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이니시스는 몸이 작았다. 


아마 나이는 16살이나 17살 정도일 텐데, 지나다니는 동네 꼬마 아이들만큼 작은 키와 몸집이었다. 


그래서...



"아이고, 우리 막내가 입으려고 했던 옷인데..."



옷 가게를 왔지만 제대로 성인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상점 주인이 창고에 있던 옷을 가져와 입힐 정도였으니까.



"마음에 들어요?"



데렉은 손을 잡은 아이니시스에게 물어보았다.



"음... 옷은 영 어색하네요."



자신에게 걸쳐진 옷이 새로운 감각인지, 몸의 이곳 저곳을 살폈다. 


하긴, 그 지하실에 있을 때에는 거적떼기 하나로 몇 년을 살았겠지.



"그래도 잘 어울리네요."



고개를 끄덕인 데렉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색하거나 튀지 않게 약간 헤진 셔츠와 바지를 입혔는데... 


생각보다 아이니시스가 예뻐서 옷과 상관 없이 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떤 관계에요?"



옷가게 주인이 물어보자 잠깐 둘의 얼굴에 난감함이 감돌았다가,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은 적 있는 데렉이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분이 잡혀있던 걸 제가 구해줬어요."



어디의 누가 왜 잡았는지는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아이고, 어디 도적이라도 있었나보네! 고생했어요."



그 모습이 역설적이어서 그럴까, 아이니시스도 데렉도 피식 웃었다. 



"걸어오느라 힘들었어요."



아이니시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가게 여주인도 옷 입는 것을 도와주면서 알았겠지. 


팔과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던 자국이 있었으니까.



힘들고 아팠지만, 어쨌든 아이니시스는 마을에 도착했다.






1. 





아이의 어머니는 울지 마시오. 당신의 아이는 묘비에 묻히지 않을 거라오.



아이의 아버지는 울지 마시오. 당신의 아이는 건강하게 돌아다닐 것이오.



가족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필요 없소. 그들의 안식은 멀고 멀었으니.



반쪽을 잃은 슬픔도, 혈육을 잃은 슬픔도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묘가 없을 것이오.



망자를 위한 교회도, 다친 자를 위한 병원도, 의사도 존재하지 않을 거외다.










"이 마을에서 1주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아이니시스?"



옷가게의 주인이 '착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해준 덕분에 간신히 여관의 가장 안쪽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겨울철에 먹을 것이 없을 환경도 아닌데, 이 마을은 외부에서 사람이 와서 묵는 것에 있어서 묘하게 까탈스럽고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네. 그리고 아이니면 돼요."



아이니는 창문을 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몰두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에게 사람들은 항상 올려다보는 존재였을 테니 이렇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신기할 수도 있겠지. 



다만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 


역시 여행길이 길었어서 힘든 건가?



"저녁은 먹고 싶은 것 있나요?"



"음... 며칠 물에 불린 것만 먹었으니까, 그것만 아니면 될 것 같아요."



아이니는 데렉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수도원을 탈출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커다란 돈주머니나 여행 용품을 잔뜩 넣고 다녔던 등짐이 없어져 있었다. 


아마 혼란을 틈타 누가 약탈했거나 가져간 것일텐데... 


어쨌든 당장 쓸 돈은 있었지만 딱딱한 곡물과 육포가 전부였다.


열매가 맺힐 계절이니 얕은 숲에서 열매와 나물을 채집해 허기를 달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식사는 딱딱한 견과류와 곡물을 물에 풀고, 육포 정도를 씹으면서 걷게 되었다.



"네. 그럼 일단 물품을 좀 사고, 가능하면 편지를 보내볼게요. 


방에 얌전히 있어야 해요?"



데렉이 허벅지와 허리에 찬 주머니를 풀어서 방 안에 있는 책상에 올려두었다. 


전투가 있을 일은 없을테니, 관련된 물품을 풀어놓은 것이다.



"저는 어린 애가 아니에요."



아이니의 말에 데렉은 딱딱하게 굳은 웃음을 보였다.



그래. 애가 아니지. 


겉보기는 10살도 안 되어 보이고,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신기해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애는 아니지...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까.



"너무 애 취급 하지 말아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니가 볼을 부풀리고 노려보았지만 데렉은 그냥 귀엽기만 했다. 


물론 데렉보다 더 많은 마법을 숨 쉬듯이 쓸 수 있는 마법사이긴 했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인걸.



"안 그럴게요. 귀여워서 그래요."



피식 웃고 데렉은 후드를 눌러썼다. 


지하에는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으니, 이따가 저녁 먹고 간만에 목욕도 좀 해야할 것 같았다.



"갔다가 올게요. 


누가 부르면 따라가면 안되고, 마법은 쓰면 안돼요."



문을 열고 나가는 데렉에게 아이니는 '애가 아니에요!' 라고 소리쳤다.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도시의 환전상에서 이 근방에서 주로 쓰이는 동전으로 환전을 하고, 데렉은 먼저 가까운 약국이나 병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간단한 연고의 재료와 소독약 등을 사려고 했는데...



"병원? 없어요, 그런거."



"약국? 그게 뭔가요?"



"약초상? 어... 약초는 들판에 있어요."



이 마을에는 병원도, 약국도, 약초를 파는 곳도 없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프면 어디를 가는 걸까.



조금 난감해지기는 했지만 다른 곳 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조금 규모가 되는 도시니까...



"어서오세요. 편지를 보내시겠습니까?"



그나마 우편을 보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이건 다행이네.



"피알라 가문의 영지, 그 본가로."



아이니와 이 마을로 오면서 틈틈히 써 두었던 편지를 내밀었다. 


밀랍 위에 표식을 찍어서 제대로 밀봉한 편지였다. 


양피지도 얇은 고급품인지 편지의 두께는 굉장히 얇았다.



"네?"



"피알라 영지의 본가로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요."



데렉이 말했지만 종업원은 난감한지 편지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저... 잠시만요. 안쪽에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뭘 물어보는 걸까 싶었지만 일단 데렉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았다.



아직 언어적인 문제가 없는 것이 다행이기는 했다. 


여기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서쪽으로 가면 지금처럼 사투리가 섞이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언어를 써야 할 것이다. 


물론 데렉은 전에 학파에 있을 때부터 언어 공부를 많이 해두었으니 여행에는 큰 문제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흥정이나 여러가지 활동을 할 때에 제약이 되는 건 분명했다. 


다음 목적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더 남쪽이나 서쪽으로 가는 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아마 괜찮겠지... 피알라 가문은 한참 북쪽이니까.'



계획대로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갈 일은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천막을 걷고 나온 종업원은 꽤 커다란 풍채였다. 


그리고 한 팔에는 커다랗게 말린 뭔가가 들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그쪽까지 배달망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전에는 어떤 경로로 편지를 보내셨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예상대로이기는 했다. 


종업원이 옆에 끼고 있던 건 커다란 종이에 작성된 지도였고, 위쪽에 나 있는 구멍을 이용해 한쪽 벽면에 걸자 벽 한 칸이 가득 차는 커다란 지도가 되었다.



"이 지도가 좀 오래된 것 같은데... 


일단 당면 목표는 저쪽 지방까지 보내는 걸로 하죠. 


거기까지만 보내면 피알라 가문과 관계가 깊은 상단이 있으니까."



오른쪽 맨 위 귀퉁이를 지팡이로 가리킨 데렉은 한숨을 쉬었다.



'금액도 어마어마하겠네.'



평소에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우편을 보낼 때 마다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아무래도 먼 거리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전에 보석을 많이 매입해두어서 다행이지, 이럴 때 마다 동전을 꺼내야 했다면 도저히 무거워서 여행을 포기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가볍지 않은 등짐을 들고 다니느라 허리가 아픈 상황인데...



경로를 상세히 알려주고 대금을 치르는데, 묘하게 종업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석은 받지 않습니까?"



데렉이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았다. 


솔직히 돈이 아까울 정도로 비싼 값이긴 했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냈던 것에 비해 두 배는 비싸게 보내는 것이니... 


그래도 그 때 보다는 한참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그렇게 비싼 값은 아닐 것이다.



꺼내놓은 보석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청금석(靑金石) 이니 환금하는 건 쉬울 것이다. 


푸른색 염료와 색감을 내는데에 쓰이는 돌이었고, 푸른색을 내는 곳에는 거의 다 들어가니 환금성도 좋다.


웬만한 상단이나 큰 잡화점에서도 받는 물건이니 괜찮겠지.



"아, 아뇨... 네. 대금 받았습니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데렉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영수증과 증서를 받고 나왔다.



제대로 값을 지불하려면 금화를 환전해야 할텐데, 환전 수수료가 장난 아니게 많이 들거다. 


그리고 청금석을 환전하려면 또 그 만큼 감정비와 수수료가 들거고. 


그걸 생각하면 그냥 청금석만 내는 편이 훨씬 효율이 좋았다.



"조심히 가십쇼."



좀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일단 데렉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보석이 저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벌만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기는 했다. 


이전처럼 행상에 따라다니면서 호위를 하는 것도 방법일 거고, 지금 갖고 있는 마법 물품 몇 개만 처분해도 당장 여행길에 돈 문제는 없을 거다. 


아니면 라네크를 만나서 그랬듯이 의료지식을 풀어 사람들을 도우면 적어도 먹고 사는 것에는 별 지장이 없겠지.



데렉은 도시 한 중간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거의 중앙에 가까운 곳에 데렉과 아이니가 묵을 여관이 있었고, 조금 남쪽에 종탑과 광장이 있었다.



'도시가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주요 시설이 광장 근처에 몰려있는 것은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계획 도시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clorantz@naver.com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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