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밝은 조명과 사람들의 박수, 종종 장미도 한 송이씩 날아오는 낭만이 넘치는 곳.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그 뜨거운 기운을 만끽한다. 저마다 수고하셨다며 한 마디씩 거들고, 이제는 텅 비어버린 공연장을 바라보며 현수도 가발을 벗었다. 하얀 먼지가 조명의 빛을 받아 피어올랐다.


 2006년, 초여름. 이곳, 대학로 공연장은 현수가 매주 뼈를 묻다시피 생활하는 꿈이 있는 곳이었다. 스물다섯 맹현수는 개그맨을 꿈꾼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밤낮 가릴 거 없이 아르바이트로 전전긍긍하다 군대 만기전역 후 이곳 대학로로 왔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이제 막 여덟 달을 채웠고, 현수는 아직 딱히 배역이 없는 소위 '시다바리'였다. 가끔 사람이 필요할 때 뒤에서 호응을 해주는 정도가 다이고, 아이디어는 아직 선배들의 눈에 통과도 되지 못한 이 바닥 초짜였다. 그래도 현수는 이 곳에서 꿈을 키워나갔다.


"맹, 할 만하냐."

"..똑같죠, 뭐."


 벌써 이곳이 삼 년째라던 남자, 기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뒷문 계단에 털썩 앉았다. 현수는 그를 보며 먼저 태우고 있던 담배를 끄고 새로 하나를 물었다. 토요일 밤 공연, 일요일 휴식, 월요일부터는 다시 아이디어 회의였다. 물론, 현수는 소품 준비, 무대 세팅에 열을 올리게 되겠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기웅은 그 나름의 소녀팬들도 존재했다.


 스물 일곱 기웅은 벌써 세 번째 개그맨 공채에서 낙방했다. 세상에 웃긴 놈, 머리 좋은 놈 다 모였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러다 같이 대학로에 뛰어 들어온 한치승이 홀라당 공채에 합격해 꿈꾸던 무대를 서 더 배알 꼴려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데뷔는 가망이 없고. 막막하기만 한 현실에 답답한 건 기웅이나 현수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기웅은 상황이 좀 나았다. 관계자는 항상 기웅의 페이스가 좋다며 배우 쪽은 생각이 없냐며 종종 영화 엑스트라를 따내 출연 경험도 있었으며, 집도 나름 잘 살았다. 그에 반해 현수는 개그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살다 돈에 허덕여 원룸에서 고시촌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좆빠지게 해야지 뭐든."


 기웅이 현기를 후, 뱉었다. 나란히 뒷문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니 하나둘 사람들이 기웅에게 인사하며 제집 갈 채비를 했다. 기웅은 아직도 부분적으로 머리가 빠져있는 대머리 가발과 몸빼바지를 입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얼굴이 산다. 요즘 나오는 아이돌들 사이에 세워 놓아도 손색이 없어 가끔 이 바닥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광석 형님도 여자를 만나는 자리에 꼭 기웅을 넣었다. 


 그렇게 말 없이 뻑뻑, 담배나 피워대다 문득, 현수가 입을 열었다. 


"선배는 여기 왜 오셨습니까?"

"야, 여기 있는 새끼들 다 똑같지. 웃길라고 왔지, 너는 딴맘 품고 왔냐?"


 기웅이 손을 들어 현수의 뒤통수를 후갈겼다. 그러면서 저 혼자 낄낄 웃고는 볼이 쏙 들어가도록 담배를 피우고 발로 비벼 껐다.


"요즘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기계가 못 하는 일이 딱 하나 있어."

"..그게 뭡니까?"

"개그, 새꺄."


 기웅이 일어나며 현수의 정수리를 한 번 더 퍽, 소리 나게 때리고선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개그. 현수가 그 말을 곱씹으며 자리로 일어나 가로등만 겨우 켜져있는 밤거리를 걸었다. 현수에겐 택시를 탈 돈도, 여유도 없었다.


 사람을 웃기는 일. 현수는 그게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학창 시절에 남들 앞에서 까불거리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땐 사회에 나가서 개그맨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선임들이 이 새낀 웃기지도 않으면서 깝친다고 허구한 날 맞았다. 그러면서 선임이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겠다며 그때 방영했던 프로그램들의 유행어를 따라 했다. 선임이라 웃어준 것인지, 진짜 웃겨서인지는 현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월요일. 기웅은 반팔 스트라이프에 달린 깃을 한껏 세우며 거울 앞에 섰다. 회의실 겸, 무대 준비실 겸, 피곤할 땐 쪽방으로 쓸 수 있는 무대 뒤 작은 방에 사람이 미어터질 듯 몰렸다. 그러면서 거울 속 비치는 현수를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야, 한치승 요즘 잘 나가냐?"

"누구요, 아, 공채 합격한 그 선배요? 몰라요. 연예인 됐다고 싸이 싹 닫아 놓던데."

"내가 너한테 물었냐?"


 기웅의 옆에 앉아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종윤이 괜히 말을 거들다 기웅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 모습에 현수가 말을 꺼내려 해 보았지만, 애초에 그 선배는 자신이 이 곳에 발을 들인지 삼 주째 되던 날 떠나 근황은 커녕 연락처도 없었다. 잘 모르겠다 답하니 기웅이 알아 오라며 자신의 뒤통수도 한 대 치고는 방을 나섰다. 기웅은 끽하면 손이 올라가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들한테는 잘생겨서 번호를 좀 따인다던데, 막상 번호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물론, 자신보다 짬이 덜 찬 사람들 앞에서만 하는 행동이었고, 그보다 더 윗사람이 오면 기웅은 태도를 바꿨다.


 현수가 떨리는 손으로 A4용지로 프린트한 종이 몇 장을 기웅에게 건넸다. 엔간한 코너 검토는 기웅의 몫이었다. 검토를 한 뒤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그 피드백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첨가하는 식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괜찮은 코너에는 꼭 참여해 시선을 끌어 결국 그 코너의 주인공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몇 번이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써먹혔던 사람들의 일이고, 현수는 그마저도 괜찮다며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냈다.


"저번 주엔 군인이더니, 이번 주엔 동물원이냐?"

"..네 그렇습니다."

"TV에서 하던 거 몇 자 바꾼다고 관객이 모를 것 같냐?"


 기웅이 대본을 돌돌 말아 현수의 정수리를 가볍게 통, 소리 내며 쳤다. 인기 있는 개그프로를 보며 교묘하게 바꾼 건데, 기웅은 그걸 단번에 알아봤다. 기웅은 한숨을 푹 쉬며 현수의 정수리를 꾹 누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디어 싸움이야, 개그는."


 기웅은 자신의 휴대폰과 담뱃갑을 들고 현수에게 따라오라는 듯 턱짓을 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자, 기웅이 움직임이 느리다며 물건을 들고 있는 손 등으로 현수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기웅을 따라서 온 곳은 대학로 한복판. 초여름에서 한여름으로 넘어가는, 햇빛 쨍쨍한 낮에 이 곳에 앉아있기란 쉽지 않았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아서 그저 사람들을 쳐다볼 뿐 기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면서 편의점에 들려 산 아이스크림이 녹아 현수의 손을 더럽혔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는데, 쮸쮸바를 입에 문 기웅이 고개를 돌려 현수를 바라보았다.


"좀 보여?"

"..뭐가 말입니까?"

"사람 사는 거."


 기웅이 그렇게 말하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벤치에 발을 올렸다. 무릎을 굽혀 그 위로 팔을 얹었다. 기웅의 위로 나무가 그림자를 만들었다. 성격이 더럽다느니, 얼굴이 잘생겼다느니, 그런 수식어가 붙어도 기웅의 꿈은 개그였음이 느껴졌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양산을 쓴 사람,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사람, 분수에서 장난치는 어린 아이들,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 밥을 먹으러 가는 모습. 현수는 그제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저 커플, 아까부터 저쪽에서 싸우고 있거든, 고개 돌리지 말고 소리 들어봐."


 현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보는데, 정말 조금 떨어진 곳에 남녀가 서 있다. 한 명은 군인, 한 명은 청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여자가 바람을 피웠나 봐."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모든 청각을 그 커플에 집중했다. 아니라고 잡아떼는 여자와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남자. 결국, 남자가 성을 내며 기웅과 현수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여자가 저 멀리에서 소리친다.


"고추도 작은 거 맞춰 줬더니만!"


 현수와 기웅은 물론, 군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여자는 뒤로 휙, 돌아 걸어가고 남자도 멍때리다가 가던 길을 갔다. 사람들은 다시 제 할 일을 했지만 현수와 기웅은 그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예요?"

"..이거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현수와 기웅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달렸다. 그 뜨거운 여름에 쉬지도 않고 달리고 달려 공연장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다른 공연팀이 그곳을 써 짐을 다 빼야 했다. 그 긴박함에 두 다리를 쉬지도 않고 움직였다.


 우탕탕 소리를 내며 지하로 내려간 둘이 온갖 짐을 피하며 문을 열었다. 선풍기 몇 대 달달 돌아가는 공간에서 더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더운데 땀 흘리지 말라며 몇몇 사람들이 거들었지만, 아랑곳 않고 기웅이 종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현수는 그런 종윤의 뒤통수를 쳐댈 뿐 말이 없었다. 현수는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는 아무 빨간색 립스틱을 빼 바르고 옷 무덤에서 고무줄로 된 치마를 찾아 입었다. 그리곤 구겨진 군복을 탁탁 털어 기웅의 앞에 두었다. 아무런 회의 없이도 둘의 배역이 정해졌다.


"뭐야, 새로운 코너예요? 나도 껴주지."


 기웅이 군복에 팔을 넣는데 종윤이 그걸 가로챘다. 이번엔 현수가 그걸 빼앗아 들었다.


"저희 겁니다."

"..야, 치겠다?"


 그 모습에 기웅이 나가라는 듯 종윤에게 턱짓했다. 그 모습에 종윤이 입 모양으로 현수에게 뭐라 말을 해대곤 문을 거칠게 열며 나갔다.


 펜을 대충 휘갈기며 대본을 썼다. 넘치는 생각을 담기에는 손이 느려 마음이 답답했다. 둘은 이제 슬슬 짐을 빼야 할 저녁 시간까지 펜을 놓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뺨을 때리는 건 어떨까, 아니면 그냥 픽, 쓰러지고, 지나가는 아줌마 역할로 정희 넣자, 걔가 그런 거 잘해. 대본은 물론 소품, 행인 역할까지 정하고 나니 밤이 늦었다. 짐을 치우는 사람들에게 이건 우리가 나중에 알아서 치운다고 대충 둘러댄 박스들이 산더미였다. 각자 그것을 두 개씩 얹어 들곤 그 둘도 대학로를 떠났다.


  반응이 괜찮았다. 새로 선보이는 개그는 언제나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복적인 대사도 살려야 하고, 살도 덧붙여야 했지만, 첫 공연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으로 긴 대사를 소화한 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실수 없이 그날 공연이 마무리 됐다. 오히려 즉흥적으로 내뱉은 대사에서 가장 큰 웃음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무대 뒤로 들어가는 순간, 현수는 그만 다리가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지랄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종윤이 그 모습을 보고선 혀를 찼다. 그래도 처음 관객 앞에서 웃음소리를 들은 현수의 기분을 망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날 현수는 립스틱도 지우지 않고 뒷문을 열고 나가 담배를 피웠다. 아직도 약간 빠른 심장 박동에 정신이 멍했다. 앞서 있던 종윤과 기웅이 현수가 오자 말을 끊었다. 기웅은 그저 담백하게 수고했다, 말하곤 다시 종윤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맹아."

"예, 선배님."

"너 그거 써라."


 현수가 예? 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기웅이 얼마 뒤 있을 개그맨 공채 시험에 그 아이디어를 갖고 오디션을 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종윤이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다른 말은 없었다.


"..저랑 선배님이랑 같이 짠 거지 않습니까. 어떻게 혼자."

"난 그 방송국 별로야, 그니까 니가 다시 짜서 나가."


 그 말을 하곤 기웅이 다시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담배 끝에 립스틱이 붉게 찍혔다. 현수가 입술을 손등으로 쓱쓱 대충 닦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뒤로 몇 달 뒤, 기웅은 돌연, 개그를 그만두겠다며 대학로를 떠났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현수의 첫 오디션은 불합격. 그래도 그 첫 코너를 무사히 마치고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쌓았다. 이제 내년에 있을 다른 공채 공고를 기다리며 아이디어를 짜는 동안 겨울이 왔다. 늦가을 즈음에 기웅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하나둘 잘 하고 있던 코너에서 다른 후배들을 꽂아주더니, 마지막으로 꽤 비중 있는 자리에 현수를 꽂아 두고는 다 같이 모인 회식날 개그를 그만둔다 했다. 의외로, 말리는 이는 없었다. 삼 년간 목숨을 걸다시피 달려온 기웅이 그런 소리를 하는 데에는 다 저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말을 아꼈다.


 현수는 그다음 해 봄. 기웅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방송국에 덜컥, 합격했다. 현수의 첫 코너를 함께했던 정희와 이미 했던 개그들에 살을 붙여 연기했다. 그렇게 다시 막내 생활을 하기를 몇 년,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현수는 서른이 되어 있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도록 기웅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밤새 파도타기로 찾은 기웅의 미니홈피는 2007년 이후로 업데이트는 없었고, 가끔 그들을 찾는 소녀팬들의 방명록도 일 년 정도 뒤에 끊겼다. 이제 막 달력을 넘겨 2011년이 되었고, 현수는 어차피 찾지 못 할 사람이라며 기웅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선배 덕에 이만큼 컸다며 술 한 잔이라도 사 주는 날이 올 줄 알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렇게 떠날 사람이었다며 또 그렇게 이 년을 잊고 살았다.


 2013년. 현수가 대학로를 떠난 지도 벌써 육 년이 되었다. 잘 하던 개그 프로를 빼고 현수는 이제 예능을 위주로 활동하는 예능인이 되었다. 개그맨으로서의 인기는 이미 정점을 찍었고, 한창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동안 현수의 밋밋하던 성격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이 익살스러워져 있었다. 가끔, 정말 가끔 무대에서 하는 개그가 그립기도 했지만, 이제는 매주 아이디어를 짜는 것에 신물이 나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방송국 건물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문득, 현수의 아주 밑바닥 시절이 생각이 났다. 고시원에서 그 대학로로 버스로 삼십 분, 출근 아닌 출근을 하면서 꽤나 힘들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왜곡되어 그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맹아."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려 횡단 보도 앞을 건너려는데, 누가 현수의 어깨를 잡았다. 그토록 찾았던 그 목소리가 마치 어제도 들은 듯 낯이 익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는데, 여전히 잘난 얼굴이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수보다 두살 위인 기웅은 이제 서른 넷, 그렇게 찾을 땐 안 보이더니 약간 나이가 든 얼굴을 한 기웅이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또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났다.


"..선배."

"선배는 무슨, 언제 적이냐."


 기웅이 그때처럼 현수의 정수리를 때리려다 손을 거뒀다. 그러면서, 연예인 때리면 큰일 난다며 농담을 던졌다. 개그를 그만둔다더니, 곧바로 취직을 한 모양이었다. 양복 위에 야상 점퍼를 걸친 기웅은, 이제 완전히 사회에 녹아든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너 요즘 잘 나가더라? 방송에서 내 얘기 한 번 안 하나 기다렸는데, 정 없는 놈."

"..여긴, 어떻게."

"아, 이 근처에 외근 나왔다가 지나가는데, 아무리 봐도 너 같아서."


 기웅은 현수를 보며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 덕에 후배는 이렇게 원하던 일을 하면서 사는데, 한계를 맛본 자신은 그대로 현실과 타협하면서 사는 꼴이었다. 웃음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챈 현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곤 말이 없었다.


"니가 성공했는데 왜 나한테 미안해해 하냐?"

"선배가 저 키워 주셨잖아요."

"내가 뭘, 니가 혼자 컸지. 난 그대로 떴는데."


 그렇게 핸드폰 번호를 교환한 뒤, 어떠한 수다를 떨기도 전에 기웅이 걸려온 전화를 예 부장님, 하며 자리를 떴다. 살짝 뒤를 돌아 입 모양으로 나중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선 보이지도 않는 부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댔다. 다시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어 현수가 걸음을 옮겼다. 


설명 못 할 씁쓸함이 현수의 입안을 채웠다. 

쫌쫌따리 쫌쫌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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