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귀부인을 협박해서 굴복 시킨걸까요?”


“신빙성 있습니다”


“귀부인의 눈이 퉁퉁 부은게 심상치 않네요”


“그런데 대체 칼립스경의 저 표정은 뭡니까?”


“섹토를 잡았을때도 저런 표정은 못봤지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심하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맥시밀리언을 한손에 안고 등장한 리프탄의 모습에 식당이 술렁였다. 리프탄은 기사단의 쑥덕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맥시밀리언은 잠이 덜 깬 듯 눈을 부비다가 갑작스레 많아진 우락부락한 남자들의 모습에 잔뜩 움츠러들며 리프탄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리프탄의 입가가 씰룩 올라갔다가 빠르게 내려왔다.





“자기 와이프 품에 안고 저렇게 의기양양한 남자는 우리 대장밖에 없을 거야”


“그 와이프가 9살이면 얘기는 달라지죠”


“무례해 카론. 칼립스경은 그런 개새끼가 아니야”


“평소 칼립스경이었다면 리카이도 경의 목소리는 오늘이 마지막이었을 텐데 아쉽군요”






루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토끼 스튜의 당근을 골라내며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리프탄은 자신 앞에 놓여진 커다란 고깃덩이를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썰고 있었다. 기사단의 수근거림이 다시 이어졌다.







“저러다가 고기 사라지는거 아니냐”


“즙을 짜고 계신 것 같은데요”





“칼립스경, 귀부인은 9살이지 9개월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씹어 삼킬 수 있으시다구요!”




보다 못한 루스가 리프탄 앞에 놓여진 고기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실제로 그의 앞에 놓여진 고기는 원래의 형태를 잃은지 오래로 잘게 다져져 있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음산하게 읊조렸다.





“목소리가 크군. 이 고기가 니 머리통의 미래가 될 수도 있어”


“어,어린 귀부인께서 듣기에 너무 험한 농담이십니다!!!”





루스가 대경실색을 하며 자신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리프탄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잘게 썬 고기를 포크로 찍어 맥시의 입가에 가져갔다. 경계하는 눈으로 기사단을 바라보던 맥시가 리프탄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그가 건낸 고기를 받아먹었다.





“젠장...”





그의 심장이 쿵쿵을 넘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오물거리며 고기를 씹는 맥시밀리언의 입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가 고기를 씹어 삼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그녀에게 물잔을 건냈다.






“먹을만해?”






그녀가 아기새처럼 물을 받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프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귀여워 못참겠다는 듯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붉은 머리통에 쉴새없이 입을 맞췄다.








“방금 먹은 오크리 구이가 상한 것 같은데”


“아뇨, 칼립스경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날도 추운데, 왜 상했지?”


“대충 먹고 나가자고, 저 꼴을 계속 보느니 차라리 고블린 머리통으로 탑을 쌓는게 낫겠어”






헤바론이 이빨 사이에 낀 생선비늘을 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때마침 훈련을 마치고 막 씻고 온 듯 한 유리시온이 급히 뛰어 들어오다가 그와 부딪히며 나동그라졌다. 그 뒤를 따라오던 가로우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다 기사단에게 인사를 건냈다.






“저 녀석이 죽어도 땀냄새 나는 몸으로는 귀부인을 안을 수 없다고 해서 조금 늦었습니다”


“아아, 몸에 흙이 묻었습니다. 다시 씻고 오려면...귀...부인?”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유리시온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리프탄의 품에 안겨있는 맥시를 쳐다봤다. 오물거리며 고기를 씹다가 천천히 다가오는 유리시온을 발견한 그녀가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유리시온의 눈과 리프탄의 눈동자의 감정이 동시에 뒤바꼈다. 




리프탄의 품에서 벗어난 맥시밀리언이 까치발을 들어 낑낑대며 식탁위에 올려진 포크로 자신의 앞에 있던 접시에서 가장 큼지막한 고기를 찍어 유리시온에게 건냈다. 







“마,맛있...어,어요”






그녀의 앳된 새목소리에 식당은 초상집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유리시온 단 한사람만 빼고.







“........귀부인은 정말이지....오늘도 사랑스러우시네요”







유리시온의 눈꼬리가 반달로 휘어지게 웃으며 맥시가 건낸 포크를 받아들었다. 그의 손에 포크가 쥐여지자마자 기사단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 고기를 포크까지 같이 삼켜야 할 거야. 유리시온”







무표정한 얼굴의 리프탄이 잇새로 씹어뱉듯 읊조렸다. 유리시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포크에 꽂힌 고기를 한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맛있게 씹어 삼킨 뒤 로브 주머니에서 산딸기를 한움큼 꺼내 맥시에게 건냈다.






“산에 딸기가 아주 많이 열렸는데, 아주 달더라구요. 드셔보시겠어요?





유리시온은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한채 무릎을 굽혀 맥시와 눈높이를 맞춘뒤 그녀의 입가에 산딸기 한 알을 가져갔다.







“유리시온 로바..”


“가,감사...해,해요”





맥시가 유리시온의 손에 들린 딸기를 조심스레 자신의 손으로 가져와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에 그녀는 인상을 쓰다가 붉게 물든 입술로 싱긋 미소를 지었다. 유리시온의 얼굴이 붉어졌다. 리프탄의 얼굴도 붉어졌다. 둘의 낯빛은 같았으나, 둘의 감정은 판이하게 달랐다.






“할 꺼 다했으면 꺼져”






리프탄이 한계를 느낀 듯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채 유리시온에게 명령했다. 더 이상은 안돼.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듯 조용히 무릎을 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유,유,유리...”






그녀의 작은 손가락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쏠렸다. 각자 자신의 옷자락을 내려다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던 두 남자는 일순간 표정을 굳혔다.








“가,가,같이...같이...노,놀면...”





한 손에는 리프탄의 옷자락을, 다른 한손에는 유리시온의 옷자락을 잡은 맥시가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고개와 함께 떨어지려는 그녀의 손을 두 남자가 낚아채듯 하지만 작은 나비를 잡듯 살포시 잡았다.






“놔”


“귀부인께서 분명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칼립스경”






리프탄의 살벌한 눈빛에도 유리시온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밀리지 않고 맞섰다. 리프탄의 칠흙 같이 검은 눈동자와 유리시온의 영롱한 보랏빛 눈동자가 일순간 맥시밀리언에게 향했다. 그녀의 잿빛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렸다. 








“..싸,싸,싸우지...우으..히끅”









그녀의 입매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입보다 먼저 터진 눈물샘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리시온이 손을 내밀 틈도 없이 리프탄이 단숨에 그녀를 안아들었다. 








“미안해. 미안해. 맥시 그런거 아니야. 제발. 울지마. 맥시. 착하지”




리프탄이 투박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자신의 어깨에 묻으며 쉴새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 내렸다. 어쩔 줄 몰라하는 리프탄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던 유리시온은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가를 가렸다. 





“천하의 마고 칼립스 경에게 이런 따뜻한 면모가 있다니, 정말 영광스럽지 않은 날이 아닐 수 없네요...”





꺼져. 리프탄이 맥시를 달래기 여념 없는 몸짓과 그렇지 못한 입모양으로 단호하게 내뱉었다. 유리는 황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눈에 그득그득 담고는 문 뒤에서 기다리던 가로우의 손에 끌려나갔다.







“히끅, 히끅”






그녀의 울음은 늘 딸꾹질로 시작해 딸국질로 끝났다. 그는 익숙한 듯 미지근한 물로 그녀의 입술을 적셔줬다. 매일 같이 울어댄 탓에 그녀의 눈가가 짓물러있었다. 그는 입술을 꾸욱 깨물며 그녀의 눈가를 어루만지다가 다정스레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게 있어?”






맥시밀리언이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유리시온과 함께 놀고 싶었던 걸까. 그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맥시가 그의 미간을 꾹 눌렀다. 그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작은 손으로 그의 미간을 꾹꾹 눌러 펴주던 맥시의 손이 그의 입가로 내려왔다.







“화,화...화내...지..마,말아요..”





그녀의 손 끝이 그의 입꼬리를 살며시 위로 올렸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입꼬리는 손쉽게 올라갔다. 그녀가 멍한 얼굴로 그의 미소를 쳐다보다 빙긋 웃었다. 그는 그녀의 미소를 계속 보고 싶은 충동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끼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녀를 안은채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당신만 괜찮다면. 거지같은 어릴 적 기억 따위 다 지워버리고, 지금부터라도 행복한 기억으로만 채워주고 싶어. 네가 뭘 좋아하는지, 네가 뭘 무서워하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네가 슬퍼 우는 건 9살로 끝났으면 좋겠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리프탄의 눈동자 가득 맥시밀리언이 들어왔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산딸기 한 알을 그의 입에 가져갔다. 리프탄은 반사적으로 입을 벌려 산딸기를 받아먹었다. 맥시가 싱긋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그는 딸기가 무슨 맛인지도 모른채 씹어 삼켰다. 그녀가 커다란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듯 계속 그의 입에 딸기를 넣었고, 그는 그녀의 미소에 시선을 떼지 못한채 딸기를 씹지도 못하고 꿀꺽꿀꺽 삼켰다. 







“마,마,맛있...어요?”






맥시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그는 자신이 뭘 먹었는지 기억도 못한채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달다”






늘 위태로웠던 너는. 이제는 한손으로 들 정도로 작아져 품안에 가둬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위험할 정도로 달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픈데도 멈출 수가 없어. 나는 이 중독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겠지. 너에게서 평생.



* 본 연성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배경 및 소재의 저작권은 '상수리나무아래' 김수지 작가님께 있습니다.

* 본 연성은 2차 창작 요소가 짙으므로 문제가 될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불펌 또한 절대 금지합니다.

상수리나무아래_연성을 쓰고 있습니다. 죽기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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