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반역자 네타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에메하노히토를 다량함유

*빛의 전사는 여성 휴런이 기본설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도사이자 세계를 멸망시킬 힘이 있는 아씨엔 에메트셀크. 갈레말 제국의 건국황제. 그를 꾸며내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한 인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의 전사 혹은 어둠의 전사. 아씨엔을 막아서는 유일한 존재. 증오해마지않는 하이델린의 축복을 받은 자. 혹은 공성 병기. 야만 신을 잡는 무기. 그녀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입장과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에메트셀크에겐 단 하나의 설명만이 필요했다.

-만 여년의 세월 중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에테르의 색을 지닌 생물

물론 저것은 「그」가 아니다. 그에 비해선 영혼의 밀도는 한참 떨어져 있는, 되먹지 못한 생물. 인간을 조악하게 흉내 낸 무언가. 하지만 그래도 그가 사랑했던 것과 가장 닮아 있어서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는 약간 아쉬운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목덜미를.

하얀 피부의 목덜미에는 약간의 얕은 상처들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빛의 전사는 항상 머리카락을 짧게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 상처들은 고스란히 햇빛에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무척 아름답기도 했지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는 빛의 전사만큼 머리카락이 짧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억 속의 그녀는 외모는 똑같았지만,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묶고 다니고는 했다. 그것을 정리하는 것을 퍽 귀찮아해서 그녀보다 머리는 짧아도 긴 휘톨로다이우스가 더 정리를 깔끔하게 하거나 관리를 하는 편이었다. 머리를 부스스한 상태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잔소리를 할 참이면 그녀는 에메트셀크에게 대신 빗겨달라고 부탁하며 매달렸다. 자신에게 부탁하는 이유도 모르고 퍽 귀찮기도 했지만, 그는 항상 그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그것을 휘톨로다이우스도 자주 구경을 했는데 머리모양을 이리저리 바꿔보던 휘톨로다이우스는 꿔다놓은 보리자루마냥 앉아서 머리카락을 에메트셀크에게 맡기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젬은 용케 귀찮아하면서도 머리카락을 정리하지 않는구나?

-그래. 귀찮으면 차라리 자르면 되잖냐.

그 말에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던 아젬은 조금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정리하고 싶을 때 저러곤 한다. 잠시 뜸을 들이고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데…에메트셀크가 좋아하잖아. 내 머리카락 만지는 거.

그 말에 빗질을 하던 그의 손길이 멈춘다. 휘톨로다이우스도 잠시 멈칫하다가 파하핫 하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에메트셀크는 이 시점에서 부정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부정하기엔 이미 자신이 그녀를 돌보는 데 익숙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싫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것이다.

-나도 꽤 좋아하는 걸. 에메트셀크가 머리 빗겨주는 거랑 때때로 어울린다면서 머리장식 이데아를 만들어주는 거. 지난번에 만들어준 머리핀도 되게 마음에 들었었는데 잃어버려서.

한숨을 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힘을 주어 잡자, 고개를 숙이던 아젬이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는 아프다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에메트셀크는 자신의 표정이 지금 어떤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가장 멀쩡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그녀를 다시 앞으로 보게 한 후 말했다.

-언제든지 만들어줄게. 너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그러니까 지금은 제발 이 일에 집중해라. 아젬.

-하하하하. 알았어. 고마워. 에메트셀크.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 준 머리장식으로 즐거워하던 시절의 그녀가 있었다. 현재의 빛의 전사는 어떤가.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은색으로 아름답지만, 길이는 짧아졌다. 마치 그녀의 잘려 나간 영혼의 무게 마냥. 이제는 장식할 머리카락은 그의 손길에 닿지 않는다.

“되다만 놈. 너 머리카락을 기를 생각은 없냐?”

“응?”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에메트셀크의 목소리에 빛의 전사는 상념에서 깨어나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이 고대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독심술이 없어도 그녀의 속내는 뻔히 읽혔다. 하지만 진지한 그의 표정에 빛의 전사는 표정을 풀고는 그의 질문에 대응해주었다.

“예전에는 길렀었는데?”

“-뭐?”

어째서 자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뭔지 물으려고 했으나 빛의 전사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지 에메트셀크의 질문을 피하고는 아예 자리를 피해버렸다. 근본적인 원인을 말하자면 전투 중에 머리카락이 귀찮기도 했고, 자르고 나서는 이게 편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거지만 일일이 이 고대인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자리를 피하려는 빛의 전사를 에메트셀크는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제대로 대답해라. 되다만 놈아. 별로 대단한 질문도 아니잖아?”

“나참. 귀찮게 구네. 애초에 그렇게 되다 만 놈이라고 부르는데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싶겠냐고. 그냥 더 이상 옆에서 빗겨줄 사람이 없어서 잘랐어. 그래서 다시 기를 생각은 없다고.”

스승과 이별을 한 다음, 혼자서 모험가로서 자립을 하게 될 때 빛의 전사는 마음가짐도 새로 할 겸 머리카락을 확 잘랐었다. 이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면 그녀의 과거와 스승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을 이어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잘라 말하고 돌아 보는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에메트셀크?”

그와 꽤나 긴 시간 대립도 해보고 말싸움도 해봤던 빛의 전사가 처음 보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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