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의 후속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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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하네 헬가 경.”


아발론의 군주는 담담히 마음을 담아 내었다.


“오늘밤 내 침소로 들도록.”


침묵이 그녀를 맴돌았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이내 머리를 헤집었다.


‘아냐아냐, 이렇게 말하니 싸구려 플러팅 같잖아. 좀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런 거 없나?’


지금 그녀는 헬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루인은 그의 군주가 조금 변했다고 느껴졌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대화를 놓치는 경우도 조금 늘었고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는 일도 잦았다. 게다가 전에는 지겨워하기만 하던 헬가 경과의 티타임도 어찌나 꼬박꼬박 챙기는지. 티타임 시간쯤 무언가 보고를 하려 하면 티타임 후에 듣겠다며 반려 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재정적인 부분은 아발론 쪽 세수에서 충당하는 걸로 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말을 마친 루인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로드?”

“어? 아. 뭐라고 했지?”


루인은 차근차근 다시 설명을 했고 그녀는 허락의 제스쳐를 취했다.

필요한 보고를 마친 뒤 루인은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보고가 끝나자 다시 생각에 빠진 듯한 로드는 그가 얼굴을 살펴보는데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이런 태도가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의 서류처리 속도나 정확도 등은 전보다 더 나아진 느낌이었다.

루인이 지금껏 그녀에게 태도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물어봐야 했다.


“로드. 요즘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음? 아니.”


의아함을 띄고 돌아오는 대답에 루인은 얕은 한숨을 쉬었다.


“저에게 말씀하시기 힘든 부분이라면 매번 티타임을 가지시는 헬가 경에게라도 털어놓으십시요.”


루인은 걱정을 담아 말을 이었다.


“아발론의 유일무이한 군주이신 로드의 심경에 변고가 있다는 것은 아발론의 위기와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부디 쉬이 넘기지 마시길 청합니다.”










루인의 걱정 어린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지금 자신의 고민을 그의 말대로 헬가 경에게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헬가 경을 기사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어찌 그녀에게 말한 단 말인가?


그녀는 루인을 물리고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처음 티타임을 가질 때에는 분명 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에게 정무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었다. 어느 순간부터 헬가는 가장 가까운 기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파견 보내야 할 때에는 왜인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그녀가 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일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헬가가 자신을 부드럽게 안았을 때,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손부채를 퍼덕였다.


탄탄하게 단련된 그녀의 몸을 마주 안았을 때의 감각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등을 살짝 쓸어 내리며 이 옷 아래에 있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어떤 때에는 이렇게 그녀를 갈망하는 자신이 그녀에게 너무 부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시무룩했다가도 자신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주는 그녀를 마주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을 반복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활활 타오르는 이 감정이 자기 자신을 까맣게 타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헬가에게 직접 고백하는 것은 몇 번 연습하다가 포기했다.

잔뜩 굳어있는 표정으로 고백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그녀가 보아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안을 고민할 때 그녀 눈에 들어온 이가 있었다.


금발의 어여쁜 정령사, 샬롯. (예쁜 외모에 적들이 방심하기도 하지만 절대 얕보면 안 된다. 그녀의 공격력은 웬만한 기사들과 비등하거나 더 뛰어났다.)

사랑스러움의 결정체 같은 그녀라면 무언가 더 효율적으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였다.

게다가 다른 기사들이 알현실에서 수근대는 것을 들어보면 미하일과 무언가 있는 것 같았기에 더 신뢰가 갔다.


“샬롯.”

“네, 로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소를 지으며 샬롯이 다가왔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대부분의 기사들은 파견을 나간 상황이라 알현실엔 몇 없었지만 무언가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루인과 큐브를 맞추며 놀고 있는 린이 괜히 신경쓰여 그녀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일렀다.


“저, 미하일과는 어떻게 그런 관계가 된거야?”

“네네네네?!”


조용히 물어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샬롯은 뜨거운 게 발등이 쏟아진 사람마냥 펄쩍 뛰었다.


“아이참, 저희는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그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죠!”

“…그렇군.”


엘펜하임으로 파견을 간 미하일이 조금 안되게 느껴졌다.


“설마 로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신 거에요?”


샬롯이 주변을 살피며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녀의 녹안이 불타는 것처럼 느껴져 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역시!”


샬롯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그런 거라면 이 샬롯이 전문이죠! 근데 누구에요? 루인 경? 아님 요한 경? 으음 아니면,”

“말 할 수 없어.”


폭주하는 그녀의 상상을 단칼에 잘라내었다.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과 함께.

샬롯은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불타는 의욕이 조금 불안했지만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일단 그녀를 의지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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