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김상균은 낯선 곳에서는 깊게 잠을 자지 못했다. 오늘도 그랬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커텐을 치지 않은 탓에 점점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김동한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김상균은 김동한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가, 김동한의 볼에 입을 살짝 맞춘 뒤에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향했다.

소파 밑에 내던져진 핸드폰을 주워 확인한 김상균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야만 했다. 김상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지혁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분명 그 날이었다. 김동한과 영화를 봤던 날. 김상균은 숨을 몰아쉬며 사진을 확인했다. 입술이 맞닿은 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김상균이 김동한의 품 속에 안겨있는것만은 확실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귓속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다행인 건 김상균의 얼굴은 확실히 보이지만 김동한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과, 한지혁은 김상균과 키스를 한 사람이 김동한인 것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김상균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화가 나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김상균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김상균은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멍청히 서있었다. 그러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아직도 떨리고 있는 손으로 한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너 뭐야?"

"뭐긴요."

"뭐?"

"할짓거리가 존나게 없어서 애인 좀 만나고 오는 길이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상균이 형도 애인을 만나고 오늘 길이었더라고요."

"야."

"근데 그 애인이 같은 거 달린 놈일 줄 누가 알았겠어."

"너…."

"그 사람이 누군지만 딱 알았어도 제대로 놀릴 수 있었을텐데."

"…."

"숙소에서 봐요, 형."

"너 진짜,"

"보고 싶을 거예요."


매몰차게 끊긴 전화에 김상균은 또 다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눈물이 투두둑 흘렀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잠에서 깬 김동한은 옆자리가 휑한 것을 느꼈다. 형, 형. 하며 김상균을 부르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지만 김상균은 보이지 않았다. 김동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으로 향했다. 김상균의 신발이 없었다. 김동한은 부엌 식탁 위에 놓인 제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 매니저 형이 불러서 ㅠㅠ 미안해 먼저 갈게!! ♡] 김상균의 문자에 픽 웃은 김동한이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벌써 보고싶어요 ㅠㅠ]


한지혁은 똑똑했다. 한지혁은 다른 멤버들이 본가에 가서 없는 틈을 노려 김상균에게 그런 문자를 보냈던 거다. 멤버들이 있는 곳에서 김상균의 애인이 남자라는 사실은 숨기고서 어쨌든간에 김상균이 연애를 한다고 말을 꺼내볼까도 싶었지만 다른 멤버들이 개의치 않아할 것을 알았다. 아이돌들의 연애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멤버들 중에도 연애를 하는 멤버가 한 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나 김상균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룹이 이렇게 침체기에 들어선 것도 한지혁의 럽스타 때문이었으니까.

한지혁은 점점 인기가 커져가는 김상균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봐도 김상균보다는 자신이 월등했다. 실력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외모도.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아무리 김상균이 날고 기어봤자 김상균보다 더 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연애가 터지고, 모든 스케줄이 취소된 뒤 한지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김상균이 저를 추월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도중에 보게된 게 그 장면이었다. 숙소 앞에서 정체 모를 남자와 키스를 하고있는 김상균. 한지혁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장면을 제 카메라에 담았다. 일을 시작한 뒤로부터는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숙소게 재빠르게 도착한 김상균이 숙소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있는 한지혁을 노려봤다.


"형. 왔어요?"

"너 미쳤냐?"

"왜요? 제가 아웃팅이라도 할까봐요?"


아웃팅이라는 말에 김상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동자만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김상균은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한지혁은 김상균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면 무슨 말을 해도, 행동을 해도 미적지근하기만 했던 김상균이 이렇게나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다니.


"형이 지금 제 자리를 너무 위협하고 있어서요."

"…."

"정말 보잘것도 없던 형이, 그 시트콤 한 편 찍었다고 내 자리를 위협한다는 게. 정말 어이가 없잖아요. 그쵸, 형."

"…너는, 진짜."

"연애를 한다고 매니저 형한테 꼰지르자니 저도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형들도 연애를 해서요. 그럼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

"어떡할래요? 매니저 형한테 형이 사귀는 사람 남자인 거 들키고 헤어질래요, 아니면."


평생 형이 남자랑 사귀는 거 저만 알고 있을테니까, 저랑 잘래요?

김상균의 눈에 그렁그렁 고여있던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너는 진짜 쓰레기구나. 기어들어가는 김상균의 목소리에 한지혁이 하하, 하고 웃었다. 내일까지 생각해보고 대답 주세요. 저는 형이 하자는대로 할게요. 소파에서 일어난 한지혁이 제 엄지로 김상균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김상균은 한지혁의 손을 쳐낸 뒤 빠른 걸음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났다. 김상균은 이런 좆같은 상황에서도 김동한이 보고 싶었다. 동한아, 동한아, 동한아.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을 김동한의 이름을 부르는 김상균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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