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박인결과 이주연. 이주연과 박인결. 묘하게 닮은 뜻의 이름에 생일은 단 하루 차이.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둘을 엮어댔지만, 이주연이나 박인결이나 두 사람의 이름이 왜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두 사람의 엄마가 각자 아이의 이름을 상의하다가 튀어나온 것들이었니 당연히 뜻이 비슷할 수밖에. 인연을 만들고 인연을 잇는다. 어쩌면 두 사람처럼 두 사람의 아이도 잘 지내길 바랐던 것이겠지만.

성적도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 아이의 상정마저 찰떡처럼 잘 맞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주연아! 인결이 머리를 왜 잡아!”

“인결이 너도 주연이 때리면 안 된다고 했잖니!”

이게 두 사람의 유치원 일화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은 닮았다면 닮았고 안 맞는다면 더럽게 안 맞는 그런 사이였다. 말하자면 친구라는 이름을 덮어쓴 원수랄까. 다만 그럼에도 두 사람이 종종 어울리거나 하교를 같이 한 건 그 이유가 하나였나.

“이모 때문에 참는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서로의 이모들이 좋았으니까. 자기 아들들보다 남의 아들 더 챙기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 탓에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애정을 더 갈구했기에—특히 이주연은 그게 더 심했던 것 같다고 지금에 돌아와서야 얘기했다—애정을 위해서 기꺼이 적과 동침도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모 못 뵈러 간 지도 꽤 됐다. 6년 전이 마지막이나 다름없었으니. 엄마가 보러 가자고 해도 그러진 못했다.

“집중 안 해?”

“…뉘에뉘에.”

과외라기엔 박인결은 이주연의 일상생활에 침투했다. 야자가 자율이 아닌 학교에서 얘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빈 동아리실을 빌려서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있는지. 전교 1등의 권력이란 이런 건가.

“쌤들이 너 공부시키겠다니까 두 손 들고 도와주시던데.”

“거짓말 치지마.”

“응 거짓말이야.”

사람을 속이려면 정성이 있어야지. 성의도 없이 바로 거짓말이 아니랜다. 

“근데 박인결.”

“문제 더 풀고 채점 받기로 하지 않았어?”

닥치고 문제나 풀지라는 말을 참 돌려서 잘했다. 사람이 말하면 얼굴이나 보고 대답해주면 덧나나.

“이거 왜 한다고 한 거야?”

사실 박인결은 굳이 이주연을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나 싶다가도 모르는 개념을 알려주거나 문제를 설명하는 걸 보면 헛투로 하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교무실에 들어가 담당 과목 선생님께 물었을 때 내용상 틀린 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더 의아하다는 거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도 없고 아직 자기 중간고사 성적만 신경 쓰기에도 바쁠 텐데 굳이 다른 애들도 아닌 나를? 뭐 이것도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박인결은 이주연에게 우호적일 필요가 없었다. 돈을 많이 받아도 이렇게는 안 할 거 같은데.

“문제 관련질문 아니면 대답 안 해.”

“야 좀. 진짜 궁금해서 그래.”

박인결의 고개가 그제야 올라왔다. 귀찮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려고 하는 그 얼굴이 새삼 충격일 것도 없음에도 이주연은 스스로 놀라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사적인 걸 얘기할 정도로 너랑 친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진짜 더럽게 안 맞는다. 

성격이 이렇게까지 상극일 수 있나 싶다. 나쁜 놈은 아니란 걸 아는데도 자꾸 밉게만 보이니 원. 그래 네 말대로 공부나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저 자식 코를 누를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 전에 나부터 이기는 게 빠를걸.”

“야!”

“워워 진정해.”

여름이 다가오는 걸 증명하듯 구령대를 비추는 햇빛이 점점 거세졌다. 아직 여름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올해 여름은 진짜 엄청 더우려나 보다. 입에 문 쭈쭈바가 아직 녹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주연은 자신을 놀리는 두 친구를 밀어낸 채 몸을 뒤로 기울였다.

“근데 확실히 서혜인을 이기는 게 더 빠르지. 음음.”

“민기원아.”

“응 자기.”

“닥쳐 좀.”

“시렁.”

아오 씨X 내가 이 새끼를 그냥. 맞을 걸 예상했는지 내 양손목을 쥐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야야 너 손 맵다고 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민기원을 가뿐히 무시한 이주연은 정신없이 그의 목을 흔들기 시작했다.

“근데 이주.”

“왜.”

어깨는 절대 놓치지 않은 채 이주연은 고개만 빼꼼 서혜인 쪽으로 돌렸다.

“저거 박인결 아니야?”

서혜인의 손끝에는 정말로 박인결이 걸려 있었다. 정확히는 이주연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왜? 라고 입 모양을 뻥긋거렸지만 박인결은 가만 보기만 하다가 다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뭐지?”

“글쎄.”

“자기야 이제 그만 어깨를 놔주면. 억!”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다만 표정을 사람 꺼림칙하게 보고 있으니 원… 아니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쟨 나랑 친해질 생각이 없는 그저 그래 그냥 과외 선생님 정도니까. 아니 근데 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고 난리인지.

“야 어디가 이주연!”

“교실에서 보자!”

그냥 궁금해서다. 저 방향이면 교무실일 테고. 품에 노트들이 가득 들려 있었으니 당연히 수행평가 제출을 하려고 가는 거겠지.

“이주연 너 어디가?”

“교무실!”

“너 이따 피시방 갈 거야?”

못가! 주변에서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을 무시한 채 이주연은 복도를 달리다시피 했다.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교사의 말에 가벼운 경보로 발을 바꾼 이주연은 교무실 문이 열렸을 땐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이주연?”

“헉…흐읍.”

말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뛰어온 탓에 숨이 거칠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턱없이 숨이 모자라서 박인결의 어깨를 쥐곤 심호흡을 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고 죽겠네.”

내가 이래서 달리기를 단거리만 나가는 거다. 400m 넘어가면 호흡 조절이 안 된다니까. 몇 번 호흡을 내쉬고 나서야 몸을 바로 세울 수가 있었다.

“아니 그게.”

근데 막상 이렇게 달려오니 달린 걸 설명할 말이 없었다. 말주변은 없는데 뭐라 변명을 해야겠고. 왜 그런 표정을 지었었는지 묻고 싶은데 그걸 물었다간 전과 똑같은 말로 회필할 게 분명했다. 

거리감. 이주연이 박인결에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수업 우리 집에서 하자고.”

이 말이 굳이 3층 교무실까지 뛰어올 이유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스스로 이 거리감을 좁히고 싶진 않았다.

“그래.”

아직은 이 정도가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위치였다.


*


“근데 이주연.”

“왜…”

“왜 쳐져 있는데?”

왜냐니. 박인결이 오늘 수업 갑자기 못하겠다고 도망쳤다. 도망쳤다는 건 이주연 쪽의 표현이고 박인결은 그저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오늘은 일찍 가봐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박인결이 급한 일이랄게 있나. 급해 봤자 아버지 쪽 일밖에 더 있나 싶었다. 

“다음 주에 수행평가였지?”

“근데 쪽지시험임. 이럴 거면 시험 문제나 제대로 내지.”

4월에는 뭔 시험이 이렇게 많은지. 수행평가를 치고 얼마 안 돼서 또 중간고사를 쳐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본데?”

“그게 아니라 박인결 못 봐서 그런 거 아니야?”

이주연은 탁자 위에 늘어져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아니거든?”

“그럼 말고.”

서혜인은 눈치가 적당히 빨랐으면 좋겠다. 가끔 보면 이놈은 이주연보다 이주연의 속을 더 잘 알아차리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럼에도 늘 남의 일인 것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끼어들지 않으려고 하는 게 보인다.

“근데 둘이 언제부터 알았어?”

감자튀김을 집어 먹으며 묻는 말에 이주연은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다시 박았다.

“어머니끼리 대학 동기래.”

서혜인 얜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뭐야 나만 몰랐어? 아니 뭐야 이주가 말한 거 아니야?”

민기원도 모르는 거 보면 쟤만 알고 있다는 건데. 이주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혜인에게 스스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박인결한테 물어봤더니 말해주던데?”

“…걔랑 대화를 했어?”

“걔가 대답을 해줬어?”

서혜인은 종이 낱장 차이로 빗나가는 질문들에 더는 대답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눈매라도 강아지가 아니었다면 냉랭한 분위기에 말 걸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걔랑 대화가 되는구나…”

“넌 또 말을 그렇게 하냐.”

이주연은 민기원에게 박인결이 어떤 이미지길래 저딴 말을 내뱉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걔가 안드로이드도 아닌데 감정이 있는 놈이었다. 근데 확실히 최근 들어 누구랑 말을 섞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니는 것도 거의 늘 혼자였고.

“…박인결 밥 누구랑 먹어?”

“몰라?”

“혼자.”

더는 놀라기 싫었다. 더 하면 이제 소름 끼칠 거 같았다. 

고등학생이 밥을 점심때 혼자 먹는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대부분 혼자 먹기 꺼리는 게 급식이었다. 모두가 시끄러운 급식실에 혼자서 외롭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꼭 친구 한둘은 끌고 점심 먹으러 내려갔다. 하물며 그날 친한 친구가 조퇴했으면 다른 무리에라도 껴서 먹는 게 점심급식인데.

“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나?”

민기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이주연이 기억하는 박인결은 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뭐 때문에 요즘 혼자 다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그 무리에 이주연도 있었으니 이주연은 박인결이 아이들과 많이 다니는 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밥 혼자 먹는 건 싫어.’

그것도 12살 때 얘기지만. 지금은 갑자기 중2병이 와서 난 혼자가 좋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근데도 신경 쓰이는 건 그놈의 추억 때문이다. 엄마는 왜 하필 이놈한테 과외를 받으라고 해서.

“그래서 언제부터 알았는데.”

“기저귀 떼기 전부터.”

물론 오지랖인 것도 알고 있고 자칫 말을 잘못했다간 박인결이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는 아는데도 말이다. 만약 누가 괴롭히고 있어서—그놈을 괴롭힐 머리 빈 놈이 있을까 싶지만은—밥을 같이 못 먹는 거면, 그건 정말 싫었다. 애초에 이게 비장할 일이냐? 그냥 내일 가서 점심시간에 밥 안 먹냐? 가자. 정도만 하면 되는데.

“너 뭐해?”

“그냥 전화.”

누구한테 거는지 뻔한 전화는 몇 번 신호음이 가고서 스피커에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넌 여보세요는 건너뛰냐?”

[너인 거 뻔히 아는데 뭐하러. 무슨 일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가끔 친구 전화는 그렇게 받으니까. 아니 근데 난 얘랑 친해질 생각이 없는데.

“너 내일 밥 누구랑 먹어?”

[그건 왜?]

내가 얘한테 아쉬운 소리 해야 하나 싶은데도 입은 이미 나불거리고 있었다. 제발 생각 좀 하고 내뱉으라고 했는데.

“아니… 나랑 같이 다니는 애들 있잖아.”

[근데?]

“둘 다 점심시간에 동아리 회의 있다고 밥 같이 못 먹겠다고 해서.”

말해놓고 보니 얼추 말이 됐다. 물론 내일 되면 거짓말이 들통이 나겠지만. 앞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놈들에게 닥치고 있으라 말했다. 

“너 괜찮으면 밥 같이 먹으면 안 되냐?”

스피커 건너에서 대답이 없었다. 그냥 예 아니오만 하면 되는데 이게 그렇게 시간 끌 일이냐?

[그래.]

이번엔 물음이 아니라 부탁이어서 그런지 대답이 제대로 돌아왔다. 이 정도 거리는 괜찮다는 거지?

“그럼 내일 봐.”

[숙제해놔. 끊는다.]

“알았어.”

어느새 이주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숙제하라는 말에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더니만. 친구 둘은 할 말을 잃은 건지 이주연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그럼 둘이서만 식사하면 되나?”

“친구 버리네.”

“그런 거 아니거든?”

“옛사랑 찾겠다는 거잖아 지금!”

저건 또 왜 저래. 연기톤으로 자기야 도대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오열하는 녀석에 이주연은 민기원을 말리길 포기했다.

“쟨 도대체 다음 작품 언제 찍는데?”

“올해 말.”

“그때까지 쟤 얼굴 계속 봐야 함?”

“응.”

“진짜 너무들 하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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