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함께 들어주세요. (자동 반복재생됨)

+) <1-9 1년 전>과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과 불타는 듯한 입술을 가진 공주가 살았어요. 공주가 숲을 걸어갈 때면 그 아름다움에 나무와 꽃들도 고개를 숙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괴물이 나타나 공주를 납치하고 말았어요. 

괴물은 높은 탑에 공주를 가두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밤낮으로 지켰어요. 그때 용감한 왕자가 나타나 반드시 공주님을 구해오겠노라고 말했어요. 

왕자는 세 개의 산을 넘고 세 개의 바다를 건너야 했어요.


첫 번째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널 때 악마가 나타났어요.

“넌 공주를 구할 수 없어.” 왕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두 번째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널 때 악마가 또 나타났어요.

“넌 공주를 구할 수 없어.” 왕자는 불안해졌어요.


세 번째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널 때 악마가 또 나타났어요.

“넌 공주를 구할 수 없어.”


“정말?”

왕자는 악마에게 물었어요.


“그럼. 그렇고말고.”

악마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럼, 안 할래.”


왕자는 갑옷과 검을 버리고 자기 왕국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악마는 갑옷과 검을 주워 공주를 구하러 갔어요. 


탑에 도착한 악마가 소리쳤어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나타났다!” 괴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악마가 또 소리쳤어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나타났다!” 괴물은 불안해졌어요.


악마가 또 소리쳤어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나타났다!”


“정말?”

괴물은 악마에게 물었어요.


“그럼. 그렇고말고.”

악마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럼, 안 할래.”


괴물은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악마는 검으로 괴물의 다리를 베어서 무찔렀어요. 공주를 구한 악마가 말했어요.

“사랑합니다, 공주님.” 공주는 악마를 무서워했어요.


공주를 구한 악마가 또 말했어요.

“사랑합니다, 공주님.” 공주는 악마와 친구가 되었어요.


공주를 구한 악마가 또 말했어요.

“사랑합니다, 공주님.” 공주는 악마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동화는 당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수많은 베드타임 스토리에 비해 훨씬 괴상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운명론자들의 고루한 주장과 권선징악이라는 따분한 교훈을 전부 뒤엎는 전개는 신선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건, 공주를 구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로써 거짓말이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이렇게 보면 거짓말이 꼭 나쁜 것이라고만 할 수 없지 않은가.

 

「Sweet Dreams」 중 written by Alex Wade

 

 






그날 밤 도슨 저택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파티가 열린 이유는 잊어버렸다. 투자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자리 혹은 또 다른 사업 설명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데스티니가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은 알렉스의 기억에 남을만했다.


데스티니는 모범적인 가정부처럼 검은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그동안 알렉스가 그녀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반갑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그래서 알렉스는 그녀를 조금 놀려주기로 했다. 복잡한 작전을 짤 필요도 없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국적인 억양이 섞인 영어로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스파라거스는 너무 익었고 도미는 전혀 안 익었군요. 이렇게 형편없는 요리는 프랑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죠.”


“달걀이랑 치즈가 맛이 겉돌아서 어울리지 않아요. 이런 걸 이탈리아식 만찬에 내놓았다간 욕만 잔뜩 먹을 겁니다.”


파티에 온 이들은 하나같이 잘난 척하는 족속뿐이다. 그들을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스스로의 무식함과 저속함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알렉스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였다.

까다로운 멍청이들이 자신의 불만 - 그게 과연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 할 수 있을까 - 을 아주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그 불만은 파티의 안주인인 도슨 부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도슨 부인의 결벽증은 그녀의 요리사가 이 ‘완벽한’ 파티에 흠집 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다들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한마디씩 하는 거 데스티니도 들었지?”

“...네, 도슨 부인.”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 많이 했어. 내놓는 요리 종류도 다양했고, 그 중엔 손이 많이 가는 것들도 다섯 가지가 넘잖아. 그러니까 그중에 서너 개 정도는 실패할 수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진심이야. 그런데 데스티니. 단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모든 요리를 전부 망치는 요리사가 세상에 있을 수 있어?”


도슨 부인은 고압적인 말투로 한참 설교를 늘어놓았다. 당장이라도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빼앗아 버릴 계모처럼 눈초리가 매서웠다. 데스티니에게는 유리 구두보다 스니커즈가 더 어울리겠지만.


“대답해, 데스티니.”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건 알아. 그래도 이 정도면 요리사로서 실격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어때? 데스티니는 성실하니까 뭐라도 되겠지.”


‘실격’이라니. 상당히 가혹한 단어를 골랐다. 가엾게도. 알렉스는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데스티니를 응시했다. 그녀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도슨 부인은 손을 두어 번 흔들어 데스티니를 쫓아냈다. 명백한 하녀 취급에 지켜보는 알렉스마저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그녀를 약간 당황하게 할 생각이었을 뿐, 이런 결과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데스티니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 걸었다. 알렉스는 곧바로 그 뒤를 쫓았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대리석 바닥에 구두 굽이 부딪히며 요란하게 또각거렸다. 얼마 후 그녀는 구두를 벗어들고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Shit. 

발소리를 숨기려면 뛰어선 안 된다. 그런 알렉스의 조바심을 모르는 채 데스티니는 새처럼 빠르고 가벼운 달음질로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응접실을 빠져나가 정원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데스티니를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정원은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 있어 구두를 신고 달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택을 벗어난 알렉스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관목 울타리를 몇 개나 지나치며 데스티니를 찾아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졌다. 

그녀를 찾지 못할까 봐 불안한 게 아니다. 알렉스가 그녀를 찾아내는 것보다 그녀가 먼저 알렉스를 찾을까 봐 불안했다.

지금 데스티니에게 알렉스는 철저한 ‘타인’이었다. 어두운 정원에서 맞닥뜨렸다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지. 그녀를 겁먹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휴대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스티니가 분명했다. 

관목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알렉스는 마침내 그의 신데렐라를 찾아냈다. 그녀는 큰 나무 아래에 흙이 묻은 맨발로 서서 울고 있었던 듯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약간 쉬어있었다.


“네, 해롤드.”


데스티니는 손바닥으로 뺨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이제 곧 들어갈 거예요... 고마워요... 곧 들어갈게요.”


전화를 끊은 데스티니가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 알렉스는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다.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가 몇 걸음 움직였을 때였다. 맞은편 나무 그림자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는 발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한 남자가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O라고 했던가. 알렉스는 남자가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애썼다. 파티에 와서 O와 가벼운 잡담 한두 마디 정도는 나누었던 것 같은데 무의미한 대화라 금세 잊어버렸나 보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구겨진 수트를 입은 O는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데스티니에게 다가갔다.


“얼음물을 좀 가져다드릴까요?”


O가 혀 꼬부라진 말투로 뭐라 대답했지만, 주정뱅이가 지껄이는 소리 따위 귀 기울일 가치도 없다. 그러나 데스티니는 그를 내버려 두지 않겠지. 그녀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니까.

알렉스의 예상대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해롤드? 여기에 어떤 손님이 너무 취하셨...”


그때였다. O가 데스티니의 팔을 붙잡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Fuck.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주정뱅이는 데스티니의 몸을 나무로 밀어붙였고, 너무 놀란 그녀는 딱딱한 나무껍질이 등에 닿을 때까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Fuck!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했을 때 두터운 손이 입을 막았다.


“가만 좀 있어 봐.”


주정뱅이의 반대쪽 손이 꿈틀거리며 데스티니의 몸을 더듬었다.


“...살려 주세요.”

“누가 죽인대?”

“제발...”


데스티니가 애원했다.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커트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FUCK!!!


데스티니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

생각해라, 알렉스 웨이드. 지금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잠깐만요! 도슨 씨!”


알렉스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O는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는 그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재빨리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도슨 씨! 멈춰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달라진 탓에 O는 혼란스러워했다. 알렉스의 예상대로였다. 그는 더욱 실감 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사냥터가 아니에요! 그렇게 안전장치를 풀면...! 도슨 씨! 라이플 내려놓으세요!”


총이라는 말에 주정뱅이가 화들짝 놀라며 데스티니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발... 방아쇠는 당기지 마세요! 누구... 누구든 좋으니까 좀 말려줘요!”


O는 알렉스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술에 취한 제프리가 사냥용 라이플을 든 채 정원을 누빈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눈치를 보다 데스티니를 버려두고 저택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다리가 풀려서 고꾸라지는 모습이 볼썽사나워,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혼자 남은 데스티니는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다 끝났다고,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를 달래주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알렉스는 성긴 나뭇가지를 벌려 틈을 만든 후 울타리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술에 취한 O는 멀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렸다. 놈은 엎드려 있었고 주변은 어두웠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모를 거다. 알렉스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O의 다리를 겨냥했다.



고요한 밤의 정원에 총성이 울렸다. 정강이에 총을 맞은 O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다리를 쏜 건데 엄살 부리기는. 알렉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돌아섰다.


“데시!”


누군가 데스티니를 마중 나온 모양이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퇴장해야 했다. 알렉스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알렉스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발광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저택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O는 응접실에서 피가 나는 정강이를 붙들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어떤 새끼가 총을 쏴! 내가 누군 줄 알고! 미친 새끼! 죽여버릴 거야!”


알렉스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자연스럽게 응접실로 향했다. 그중에는 도슨 부부도 있었다.


“해롤드,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질문을 받은 해롤드가 입을 열기도 전에 O가 악을 썼다.


“제프리 도슨! 당신이 나한테 총을 쐈잖아!”

“그게 무슨 소리요?”


제프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의 알리바이를 들은 O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O는 알렉스의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저렇게 멍청해서야, 쯧. 평생을 한심한 패배자로 살아간들 그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지.


“시침 떼지 마쇼! 당신이 사냥용 라이플을 들고 정원에 나온 거 다 아니까!”

“O씨. 전 정말 라이플에는 손도 댄 적 없습니다.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

“내가? 착각? 참 나!”


O는 코웃음을 치며 자기 정강이를 가리켰다.


“그럼 이 다리는 도대체 누가 쐈단 말이오?”

“제가 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사에게 쏠렸다. 알렉스 역시 적잖이 놀랐다. 그가 아는 해롤드는 도슨 가를 위해 희생할 만큼 신의가 두터운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해롤드가 저지른 ‘죄’ 때문에 이제 와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 걸까.


“해롤드? 당신이...?”


제프리의 물음에 해롤드는 흙투성이 치마를 입고 있는 데스티니를 잠깐 바라보았다.


“O씨는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 중 한 명에게 손을 대려 했습니다. 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보게 됐고, 머릿속에는 그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져서 총을 쏘고 말았습니다.”


데스티니를 위해서 거짓 자백을 하다니. 이 저택에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 다행이라고, 알렉스는 생각했다. 

그런 해롤드조차 깨끗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데스티니는 실망할까 아니면 수긍할까.



해롤드의 설명이 끝나자 데스티니가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에요.”

“저 아이는 절 감싸주려고 부정하는 겁니다. 총을 쏜 건 제가 맞습니다.”


데스티니가 뭐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제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O씨. 사실입니까? 당신이 데스티니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겁니까?”


제프리가 O에게 따지듯 물었다. 알렉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꼴에 친척이랍시고 데스티니를 감싸주는 척하는 모습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닥치고 있어야 할 O가 되레 언성을 높인다. 적반하장이구만 아주.


“난 아무것도 강요한 적 없습니다! 딸 같고 귀여워서 격려해주려다가 그... 분위기가 그래서 그렇게 된 거지, 설마 내가 억지로 했겠소? 일개 가정부가 날 뭘로 보고...!”

“O씨. 말조심하십시오. 저 애는 ‘일개 가정부’가 아니라, 제 여동생의 조카입니다.”


제프리가 O의 태도를 지적했지만, 놈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버릇도 나쁜 주제에 같잖은 선민의식까지 갖췄다니. 알렉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을 쏴버릴 걸 그랬다.



누군가 신고했는지 경찰과 구급대가 함께 도착했다. O는 구급차에, 해롤드는 경찰차에 타게 되었다. 해롤드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본 데스티니는 울면서 그를 따라갔다.



알렉스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정원에서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해롤드가 보았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는 알렉스가 O를 쐈다고 추리할 만큼 영리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경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는 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알렉스는 해롤드의 약점을 쥐고 있다. 그의 여생을 간단히 망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약점을. 그만큼 확실한 대비책이 또 있을까.



예상대로 경찰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해롤드는 이리저리 말을 바꾸며 엉터리 증언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피해자인 O의 진술은 더 가관이라 했다.

사건은 조용히 묻히는 듯했다. 그 사건을 다룬 기사를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보나 마나 돈으로 적당히 무마했겠지. 제프리와 O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고소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을 거다.


해롤드가 처벌받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할 O가 풀려난 건 불합리하다. 

돈의 힘으로 운 좋게 법망은 피했을지언정 알렉스는 놈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알렉스의 펜 끝에는 그런 인간쓰레기들을 매장시킬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해롤드는 저택으로 돌아온 지 석 달 만에 은퇴했다. 항간에는 제프리가 그에게 은퇴를 종용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도슨 가가 침몰하기 전에 해롤드가 먼저 발을 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해롤드는 제프리의 침몰에 일조했으니 고용주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활약으로 인해 알렉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날은 코앞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 1-9가 데스티니의 시점이고, 이번 편은 알렉스 시점입니다.


+) 사건 시간표

+) 브금은 Marilyn Manson의 <Sweet Dreams>입니다.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Who am I to disagree

I travel the world and the seven seas

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Some of them want to use you

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Some of them want to abuse you

Some of them want to be abused

 

 * <1-13 알렉스 웨이드는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데스티니의 알람 소리였던 유로스믹스의 노래가 원곡이고, 그걸 마릴린 맨슨이 리메이크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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