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비밀 이야기


# 스물네번째 이야기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아침이었다. 바삭바삭 잘 구워진 토스토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다니엘과 지훈이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있던 차에 올라탔다. 다니엘이 지훈쪽으로 몸을 기울며 고갤 돌리자 빵 부스러기 살짝 묻은 입술을 금세 부딪쳐온다. 더할 나위 없었다.


"음, 한 번 더-"


아기처럼 보채는 다니엘을 보다가 지훈이 결국 3초동안 길게 입을 맞대었다. 쪽- 하고 떨어지는 말캉한 입술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다니엘이 입동굴까지 만들며 실실 웃어버렸다.


"이제 그만 출발해요. 늦겠어요 대리님-"


조금 남았던 토스토를 입에 쑤셔 넣으며 다니엘이 핸들을 붙잡았다.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 나온 차는 이내 빠르게 아파트를 벗어났다.


연신 토스토를 입에 넣으며 우물거리던 지훈을 다니엘이 흘끔흘끔 바라보기 시작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거리기는 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만 몰래 내뱉고 있으니 지훈이 조금은 답답해서 덥석 다니엘의 팔을 붙잡았다.


"대리님! 할 말 있으면 해요."


"어?...어..어떻게 알았어?"


"대리님 빼고 이 세상 사람들 다 알아요."


지훈의 단호한 대답에 멋쩍은듯 웃더니, 빨간불로 바뀌는 신호에 차를 멈추고는 지훈을 돌아본다. 창에 기댄 왼팔로 연신 뒷머리를 만지작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지훈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어왔다.


"아니...사실은 우리 그 날 술집에서 나 애인 있다고 밝혀진 날  있잖아.."


 "네."


"그 날 부터..성우형이랑 재환이랑..여자친구 언제 보여줄거냐고..계속 닦달하잖아..계속 알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


"아니, 너 불편하고 그러니까...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고..어..내가 조만간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말하면 되니"


"오늘 저녁에 만나자고 해요."


"까..어..어? 오늘?"


시선은 앞에 두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지훈을 보며 놀란 다니엘이 애꿎은 지훈의 손만 다시 한 번 꼭 쥐어버렸다.


진영이야 원래 지훈의 모든걸 알던 친구였으니 그리 놀라지 않고(다니엘 혼자만의 생각) 이해해준 거였으나, 성우와 재환의 경우는 다르다. 두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헤테로였고 또한 헤테로였던 다니엘이 지훈과 연애를 한다고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면 다니엘 뿐만 아니라 지훈까지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허나 가족보다 더 오래 붙어 있어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족처럼 저를 챙겨주는 두사람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도 의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적갈등이 참 심한 요즘이었다.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끙끙 앓다가 지훈의 눈치라도 살피고자 힘겹사리 꺼낸 말이었다. 그랬는데..


"네. 그냥 성우대리님이랑 재환대리님한테 떳떳하게 밝혀요 우리."


"어..그래. 그런데 지훈아...우리는 떳떳해도..형이랑 재환이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괜찮아?.."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마디 건네는 다니엘의 대형견 같은 모습을 보며 지훈이 씨익 웃다가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리님 저 좋아하면서 그 정도 각오도 안했어요?"


"아니 나는 괜찮지. 나는 괜찮은데...지훈이 너가 상처받을까봐 그게 너무..무서워서."


"저는 대리님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무서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어? 신호바꼈어요. 출발-"


다니엘은 다시금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두사람 지켜낸다고.



-



달달달달달.


"쓰읍-"


달달달달달.


"아- 대리님 다리좀 그만 떨어요."


"나 왜이렇게 떨리지? 나 손도 차가운거 같아."


지훈의 허벅지 위에 있던 작은 손을 감싸쥐며 다니엘이 큰 손바닥으로 심장을 쓸어내렸다. 이내 숨을 들이 마셨다 내쉬면서 호흡까지 고르는데 지훈이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사실, 지훈이라고 긴장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진영이 아닌 주변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건 처음인지라 떨리는 건 다니엘과 마찬가지였다. 허나 저 덩치 큰 애인이 저리도 난리법석이니 저라도 괜찮은 척 해야 될 것 같은 사명감에 억지로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참고 있는 중이었다.


맥주집에서도 약간 안 쪽에, 그나마 조용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검은색 테이블 위에 놓인 시원한 생수만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데,


"아니 왜 이렇게 안쪽에 앉았어?"


성우, 재환, 진영이 차례대로 들어 오며 다니엘과 지훈을 쳐다봤다. 지레 놀란 지훈이 급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얼음컵을 내려 놓았다.


"그 분은? 아직 안 오셨어?"


재환의 해맑은 얼굴에 다니엘의 심박수가 미친듯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직 7지옥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어 다니엘이 마른침만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다.


"어..일단 앉아.."


"그 분 오시면 시킬까? 아님 시켜 놓을까?"


"....시키자."


"오케-"


신난 듯한 재환이 앞에 놓인 메뉴판을 집어 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다니엘과 지훈을 진영이 번갈아 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답답한 표정으로 고갤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결국 다니엘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담배 피고 올게..."


"야, 그 분 오시는데 담배 냄새 풍기면 되겠어? 좀 만 참어."


"나 지금 안 피면...죽을 것 같아서 그래.."


"아 그러게 미리 좀 피고오지..지훈아 벨좀 눌러봐, 주문하게."


"네? 네..."


재환의 부름에 놀란 지훈이 급히 콜벨을 누르고 저만치 가게를 나가고 있는 다니엘의 축 쳐진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 보았다.


재환이 능숙하게 주문을 마치고 여전히 들뜬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마주 앉은 지훈을 쳐다봤다.


"지훈아 너는 봤어? 다녤이 애인?"


"네?...그게.."


"야. 주문했어?"


타이밍 좋게 재환의 말을 끊고 들어온 다니엘이 지훈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에게서 미미하게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지훈은 괜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아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술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기분이들었다.


"주문했어. 언제 오신다는데?"


"좀 이따가 얘기해줄게."


"아니..언제 올지를 이따가 얘기해준다고? 얘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오늘. 안 그래? 형-"


"그러게. 강다니엘 지금 상태가 안 좋은데? 혹시 여자친구랑 싸운거 아니야?"


재환과 성우의 연달아 이어지는 공격에 다니엘의 멘탈이 점점 흐트러져 가고 있었다. 때마침 이를 구원해줄 술이 테이블 위로 놓였고, 다니엘은 술이 세팅되자마자 소맥을 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잔에 술을 채우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앞으로 술이 채워진 잔을 슥슥 밀어준다. 잔뜩 넋이 나간 얼굴로 말이다. 이내 제 앞에 놓인 소맥잔을 들어 꿀꺽꿀꺽 원샷 하더니 탁- 소리나게 테이블 위로 잔을 내려놓았다. 급히 또 한잔을 타더니 또 원샷. 그리고 또 원샷. 내리 세 잔을 연거푸 마셔대는 다니엘을 보며 재환과 성우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허- 벌렸다.


"야...너...싸웠어?....아니..오늘만 날인가. 다음에 보면 되지...천천히 마셔라 야."


재환의 걱정스런 말투에 다니엘의 굳었던 얼굴이 심란함으로 더 가득 채워졌다. 지훈은 어쩔줄 몰라하며 테이블 밑에서 손만 쥐었다 폈다 꼼지락대고 있었다.


"성우형. 재환아...진영아."


"어.."


"네.."


"나 지훈이랑 사귀어."


드디어 넘칠듯 찰랑거리던 물이 엎어져 버렸다.


지훈은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테이블 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듯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성우와 재환을 보니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흐르던 정적은 주문한 안주가 앞에 나와 놓일 때까지도 쭉 이어졌다. 적막함을 깨려고 다니엘이 다시금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니고...우리 서로 많이 좋아해. 진심이고.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여기 있는 사람들한테는 꼭 말해주고 싶었어.."


"하아-......아니, 둘이 짜고 장난치는 거..는 아닌 것 같구나..."


장난이라면 두 사람의 표정은 연기대상감이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죄지은 사람처럼 죽상을 하고 앉아 서는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


"아..둘이...어쩐지..둘 다 행복해 보이더니...아니 이거 꿈 아니야? 배진영..너 강다니엘 여자친구 봤다고 했잖아."


재환의 물음에 더 당황한 다니엘과 지훈이 진영을 보며 미안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영고배(영원히 고통받는 배진영)씨는 이것이 운명이라면 달게 받아 들이겠다고 오늘도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


"형. 나 알고 있었어..지훈이랑 내가 몇년 친군데...그래서 그때도 두사람 보호해줄려고 강대리님 여자친구 있다고 거짓말 한 거고...나는 지훈이랑 강대리님 응원해. 말 못한 건 미안한데, 내가 이 일을 굳이 떠벌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진영의 말에 재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꿈이 아니구나. 현실이구나. 진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저건 지극히 다니엘, 지훈 두 사람의 인생이고 운명인 거다. 묵묵히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성우가 비워진 잔에 술을 채우고는 집어 들어 지훈의 앞으로 내밀었다.


"지훈아."


"네!...."


놀란 지훈이 잔을 들어 성우의 잔 앞에 가져다 댔다.


"행복해?"


"...네.."


"그럼 됐다. 너네가 행복했으면 됐지 뭐. 마시자."


그제야 각자의 앞에 놓여져 있던 잔들이 하나 둘 모였다. 허공에서 길게 부딪친 잔들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답답한 감정들을 모조리 깨부수는 것 같았다. 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눈물이 날 것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니엘의 큼지막한 손이 다가와 지훈의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괜찮아?"


"네."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웃어주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온 몸에 퍼졌던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정한 두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재환이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보면서도 꿈꾸는 거 같아...믿기지가 않아 너네.."


"앞으로 익숙해지면 되지."


"....노력은 해볼게."


그저 고마웠다. 자릴 박차고 뛰쳐나가면 어쩌려나. 미친놈들이라고 욕하면 어쩌려나. 수없이도 걱정했었다. 그래도 다니엘이 제일 걱정됐던건 지훈이 죄도 없이 욕을 먹는 것. 그로인해 상처받는 것이었다. 허나 성우와 재환의 반응은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더이상의 감정으로는 표현이 되질 않았다.


"고마워...형..재환아.."


"됐어. 고맙기는..너네도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을텐데."


성우의 한마디에 다니엘과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머릿 속에서 빙빙 맴도는데 도저히 닫힌 입이 열리지를 않는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두 사람을 조금은 강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에이- 분위기 왜 그래? 행복하다는 사람들 얼굴이 그러냐?"


조금은 누그러진 듯한 재환이 다니엘과 지훈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굳었던 얼굴의 다니엘이 그런 재환을 보며 대답이라도  하듯 씨익 웃어보였다.


"알았어..미안."


"아니, 잘못도 없는데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담배나 때리자."


대리3인방이 흡연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허전함이 은근하게 밀려 들어와 지훈이 아랫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갑작스레 풀려버리는 긴장감에 축축 늘어질 것 같아 지훈은 얼른 술잔을 집어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깨끗하게 비워진 잔을 내려 놓으며 보드라운 손등으로 입가를 슥슥 닦는다.


"괜찮냐."


"진영아..배진영."


"왜."


"고맙다고.."


"새삼스럽게 뭘.."


어찌나 가슴 아픈 눈빛으로 바라 보는지 진영도 순간 울컥하는 것 같아 괜히 옆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어 비워진 잔에 콸콸 따라냈다.


"옹대리님 말대로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된 거지. 우리들 앞에서라도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연애해."


"고마워.."


"고맙다는 말 한번만 더하면 화낸다?"


"알았어. 나도 한 잔 따라줘."


그래 이정도도 충분하다고. 아니 과분하다고. 그렇게 느끼며 지훈의 입가에 사르르 미소가 번졌다.



-



"그래서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는데?"


"당연히 내가 먼저 했지."


"아..그런데! 제가 먼저 좋아했어요! 제가 대리님 좋다고 계속 귀찮게 했어요."


"지훈아 귀찮게 하다니...나 속상하게.."


아니, 이런 커퀴짓 보려고 질문한게 아닌데요. 재환이 조금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고갤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들이 가득했고 어느덧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오갈만큼 분위기도 한껏 무르익었다.


"아니, 그래서!"


조금은 취기 어린 얼굴로 성우가 마른안주를 입안으로 쏙 집어 넣으며 다니엘과 지훈을 번갈아 보았다.


"둘이 뽀뽀는 했어?"


"케..켁-!"


성우의 질문에 지레 놀라 사레가 들린 지훈이 빨갛게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기침을 해대자, 놀란 다니엘이 괜찮냐며 물을 먹이고 등을 쓸어내려주면서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정작 질문한 당사자는 굉장히 평온한 얼굴로 마른 안주를 오물오물 거리며 아름다운 커퀴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뽀뽀라는 단어에 경악한 재환이 입을 틀어 막았다가 소주를 따라 단숨에 목구멍으로 삼켰다.


"아! 형은 무슨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그럼 무릎이라도 꿇고 하리?..."


"쿨럭 쿨럭-...죄송해요..저 화장실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지훈이 저만치 멀어지자 다니엘이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지훈의 처연한 뒷모습을 빤히 바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나..지훈이한테 잠깐 갔다올게."


도저히 안되겠는지 큰 몸뚱아리를 일으켜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화장실로 향한다. 동시에 남겨진 세 사람은 그저 말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지훈이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로 목을 가글하다가 퉤- 뱉고 입을 헹구었다. 따가웠던 목구멍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허나 뽀뽀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딱 죽을 것 같아서 두눈을 질끈 내리감으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꾸만 섹스하던 두 나체가 떠올라 미칠것 같다.


"아..미쳤나봐.."


"지훈아! 괜찮아?"


다급하게 지훈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갤 들어 보니 거울 속에 어깨 넓은 잘생긴 애인이 보였다. 천천히 몸을 돌려 올려다 보자 어찌나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내려다 보는지 서러웠던 감정이 북받쳐 괜시리 울컥한다.


"대리님.."


"아 진짜..성우형은 왜 그런 말을 꺼내가지고..괜찮아? 얼굴이 안좋은 것 같은데.."


큼지막한 손이 발갛게 달아 오른 볼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오자 순간 심장이 몽글몽글 해지는 기분에 지훈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으음-...괜찮아요..이제."


"힘들면 말해. 집에 가게...알았지?"


"진짜 괜찮아요..대리님 손..누가 보면 어떡해요.."


좋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훈이 다니엘의 손을 떼어내 다시 제자리로 조심스럽게 내려 두었다. 이내 조건반사처럼 순간 시무룩해진 얼굴로 다니엘이 한숨을 내쉰다.


"하아-.....안고싶어."


"대리님."


"뽀뽀하고싶어."


"대리니임-...."


"나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어..좋아 죽겠는데 어떡해 그럼."


저도 하고 싶어 죽겠다구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꾸역꾸역 밀어내며, 주인한테 혼난 강아지같은 다니엘의 얼굴을 지훈이 빤히 올려다 보며 방긋 웃었다. 이내 다니엘의 허리를 양팔로 감으며 품 안에 쏙 안긴다.


"조금만 참아요..집에 가서 해요..우리."


놀라 3초동안 멀뚱멀뚱 있던 다니엘이 이내 지훈을 꽉 감싸안으며 보드라운 지훈의 머리카락에 촉-하고 입을 맞췄다.


아이고. 내 강아지.


생각같아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벗겨 놓고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이토록 사랑스러운 애인 때문에 꾹꾹 참는다.


"에에-?"


이때 화장실 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성우의 목소리에 놀란 다니엘과 지훈이 후다닥 떨어졌다. 당황한 얼굴로 눈만 껌뻑거리면서 성우를 보고 있자니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터벅터벅 소변기 앞으로 걸어간다. 놀란 얼굴로 여전히 굳어 있던 두 사람은,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성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을 뿐 입도 벙긋 할수가 없었다.


"했네. 했어."


큰일났...



-



어느덧 4월 말이다. 완연한 봄날씨에 지훈은 한껏 기분이 좋아져 괜스레 배시시 웃어버렸다. 모든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어 포근하다고 느껴져 온 몸이 절로 꼬이는 기분이었다.


"아, 오늘 갈비탕 진짜 맛있었어."


"그러게- 대리님들 축구 하는거 보러 가자."


회사 정원을 지나면 외부 주차장 근처에 풋살장이 있었다. 5월에 있을 체육대회에 대리 3인방은 올해도 어김없이 축구 종목에 출전한다며 요즘 점심시간마다 축구 연습을 하고 있다. 덕분에 지훈도 요즘 편의점이 아닌 풋살장으로 다니엘을 보러오는게 일과다. 그의 피지컬과 얼굴로 축구를 한다니 여간 설레는 일이 아니다. 땀 흘리며 축구하는 그의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섹시했다.(지훈, 그의 개인적인 생각)


풋살장 한 켠에 진영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더니, 금방 지훈을 발견하고는 다니엘이 높이 팔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부끄러움에 살짝 손만 들어 아는 척을 하자 입동굴까지 만들며 씨익 웃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눈치없는 심장은 또 나대기 시작했다. 괜히 심장이 간질거려 지훈이 푹 고갤 숙여버렸다.


열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여서 연습을 하다 보니 구경하는 다른 직원들도 꽤나 보인다. 몇명 여자들은 아예 대놓고 대리 3인방을 구경하는듯 시선이 노골적이라 지훈은 꽤나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긴 누가 봐도 잘났긴 하다. 지훈은 금방 시무룩해진 얼굴로 입을 비죽 내밀었다.


"어어어? 강대리님 골-!!!"


진영이 옆에서 골이라고 외치며 지훈의 어깨를 퍽퍽 때려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니엘이 골을 넣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토끼눈으로 멀뚱멀뚱 앉아 있으려니 다니엘이 살짝 손키스를 날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누가 보면 어쩌려구.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오른 지훈이 연신 손부채질을 해댄다. 그게 또 귀여워서는 다니엘이 손하트를 그리려다가 저만치 성우에게 붙잡혀 다시 필드로 향했다.


"아..대리님.."


"강대리님 진짜 팔불출."


"그럴수도 있지!"


"어우씨 무서워라. 무슨 말도 못함?"


진영이 제 팔을 찰싹 때려오는 지훈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없다더니.."


"야, 누가 보면 너가 나 키운줄..."


"야 어머니 반, 나 반이지. 아니야?"


"살짝 그렇네?"


금세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진영을 보며 꺄르르 웃던 지훈이 저멀리 뛰고 있는 다니엘을 바라봤다. 살짝 젖은 앞머리가 뛸때마다 찰랑거린다. 핸드폰을 꺼내든 지훈이 카메라를 켜서 화면 안에 다니엘을 가득 담았다.


찰칵.

어느 봄날의 다니엘. 저장.


화면 가득찬 다니엘을 바라보며 미소짓다가 지훈이 고갤 들어 뛰고 있는 다니엘을 시야에 담았다. 날렵한 턱선으로 땀방울이 한방울 톡 하고 떨어져 내렸다.


"김성아 주임님, 그날 이후로 쥐 죽은듯이 살더라."


진영의 말에 지훈이 멍하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도 순수하게 다니엘을 짝사랑했을 거다. 그녀가 다니엘과 지훈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훈의 시선 탓인지, 지훈의 마음  탓인지. 뛰어다니던 다니엘이 순간 지훈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고갤 갸웃거리더니 눈을 껌뻑거리는게 표정이 왜그러냐는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귀신 같은 사람.


지훈이 고른 이까지 내어보이며 씨익 웃어보이자 그제야 바보같이 실실 웃으며 난리다. 결국 재환에게 등을 한 대 얻어 맞고서는 저만치 공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무렴 어때. 이제 내 사람인 걸. 오늘 밤은 내 방에서 해야겠다.


지훈 그가, 다니엘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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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넘쳐나는 녤윙 떡밥에 기절했었습니다.

독자님들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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