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웨이홈으로부터 약 5년 뒤의 이야기

전개 때문에 짧게 끊고 갑니당





해럴드 호건은 매일 툴툴대고 짜증만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굉장히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경호 실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직속 상사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개인 기사처럼 써먹었으며 개인적인 여러 뒤치닥거리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해럴드 호건은 괜찮았다. 보스는 비위만 잘 맞춘다면 저에게 특히 유하고 너그러웠으며 추가 업무에 대해서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한 세월이 길어도 너무도 길어서, 그는 그런 성미마저 이해했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해피 호건은 토니 스타크가 스냅을 하고 지구를 지켜냈을 때 안도하기보다는 슬펐으며, 그가 제 생존을 비밀에 부치다가 돌아왔을 때에도 그를 원망하기 보다는 감사해했다. 그는 토니가 돌아왔을 때, 이제 토니에게 어떤 불평불만도 하지 않고 끝까지 곁에 남겠다고 맹세할 수 있을만큼 기쁨에 격앙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 해피 호건은 불행했고, 그 맹세를 다 취소했으며, 혼란스러웠다. 


"보스, 제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줘요."

"그거 맞을걸."


보스 제발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뜬금없이 이른 아침에 호출해서 무슨 희한한 골목으로 데리러 오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보스가 다 쓰러져가는 멘션에서 네 살은 될까말까한 어린 애랑 나왔다. 그리고 애와 함께 아우디를 탔고 스타크 타워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이 두 명제로 자신이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우리 닮았어?"

"보스!"


토니 스타크는 해피의 반응에 되려 기쁘다는 듯이 아이의 얼굴을 제 얼굴과 맞대면서 해피에게 물었다. 애는 큰 눈을 꿈뻑 거렸다. 닮았어요! 닮았다고요! 제발 확인 사살 시키지 마세요. 제 심장이 약한 거 아시잖아요! 토니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애가 피터 판박이라고 하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느 정도 제 자식 같다는 거 아닌가. 해피는 침을 꿀꺽 삼키고 겨우 물었다. 


"설마 기자회견 하실건 아니죠?"

"아니야. 그냥 애기 유치원 데려다주는 거라고."

"뭐라고요?"


토니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 같았다. 토니는 그런 해피의 마음은 신경쓰지도 않고 애랑 도란도란 수다나 떨고 있었다. "저 아저씨 이름은 왜 해피야?" "너무 행복해서 그래." 그래 아주 행복해서 피눈물이 나겠다. 해피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더이상 묻지도 않았다. 그냥 알고 싶지 않았다. 아우디의 가림막 너머는 다른 세상이었다. 해피는 뒷좌석의 소리를 듣지 않기위해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

"이따가 데리러 올게"

웅. 에디가 대답했다. 애는 토니의 볼에 입을 맞추더니 깜찍하게도 제 볼을 갖다댔다. 토니는 기쁘게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 적당히 입막음을 한 데이케어센터 직원 데릭은 그냥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해피는 그 뒤에서 경악하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토니는 에디가 데릭과 함께 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뒤를 돌아 해피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시 거기로 데려다줘."

"어디요? 그 쓰러져가는 멘션이요?"

저 퇴직하고 싶어요. 퇴직금 좀 두둑히 챙겨주세요. 토니는 궁시렁대는 해피를 가볍게 무시했다. 해피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제 상사가 몇 개월간 비몽 속을 헤메며 온갖 히스테리를 부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가 내는 짜증마저도 감사했다. 하지만 이건 얘기가 달랐다. 토니는 요 근래 몸 상태가 최상인듯 싶더라니 갑자기 해피에게 "내 주니어한테 인사해"하는 기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 인간 언젠가 사고 한 번 거하게 칠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씨를 뿌린데가 있으면 거두긴 해야겠지. 그런데 애가 생각보다 너무 크네. 잠깐만, 제 보스는 5년동안 부재중이었으니 그럼 애는 블립 이전에 가진- Holy SHI-


"페퍼는 알아요?"

"아직 몰라. 곧 얘기할거야. 아 참고로 말하는데 언론에는 공개할 생각 없어. 내 목표는 그냥 조용히 사는거야."

"퍽이나 쉽겠네요." 해피가 일갈했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좋게 생각하자 마음먹었다. 토니의 고집을 제가 이겨본 적이 있는가. 그래도 토니가 애 엄마를 먼저 찾아간 모양이고, 지난 5년동안 아무 폭로하지 않은 걸 보면 그 사람도 큰 욕심은 없는 사람일거고.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애랑 사이도 좋아보이는데 더 이상 큰 스캔들 없이 사고만 더 안치면 된 거 아닐까. 토니 스타크가 정착이라니, 하워드 스타크가 알게 된다면 관 속에서 몸을 뒤집을 것이다. 해피는 여전히 충격에 쌓여 있었지만, 제가 본 토니의 모습 중에 손에 꼽게 행복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니 됐나 싶기도 했다. 가족을 이루는 건 나쁜 건 아니니까. 


"애 엄마는 누구에요?"

"너도 알걸?"

해피는 자신이 방금 전에 한 생각을 후회하게 된다. 






*

"어... 다시 오실줄 몰랐어요."

"허리 안 아파?"


피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귀엽긴. 토니는 피터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식탁에 자연스럽게 앉아서 자연스럽게 피터의 허리를 쓸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옷 속으로 들어갔다. 피터는 허둥대며 토니의 팔을 떼어냈다. 토니가 끈덕진 눈빛으로 계속 피터를 바라보자 애는 아예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구운 식빵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은 접시 하나를 토니 앞으로 밀어 주었다. 


"안 오셔도 됐어요. 저 교수님한테 전화해서 오후에 출근한다고 했거든요. 요즘 랩이 바빠요. 어차피 에디도 데려와야 하고요."

"문제가 많은 랩이네. 아르바이트생을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토니는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피터는 토니가 무엇을 보는지 어깨 너머로 곁눈질 했다. 핸드폰에는 에디를 비롯한 어린 아이들이 노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각도도 여러개였고 유치원의 실내를 구석구석 보여주고 있었다. 영상을 훔쳐 보는 피터의 눈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 데이케어센터 CCTV 보고 있는 거에요??? 


"미취학 아동 시설에 CCTV설치는 법적으로 의무화 되어있지. 난 이 조직 회장이고,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 정보를 받아 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야." 토니는 빠르게 변명했다. 별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합법적인 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베이비 모니터링이야."

"베이비 모니터링이요?"

"우리 애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거지."

피터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찡긋댔다. 왜 그런 표정이야? 토니가 토스트를 우물대며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스타크씨가 제 수트에 붙여줬던 프로토콜 이름이었어요."


프로토콜? 자신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니 바로 이거겠다 싶은 건 있었다. 위치 추적 기능이랑 바이탈 체크 기능, 그리고 여러 부수적인 다른 기능들을 합쳐 놓은 거겠지. 카메라는 드론 영상이랑, 시야에 카메라 하나 더 달아놨겠고. (물론 지금 수트에 전부 있는 기능이었다.) 그 때 피터는 열 다섯살이었고 그런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것에서 제가 애를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다 눈에 보였다. 토니는 피터에게 확신시켜 주고 싶었다. 난 하나도 안 변했어. 그 개자식이 나고, 내가 그 개자식이지. 하지만 방금 사례를 구태여 한 번 더 설명해줌으로서 그 확신을 주기는 제가 생각해도 좀 크리피했다. 하지만 피터는 다른 데 꽂혀 있는 듯 했다. 토니는 피터의 살짝 부푼 볼을 보더니 금방 음흉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놀리듯이 물었다. 


"너 지금 내가 널 베이비라고 안 부른다고 삐진거야?" 

"그런거 아니거든요?!" 원했던 반응이 바로 돌아왔다. 

"Hey babe, 이리와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아 됐어요! 저리 가요!"

피터가 터질 것 같은 붉은 얼굴로 허리에 안겨오는 토니를 밀어내면서 씩씩댔다. 하지만 제 얼굴에는 끝까지 손을 안대는 거 보니 진짜 매몰차게 떼낼 생각은 없는 거 같았다. 가만 보면 얘는 내 얼굴에 진짜 약하다니까. 귀여운건 자기면서. 

"근데 너는 왜 나를 이름으로 안불러? 우리 애칭 없었어?"

"어.. 음 딱히..?"

"나도 참 매정하네. 그냥 토니라고 불러 babe."


지금부터 새로 하나씩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지. 그렇지 않아? 우리 알아갈 날이 더 많잖아. 토니가 살짝 떨어져서 서 있는 피터를 올려다보면서 아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사근대면, 피터도 얌전하게 토니의 뒷목을 쓸었다. 오케이 대놓고 능글대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잘 먹히네.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에디한테 스타크씨가 아빠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토니는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지금 뭐라고 - 

"아 아니 아직 싫거나, 부담스러우면 안 그려서도 괜찮아요!"

토니의 대답이 대번 들려오지 않자 피터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토니는 약간 허둥대면서 다시 제게서 떨어지려는 피터를 팔로 꾹 잡아 눌렀다. 깊은 숨이 새어나왔다. 


"아냐... 그게 아니고.. 고마워서 그래."


이렇게 빨리 허락해줄거라고 생각 못했거든. 내가 계속 생각하는데 너 엄청 무른 거 알아? 왜 갑자기 독일로 끌고가서 미성년자를 명분 없는 싸움에 끌여들인 남자를 위로해줬어? 왜 널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모진 말만 하는 남자를 안아준거야? 늘 왜 이렇게 쉽게 용서해줘? 토니는 약간 피터의 성정이 원망스러웠다. 너는 늘 날 이렇게 나쁜 놈으로 만들지. 그럼에도 토니는 이 안온함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순진함이 자신을 구원해준 걸 알아서. 


"사실 에디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에디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슬프게도 애가 어떤 심정인지 하나도 몰라요. 그래도 에디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제 이기심일까요? 이게 저희의 실수가 되진 않겠죠?"


피터가 토니의 위로 동그랗게 숙여 그의 얼굴을 제 품에 묻는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 이런 가족적인 것에 끔찍하게 서툰 거 알잖아. 그래도 이제 너랑 나 같이 있을 거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토니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손을 약간 위로 올려 피터의 살짝 떨리는 등을 쓸었다. 다 괜찮을거야. 






*

[2주 뒤에 미션이 있는데 좀 큰 건이야. 혹시 생각있어? 샘은 네가 왔으면 좋겠다는데.]

[일단 브리핑에라도 와봐. 브리핑은 내일.]

오랜만에 완다에게 온 문자였다. 내일 가보고 결정해볼까. 큰 건이면 얼마나 큰 건이지? 아르바이트는 쉬는 날이었고, 브리핑 시간도 에디가 데이케어센터에 있을 시간이라 상관 없을 것 같았다. 

피터는 한 번 더 고민했다. 

'토니한테 말해야 하나?'


예전같으면 말했을 것이다. 자신은 미성년자였고 토니는 자신의 히어로 멘토였다. 그가 스파이더맨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피터는 성인이고, 지난 5년동안 토니 없이도 잘 해왔고, 토니가 제 히어로 활동을 감독하는 역할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싶었다. 미션을 가는 것도 아니고 브리핑을 가는 거잖아? 그는 토니에게 허락을 구하는 문자를 주절주절 적었다가 전부 지우고는 완다에게만 답장했다. [응 갈게.]

하지만 그건 피터의 안일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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