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 멀어지다 마침내 사라졌다. 

대신 그 사이렌 소리보다 시끄러운 소음이 귓가에 한꺼번에 들려왔다.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그때 조금 전에 날 때리던 수염이 난 아저씨가  내게 얼굴을 들이대고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구영희요.”

”학교 어디야?“

”청량고등학교요.“

”몇반?“

”2학년 8반이요.“

”멀쩡하네. 엄마 오실거니까 얌전히 기다려라. 응급구조사가 조치는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조사 끝나면 병원 꼭 가고.“ 

조사? 

뭔소린가. 

나는 꿈을 꾸는건가 했다. 솔직히 병원인줄 알았는데. 

그랬다. 하교길에 배두기랑 피씨방에 가다가 배두기가 날 지름길로 이끌었고 거기서 신철수와 명량고 학생들을 만났고…누가 안경이 다 깨진 채로 얻어맞고…

그리고 눈 앞에 태극기가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질서정연 청량한시, 청량남부경찰서>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헉!“ 

”아저씨! 여기 경찰서죠!” 

내가 벌떡 일어나자 아저씨가 파일로 내 이마를 툭 쳤다.

“그래 임마. 겁도 없이 흉기까지 갖고 있던 패거리들한테 쓰레기통으로 덤볐어?”

“….”

흉기가…있었구나. 나는 솟아오르는 소름을 참아내며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날 나무랐다. 

“임마. 경찰에 바로 신고했어야지. 니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친구 아니었음 큰일날뻔했어.” 담부턴 그러지 마라.“

하지만 배두기한테 내가 신고하라고 시킨걸요. 그 생각이 들자 배두기가 무사한지 궁금했다.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내 다리 아래로 딸려 내려갔다. 

일어나보니 나는 경찰서 간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내 친구 두기 어딨어요?”

내가 서서 두리번거리자 아저씨가 날 책상 앞으로 불렀다.

“두기? 걔가 누구냐?“

”두기한테 제가 신고하라고 했는데…“

경찰서 안에 배두기는 없었다. 신철수와 명량고 놈들 뿐이었다. 

”아이 참나! 나 아니라고요!“ 

“입 안다물어? 이 시키야?”

명량고 빗자루는 계속 지가 한게 아니라고 난동을 부리는 중이었다. 총천연색 조끼를 입고 있는 놈이 이마를 싸쥔 채 짜증을 마구 내고 있었다. 팔이 피로 벌갰다. 

다른 명량고 학생들도 죄다 재킷이 찢어지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여기저기가 터져 있었다. 

”이노무 새끼들아! 어디 할 짓이 없어서…늬들은 다 콩밥 먹을 줄 알아!“

경찰 아저씨들은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명량고 학생들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경찰서 한 가운데 신철수 혼자만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어두운 오라를 팍팍 풍기며 고고하게 앉아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바로 내게 멎어 있었다. 

뭐야. 왜 쳐다보는거야.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실망이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아저씨 그 안경 부서진 애는요? 많이 다쳤는데!“

”걔? 아아… 피해자들… 너희 학교 애들은 다 병원에 갔다.“ 

”다행이다…“

내가 가슴을 쓸어내릴 때였다. 

”구영희! 이 개시키야!”

그때 경찰서 유리 자동문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바람에 키보드를 치던 경찰아저씨도,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고있던 경찰 아줌마도 깜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마터면 엄마 아빠 영수도 못보고 이세상 하직할뻔 했다. 근데 엄마. 

난 개가 아니라 악어새끼잖아…. 엄마 아들…

“야이 시키야! 학원 가라고 보내놨더니 학원을 째고 이러고 있어?! 응? 너 뭐가 되려고 이래! 어?! 내가 널 그렇게 키웠어?!”

1년 중 364일 내내 들고 다니는 엄마의 오백만원 짜리 샤넬 백이 내 머리에 콱콱 박혔다. 

“아! 엄마! 잘못! 잘못했!"

머리 땅에 박고 일어난지 오분도 안된것 같은데 소가죽 명품백으로 엄마가 날 때리니 죽을 맛이었다. 

그 와중에 신철수는 고고한 자세로 노트북을투닥거리는 아저씨와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다른 애들은 빽빽 소리만 질러대고, 다른 자리에 끌려온 용의자들도 막 고함만 쳐대는데 신철수는 경찰서에 한두번 와본솜씨가 아니었다.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컴퓨터를 투닥댔고 신철수는 거만하게 앉아 침묵하거나, 짧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경찰 아저씨가 철수를 아는건가. 대체 얼마나 경찰서를 드나들면 저렇게 자연스럽고 태연한거지?

그 모습을 보니 더 화가났다. 

사람 때리고,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불러다 대체 뭘 하려 했던 걸까. 

수업시간에 보여준 모습은 다 뭐고. 조금은 믿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을거라 생각했는데. 

나나 다라, 덕구한테 잘해주는 걸 보면 절대 누굴 패거나 돈을 뺐거나 하는 일 따윈 안하는 놈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때리다니. 

퍽퍽-!

”아! 엄마! 엄마!“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의 가방이 너무 아팠다.

”아이고! 학생어머니! 참으십쇼! 제발 때리지 마시고… 학생도 피해잡니다!“

그러자 엄마의 구타가 뚝 멎었다.

”뭐라고요?“

엄마의 눈이 흔들렸다. 

“우, 우리애가 피해자라고요? 누가… 어떤놈이요?!”

엄마가 고질라처럼 포효했다. 

“고정하시구요! 일단 목격자인데다가… 누가 때린건 아니고 학생이 친구를 도우려다 혼자 넘어진 겁니다. 보호자분 오셨으니까. 데리고 가시구요. 여기 사인하시고…혹시 모르니 꼭 병원 들르십쇼.” 

경찰아저씨가 이 혼돈 속에서 엄마를 쫒아내려는 듯 빠른 목소리로 설명했다. 

“엄마. 가. 가자. 내가 다 설명할게.” 

나는 엄마가 너무 창피하고 더 맞으면 안될것 같아서 급히 일어났다. 

“병원부터 가자.” 

“아 됐어. 멀쩡하대.” 

“시끄러! 일어나.”

엄마가 내 귀를 잡고일어났다. 병원부터 가자면서 귀를 잡을 건 뭐람. 

자동문까지 그대로 끌려갔다. 

“아 쫌! 잠깐만!“ 

나는 신철수가 어떻게 되려나 싶어 그쪽을 쳐다봤다. 

그때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 

신철수는 꼭, 나를 엄청 걱정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뭐라고 할말이 생각나지도 않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신철수와 청량고 사람등능 신고했으니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겁도 좀났다. 그럼에도 오기가 생겨 철수를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철수 학생?“

경찰아저씨가 철수를 부르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다른 가해자들에겐 이놈 저놈 이시키 저시키 하는데 철수에겐 태도가 묘하게 다른 것 아닌가. 

”너는 뭐해 이 새끼야. 빨리 안오고.“

”아야야!“

엄마가 다시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질질 끌려갔다. 모양새 빠지게 신철수 앞에서! 

그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신철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고 있는 것을. 

썩을. 

지금 나를 비웃고 있는거다. 

“아 엄마! 쫌 놔요!” 

나는 짜증을 있는대로 내며 끌려가긴 했지만 두고봐라. 신철수. 정의는 승리하고 넌 벌을 받을 거다. 

난 이제 네가 안무서워. 네가 또 애들을 때리면 또 신고하고 신고할거야.  다시는 널 보며 패배감 따윈 느끼지- 아악!

엄마 진짜 아프다고오!

나는 눈물까지 철철 흘리며 경찰서 밖으로 끌려나갔다. 


“아이고!!!! 아이고!!! 철수야!!!“ 

유리로 된 정문을 나와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남자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신철수의 보호자겠지. 

나는 돌아보려 했지만 그대로 엄마에게 귀를 잡혀 차에 태워졌다. 

차에 타자마자 엄마는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한 남자의 뒷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허둥대는 뒷모습은 날 데리러온 엄마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멀어져간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왤까. 철수를 부르며 달려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도, 저 아저씨도 누군가의 부모님이라서 그렇겠지. 

더더덕- 더더덕-

그때 내 폰에 문자 진동이 왔다.

[너 괜찮냐?]

배두기였다. 

[ㅇㅇ. 상황종료] 

나는 귀를 문지르며 앞을 쳐다보았다. 

나는 이제, 신철수도, 그리고 다른 일도 피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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