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스토리가 기본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드레스 룸에 도착한 토니는 옷장 사이에서 피터에게 맞을 만한 트레이닝 복을 골라내었다. 그리고 수건도 챙기고, 여분의 칫솔도 챙긴 토니가 게스트 룸 앞에서 똑똑 노크를 했다. 하지만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고, 한 번 더 노크 해본 토니가 여전히 반응이 없자 조용히 문을 열었다.


“kid?”


방안에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피터는 상반신은 침대 위에, 하반신은 허공에 둔 채 잠이 들어 있었다. 토니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마나 코어 힘이 좋으면 저 자세로 잠이 들 수 있을까. 신기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협탁 위에 가져온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올려두고 토니는 피터를 안아 들었다. 조심스럽게 이불 안쪽으로 피터를 눕힌 토니가 다시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그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피터를 다시 만난 이후 이렇게 꼼꼼하게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기에 토니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피터의 얼굴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사실 그때의 피터도 아주 애기는 아니었으니까, 거의 다 큰 상태의 피터와 지금의 피터는 조금 나이가 들었다는 것 외엔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메타휴먼의 특징인지 또래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은 토니를 더 그때 그 시절로 이끄는 기분이었다.

토니가 손을 뻗어 헝클어져 있는 피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피터의 옆에 있었을까, 정신을 차린 토니가 피터가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게 불을 끄고 나갈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Mr...Mr.. Stark!!”


자신이 일어나려는 마음을 알게 된 걸까? 피터가 갑작스럽게 토니를 불렀다. 휙 토니의 고개가 피터를 향했고, 토니의 눈에 잔뜩 찌푸려진 피터의 미간이 보였다. 요 며칠 계속 봐왔던 미간이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에 토니의 눈가에 조금 걱정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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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달콤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참 좋은 시간들 이었는데 토니를 기다린다는 게 깜빡 잠이 든 피터는 다시 그곳에 있었다. 17년 전 그날의 그 흙먼지 속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 소리. 그리고 매캐한 냄새들 까지. 절망만이 남은 그 곳간에 서게 된 피터는 본능적으로 토니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은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헛된 소망을 놓지 않은 채 피터는 정말 열심히도 뛰었다. 하지만 잔인한 하늘은, 아니 이 꿈은 피터의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열심히 그를 찾아도 피터는 토니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한참을 땀 흘리며 뛰어다니다 결국 그를 마주했을 때. 그는 원망 가득한 얼굴로 피터를 보며 꺼져가는 호흡을 붙들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누르며 그에게 다가간 피터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Mr...Mr.. Stark!!”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피터가 토니를 불렀다. 축 늘어진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예민한 피터의 손끝에 그의 체온이 서서히 차갑게 바뀌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체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전히 자신을 원망을 가득 담고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었다. 원래 그도 이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던가? 이제는 시간이 많이도 흘러 그때의 그가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진짜 일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을 원망한다. 어쩌면 자신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지도 몰랐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피터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요. 다 내가 잘못했어요. 피터는 계속해 사과했다. 머릿속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얼른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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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계속해 피터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 피터의 상태는 어딘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새 이마엔 송글 송글 땀이 맺혀 있었고 곧 호흡이 거칠게 바뀌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괴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 토니가 조심스럽게 피터의 몸을 흔들었다.


“kid? 피터 일어나.”


토니가 흔드는 손짓에 따라 피터의 몸이 흔들렸다. 토니는 조금 더 힘을 주어 피터의 어깨를 다독였다. 조금 뒤 피터의 눈이 떠졌고 눈을 뜬 피터는 몸을 일으켜 일단 앞에 보이는 토니를 끌어안았다. 얼결에 피터를 마주 안게 된 토니가 피터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 주었다.


“괜찮아? 악몽이라도 꾼 거야?”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 다 괜찮아. 다 꿈이고, 현실은 아니야. 그러니 다 괜찮아.”


토니의 차분한 말과 피터의 호흡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그렇게 피터가 얼추 눈물을 멈춘 것 같았을 때 토니가 피터를 떼어내고 그와 눈을 마주하였다. 축축하게 젖은 속 눈썹은 축 늘어져 있었다. 눈가에 아직 남아있는 물기를 토니가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닦아내었다. 피터는 그런 토니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시선이 달랐다. 꿈에서 보았던 원망이 가득했던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걱정이 담긴 따듯한 눈빛. 그래 어쩌면 그 마지막에 그가 보여줬던 눈빛은 이 눈빛이었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하게 일렁거리던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또 꿈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터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괜찮아?”


토니의 말에 피터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대답을 하면 엉망인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 피터는 일단 말을 아꼈다.


“악몽은 자주 꾸나요?”


피터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왠지 그에게 그에 대한 악몽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토니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야기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억지로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잠깐 있어요. 일단 물이라도 가져다줄게요.”


토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터가 잠깐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가 돌아보자 다시 손을 놓고 피터가 그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다시 한번 바라본 그의 눈에도 원망의 뜻은 보이지 않았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토니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터가 큼큼 목소리를 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 좀 씻고 나와도 괜찮죠?”

“물론이죠. 씻을 때 쓸 거랑 입을 옷은 여기 꺼내놨어요. 그럼 씻고 나와요. 물은 협탁에 가져다 둘게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프라이데이 불러요. 아마 나한테도 연결될 거에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럼 잘자요.”


토니가 피터에게 손을 흔들곤 방을 나섰다. 피터는 마른세수를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토니가 협탁 위에 올려둔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들고 욕실로 향했다. 오늘은 다시 잠들어도 꿈이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없었다. 아마 그의 눈에 원망이 없단 걸 직접 봐서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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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kid 주변에 친한 사람들.. 그니까 얘가 뭐 때문에 저러는지 알고 있을 사람 있으면 찾아봐. 아, 그래 그 네드? 그 친구랑 같이 산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맞아?”


피터가 이야기를하고 싶지 않다면 그에게 억지로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모른 채 있을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정보와의 싸움. 본인에게 얻을 수 없다면 그 주변에서라도 얻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토니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 옛날부터 한결같이 피터와 함께 시간을 보내온, 그래서 피터가 맛있는 와인을 나눠 마시고 싶다던 친구 네드였다. 아마 그는 피터의 그동안의 시간을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그를 잘 설득해 자신이 모르던 그 시절의 그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아둘 생각이었다.

아마 해피에게, 메이에게, 그리고 네드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주 달랐을 터였다. 해피를 통해서는 얼마 전에 들었고, 메이에게 직접 물어 볼 수는 없으니 남은 건 그의 오랜 친구에게 듣는 것이 옳은 길 같았다.


“네, 맞습니다. 현재 파커군은 네드군과 함께 거주 중입니다.”

“그 친구는 요즘 뭐해?”

“스타크 인더스트리 연구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예정인가 보았다. 그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니. 그렇다는 건 그를 만나는 일도 생각보다 쉬워질 거란 이야기로 들렸다.


“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네? 그럼 약속 좀 잡아줘. 내일 당장은 무리고, 월요일이 좋겠네. 업무시간 이후에 부르면 짜증 날 테니 업무시간 중간에 불러. 내 사무실에서 보는 거로 하고 시간은 그 사람 좋을 시간에. 어차피 요새 촌각을 다투는 연구 같은 거 없으니까. 괜찮겠지? 아 설마, 나 그 친구한테도 까이려나?”

“음.. 일단 연락 넣어보겠습니다.”

“오케이. 그리고 프라이데이 혹시 오늘 밤 kid가 또다시 상황이 안 좋아 지면. 언제든 깨워.”

“Yes, Boss.”


프라이데이의 대답에 토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대체 무슨 기억들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건지. 그가 잠꼬대처럼 불렀던 자신의 이름이 어딘지 마음이 아팠다. 하루빨리 상황을 알고 그를 그곳에서 건져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토니도 욕실로 향했다. 일단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을 이어가든 잠을 청하든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무거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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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이 많은 밤을 보낸 다음 날 피터는 애써 아무 일이 없는 듯 행동했고 토니는 그의 행동을 모른 척해주었다. 둘은 태연하게 아침을 먹었고, 피터가 좋아하는 영화도 한 편 함께 보았다. 지난밤 처럼 많은 대화가 오간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나름 편안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 저녁 시간. 토니는 피터를 태우고 밖으로 향했다. 오늘의 운전대는 토니가 잡았다. 토니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피터는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았다. 시원한 저녁 바람은 언제든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저녁은 교수님네 동네 가서 먹어요.”

“좋아요.”

“춥진 않아요?”

“괜찮아요. 바람이 오히려 좋은걸요.”


피터의 말에 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밤공기가 좋긴 했다.


“패트롤 돌면 이런 기분 종종 느꼈겠어요.”

“그렇죠! 건물 사이를 다니면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고 그때 굉장히 좋아요. 어떻게 다음에 한번 같이 갈래요?”

“또 짐짝처럼 얹고 다니려고요? 절대 싫어요.”


둘의 머릿속에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토니는 미간을 찌푸렸고, 피터는 소리 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슈트라도 입고 오세요. 아이언 맨은 가능하잖아요.”

“갑자기 아이언 맨이 컴백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고요.”


생각해보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갑자기 하늘에 아이언 맨이 나타난다면 분명 눈에 띄지 않을 리는 없고, 그렇게 되면 여기저기 언론에서 떠들 것이고, 그의 정체를 밝히려고 난리겠지. 그러다 보면 토니 스타크가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오는 기분에 피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피터의 모습을 흘깃 본 토니가 작게 웃고 말을 이었다.


“표정을 보니 이미 머릿속에 다 그러졌나 봐요?”

“네, 스케일이 점점 커지네요. 별수 없죠. 옥상은 다음엔 업혀서 가는 거로 해요.”

“엘리베이터는 왜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엘리베이터 타면 밤공기 못 맞잖아요.”

“옥상에서 맞으면 되는 거잖아요. 굳이 올라가는 길에 맞을 필요가 뭐가 있어!”


토니의 말에 피터는 고개를 저었다.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의 제스처에 토니의 미간이 가볍게 구겨졌다. 그렇게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차는 어느새 피터의 동네에 거의 도착해 가고 있었다. 이제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해야겠다 생각하는 사이 피터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피터! 어디야? 아직도 멀었어?]

“아 거의 다 왔어. 왜?”

[저녁 먹으려고 그러지!]

“아 저녁 나 먹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왜? 어째서! 이야기 없었잖아! 나 너랑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 어? 그래? 그.. 어쩌지?”


토니가 피터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다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음식을 사서 셋이 같이 먹어요.”

“어? 그래도 괜찮아요?”

“집주인이 괜찮으면?”

[무슨 이야기야?]

“아, 네드 나 지금 팔머군이랑 있는데, 저녁에 근처에서 가볍게 뭘 사 먹을 생각이었거든. 그냥 테이크아웃해서 집으로 갈까 하는데 괜찮아?”

[오, 정말? 난 좋아!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오 네드, 이상한 이야기할 거면 난 집으로 안 갈 거야!”

[이상한 이야기라니! 피터 너 날 의심하는 거야?]

“아니 지금의 네드를 의심한 건 아니야. 다만, 미래의 네드는 알 수 없어서 미리 말해 두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니야?]

“아닐걸?”

[흠.. 그런가?]


제법 진지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길 나누는 둘을 보며 토니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아닌 척 입을 열었다.


“메뉴 추천받아요. 원하는 거 있으시면 사 갈게요.”

[음.. 피자? 피터, 피자 먹자!]

“뭐, 난 좋아. 팔머군은요?”

“저도 좋아요. 그럼 피자집으로 안내하세요.”

“네드 그럼 금방 사서 갈게. 집에서 봐.”

[그래!]


피터가 통화를 종료하고 토니에게 가야 할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자, 여기서 좌회전하면 그 집이에요. 저기 세워주고 기다려요. 금방 포장해 올게요.”


토니는 피터가 시키는 대로 차를 몰았고 곧 둘은 가게 앞에 도착했다. 샌드위치 집 앞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토니는 창문 너머로 가게로 들어가는 피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조금은 가벼워 보여 토니의 기분도 조금 가벼워졌다. 피터가 곧 따듯한 피자 두 판과 음료를 양손에 든 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곧 네드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따듯한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서 말이다.



comment.

열한번째 이야기 입니다.

어제 왔어야 했는데 하루 늦어졌네요. 

아마 주기가 삼일에 한번으로 변결 될듯합니다.

일단 쓰는대로 가지고 올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번 읽고 올리긴 하지만 오타나 실수가 있을 수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부드럽게 알려주세요.

++구독해주신 분들, 좋아요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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