹어요.

= 좋죠.  감사합니다.



일전의 선물도 잘 받았다고 잊고 있던 사진 이야기까지 꺼낸 레오가 클라이브가 앉아있던 테이블 맞은편에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 루카스에게 손짓을 했다. 아, 키스하던 사진을 생각하니 클라이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사진 속 장면을 지우려 고개를 재빨리 좌우로 흔들고는 루카스도 자리에 앉았다. 



= 그때, 친구분들은 잘 지내죠?

= 아. 잘 지낸다고 해야 하나 못 지낸다고 해야 하나.

= 왜요?

= 아마 곧 이혼할걸요?

- 네???



질문을 한 레오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가만히 듣고 있던 루카스의 놀란 목소리가 빨랐다. 그 격한 반응에 놀랐는지 클라이브가 마시려던 맥주잔을 든 채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아...그러니까...그렇게 사이가 좋아보였는데.. 분명히 신혼여행 중이었다고 들었는데.



= 하하.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었어요?

- 네.

= 원래, 두 사람 성격이 좀 그래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 생각엔 반년 안에.

- 아..그렇군요.



그렇구나. 그렇게나 좋아하는 사이인데도 헤어지려고 하는구나.. 사실은 그때의 커플이 부러웠었다고 하면, 레오는 무슨 말을 할까. 결혼이라는 제도로 영원을 약속한 사람들도 이렇게 쉽게 헤어지려고 하는구나.  나는...우리는....고개를 숙인 루카스가 테이블위의 놓인 가지런히 놓인 포크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조금 더 배가 고파졌다.



= 루카스

- 네?

= 동전 가지고 있어요? 

- 아....코끼리요?

= 네.



루카스는 동전을 거의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정말 동전이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 건 아니었는데, 동전을 지니고 다니면 누군가가 지켜주는 느낌이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탁자 위에 올리고 클라이브를 쳐다보자 웃는 얼굴의 클라이브가 동전을 집어들었다.



= 이런거, 잘 맞추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결혼한다고 했을때, 곧 이혼하겠구나 싶었고.

  그런데, 두 사람은, 정말 오래갈 것 같아요.

= 당연하죠. 우리는 운명이거든요.



클라이브의 말에 재빨리 맞장구를 치는 레오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웃는 루카스의 얼굴에 안심이 된 듯 레오도 웃으며 루카스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 던져서 앞이 나오면, 두 사람은 운명인거에요.

- ...뒤가 나오면요?

= 음...그건 뒤가 나오면 말해줄게요.

- ...누가 던져요?

= 그럼 제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만만한 얼굴로 클라이브가 동전을 제법 높게 던져 올렸다가 손바닥으로 받았다. 꽉 쥐고 있는 주먹 안에 과연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모르는 동전이 궁금해졌다가 보기가 무서워졌다. 클라이브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 레오를 쳐다보자 레오도 그제야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루카스를 쳐다보았다.



= 펴볼까요?

- 네.



천천히 클라이브가 손가락을 펴고 손바닥을 펴서 동전의 결과를 보지도 않은 채 루카스와 레오 앞으로 팔을 뻗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동전을 내려다보자, 쫙 펴진 코끼리의 귀와 말려진 코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앞이었다. 세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클라이브가 웃으며 동전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안심이 된 루카스가 레오를 쳐다보자 레오 역시 놀란 눈으로 동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법 같기도, 단순한 트릭 같기도, 운명 같기도, 그저 우연 같기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믿으면 우리가 함께 있지 않아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One love, two hearts, one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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