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은 한국으로 묘사되어지고 있습니다.

# 가볍게 읽어주세요 :)


*

"교수님. 하하… 밀린 거 많겠죠."

"아니. 너 안 왔던동안 내가 해놨어."

"바쁘셨을 텐데 죄송해요…."

"어차피 항상 혼자 하던 일이야."


그럼 저에게 조교를 왜 시켰냐, 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애초부터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부분에서 그의 제안을 꽤 좋게 받아들였었다. 물론 교수로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갖가지 생각에 잠긴 채 교수실 문을 열었다. 항상 깔끔했었던 토도로키의 교수실이 막상 문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엉망이다. 토도로키가 헛기침을 두어번 뱉더니 흐트러진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좀 심란했어서."

"아…."


분명 그 일 때문이겠지 하하….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같이 모아주며 토도로키의 옆에 앉았다.


"그럼 전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음, 내 랩탑 가져와 봐. 랩탑 가방에 있어."


토도로키가 본체 전원을 누르며 무심하게 말했다. 노트북 가방… 아, 이건가. 가방부터 보통 브랜드와는 다르다고 생각이 들더라니, 지퍼를 열자 이번년도 최신 노트북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헐, 이거 이번 신상 노트북이잖아요!"


우와, 저번에 노트북 사러 갔을 때 이거 홍보하고 있던데… 동전보다 얇은 두껜데도 성능도 뛰어나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다 저의 이름을 부르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겨우 듣고 책상 위로 옮겨온 노트북을 열었다.


"하하, 죄송… 어, 교수님. 비밀번호 걸려있는데요?"

"0111이다."

'0111… 설마 생일은 아니겠지….'


저도 모르게 숫자의 의미를 유추해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생일로 엄호를 설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헛웃음을 짓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도로키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괜한걸 묻나 싶지만 혹시 1월 11일이 교수님 생일 인가요?"

"응."

"……."

"…표정이 왜 그래."


교수님도 어쩔 수 없는 구세댄가… 그래도 아무렴 어떠냐며 결론을 내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교수님은 한겨울에 태어나신 거네요! 전 한여름에 태어났거든요. 하하."


한여름? 색다른 동공이 일순 커졌다 다시 무심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한여름이면 아직 멀었나, 아닌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지금 여름이잖아."

"어, 그러네요!"

"언제야."

"제 생일이요?"

"내 애인인데 그런 건 알아야지."


세상에, 애, 애인이라니. 직설적으로 내뱉으니 형용하지 못할 온갖 쑥스러움이 몰려왔다. 아직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았다. 저, 갑자기 그렇게 말씀… 말씀하시니깐! 어…! 어버버 말을 더듬으며 미도리야가 당황함을 내비치자,


"키스까지 한 사…"

"7월 15일이요!!"


오. 마저 이어가려던 말을 멈추고 토도로키가 웃어 보였다. 알겠어, 미도리야.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고 띄운 스케줄러창에 체크를 해놓았다. 흐으, 앓는 소리를 내다 한껏 숙였던 고개를 들고 더듬더듬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렸다.


"그럼 이제 뭐 할지 가르쳐주세요…."


아직도 얼굴이 달아오르는지 미도리야는 두 손으로 저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입매를 밀며 고개를 뒤로 당겼다. 바탕화면이 띄워진 노트북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바탕화면에 '전공' 파일 있지. 2학기 전공 책 가격들 입력해 줘. 목록은 아마 서랍에 있을 거다."

"몇 번째 칸이요?"

"아마 두 번째. 자물쇠 비번도 0111."


생일을 각별하게 챙기시는 건가, 아님 딱히 정해놓은 고유숫자가 없는 건가. 쓸데없는 의문을 안고 자물쇠를 풀었다. 거의 서랍이 꽉 채워질 정도로 높이 쌓여있는 종이 뭉치를 하나씩 넘겨도 전공 책 목록을 찾지 못했다. 몇몇 종이들은 빳빳해서 잘 넘겨지지도 않았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인데.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많은 뭉치 속에서 그 한 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교수님, 못 찾겠어요."

"없어?"


갑자기 저의 허벅지 위로 토도로키의 몸이 기울었다. 허벅지를 타고 서랍 안을 이리저리 뒤져보다 종이 한 장을 꺼내 몸을 들어 올리곤 미도리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찾…"

"……."

"……."


저희, 좀, 가까운 것, 같은… 꿀꺽, 밀려오는 긴장감에 울대를 밀었다. 종이를 쥐어진 손이 자연스레 어깨에 닿았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틀어졌다. 자석에 이끌리듯이 서로에게 다가갔다.


똑똑- 


"계십니까."

"아아악!!"


우당탕- 


소란이 들린 후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자 의문의 손님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문을 열었다. 이 방의 주인은 어디 가고 웬 학생이 쭈뼛쭈뼛 의자를 밀고 서 있는 모습에 그의 사고 회로가 더디게 돌아가다 겨우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찾아내었다.


"…토도로키 교수님은 안 계시나?"

"하, 하하! 안녕하십니까, 아이자와 교수님! 토도로키 교수님은 정말 우연하게도 방금 넘어지셔서! 책상 밑에 누워 계세요!"


평소에도 말이 많았지만 저의 합리성에 떨어지는 말을 내뱉는 미도리야를 의심을 품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왜 바닥에 누워 계시는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허공에 말을 내뱉었다. 피로에 찌든 눈동자가 미도리야를 계속 응시하다 아마 토도로키가 그 아래에 넘어져 있을 책상으로 시선을 옮기자 정말 그 밑에서 반반으로 나뉜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치신 건 아니시죠?"

"네, 별일 아닙니다."


종종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 아이자와 교수는 별일 아니라며 바지를 탈탈 털어내는 토도로키를 지켜보며 의아함을 품다 이내 본론을 들이밀었다.


"전공 관련해서 상의할게 있어서요. 아시다시피 1학기 결과가 꽤 실망스러워서."

"아, 네."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라고도 볼 순 없겠지만, 원소이해도부터 작년보다는 좀 딸려요."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아 개인 책상을 빠져나왔다. 미도리야, 그럼 떨어진 종이만 정리하고 있어 줘. 그 부탁에 대답을 하며 작은 테이블 앞에 마주 보고 앉는 둘을 보고서는 흩어진 종이를 모았다.


*


"하아..."


한숨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울렸다. 유에이대 기계공학과 교수, 토도로키 쇼토는 현재 포털사이트에 [20대 남자 생일선물 추천] 을 검색하고 있었다. 수려한 외모에 여자 여럿 홀렸을 것 같은 그의 연애경험은 당연하게도 有. 저의 아버지가 원한 보여주기식의 교제였다. 마음도 가지 않았던 만큼 마무리도 당연히 좋았을리가 없다. 기념일에 대충 향수 등으로 떼워줬었던 과거와는 또 다르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참 고민을 했다. 미도리야가 가장 원하는 것… 미도리야가… 미도리야…

스마트폰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첫 번째는 미도리야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두 번째는 저의 누나에게 물어보기 위해.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아닌 것 같아 결국 폰을 놓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안착한 것이 포털사이트다. 1순위 지갑, 2순위 향수. 지갑은 얼마 전에 카페에서 언뜻 보았을 때 때깔이 고운걸 보니 산 지 얼마 안 된 새 지갑 같아 보였고, 향수는 미도리야가 뿌리고 다닐 것 같지 않았다. 3순위는 백팩. 이건 신입생 때 새로 샀을 테니. 한참을 서치하다 문득 깨달은 건 미도리야 성격에 뭘 받을 것 같진 않다는 것. 아니야, 그래도 생일은 다르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벌써 노트북 앞에 자리를 펴고 앉은 지 2시간째.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선물이니 뭐니 해도 진심을 담은 편지가 제일 좋습니다^^ 채택해주세요~」 를 마지막으로 창을 닫았다. 생일까지는 일주일. 편지같은건 적어본 적 없는데. 그냥 어디 가고 싶은지 물어볼까. 그게 제일 낫겠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시침은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교수님 어제 못 주무셨어요?"

"응."


이렇게 퀭하신 건 처음 봐요…. 그렇지 않아도 진지하게 오늘은 쉴까, 라며 문자를 보내려다 겨우 미도리야를 태우고 이 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문서 작업을 하는 한참 도중에도 생일 선물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생일… 진심을 담은…


"어어, 교수님 정신 차리세요!"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었는지 문서가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으로 6장이 채워져 있었다.


"안 되겠다. 제가 커피 사드릴 테니까 같이 카페가요!"

"아니야, 난 괜찮…"

"제 눈에는 안 괜찮아 보여요."


미도리야 손에 이끌리다시피 교수실을 나왔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서도 완고하게 손을 놓치지 않더니 끝까지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힘껏 카페문을 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앞머리를 들췄지만 여전히 피로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저의 제자들이 앉아 있을까 봐 카페 안을 훑었다. 허나,


"어, 캇쨩?!"


들뜬 것 같은 목소리로 '캇쨩'을 부르는 미도리야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캇쨩? 미도리야가 친구 얘기만 꺼내면 항상 첫 장식과 마지막 장식을 차지하는 그 소꿉친구의 이름에, 어느새 화색을 띈 미도리야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삐딱하게 앉아 무심하게 폰을 들여다보던 시선이 이쪽을 응시했다.


"왜 혼자 있어?"

"뭐야, 데쿠. 네 뒤에 저 반반머리는."


약속 시각이 한참 남아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려 왔던 바쿠고였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낯선 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데쿠가 전보다 좋은 화색을 하곤 꽤 반반해 보이는 사람을 데리러 왔다는건.


'설마 애인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미도리야가 저의 앞자리에 앉았다.


"뭐야, 씨발! 꺼져!"

"성깔이 곱지가 못하군."

"뭐?"

"교수니임..."

"교수?!"


수많은 시선이 그들의 테이블로 향했다. 토도로키가 정식으로 교수직을 시작한 건 올해부터라 그런지  알아보는 눈치는 없었다. 황급하게 주위를 둘러본 미도리야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다행히도 기계과 사람들은 없었다. 톡톡,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어깨를 두드리고 낮게 읊조렸다.


"미도리야, 꼭 여기에 앉아야 할까."

"그래, 데쿠 데리고 꺼져!"

"…자리가 여기 밖에 없어요."

"아."


그럼 실례. 어느새 의자에 착석한 미도리야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씨벌. 바쿠고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액정에 떠 있는 화면을 넘겼다.


"교수님은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세요!"

"…그래."


지갑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미도리야를 4개의 눈동자가 좇았다. 곧 그 시선이 서로에게로 향했다.


"순 도둑놈이구먼."

"뭐?"

"교수면 최소 30은 넘겼단 소리잖아."

"넘긴 거 알면 말은 높여야하지 않나."

"네, 어련하시겠어요~."

"이름이 캇쨩일리는 없고."

"왜 제가 댁한테 이름을 알려줘야합니까."

"헉, 제가 없는 동안 싸우고 계셨던 거에요?"


미도리야가 쓰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캇쨩이 원래 저래요… 미도리야의 말에 바쿠고가 작게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거든, 데쿠 새꺄! 


"교수라니 존나 스펙타클하네."


낮게 읊조리며 남은 커피를 빨대로 쭉 빨아들이다 벌써 몇 주도 더 된 일을 회상했다.


'어, 음! 실연은 절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것 같아서 도망쳤어...'


왜 데쿠가 그 때 그런 말을 했었는지 이제야 납득이 간다. 상대가 교순데 씨발, 당연하지. 근데 도대체 어떻게 이어진 거야. 강의하다가 눈 맞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교수직에 있을 순 있나. 애초에 그럴 성격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만 주문을 했던건지 등받이에 몸을 기댄지 얼마 안 돼서 벌써 진동벨이 울렸다.


"캇쨩, 커피 가져오고 화장실 갈 테니까 절대 교수님이랑 싸우지 마! 초면이잖아…, 아니 초면을 떠나서 교수님이야…."

"망할, 이게 싸운 거…"

"미도리야, 싸운 건 아니…"

"교수님도요!"


빠르게 쟁반을 들고 와서는 말을 덧붙였다. 토도로키의 앞에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아까 얼핏 들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었다. 


"아, 캇쨩 이름은 바쿠고 카츠키에요!"

"야, 새꺄! 왜 알려줘!"


토도로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 씨발 묘하게 진 기분이네. 미도리야가 화장실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잠시 고민하던 바쿠고가 빨대를 물던 토도로키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곧 데쿠 생일인데."

"……!"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이 보였다. 백 퍼 고민 중이구먼.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약점을 잡아내었다. 입꼬리를 밀며 웃어 보였다.


"오늘이 8일이니깐 일주일 남았나?"

"……."


토도로키가 대답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굳이 빨대를 두고. 벌써 반이 사라진걸 보니 꽤 초조했던 모양이다. 의외로 밖에 다 들어내는 스타일인가. 포커페이스에 존나 능해 보이는데. 데쿠가 얽혀서 그런가.

저를 훑어보는 선홍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토도로키가 입을 열었다.


"…소꿉친구라고 했나."

"예."

"평소의 미도리야 생일은 어땠지?"

"하, 뭘 당연한걸 물어봐요. 똑같지."


교복을 벗은지 너무 오래된 토도로키한테는 그 평범이라는걸 회상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그럼…"

"뭘 좋아하는지 물으시려고?"


색 다른 눈동자가 흠칫 떨렸다. 여전히 바쿠고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을 이어갔다. 


"애인분이 직접 생각하셔야지, 그걸 저한테 물으면 어떡합니까."

"……!"

"제가 눈치는 존나 빨라서요."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이 짧은 사이에 간파한 건가. 미도리야와는 정반대군. 보통은 아니야. 소꿉친구라고 하니 괜한 말은 못 꺼내겠고. 저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간 미도리야의 말 때문이라도 그다지 험한 말은 꺼내기 싫었다. 까득, 입술을 씹었다.


"어, 조용하게 계셨네요!"


방금까지 무슨 말이 오고 간지 모르는 미도리야가 헤실헤실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토도로키를 향해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캇쨩 생각보단 괜찮죠?"

"생각보단 뭐냐. 빼라."

"어, 참 괜찮군."


교수님, 영혼이 없는 것 같아요. 쓴 커피와 함께 말을 넘겼다. 그 후로 한동안 정적이 흘렸다. 정작 이야기의 중심이었던 미도리야가 오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빨아들여도 커피 향이 베긴 물 밖에 안 나오자 바쿠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다, 데쿠."

"벌써 가게?"

"입담으로 벌어 먹고사는 직업인데 재미가 없네."


툭 말을 내뱉곤 자리를 떠났다. 아마 토도로키를 지칭하는 말인 것 같았다. 유리창 너머로 밝은 머릿칼이 사라지자마자 토도로키가 한숨을 내뱉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군."

"하하, 캇쨩이 원래 저래요. 괜히 죄송스러워지…"

"미도리야, 좋아하는 거 있어?"


네? 안그래도 둥근 눈동자가 더 둥그레졌다. 뜬금없이 좋아하는 거라니, 사고회로가 채 돌아가기도 전에 무의식이 입술새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오, 올마이트요…."

"……."


토도로키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내가 말실수를 했나… 둘의 머릿속은 꽤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말실수를 했나 조마조마 눈치를 보는 학생과 이번에 개봉한 히어로 영화는 두 번이나 봤는데 또 봐야하냐는 교수의 난처한 생각이 동시에 입을 열게 했다.


"저기…!"

"그럼…!"


아, 후에 내뱉는 감탄사마저도 같았다. 머, 먼저 말하세요…. 미도리야가 먼저 물러서자 토도로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갖고 싶은 건."

"갖고 싶은…"


왜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걸 물어보시지? 보통 연인… 사이에 일방적으로 선물을 주는 일이 있던가? 교수님이라서 제자에게 퍼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시는 건가? 아님 돈이 많으셔서? 평소의 커플들을 생각해보면 기념일에 챙겨주지 않나? 아니야, 우린 아직 교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00일도 아닌… 아. 미도리야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기념일이 있었다.


 '내 생일이구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챙겨주시리라곤 생각도 못 해봤는데. 한참 고민하던 미도리야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자 토도로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생각났어?"

"나중에 말해도 돼요?"


아, 이런 답은 생각 못 해봤는데. 당혹감에 물든 토도로키의 표정을 읽자마자 미도리야가 황급하게 말을 꺼냈다.


"어, 어… 사실 무슨 의돈진 알아챘어요. 근데 제가 정말 아무 말씀도 안 드리면 교수님이 저한테 뭐라도 사드릴 것 같으니까! 그냥, 그 일단 그 일식집에서 밥 먹을까요. 그 날에."

"…알겠어."


눈치는 꽤 빠르군. 그 소꿉친구의 영향인가. 직접 물어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성깔 더러운 금발성게한테 골려진 탓이 컸다. 이럴거면 애초에 직접 물어볼 걸, 후회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인상을 쓰고 다시 빨대를 꽂는데, 조심스레 저의 호칭을 불러내는 미도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교수님."

"응."

"감사해요. 사실 생각도 못 해봤는데, 하하. 이렇게 말해주셔서…"


고마운 건 오히려 이쪽인데. 토도로키가 옅게 미소를 머금으며 빨대를 물었다.


*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이젠 익숙해 보였다. 아이자와가 서류를 건네며 화면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미도리야의 얼굴을 보곤 웃음을 흘겼다.


"일은 할만하냐."

"아, 네! 이젠 익숙해져서, 하하."

"그래, 주말 잘 보내라."


교수님도 주말 잘 보내십쇼. 옆에 앉아있던 토도로키에게 목례를 건넨 아이자와가 교수실을 나왔다. 7월 15일 금요일. 미도리야의 생일날이었다.


*


"교수님도 가츠동 드시려구요?"

"응, 네 생일이잖아."


아하하… 미도리야가 화끈거리는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뜨문뜨문 말을 이었다.


"교수님이랑 사귀고 나서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

"응."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감정표현이 풍부하신 것 같아요. 처음엔 얼음왕자 같은… 하하! 하여튼 저한텐그런 이미지였는데 표정변화도 많으신 것 같고… 그런 교수님의 모습이 좋아요."


게다가 저밖에 모르는 거잖아요, 이런 교수님을. 시선을 내리며 옅게 미소를 흘리는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이미지였나. 사실 토도로키는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많이 듣긴했었다. 적어도 미도리야의 눈엔 그렇게 안 보인다면 된 거지. 손을 뻗어 덤불머리를 쓸어내렸다. 흠칫, 제 머리 위에 닿는 감촉에 미도리야의 몸이 떨렸다.


"다행이네."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심장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벌써부터 이렇게 떨리면 어떡해. 좀있다 그 말은 어떻게 꺼내려고. 다행히도 마침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 덕에 한시름은 놓았다. 요즘따라 묘하게 부드러워진 토도로키의 말투도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가츠동 2개요."

"매일 소바도 시키시더니 오늘은 가츠동이네요."

"하하, 네. 가츠동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그럼 가츠동 2개… 아, 자주 오신다고 사장님이 서비스 드렸어요. 여기, 이거요."


가츠동 나오면 갖다드릴게요. 종업원이 들고 온 콜라 두 캔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천막을 거두고 나갔다.


"생일 선물이네."


토도로키의 웃는 얼굴에 미도리야가 다시 고개를 손바닥 안으로 파묻었다. 말투도 그렇고 요근래들어더 자주 웃으시는 것 같아. 오늘따라 유난히 떨리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고보니."

"네에…"

"갖고 싶다는 건 뭐야, 미도리야."


아, 미도리야가 천천히 입을 닫았다. 묘하게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뭐길래 저러는 건가 싶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자 미도리야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하, 하하! 다 먹으면 말해드릴게요!"

"…? 그래."


눈에 띄게 당황한 낯빛을 띄어 굳이 캐묻고 싶진 않아 자연스레 히어로 영화로 화제를 돌렸더니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다물 줄 모르던 입이 올마이트의 38번째 업적을 읊을 때가 돼서야 가츠동 두 그릇이 나왔다. 토도로키가 먼저 돈가스를 입에 넣자 미도리야도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몇 번 입을 우물거리던 토도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츠동도 먹을 만 하군."

"맞죠. 다음엔 제가 소바를 먹어봐야겠어요."


자연스럽게 이어져가는 대화 속에서 그릇이 서서히 비워져 갔다. 바닥이 보일 때 쯤이 돼서야 콜라 캔을 따고 목을 축였다. 적당히 찬 배를 쓸어 내렸다. 냅킨으로 입 주변을 닦고 미도리야가 비장한 표정으로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저한테 뭐가 갖고 싶냐, 물으셨죠."

"아, 응."

"사실 전 갖고 싶은 건 없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가고 싶은 곳?"

"네. 교수님 집이요."


아, 내 집. 물티슈로 손을 닦다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 집?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미처 의식을 못했다. 드물게 토도로키의 억양이 높아졌다.


"내 집이라고?"

"…네."


온갖 생각이 스쳤다.


"그… 어! 일본식 가옥이라고 저번에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래서 가고 싶기도 하고… 어… 네."


왜 말을 흐리는 거야. 그 정도로 자신의 집이 궁금하나 싶어 재차 물었다. 그럼에도 굳이 저의 집을 오고 싶다는 미도리야의 말에 결국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볼 건 없을 건데."

"그래도 괜찮아요!"


저의 애인… 이니까. 당돌하게 첫 마디를 내뱉은 것과는 달리 기어가는 목소리로 마저 이유를 끄집어낸다. 픽,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서 카드를 건네고 어느새 나란히 옆에 선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곱슬머리를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같이 가자."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카드를 받아 들며,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는 미도리야의 손가락에 저의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뒤따라 꼭 감싸 쥔 세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딸랑-,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경쾌한 종소리가 울렸다. 허공을 내젓던 손은 서로에게 꼭 쥐어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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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썰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던 설정들 추가했습니다 :D 바로 전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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