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다들 외출도 힘드시죠? 우리 모두 힘내요.

그런 의미로 남은 편 다 풉니다....

 

 

 

"....................." 

 

 

 

동수는 눈앞의 방문을 올려다본다. 불이 켜져있으나, 방안은 조용했다. 

 

 

'잠들었나.....'

 

 

 

평소 아이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놀다가 자신들이 조는 줄도 모르고 꾸벅거리다 잠들어버린다. 

그러면 방안에 들어가서 이불도 고쳐주고 아랫목이 따뜻한지 살펴봐주고 불도 꺼주는 것이 동수의 습관이었다. 아무리 늦게 퇴궐한다고 해도 항상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새벽에도 들어가 아이들이 깨기전에 잠자다 불편한 점이 없었는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입궐하곤 했다. 

 

 

 

주변에선 정말 자상한 아비라고. 못말릴 정성이라고 말하곤 했다. 

허나 그는 그저 하고싶어서 하는 행동이었고,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잘 보살펴주고 싶었다. 운과 자신이 그런 부모의 정을 못받고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혈육에 대한 정이 남달라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허울좋은 이유만이 아니었다. 

 

 

 

점수를 따고싶었다. 제 사랑스런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잘 보이고 싶었다. 

 

 

 

 

 

 

 

"하아...."

 

 

 

 

속모를 깊은 한숨을 쉬고, 동수는 마침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준휘야?"

 

 

 

 

한창 칭얼대던 재희가 거짓말같이 조용해져서 잠들어있고, 제 형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 옆에 준휘가 제동생을 감싸듯 누워 있었다. 둘 다 꼭 붙어 자고 있다.

 

 

 

아침저녁마다 보면서 가장 행복해지던 광경이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살펴주면서 뿌듯해하고, 운의 품으로 돌아가서 그의 향기 안에서 잠들면 동수는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고들 말하나 그건 사실과 달랐다. 운과 아이들에게 저가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 정확하게 운에게 보호받는건 자신이었다.  그토록 돌려받고 싶어했던 정인이 주는 이 모든 것들은 제 인생 전부였다. 

 

 

그때만큼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자니?"

 

 

 

조용히 들어가서 곁에 앉았다. 차마 자고 있는지 확인해볼 용기가 없었다. 제 손가락을 빨면서 한손으로 형 손을 꽉 잡은 재희의 작고 오동통한 손이 보여 동수는 슬쩍 웃음을 짓다가, 이불을 끌어올려 둘을 잘 덮어주었다.

 

 

 

"........휘야."

 

 

 

이불을 덮어주던 손이 준휘의 어깨를 잡았다. 나직히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준휘가 움찔한다. 

 

 

".............나랑 이야기할 거...없니?"

 

 

"............"

 

 

 

아이를 만지는 순간 알았다. 

 

깨어있다는 걸. 그저 자는척 하고 있다고. 

항상 운의 품에만 있을 것같던 아이인데 이만큼 알수 있는걸 보니 저도 부모노릇에 애쓰긴 했나보다. 

 

 

"아버지랑...말하기 싫어?"

 

 

 

동수의 다정한 손길에, 작은 아이의 입에서 소리없는 한숨이 나오더니, 꾸물꾸물 일어나 앉는다. 

 

 

 

"................"

 

 

 

 

일어나 제앞에 앉긴 했으되, 아이는 고개만 숙이고 손가락만 만지작댈뿐 별 말이 없었다. 

 

하는 짓을 보니 하나도 잠들었던 것 같지 않다. 아마 세량이 방에 데려다놓고나서 곧장 깬듯 싶었다. 방안에 들어오고는 하루만에 다시보는 형아가 좋아죽는 동생과 놀아준 모양이다. 잠든 재희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걸 보면 알수 있다. 

 

얼굴은 운을 쏙 빼닮았는데, 속알맹이는 동수를 복사하다시피한 재희는 하나에서 열까지 단순하고 저 좋고 싫은것이 얼굴에 거울같이 드러난다. 제뜻이 관철될때까지 떼부리고,  무언가에 집중하면 가져야했다. 우는 건 전적으로 제 성질부림이고, 그러면서 대범한건지 속이 없는건지 놀래도 경기하거나 자지러지는 법도 없었다. 준휘가 아무리 얼굴이 동수를 닮았다하나 재희에 비하면야 알맹이는 운 쪽으로 훨씬 더 많이 기운 편에 속했다. 이제 겨우 두세마디 웅얼거리는 아기인데도 재희는 벌써부터 확연하게 너 닮은 티가 난다고. 운이 말했었다. 주변은 어찌 생각할진 몰라도 저 혼자 속편하게 살 팔자라고. 딱 동수 너라고.

 

 

형인 준휘가 아우를 귀여워하길 망정이지, 만약 마뜩찮아했다면 영리한 형의 좋은 장난감노릇을 면하지 못했을 텐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형님의 괴임을 받아 어화둥둥 내사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진 재희는 그걸로 모든게 충족되는 아이였다. 

 

 

 

준휘가 아기동생의 손을 이불속에 잘 넣어주고 제 앞에 앉는다. 

 

 

 

"........."

 

 

 

 

아무 말 없는 아이 앞에서 동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쇠심줄같이 질긴 고집도 한결같이 똑같은 두 부자의 침묵이 길어졌다. 

 

 

 

 

 

"..............."

 

 

 

 

 

 

어색하리만큼 길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동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누가 뭐라해도 기다리는 것만큼은 일가견이 있다. 

이 아이 어머니의 침묵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요..."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린아이의 기다림치곤 지나치게 길다싶었는데, 준휘가 대뜸 난요. 하고 내뱉더니 말을 끊었다. 

 

 

 

 

 

 

 

"..........너는."

 

 

 

 

 

 

그 말을 받아주듯, 잠든 것처럼 고요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모르겠어요."

 

 

 

"..........."

 

 

 

 

뭘 모르겠다는 걸까. 동수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았다. 

사랑해마지않던 아이의 눈동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보이질 않았다. 귀엽게 동그랗고 조그만 정수리만 보인다. 

 

 

 

"좋아하잖아요."

 

 

 

 

"...........응?"

 

 

 

 

"어머니."

 

 

 

 

 

뚝뚝 음절로 끊어지지만, 제 맘에 가장 강렬히 와닿는 단어들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그 어리지만 야무진 말투가 동수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래."

 

 

 

 

 

"그때는, 안좋아했어요?"

 

 

 

 

 

앞뒤 다 잘라먹고 던져진 그때. 라는 말. 하지만 둘다 언제를 말하는지는 알고 있다.

 

 

 

"좋아했어."

 

 

 

아주 많이. 동수의 자상한 목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든다. 

 

 

 

 

"근데 왜그랬어요?"

 

 

 

 

처음보는, 웃음기라곤 하나도 없는 눈. 

 

 

 

 

 

순수하게 8살 어린애의 상처, 두려움, 원망 이런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린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있었다.

 

 

 

"미안."

 

 

"왜 그랬냐구요."

 

 

 

말투는 야무져도, 숨길수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나 네게...할말이....'

 

 

 

 

숨막히게 악몽처럼 쫓아다녔던, 운의 그 슬픈 눈동자에서부터 지금까지, 저가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순간.

 

 

 

 

"...........미안."

 

 

 

차마 몰랐다고 말하기엔 목이 타듯이 아팠다. 

그 단어가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얼마나 비겁하고 비굴하게 느껴질까. 스스로가 무서웠다. 

 

 

 

"내가...나빴어."

 

 

"그런 말 말구."

 

 

 

드물게 짜증까지 섞였다. 입을 뚱하니 내밀고 툴툴대는건 영락없이 동수라고. 주변에서 늘상 그랬었다. 

 

 

 

"어머니는요....매일매일 울었어요...."

 

 

두서없이 마구 섞여나오는 이야기이나, 동수는 그것이 갓난아기 시절부터 준휘가 봐온 운의 모습이란 걸 알수 있었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울고....너한테 미안하다고 울고....매일매일..늘 뭐가 미안하다고 울었어요...."

 

 

 

너. 이건 옛날 준휘를 처음 만났던 시절 들었던, 아버지인 동수를 가리키는 단어다. 

어린 속이 시끄럽다보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튀어나오는 말들이 산만했으나, 동수는 묵묵히 들었다.

 

 

"나중엔...밉다고 울고...싫다고 울고...아파서 울고...."

 

 

 

 

 

그 외로운 밤. 

 

 

너 홀로 눈물짓던 그 시간

 

 

그 밤.

 

 

넌 이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던 걸까. 

 

내가 널 잊으려고 뒤척였던 그 시간. 

 

 

그 밤.

 

 

내가 마음 속 네가 지워지지 않아서 울었던 그 밤. 

 

 

그 외로운 밤.

 

 

 

 

"그거....전부 아버지탓인거였어요. 그렇죠?"

 

 

"................그래.."

 

 

 

"왜 그랬어요?"

 

 

 

10년의 세월이 흘러, 운이 제게 묻는다. 이 아이를 통해서. 

 

 

 

왜 날 죽이려 했어?

 

 

 

 

스무살의 운이, 내 아기를 뱃속에 품고 내게 입은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묻는다. 

 

 

 

 

 

 

 

"......너무 좋아했으니까."

 

 

 

사랑했으니까. 널 향한 내 사랑 외엔 내게 남는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좋아하는데.....죽여요?"

 

 

 

 

 

뾰족하게 드러나는, 아이다운 원망. 

 

 

 

 

목숨보다 사랑하는 내 아이의 입에서 선명하게 떠오른, 죽음이라는 단어.

 

 

 

 

 

 

 

 

 

 

 

그때의 나는 너와 다를게 뭐가 있었을까. 

 

 

 

 

 

"휘야....."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운에게 이야기하듯 그렇게 입을 열었다.

 

 

 

".............."

 

 

 

 

 

 

 

 

 

 

 

"난.....아버지는......처음부터 어머니가 좋았단다..."

 

 

툴툴거리며 저게 뭐냐고.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했지만, 서늘한 분위기 속에 유난히 맑고 순수한 눈빛을 가진 아이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많은 동무들중에서도 단연 운만 눈에 들어왔다. 나타나면 주변이 밝아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제게도 생긴다는걸 처음 깨달았다. 

 

 

 

 

 

그런 아이가 우리도 동무할까? 하고 물었을때 얼마나 놀랬던가. 설렜던가. 

 

부끄러운 마음에 대차게 밀어내 버렸으나 이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었다. 

 

 

 

열두살에 처음 가져본 순진했던 첫사랑. 

 

 

 

 

 

 

"난 언제나 어머니가 나만 봐주고...나만 생각하고...내가 그렇듯이...어머니도 그럴거라고...당연하게...다 당연하게 생각했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목표한 바도 없었다. 절실해본 적도 없다. 

인생 어떻게 살아보겠다는 뚜렷한 의지도 목적도 없었으나 제게는 딱 한가지밖에 없었다. 

 

 

 

 

 

 

그건 운이었다. 

 

 

 

 

 

 

 

백동수라는 인생 속에 필요한 목적도, 의지도, 이유도 여운밖에 없었다. 

 

 

그가 웃으면 저도 웃었고, 그가 원하면 나도 원했다. 내가 그렇듯이 그도 그럴거라 생각했다.

 

 

 

 

"평생. 어머니만 있으면 족하다고. 난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단다.그만큼 좋아했어."

 

 

 

 

지독할만큼 운이만 바라보고, 집요할만큼 독점하고싶었다. 

가지고 가져도 목이 마르고, 안고 안아도 그립고, 보고 보아도 보고싶었다. 

 

 

 

 

허나 그러다가 놓쳤다. 정작 가장 중요했던 운이의 마음을.

 

 

 

"너무 좋아하다보니까. 내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할수가 없었단다."

 

 

 

 

운이가 어떤 말이 하고싶은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운이가..무슨 말을 하고싶어하는건지...뭘 말하고싶은건지...알고싶어하지 않았어..."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맘이 어머니와 같다고 생각했어...그랬는데...어머니가...어느날...그 마음이 같지 않다고 했어..."

 

 

 

 

그가 주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당연하듯이, 그가 항상 내곁에 있는 것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알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마음조차 없었다. 얼마나 운이 필사적으로 내곁에 있고싶어했는지, 힘들게 나를 지키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고, 화가 났어."

 

 

내 모든 것이라 여겼던 운이, 저에게 등을 돌릴때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짐작조차 못했다. 

이미 내 마음이 산산히 부서져버렸으니까. 내 자신이 힘없는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렸으니까. 

 

 

잔인하게 흩어진 잔해안에 남은 것은 오직 분노뿐이었다. 

 

 

 

 

"날 상처입힌 어머니를 용서하고싶지 않았던 거야"

 

 

 

 

 

 

그를 잃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질식할것같아서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앞이 보이질 않아서, 그가 어떤 얼굴과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몰랐다. 

 

 

"그래서....그냥 ....그날...난....내 자신을 잃었어...."

 

 

 

내가 살기 위해선 무조건 곁에 있어야 했다. 

내가 아픈 만큼 그도 아파야했다. 

 

 

 

살아있어서 떠난다면, 죽여서라도 곁에 두어야했다. 

 

 

 

 

 

"난 바보멍청이어서,어머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몰랐어."

 

 

 

내 곁에서 웃고 있는 그가, 마음이 조금씩 부서져갈때, 난 그에게 어떤 것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마지막까지 믿어주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살겠다고, 그를 죽이려 했다. 

 

 

 

 

"견딜수가 없었던 거야. 어머니가 날 떠났다는 걸."

 

 

 

나는 끝까지 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요..."

 

 

묵묵히 동수의 말을 듣고만 있던 준휘의 대답에, 동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좋으면서....그런다는거...저 잘 모르겠어요...."

 

 

 

 

좋으면 잘해주고싶은데. 아닌가?  좋은건 좋은건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불만섞인 말을 쏘아댄다.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왜 어려운말만 하는건지 진짜 모르겠다. 

 

 

 

"미안..."

 

 

 

"어머니가...말 되게 많이 해줬는데...."

 

 

"그랬어?"

 


 

 

"어머니는...날 원해서 낳았다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날 사랑해서 낳은 귀한 아이라고. 

 

 

"..........근데 아버지는 몰랐다고...말할수가 없었대요..."

 

 

"그랬구나..."

 

 

아이는 뭔가 기가 죽은거 같았다. 어머니의 말을 못믿는 것이 아니다. 허나 속으로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동수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단 자기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눈치였다. 

 

 

 

"....아버지...는요?"

 

 

말끝이 슬쩍 떨렸다. 

 

 

"응?"

 

 

"아버지한테 난....필요한 아이...였어요?"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자란 게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 불안한 거다. 그것이 무섭고 싫은거다. 

저는 아버지를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절 싫어했던게 아닐까. 미워했던게 아닐까. 필요없었던게 아닐까.

 

 

 

 

 

그것이 두려워 도망쳤던 거였다. 

 

 

 

 

 

 

 

아이의 불안한 목소리에, 동수가 그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답한다.

 

 

 

 

"물론이지."

 

 

 

 

내손을 산산히 찧어버리고 싶었을만큼 그때를 후회했고, 그만큼이나 널 원하고 기뻤어.

 

 

 

 

 

"아마...내가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썼으면...금방 알았을거야...어머니가..운이가...널 가졌다는걸..."

 

 

 

 

얼마든지 알수 있었다. 눈치챌수 있었다. 운이가 사력을 다해서 구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조금만 운을 돌아보았다면 금방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마침내 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 기다릴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어리석었던 자신이 바보같이 굴지 않았다면.

 

 

 

 

"미안하다...알지못해서...."

 

 

 

네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알아주질 못했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자랐어야 할 너인데,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며 태어났어야할 너인데.

 

결국 운의 눈물 속에 불쌍한 아이로 세상 빛을 볼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게.

 

 

"널 그토록 기다리고...사랑할거면서..알아채지 못해서..." 

 

 

 

동수는 아이의 뺨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눈빛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 손길을 피하진 않았다. 아이의 보드라운 뺨에 마냥 곱다.

 

 

"몰라줘서...미안...."

 

 

이렇게 예쁘고 예쁠 너를, 내 마음속에서 더없이 귀해질 널 알아채지못한 내 죄.

 

 

 

 

 

 

"미안해."

 

 

 

 

 

 

 

동수의 다정하고도 진심어린 목소리에, 아이의 눈에 마침내 눈물이 글썽한다.

 

 

"몰라요."

 

 

"미안."

 

 

작은 주먹이 동수의 팔이며 가슴을 때린다. 

 

 

"싫어요. 난 아버지 싫어."

 

 

"미안하다."

 

 

"어머니 아프게 한것도 싫고, 나 죽이려한 아버지도 싫어. 전부 싫어요. 다 싫어"

 

 

"미안해"


 

저를 때리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에게 안겨서도 등이며 어깨를 때리는 아이는 어느새 목소리가 울음으로 바뀌었다.

 

 

"아버지 미워어어어.."

 

 

결국 엉엉 우는 울음이 되고 말았다. 동수는 소리내어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랬다. 

 

 

"미안...미안하다..미안해...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나좀 용서해주고, 나좀 봐주면 안될까. 

 

말은 도저히 입끝에서 나오질 못해서, 그냥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다. 

운의 소원대로 준휘의 속이 풀릴때까지 계속 미안하다 말할 참이다. 

 

 

 

제속이 풀릴만큼 미안하다고 말하려면 평생 말해도 부족할테지만.

 

 

 

 

 

"형아아아..."

 

 

 

준휘의 큰 울음소리에 결국 재희가 깼다. 

눈을 비비면서 꼬물거리고 일어난 아기는 형아가 아버지 품에 안겨 엉엉 우는걸 보고 대뜸 따라 울기 시작했다. 

 

 

 

"아휴...재희야..."

 

 

준휘를 다독거려 추어안고는, 한팔로 재희를 부르자,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서 저도 아버지에게 안긴다. 

졸지에 두아이를 달래게 된 동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둘다..."

 

 

 

귀아프게 울어댈 지언정, 제 두팔안에 꽉 안긴 두 아이의 체온은 높고 따뜻했다. 

되게 미안하고 죄스러워야되는 시점인데, 평생 두려워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왠지 기운빠지는 웃음이 난다. 

 

 

"아..진짜...애들아..."

 

 

아직도 준휘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도 않았고, 운도 다시 입을 다물것이다. 

 

다시 서로 침묵을 지키며 모른 척 하는, 서로의 마음을 짐작만 하며 상처입고 속끓이는 긴 시간을 다시금 헤매게 되겠지. 

 

 

"이제 그만 울자...응?"

 

 

 

하지만 제 품을 벗어날까 온힘으로 붙들고 있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 있어서, 결국은 방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을 운이 있어서 또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간다. 염치불구하고 이 곁에 있고싶어진다. 

 

 

 

 

 

"내가 잘못했다...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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