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도영한테 사랑에 빠지는 일은 봄과 여름 사이 미묘한 환절기에 스치는 가벼운 감기만큼이나 흔하고 쉬운 일이었다. 잘생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숙명이 그렇듯이 김도영을 욕심내는 수많은 여자 혹은 남자들에게서 부터 꿋꿋이 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김도영에게 자기도 모르게 푹 고여버리는 건 나도 백만번이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그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헤매며 슬퍼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내 자리를 굳건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그들과 김도영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확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김도영 역시 날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도영이 반장 여자애랑 자주 붙어 다녀야 하는 상황 마다 하나하나 열분해서 질투하기엔 시간 낭비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아무리 혼자 걱정해봤자 어차피 김도영은 나한테 오게 되어 있다.


늘 그렇듯이. 저 앞에서 또 예쁘게 차려입고 김도영이 날 기다리는 것처럼. 어차피 그렇게 될 운명이란 거다.


"도영아!"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서 휴대폰을 보던 도영은 저를 크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날 봤다. 그 애를 보며 손을 마구 흔들며 반갑다고 웃어대는 날 보면서 손 한 번 흔드는 법 없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재롱을 부르면 그제야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는다.


"도영아 영화 보자. 나 보고 싶은 거 있어."

"그래. 근데 그 전에 밥부터"

"으응? 배고파?"

"아니, 너가"


너 또 밥도 안 먹고 왔지.

밥 먹으면 영화 시간 애매해지는데

그러게 왜 밥 안 먹고 와.



김도영이 하자는 말에 안돼 라는 건 없다. 결국 다 날 위한 말이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그러자 하고 넘어가는 편. 사실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김도영의 완곡함에 못 이겨 밥부터 먹으니 시간이 붕 떠서 여기저기 할 일 없이 돌아 다니다 조금 늦게 영화를 봤다. 


"주토피아?"

"응응"

"너 이거 안 봤었어?"

"봤었어. 근데 너랑은 처음이잖아."


이미 백만번이고 더 봤지만 주토피아 재개봉인데 김도영이랑 안 보러 간다고? 진짜 말도 안 되잖아. 주디를 똑 닮은 도영이를 옆에 앉혀 놓고 토끼 영화를 보는 건 상상만 해도 너무 깜찍한데 실제로 해볼 수 있으니 기를 쓰고 김도영을 데리고 온 거였다. 물론 본인이 토끼를 닮았는지 여우를 닮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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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이랑 만나면 무조건 31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데이트 국룰이랄까?

물론 내가 항상 데려가는 편. 김도영은 내가 왜 매번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지 상상조차 못하겠지.

그냥 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줄 알겠지만 그건 아니고.


"아몬드 봉봉이랑 체리 쥬빌레요."


오밀조밀한 입술을 모아 내뱉는 '봉봉'과 '쥬빌레'가 너무너무 귀엽기 때문이지.


주문은 항상 김도영이 하는데 나는 옆에서 그런 김도영을 빤히 쳐다보다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며 주문이 끝나면 오늘의 퀘스트를 끝낸 것처럼 징한 뿌듯함과 귀여운 김도영이 너무 좋아서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마구 쓰다듬어준다.


처음에는 까치발까지 들어가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날 보며 황당해하던 도영은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내가 쓰다듬어주지 않으면 내가 돌아섰을 때 홀로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이것 역시 몰래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알게 된 거지.


아무튼 간에 여느 때처럼 김도영의 뒤통수를 쓰담쓰담 해준 후 돌아가려다 다급하게 발길을 붙잡는 점원 언니의 목소리에 뒤돌아봤더니 뽀실뽀실한 토끼 귀를 내게 내밀었다.


"증정품, 받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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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내가 해야 해?"

"그러엄, 도영이가 주디잖아"

"내가 닉이 아니고?"


푸핫, 얼빵한 표정으로 저를 가리키며 '내가 주디라고?' 되묻는 도영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빵 터졌다. 그러게 내가 아까 말했잖아. 도영이는 본인이 토끼인지 여우인지 아무것도 몰라.


"아 한 번만 써줘, 딱 한 번만"

"나중에"

"응? 제발! 여니 소원!"


징징 대던 날 보던 도영이는 하는 수 없이 모자를 주섬주섬 머리에 쓰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거 맞아?"




"이렇게 하는 거 맞아?"


확 잡아먹어 버릴까




이 귀여운 김도영이 토끼가 맞다면, 여우는 꼭 나여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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