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칸으로 넘어가자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아까와 같은 평범한 백색 LED등이 아닌, 검정색에 가까운 초록빛과 우중충한 노란빛 등이 어지럽게 점멸했다. 양지원이 눈을 찌푸렸다. 지하철 내부에 불이 들어온게 아니라, 터널의 불빛이 차량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지러운 불빛 사이로 인영이 보였다. 의자에 축 늘어져있거나, 바닥에 누워있거나, 의자에 기대 쓰러져있거나,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만 가득했다.

 양지원까지 다음 칸으로 넘어오자 뒷문이 저절로 닫혔다. 불빛이 내부에 비칠 때마다 그림자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다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손에는 날붙이따위를 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적막감이 흐른다. 양지원은 검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절로 땀이 난다. 이 검을 놓치면 죽는다. 본능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가장 앞에 있는 이가 날붙이를 고쳐잡고 괴성을 지르며 두 사람에게 돌격했다. 바깥의 불빛 때문에 날붙이가 번쩍번쩍 빛났다. 요령없이 마구마구 난도질을 할 모양인지 날붙이를 쥔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양지원은 무슨 생각인지 검집 끄트머리로 달려오는 그 사람의 복부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 이번 역은… ]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으나 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 사람은 침을 흘리면서도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게 신호탄이라는 듯 이 차량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두 사람에게 달려들던 이는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등을 찔려 쓰러졌다. 식칼을 든 이는 무심하게도 칼을 뽑아,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축 늘어진 시체를 타넘어 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 다가오지 마십쇼!”


 양지원이 외쳤으나 그는 들리지 않는지 광기 가득한 눈으로 둘을 보았다. 입술이 쉴 새 없이 달싹거렸으나 정확히 무어라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비명이 괴성을 덮는 이 난장판에서 침착하기는 힘들었다. 양지원의 뒤에서 가만히 있던 양우원이 그의 어깨를 밀쳤다.


“비키라.”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사람이 하나 쓰러졌다. 식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큰 소리에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앞에 있는 이를 상대하기에 급급했다.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고, 내장이 흩뿌려지고, 피비린내가 가득해졌다. 녹색과 황색 불빛이 어지럽게 내부를 비추었다. 양우원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피투성이 식칼을 챙기며 총에 맞아 쓰러진 이를 타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양지원은 우물쭈물하며 양우원의 등을 보았다.

 얽히고설킨 사람들 사이, 양우원은 가만히 숨죽이고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물어뜯느라 바빴다. 누군가에게 찔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처절하게 싸웠다. 마치 싸움밖에 모르는 투견처럼 말이다.

 칼에 맞은 사람이 꿈틀거렸다. 그는 날붙이를 꼭 쥔 채 비척비척 일어났다. 빛을 받은 날붙이가 반짝거렸다. 반사광이 움직이는 모습에, 뒤에 바짝 붙어있던 양지원이 움찔거렸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그는 계절에 어울리는 평범한 차림새였다. 모자가 달린 플리스에 얼룩진 스니커즈, 여기저기 찢어진 바지,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표정은 무시무시하지만 앳된 티가 살짝 엿보인다. 끽해봤자 대학생정도일 터다. 그는 날붙이를 고쳐잡고 양우원의 등을 보았다. 그리고 그걸 양지원이 보았다.


“양우원!”


 양지원이 외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자신과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양우원에게 달려들었다. 양지원이 재빠르게 검을 뻗어 그의 오금을 쳤다. 그가 주저앉더니, 뒤를 돌아 양지원을 노려보았다. 타겟을 바꿨는지 양지원에게 달려들었다. 양지원이 본능적으로 검을 그에게 내밀었다. 저기는 단도고 여기는 장검이다. 기본적인 거리 차이가 있어 양지원이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과는 다르게 이런 상황이 능숙하다는 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양지원의 어깨가 날붙이에 크게 베였다. 옷이 두꺼워 큰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따끔거렸다. 양지원은 그의 복부를 쳐낸 후 어렸을 적 검도를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그의 급소를 마구마구 때렸다.


“케흑, 윽!”


 기분나쁜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상대방이 신음을 흘렸다. 검집이 상처난 곳을 후볐다. 그는 피를 토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양지원은 검을 꽉 쥔 채 주저앉은 그를 보았다. 그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려는 듯 잡고 있던 날붙이를 들어 양지원에게 겨누었다. 양지원이 손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뼈에 금이 갔는지, 그는 날붙이를 바로 떨어트리며 앓는 소리조차 못 내고 몸을 웅크렸다. 양지원이 떨어트린 날붙이를 잽싸게 주웠다.


“아, 안 돼….”


 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게 없으면 난….”


 가까이서 또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 ……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


 방송이 끝나자 점멸하던 불빛이 순식간에 꺼지고 암흑이 찾아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부 LED등이 점등했다. 서 있는 건 양우원과 양지원 단 둘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언제 살아 움직였냐는 듯 까만 웅덩이 속에 축 늘어져 있었다. 차량 내에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눈과 코가 따갑고 머리가 어지럽다. 양지원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양우원을 보았다.

 양우원은 이제 익숙한지 어느새 생겨난, 앞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 앞에 섰다. 문을 열기 전 재정비했다. 총알이 몇 개 남았더라. 리볼버 탄창을 열어 개수를 확인했다. 3발, 여분까지 합하면 9발. 차량은 4량 편성이다. 지금 두 칸째니까 기관실을 제외하면 앞으로 한 칸 남았다.

 양지원이 조심스럽게 늘어진 사람을 타넘어 양우원 곁으로 왔다.


“설마 다 죽었나…?”

“모르지. 다음 칸으로 가자.”


 양우원이 단칼에 대답하고 문을 열었다. 통로를 성큼성큼 지났다. 양지원은 쓰러진 사람들을 뒤돌아봤다. 그들은 마네킹처럼 새까만 웅덩이 속에서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다. 언제 그렇게 살아움직였냐는 듯 그렇게 있었다. 양지원은 눈을 질끈 감고 양우원의 뒤를 따랐다.

 차량간 통로는 아까보다 유독 더 길게만 느껴졌다. 깜깜한 통로를 지나 양우원이 다음 차량으로 통하는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리고 병적일만큼 하얀 차량이 나왔다. 이 차량은 유독 길어보였고, 또 사람들이 차렷 자세를 한 채 일렬로 서 있었다.

 일단 상황을 살피기 위해 양우원이 줄 끝에 섰다. 발목과 손목, 몸통까지 뭐가 칭칭 옭아매는 느낌이 들더니 움직일 수 없었다. 주춤거리던 양지원이 양우원의 뒤에 따라 서려고 했으나 양우원이 소리쳤다.


“뒤에 서지마!”


 뒤돌아볼 수도 없다. 눈만 굴려 양옆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다. 오직 보이는 건 앞에 있는 사람의 뒤통수뿐이다. 제길. 양우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양지원은 줄에 합류하지 않고 최대한 구석에 멀찍이 떨어져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이번 역은……. ]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앞에서 귀가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역겨운 냄새가 차량 안을 가득 채웠다. 비명에 묻혀 방송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한 칸 이동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양우원의 다리 역시 딱 한 걸음 움직였다. 비명의 근원지와 가까워진다. 양우원이 침을 삼켰다. 양우원은 당장이라도 양지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탁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내가 구해줄게.”


 하나뿐인 동생이다. 여기서 죽게 둘 순 없었다. 양지원은 검을 꾹 잡고 줄 옆에 난 통로로 앞으로 갔다. 끝도 없이 늘어진 줄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다들 겁에 질리고 체념한 표정이다. 눈을 굴려 양지원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양지원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살려달라는 절박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줄의 처음, 유니폼을 입은 이가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이 차량의 승무원인 듯 했다. 그에게 잘 말하면 어쩌면 이 괴상한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저, 실례합니다.”


 양지원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걸었다. 모자를 쓴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는 광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었다. 분명 앞에 있는 건 평범한 승무원일텐데, 본능적인 거부감이 느껴졌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품에서 날붙이를 꺼내 양지원에게 들이댔다. 들이댔다기보다, 양지원이 운 좋게 날붙이를 피했다. 턱이 아슬아슬하게 날에 스쳤다.


“윽…!”


 승무원이 움직이자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무수한 시선이 양지원에게 닿았다. 그들 중 하나가 삐걱삐걱 움직이더니 양지원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도 없이 그는 무작정 양지원의 손목을 잡고 입을 크게 벌렸다. 양지원이 손을 뿌리치며 그의 복부를 발로 찼다. 뒤에서 승무원이 다시 날붙이를 휘둘렀다. 옷이 두꺼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간담이 서늘해졌다. 진짜 죽는다. 아까와 같은 요행은 기대할 수 없다. 양지원은 검집으로 세차게 몰려드는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탕! 멀리서 총성이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자신은 죽어도 양우원은 살려야만 한다. 결단할 때다. 양우원은 여태 몇 번이고 둘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물론, 양지원이 좋게 생각하는 것이다. 양우원은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 서스럼없이 사람에게 총을 쐈다. 이것이 진실이다.─


“죄송합니다.”


 양지원은 검집에서 칼을 뽑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람을 쉽게 베어냈다.

 양우원이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면, 양지원은 몸을 쓰는 센스가 뛰어났다. 어떤 운동이든 곧잘 해내곤 했고, 어릴 적에 검도따위를 배웠던지라 검을 쓰는 동작은 어설프지 않았다. 사람을 하나하나 베어내며 승무원의 공격을 막았다. 승무원의 눈이 번들번들 빛났다. 체구가 양지원보다는 작은데 힘은 어마어마했다. 날붙이를 쓰는 솜씨 역시 양지원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양지원은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양우원을 두고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동시에 피어났다. 저 멀리서 다시 총성이 들렸다. 양지원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승무원에게 달려들었다.

 급소를 노리되 동작은 최소한으로만. 검날이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 빛났다. 승무원의 허벅지를 베어내고, 들이치는 날붙이를 검집으로 막았다. 그리고 다시 검날을 그대로 들어올려 복부를 벴다. 옷이 찢기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승무원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양지원의 코트는 다 찢겨 너덜너덜했고, 하얀 셔츠는 어느새 피로 물들어 진홍빛으로 변했다.


“윽!”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이 달려들어 양지원을 덮쳤다. 그는 양지원의 어깻죽지를 물며 칼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양지원의 검을 가지고 싶은지 손에서 피가 철철 흘러도 칼을 놓지 않았다. 양지원이 발버둥치며 그를 발로 찼으나 쉽게 밀리지 않았다. 승무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날붙이를 치켜들고 양지원에게 달려들었다.

 그 아수라장 속,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탈칵, 차라락, 금속음이 부딪치며 자아내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말이다. 그리고 총포음이 들렸다. 귀가 일순간 멍멍해졌다.

 승무원의 모자가 벗겨지며 그가 뒤로 넘어갔다. 머리를 벽에 박으며 그는 주저앉았다. 벽에는 승무원의 궤적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승무원이 쓰러지자 움직이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에 우뚝 섰다. 급소를 찔려 쓰러진 사람들은 죽은 건지 쓰러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살아 움직이던 것이 순식간에 무생물로 변했다.

 양지원이 검을 지팡이삼아 비틀비틀 일어났다. 양우원은 총구 끝을 후 불며 양지원을 보고 씩 웃었다.


“쓸모없긴.”


[ 내리는 문은 왼쪽, 왼쪽입니다. ]


 예고없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열차가 차차 감속했다. 덜컹이며 열차는 승강장에 들어오고, 그리고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이 열렸다. 둘은 서로의 차림새도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열차에서 내렸다.

 승강장은 불이 켜져 있다. 그리고 둘이 늘 타고 내리는 역명이 적혀 있었다. 둘이 열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


 양지원이 양손을 번갈아 보았다. 열차에 탑승한 뒤 땀이 나도록 쥐고 있던 검이 없었다. 분명 들고 내렸던 것 같은데? 양우원은 별 신경 안 쓰는지 혼자 계단으로 향했다. 양지원이 헐레벌떡 양우원의 뒤를 따랐다.

 역사에서 올라와 집에 갈 때까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그건 대체 뭐였을까? 둘의 몸에 난 상처나, 찢겨진 옷이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설마 꿈꿨나?”


 씻고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양지원은 눈을 감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출근시간대의 지하철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양지원과 양우원은 지하철에 올랐다. 틈바구니 사이에 끼여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뉴스나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양지원의 눈에 한 뉴스가 눈에 띄었다. 지역 뉴스였는데, 실종자를 찾는다는 기사였다. 홀린 듯 그 기사를 눌렀다.

 안에는 실종자의 인적사항과 사진이 있었다. 양지원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기사를 다시 읽었다. 분명 본 얼굴이다. 다 봤던 얼굴이다. 실종자의 얼굴은 어젯밤, 기묘한 지하철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꿈이 아니다. 양지원과 양우원은 진짜 사람을 죽인 것일지도 모른다. 양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본 적 없다는 듯 황급히 뒤로가기 버튼을 연타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손바닥에 나는 땀을 대충 바짓춤에 닦았다. 누가 본 건 아닐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양우원은 덤덤하게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있었다.

 창문 너머 까만 터널을 보았다. 창문에 사람이 꽉 찬 지하철 풍경이 아닌, 검은 웅덩이에 엎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양지원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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