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현과 김종현이 개씨발 양심 없는 놈들이 된 건 얼마 전의 이야기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 역사가 굉장히 길다. 둘은 다섯 해 동안이나 알고 지냈고, 그 동안 각자 총 네다섯 정도 되는 애인을 만났다. 어제만 해도 황민현은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영화관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부터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민현이 처음으로 충동적인 사랑을 벌인 것부터가 이 사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씨발 양심도 없냐? 

너씨양






그 누나, 최예은을 처음 만난 곳은 건대 앞 술집이었다. 꽤 오래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우울해하는 황민현과 술을 마시던 중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순간 향수 냄새가 훅 풍겼다. 내 쪽은 아니고, 황민현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몇 살이세요? 저는 스물다섯인데, 괜찮으시면 전화번호 주세요.”




냉정하지만 알코올만 들어가면 너그러워지는 황민현은 무턱대고 그 비싼 전화번호를 내놓았다. 그리고 연락 3일 만에 연애를 시작했다. 술 약한 거 알고 있다. 컨디션 안 좋은 날은 한 잔만 마셔도 골로 가는 것 잘 안다. 하지만, 아무리 거하게 마셨대도 그렇지, 3일 동안이나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하다고? 이 새끼 이렇게 살아도 되나? 헤어진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전화번호 넘기고, 삼 일만에 연애를 시작한다는 게…… 이렇게 망나니짓을 할 만큼 전 여자 친구를 사랑했던가?


최예은 누나는 황민현이 싫어하는 독한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황민현의 여자 취향은 한결같았다. 연한 여자. 화장도, 향기도, 성격도 모두 은은한 것을 선호했다. 그 누나가 나쁘다거나, 어딘가 흠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황민현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친구의 개인사니까, 굳이 참견하지는 않았다. 황민현이 최예은 누나랑 연애를 한답시고 설친 그 일주일 간 극도로 까칠해지고 인간 혐오 증세를 내보이던 것도 무시했다. 이것도 내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냥 가끔 가다 최민기랑 그 새끼의 요새 행간들에 대해서 씹고 그랬다.


바로 어제, 황민현이 영화 데이트를 끝낸 후 집 앞에 살려달란 표정으로 서있지만 않았더라도 영원히 이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겠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최고로 잘난 걔가 웬일로 풀이 죽어 꺼낸 이야기만 듣지 않았더라도 난 알아서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았을 거란 뜻이다.


놈이 썩어들어 가는 낯으로 내 자취방을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과하게 사적이고, 양심 없는 이유. 자기 여자 친구와의 잠자리 사정.


최악이었다. 미쳐도 정도를 알고 미쳐야지, 그런 이야길 나한테 털어놓으려고 했다는 게 좆같았다. 어처구니없고 실망스러워서 문전박대에 소금까지 뿌려도 될 법했는데 어제는 유달리 걔가 처량해 보였다.


약해진 마음에 집에다 꼴통을 들였다. 데리고 들어왔으니 뭐라도 대접을 하긴 해야겠는데, 뭐 예쁘다고 좋은 거 먹일까 싶어서 미지근한 캔 맥주를 까서 건넸다.




“자, 이제 말해 봐. 뭐가 문제야? 너보다 연상이라서 그래?”

“아니.”

“그 누나 경험에 비해 네 실력이 너무 허접해서 쪽팔려?”

“아니거든.”

“너 고추 좀 죽었냐.”

“쫌. 아니야.”

“그럼 어쩌라고.”

“아……. 종현아, 지금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아 씨발 섹스가 중요하다매.”

“섹, 하……. 그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쫓을까? 진지했다. 머뭇거리는 걸 보니 쉽게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뭔데. 빨리 말 안 할 거면 그냥 나가.”

“아……. 그러니까.”

“뭐.”

“누나가 있잖아.”

“그러니까 뭐.”




황민현은 맥주 한 캔을 모조리 비워버리더니 내 몫으로 남겨뒀던 한 캔을 더 깠다. 어, 저건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건데.




“가학적…… 그게, 성향이 좀 남달라.”

“뭐?”




그리고. 황민현은 운을 뗐다. 취기로 붉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두려워졌다. 뒷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 잠시만. 있어 봐.”




황민현은 내 말을 무시했다.




“당하는 쪽이 아니라 내 말은…….”

“……설마.”

“…….”

“너 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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