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따라가?"


윤기형이 물었다.

난 그 말에 파워에이드만 연달아 마셨다. 페트병을 내려놓고 윤기형을 쳐다보자마자 손바닥이 날아왔다. 찰싹, 윤기형의 큰 손이 내 등짝을 때렸다. 


"..........."


나는 그저 지민형이 주고간 음료수병들만 쳐다봤다. 그리고 회원들이 주고간 던킨도너츠 상자를 꺼내 도너츠를 먹었다. 윤기형은 꼭 쓰레기를 보듯이 날 쳐다봤다. 


지민형이 그렇게 도망치듯 사라지고나선, 나와 윤기형은 헬스장에 올라와 운동도 안하고 음식만 축내고 있었다. 윤기형은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도너츠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도너츠의 녹은 설탕때문에 손가락이 찐덕찐덕거렸다. 초콜릿 프로스팅은 이에 딱 달라붙은것같이 찝찝했다.

맛없었다는 소리다.

정말 맛없었다.

토할것같이.

찝찝해서.


나는 물휴지를 찾아내서 손가락을 대충 닦아내고, 다리를 꼰채로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괜히 귀를 기울이고 고개만 까딱거렸다. 결국 윤기형은 참지 못하고 앞에 놓인 책상을 주먹으로 쾅 쳤다.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이 형, 성깔 있는것 같아도 늘 우리를 도와줬다. 불쌍한 형. 


"형."

"뭐."


윤기형이 세모눈으로 날 째려본다.


"태형이형이 뭐래?"

"뭘 뭐래. 시발. 너 그냥 물에 빠져 죽으래."

"왜 다들 나만 보면 죽으라고 그러냐."


지민형도 아까 그냥 죽으라던데. 전화로. 


지민형은 날 많이 좋아했던가.

난 아까 지민형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한다. 음료수병들이 우당탕 떨어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뒹굴고, 창백해진 얼굴로 제대로 날 쳐다도 못보고 도망치듯 사라진 형. 


"시발. 짜증나."


진짜 사람 찝찝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김태형도 짜증나고 박지민도 짜증났다. 


[나도 사실 지민이 좋아했는데.]

[잘해보려고 한국에 온건데. 괜찮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시발놈의 새끼."

"너 지금 뭐라 그랬냐?"


나는 괜히 짜증이 나서 앞에 있는 종이컵을 한 손으로 구겨서 던졌다. 윤기형은 손에 턱을 괴고 날 쳐다봤다. 


"그래. 여기 온김에 형 좀 써먹어야겠다."

"뭐."

"오해하지말고. 진짜 오해하지말고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어."

"태형이형한테 지민형 진짜 좋아하냐고 물어봐. 나라고 하지말고. 돌려말하고. 어?"


시발.


윤기형이 내 말을 듣자마자 욕을 했다.


"네가 물어봐. 그냥."

"아. 싫어. 형이 해."

".............."


아. 빨리. 빨리.


내가 재촉을 하자 윤기형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윤기형에게 계속 재촉했다. 돌려 말해라. 어? 직설적으로 말하지말고. 


"했다."

"뭐라고 보냈어?"

"너 지민이 진짜 좋아하냐?"

"시발. 돌려 말하라고!"


윤기형은 귀찮다는듯 핸드폰을 보여줬다. 


[너 지민이 진짜 좋아하냐?]


윤기형의 카톡에 대뜸 태형이 형이 전화를 걸었다. 아, 시발. 전화오잖아. 윤기형이 나를 보며 성질을 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받으라는 눈치로 윤기형을 쳐다봤다. 


"어. 여보세요."

".............."

"어. 태형아. 술은 좀 깼냐?"

"............"


윤기형은 운동화를 바닥에 툭툭 치며 전화를 받았다. 나는 초조한 얼굴로 윤기형을 쳐다봤다. 그 때 윤기형이 대뜸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뭐.


나는 입모양으로만 조용히 윤기형에게 물었다.


"태형이가 너 바꾸래."

"..............."


귀신같은 놈. 옆에 있다는걸 알았나보다.


***


"정말 많이 좋아하나보다."

"닥쳐. 좀."


윤기형은 던킨 도너츠 하나를 물고 비아냥 거리면서 내게 말했다.


[정국아. 어제는 내가 미안해. 시간 있으면 오늘 잠깐 볼래?]


처음에 너 옆에 있는줄 알고 전화를 걸었다며 넉살을 떨던 태형이형은, 전화를 끊을때쯤엔 나에게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형이형은 나에게 이런 목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넷은 늘 친한 친구였다. 태형이 형이 유학을 간 이후로도, 유학을 가기 전에도.


[그리고 아까 그 카톡..]

................

[응. 나 많이 좋아해.]


"태형이가 지민이 많이 좋아한댄다."

"..........."

"박수쳐주자."

"............."

"짝짝짝짝."

"............."

"박지민 솔로 탈출을 위하여."

"..........."


윤기형은 옆에서 혼자 박수를 쳤고,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윤기형의 팔뚝을 주먹으로 세게 때렸다.

그리곤 윤기형에게 바로 또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넘어졌다.

잘못 맞아서 의자에서 넘어진 나를, 윤기형은 놀라며 일으켜줬다.


"앞으로 운동할거 아니면 헬스장에 찾아오지마."

"전정국 삐졌냐?"

"여기 운동하는데거든?"

"............."


아. 몰라. 형 때문에 되는 일 하나도 없어!


난 괜히 성질을 내며 윤기형에게 화풀이를 하며, 윤기형을 쫓아냈다.

화가 났다.


[응. 나 많이 좋아해.]



***






져지 자크를 쭉 올리고, 술집 안으로 들어와 태형이형을 기다렸다. 평일인지라 한적한 이자카야 술집에선,뜻모를 일본노래가 들려왔다. 난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다리를 덜덜 떨며 기본 안주로 나온 팝콘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몇 분뒤 태형이 형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나를 보고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충 인사를 하고 메뉴판을 넘겼다.


"형 먹고싶은거 시켜."

"너는? 먹고싶은거 없어?"

"됐어. 걍 아무거나 시켜."


일하는데에서 오늘 하루종일 도너츠랑 음료수를 먹었더니 입맛이 없어.


난 너스레를 떨며 태형이형을 천천히 훑어봤다. 세팅이 덜된 파마머리에도 태형이 형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냥 잘해주고 잘생겼으니깐 호감.]


잘생기긴했구만, 나는 팝콘을 씹으며 태형이 형의 얼굴을 차근차근 뜯어봤다. 


[그래서 나 왜 좋아하는데.]

[김태형보다 못생겨서.]


"왜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냐."


손님이 없는지라, 금방 안주가 나왔다. 연어회와 나가사끼 짬뽕탕이 금방 나왔다. 난 그때까지 계속 태형이 형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 진짜 잘생긴것같아서."

"돌았냐. 전정국?"


태형이 형이 내 말에 웃음이 터져서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샐러드를 집어먹으며 태형이 형을 쳐다봤다. 한잔 마실래? 태형이 형이 물으며 소주잔에 술을 따라줬다. 나는 술을 한잔 들이키고 형에게 말했다.


"잘생기고 착하기까지해."

".....왜그래. 진짜."

"지민형의 새로운 남편감으로 괜찮은것같아서."

"............"


지민형은 얼른 정착을 하고싶다고 했다.

둘이 만나면 금방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

지민형을 보러온 태형이형은, 고작 연애 하나하려고 온것은 아닐것이다.


개인 전시회를 열면, 매번 화제가 되는 잘나가는 화가에.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집안도 좋고, 키도 크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

나랑은 상대가 안된다.

심지어 차도 외제차다!

사실은 아까 차를 주차하는 태형이 형을 창문밖에서 훔쳐봤다.

젠장. 나보다 훨씬 잘났다.

내가 지금 아우디를 사려면, 할부를 몇개월 긁어야지?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태형이 형은 어른스러운 얼굴로 내게 먼저 사과했다.


"어제는 내가 미안해."


심지어 자좀심도 굽힐줄 안다.

스코어로 따지자면

거의 15:0 이다.

k.o 패.


"뭐가."

"그냥 그렇게 말 하면 안됐는데. 취기도 올라오고, 속이 터져서."

"............"

"나 되게 오래 좋아했거든."

"근데 왜 말 안했어."

"지민이가 너 뻔히 좋아하는거 아는데, 어떻게 말해."


태형이 형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언제부터?

티가 났던가?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지민이형의 얘기만 집어치우면, 난 태형이형과 꽤 잘 맞는 축에 속했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히며 못다한 얘기도 했다. 미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대학생활을 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민이 형 얘기만 없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지민형의 얘기만 나오면, 확 사라진다.

나는 진짜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윤기형이건 태형이형이건, 만나면 내 눈치만 본다.

지민형의 얘기를 꺼내면. 기분 나쁘게..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어."

"..........."

"안되는줄 알아서 포기하려고 노력했는데.. 안되더라..하하."

"..........."

"사실 너네 이혼했을때 기뻤어.. 나 개새끼지?"


우리는 오늘도 술을 꽤 많이 마셨다.

태형이 형은 잘생긴얼굴로 한껏 풀어져서, 의자에 기댄채로 날 보며 물었다.


개새끼지!

라고 소리쳐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했다.

내가 더 개새끼라.

태형이형은, 사실.. 아무 잘못도 없다.


"그래서. 둘이 잘하고 있어?"

"어. 지금도 연락하고 있어."


안보여줘도되는데 태형이 형은 휴대폰까지 꺼내 보여준다.

지민형과 한 카톡이다.

전화도 꽤 많이 한것같다.


[김태형 전화 그만하라고ㅡㅡ]


지민형의 카톡을 보고 나는 눈을 한껏 찌푸렸다.


"형 마음 잘 알겠어."

".........."

"잘 만나봐. 나 진짜 진짜 괜찮으니깐."

"............"

"진짜로 같이 사는동안 요만큼도 마음 안생겼어. 형도 알잖아. 억지로 결혼한거."


내 말에 태형이 형은 고맙다는듯 나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이상하다.

이혼을 하고 난후, 가슴 한쪽에 큰 구멍이 생긴것 같았다.

그 구멍은 어떻게 채워지지도 않고, 바람이 부는대로 그렇게 살고 있다.


"형은 지민형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글쎄."

"흠..."


"그냥 다."

"........."

"그냥 다 좋아."


그냥 다 좋아.

그냥 다..


***


지민형은 날 보자마자 표정을 구겼다.

하얀색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온 지민형은, 날 보자마자 똥씹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 딱딱한 말투였다. 


"여긴 왠일이야."

"김태형이 불렀어."


아까 사실 들었다.

화장실을 빠져나오면서, 태형이형의 전화를 잠시 엿들었다. 나 여기서 술먹고있어.. 나 좀 데려오면 안돼? 칭얼거리는 형의 목소리. 난 괜시리 헛웃음을 지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 시발. 전정국이랑 마시면 마신다고 말을 하지."

"아. 뭐. 나랑 마시면 안되냐?"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사랑하지 않아.]


나는 몇시간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형에게 말한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지민형은 태형이형을 들쳐업듯이 끌고나갔다. 나도 말없이 지민형 옆에 붙어서 술집을 빠져나왔다. 태형이 형은 이미 인사불성이 돼서,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술기운에 말없이 걷기만 했다.


"둘이 잘해봐."

".....뭐?"

"잘어울리네."


나는 휘청거리며 말했다.

도로의 야경들은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눈이 시렸다. 차가운 바람을 맞아도, 술은 전혀 깨지 않았다. 

지민형은 태형이형을 들쳐업고 나를 째려봤다.


"사랑받고 싶다며. 잘해보라고."

"네가 말 안해도 잘해볼거거든?"

"그래라!"


난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민형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려뜨렸다. 


"넌 날 대체 왜 좋아했냐?"

"..............."

"김태형이 훨씬 잘생겼다며. 거기다 성격도 좋아. 키도 커. 돈도 잘 벌어. 대체 날 왜 좋아했냐. 불쌍해서? 어? 심지어 얘 외제차도 타더라.. 시발..아우디..존나 부럽다..진짜.."


나는 술만 마시면 찌질해진다.

내 말에 지민형이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넘어졌다.


지민형은 가까스로 날 일으켰다. 난 지민형의 손을 뿌리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쪽팔리니깐 일어나라. 씨발."

"좋아죽겠지? 둘이 통화도 많이 하나봐... 카톡도 많이 하더라."

"일어나라."


난 땅바닥에 주저앉아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하소연을 했다. 지민형도 옆에서 한숨을 팍팍 쉬었다. 


"너 날 대체 왜 좋아했냐고."

"..............."

"너 설마 아직도 나 좋아하는거 아니지?"

".............."

"나는 너 안 좋아해. 진짜진짜로. 너한테 요만큼도 맘 없어. 어? 그냥 김태형이 나보다 잘나서. 재수없어서 그래. 내 맘이 지금 그래. 기분 나빠서 그런다고. 진짜 이만큼도 맘 없어. 그냥 좀 안보고 싶어. 왜 계속 나타나서......사람 존나 찝찝하게.. 너때문에 윤기형이고 태형이형이고 내 눈치만 보잖아. 짜증나게.. 난 관심도 없는데.."

".............."

"야.."



그 때 지민형이 울었다.

아스팔트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난 비인줄 알고 심지어 잠시 고개를 꺾어 하늘을 봤다.


"너 진짜 개새끼다."


난 고개를 들어 지민형을 쳐다봤다.

눈물이 한두방울 다시 뚝뚝 떨어졌다.

새빨개진 지민형의 눈두덩이와 볼.


지민형이 내 곁을 떠난뒤로 가슴 한쪽엔 큰 구멍이 생긴것 같았다.

나는 구멍사이에 바람이 부는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숨이 턱 막히고, 가끔은 목끝까지 무언가가 막힌것같아서 가슴이 아플때도 있었다.

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지민형은 태형이 형을 가까스로 끌어안고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가지말지.."

"............"


그렇게 둘이 가지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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