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에

 - 내용에 약한 고어, 상해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또각또각, 톡톡톡톡…… 정승대는 어김없이 들려오는, 창문 너머의 소리를 무시한 채 서류를 넘겼다. 어차피 반응을 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제멋대로 안에 들어왔다가 나가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보라─


"이젠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구나, 승대야."


열어달라는 듯 밖에서 애처롭게 굴 때는 언제고 어느새 방에 들어와 뒤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얼핏 보이는 원피스와 초록색 하이힐만이 선연하여 쭈뼛 소름이 돋았다. 약 3년 전 제 방에 나타났던 것은 오늘도 여전히 황명옥의 얼굴을 한 채로 제 곁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데도, 마음속 소리를 들은 것처럼, 끝도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저를 끌어안았다가, 성가신 소리들을 내곤 했다.


"엄마 슬퍼지려고 하는데…"


차가운 손가락이 기어 내려오며 목을 감싸 쥐는 것이 느껴지면, 정승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짓 깨문 채 지체없이 사무실 왼쪽 서랍에서 호신용 권총을 꺼내 등 뒤로 겨누고, 그것은 그제야 깔깔대며 떨어졌다.


"언제까지 대꾸도 안 해줄 거니? 응? 네가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황명옥의 모습인데도."


그 말을 듣고 나면,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향했다. 그렇게 떠나보낸 후로 몇천몇만번을 되새겼던 얼굴이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진짜 어머니는 나를 이리 봐주시지 않았지. 마음 한구석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동의하며, 정승대는 저것이 진짜 황명옥일 가능성을 다시 부정하는데 성공했다. 저것은 정승태(와 정승대)의 어머니, 정인욱의 아내인 황명옥이 아니다. 그녀를 흉내 낸 미스터리 현상 중 하나일 뿐.


"너는 진짜 내 어머니가 아니니,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을 뿐이야."

"흐음."


의외였는지, 그것은 제 피부며 옷가지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늘려보았다. 마치 입은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사람처럼 보여 구역질이 날 때쯤, 점검을 마친 것이 정승대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상하네. 착용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도…… 껍데기인 게 티 나니?"

"…뭐라고?"

"껍질 가공은 완벽했는데. 네 어머니 말이야. 하나도 안 남기고 발라냈거든."


그것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탕, 탕, 탕!


연달아 쏜 세 발의 탄환은 모두 그것에게 명중했고, 지근거리에서 탄환을 처맞은 그것은 선 채로 고개를 뒤로 꺾은 채 미동이 없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총알에 뚫린 이마에서 검정에 가까운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몰골을 본 정승대가 반사적으로 굳어버린 순간, 그것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 채 깔깔대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방 안을 잔뜩 채우고도 터져나갈 거 같은 웃음소리에 귀가 아플 때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그것이 정승대의 목과 뺨을 움켜쥔 채 얼굴을 들이밀었다.


황명옥의 눈 그 안쪽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동공¿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정승대는 힘이 풀려 무너지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간신히 버텼다. 의자 다리가 부러질 듯 불길한 소리를 내며 끼긱거렸다. 


"하! 하하하!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지! 다 포기한 거 같이 굴면서, 하나도 포기 못했잖니! 바보 같은 정승대! 바보 같은 정승대! 네 어미는 한 번도 너를 돌아본 적이 없는데!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네 어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바쳐 네 동생 놈을 살릴 생각밖에 안 했는데도!!! 아직도 기대를 못 버린 꼬락서니라니! 꺄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학!!!!"

"……!! ……… ………!!"


입술을 아무리 벙긋거려도 무언가에 압도된 것처럼, 혹은 발언권을 빼앗긴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을 틀어잡은 손에는 의외로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네가 뭘 아느냐고, 네까짓 게 우리 가족의 무엇을 아느냐고,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를 살리셨다고 따지고 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면, 거짓말처럼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계집이 말이야, 응?" 손가락이 울대를 짓눌렀다. "나랑 계약을 했단다. 제 남편을 찾아주면 네 동생을 내게 주겠다고. 그래서 부러 죽은 놈 시체라도 싼값에 팔아주려고 했는데." 켁, 켁, 새된 기침이 새어 나오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액체가 정승대의 이마에도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간사한 것이 수작을 부렸지 뭐야? 그것도 아주 흉악한 수작을." 끼기긱, 끼긱, 의자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긁었다.


"드디어 네 동생을 가질 날이 와서, 기껏 준비해뒀는데… 수명 다한 네 동생 놈을 어찌 가지고 놀까, 그 생각만 하며 얼마나 설렜는데…" 수십 개의 동공이 동시에 확장되며 몸이 파드득 경련했다. "거기에 훼작질을 해놨어!! 내가 손도 못 대게, 사이비 새끼의 생명록을 이용해서!! 그 개 같은 계집이!!! 감히 내 컬렉션에 먹칠을 해!!!!"


폭발하는 분노에 응답하듯 그것의 주둥이가 찢어지듯 벌려지며 날카롭게 벼려진 못과 같은 이빨이 드러나, 정승대의 머리를 씹어먹을 듯 딱딱 부딪치다, 천천히 다물어졌다.


"어머나… 후후후… 조금 흥분했구나." 툭, 언제 힘을 주었냐는 듯 저를 놓고 떨어지는 손아귀에 정승대는 목을 움켜쥔 채 콜록거렸다. 업무하느라 썼던 안경이 비뚤어져 흘러내렸지만, 고쳐 쓸 시간도 없었다. 그것이 다시 제 얼굴을 쓸어내리기 시작했으므로. 언젠가 외동아들이던 시절, 속상해하던 저를 위로하던 황명옥처럼.


"나중에…… 그래, 나중에 확인해보니 제 수명을 네 동생의 것과 바꿔치기 해놨지 뭐야? 자신이 생명록에서 확인해서 내게 알려준 정승태의 수명에서 손대지 않겠다고 해서 내가, 몇 년이나 참고 간섭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건만…… 우후후후후후…… 찢어 죽일 계집같으니라고. 분명 확인하는 동시에 바꿔치기한 거겠지… 그 계집의 구역질 나는 영악함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

"어머니가, 너와 거래를 하셨다고? 말도 안 되는─ 악!"


그것이 손톱 끝이 별안간 제 눈 밑을 찍어눌렀기에 반사적으로 비명이 새어나갔다. 그대로 눈알을 후벼팔 듯이 힘을 가하면서 그것이 말을 이었다.


"쉬, 쉬이, 승대야. 엄마가 말하고 있잖니."

"……."

"어쨌든, 이미 생명이 늘어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니… 우리 중 그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지. 그게 법칙이야. 덕분에 나는 별 쓸모도 없는 배신자 하나를 얻고, 내가 원했던 장난감은 코앞에서 놓쳐버렸어… 관장이 된 이래 이렇게 치욕스러운 적이 없었는데. 그래,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지. 네 어미가 내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단다, 승대야. 그래서 네 동생이 여태 목숨이 붙어있는 거야. 제 어미의 목숨을 빨아먹은 줄도 모르고. 우습지 않니?"


그러니까, 하고 그것이 황명옥의 목소리로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승대야. 네가 날 도와줘야겠단다."

"미쳤,"

"어렵지 않아. 그저 생명록을 통해서 정승태의 남은 수명을 내게 알려주면 돼. 가능하다면 너희만 아는 방법을 통해서 뒈질 날 가까운 새끼랑 정승태의 수명을 교환해주면 더 좋고."

"……직접, 직접 하면 될 거 아니야…!"

"할 수만 있다면 진작 했겠지? 유감스럽게도 그 사이비 새끼의 교회는 내 관할이 아니라 직접 손댈 수 없어 네 손을 빌리는 것이란다."


황명옥의 얼굴을 한 것이 ■■하게 웃었다. 정승태를 위해 정승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의 황명옥은 저렇게 웃고는 했기 때문에 정승대는 직감적으로 그녀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가 황명옥이 살아있을 적에 그러했듯이.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승대야. 네게는 나쁜 제안도 아니잖니?"

"뭐라는 거……"

"내 말만 들으면, 얄미운 동생에게 복수할 수 있는 거야. 네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가고, 어머니의 수명을 넘겨받아 여태 숨 쉬고 있는 가증스러운 덤받이에게."

"………."

"그리고─ 무엇보다, 네 사랑을 이용만 하고 내버렸던 황명옥에게. 가장 괴로운 방법으로 복수할 수 있겠지."

"……!"


홉떠지는 눈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그것이, 그녀가, 관장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응? 손해 볼 거 없잖니? 꼴 보기 싫은 것도 치우고, 널 배신한 어미를 최악의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지.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우리가 왜 그 계집애 좋을 대로 따라 주어야 하지? 복수하자, 승대야. 둘 모두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단다. 너도나도, 원하는 것을 가지는 거야. 나는 원하던 장난감을 얻고, 너는 원하던 복수를 하자."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귓가에 황명옥을 잃던 날 울부짖던 제 목소리가, 그 속의 원망이, 수십 년을 묵혀왔던 낡은 상처가 재생되기 시작해 창백해진 정승대는 고개를 돌렸다. 그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짜의 찢어진 뺨과 뚫린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툭, 툭, 떨어져 창백한 낯을 덧칠하여 마침내 정승대의 목까지 타고 흘러내렸을 때, 가여운 아이가 입을 열었고,


"■■. ■■■ ■■."

"풋,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 ……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길고 가늘게 이어지는 기이의 환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어떤 거래의 성립이었다.





몬가..몬가 일어나고 있는 이평복입니다. 이후 전개는 과연 ..... 어케될까요?(너무)


지금 예상하기로는.. 포타에서 진행 중인 포타 나폴리탄 공모전에 욕심이 나서, 다음편은 비결연 현장의 규칙문으로 참가한 뒤 메인 스토리가 이어지지 싶습니다 ^^)9


부정기 연재로 한치 앞도 모르게 된 이평복,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명절되시기 바랍니다! 🙆‍♀️🙆‍♀️


나폴리탄이 사람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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