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랑노랑해.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 배시시 웃음이 난다. 찌뿌드드한 어깨를 쫙 펴고 읏차 기지개도 켜본다. 헤어샵에 갇힌 지 다섯 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쐬었다.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가슴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가 하마터면 목구멍에 사포질을 할 뻔했다. 계절은 봄인데 공기는 봄이 아니다. 그럴싸해 보여도 도시의 봄은 보기보다 낭만이 적다.

 "일찍일찍 좀 다녀라."

 적절한 BGM처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승훈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를 맞는다. 멀리서도 승훈의 목소리는 유난히 잘 들렸다. 특이하거나 유난히 큰 소리도 아닌데 왜 그런진 의문이다. 키가 커서 그런가. 아무튼 들었으니까 모른 척 할 수 없어 머리 위로 손을 흔들었다. 못마땅한 승훈의 시선이 내 머리 위로 꽂힌다.

 "너 머리 꼴이 그게 뭐야?"
 "오후 수업 하나밖에 없어서 미용실 다녀왔지. 어울려?"

 병아리처럼 보송보송하지 않느냐고, 머리색 빼느라 탈색을 세 번이나 했다고 말하자 승훈은 기가 차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한테 검은 머리는 안 어울린다고, 안색이 너무 창백해 보인대서 바꾼 건데. 자기가 그런 말 했던 건 싹 다 까먹은 표정이다.

 "칙칙해 보인다고 밝은 머리 하라며."
 "밝은 머리 하랬지 누가 양아치가 되랬냐?"
 "난 맘에 드는데."
 "뭐 그럼 됐고."

 계단 옆으로 스쳐간 한 쌍의 CC를 째려보며 승훈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학기 초부터 사방에 CC가 깔리는 게 말이 되냐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보이는 곳곳이 커플 천지다. 아무래도 도시의 낭만은 어디로 사라지거나 숨은 게 아니라 우리만 비껴간 모양이다.

 "아 참. 내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다같이 짜장면 먹기로 했다. 너도 나와."
 "싫어."

 뭐? 승훈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흘겨보았다. 강의실 책상에 쾅 소리가 나게 가방을 내려놓고 못 들은 척 지퍼를 열었다. 양아치라니. 머리 따가운 것도 참고 지루한 것도 참고 비싼 돈 들여서 한 건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꽁하니 입술을 내밀고 책을 꺼내자 승훈은 더 말도 붙이지 않고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결 다 상하고. 뭐냐 이게."

 말도 없이 스윽 뒷목을 타고 올라온 승훈의 기다란 손가락이 얇아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빗어 넘긴다. 하지 마아. 표정을 구기며 몸을 빼 승훈의 손을 털어냈지만 승훈이 그러는 게 내심 싫지는 않았다.

 "확실히 양아치보단 병아리 쪽이네."

 거짓말 치기는.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은 바보처럼 웃고 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2교시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단톡방에 공지 하나가 떴다. 승훈이 말한 대로 점심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다같이 짜장면을 먹자는 내용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 미세먼지는 여전했지만 - 며칠 뒤가 블랙데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짜장면이 먹고 싶었으므로 마음을 바꿔 점심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도서관 앞 잔디광장에 도착해보니 먼저 와 있던 승훈이 선배들과 함께 바닥에 신문지와 돗자리를 펴고 있었다.

 "니꺼 내가 시켰다. 짜장면 맞지?"
 "어."

 이런 자리에서 짬뽕을 시키는 눈치없는 녀석도 있냐고 물었더니 턱짓으로 왼편을 가리킨다. 고갤 돌려보니 편평한 바위에 앉아 떠들고 있는 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민호는 해물 때문에 짬뽕 안 먹는데? 고개를 갸웃하자 귓속말로 탕수육, 한다. 와아. 스케일이 다른 대범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나도 탕수육 좋아하는데. 이따가 몇 개 뺏어 먹어야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민호 쪽으로 걸어가자 승훈이 일루와, 하면서 팔목을 잡아당긴다. 일 도와야지 어디 가냐고 해서 별 수 없이 마지막 돗자리 펴는 걸 도와주었다.

 학회장이 주최한 짜장면 정모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돗자리가 부족해 다들 다닥다닥 붙어 앉게 되었다. 수업이 늦게 끝난 신입생들이 드문드문 합류할 때마다 옆사람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왼쪽 무릎을 눕히고 오른쪽 다리를 세워 앉자 승훈이 어깨를 당기며 공간을 내준다. 덕분에 세운 무릎으로 승훈의 옆구리를 찌르는 모양이 되었다. 승훈이는 어떨지 몰라도 덕분에 아까보단 한결 자세가 편해졌다.

 "오빠, 그쪽에 자리가 좁은 것 같은데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그럴까?"

 민호 옆에 앉은 여자 신입생이 손짓으로 부르는 걸 보고 가볍게 엉덩이를 들었다가 승훈이 어깨를 꾹 누르는 바람에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씨 나도 탕수육 먹고 싶은데. 앙칼지게 째려봤더니 쓰읍 하고 의미불명의 소리만 내뱉는다. 하필 그때 짜장면이 도착하는 바람에 어영부영 자리 바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 니꺼."
 "이게 뭔데?"
 "레몬 탕수육."

 착착 쟁반을 내려놓던 승훈이 귓가에 입술을 붙이다시피하며 속닥인다. 너무 먹고 싶어서 선배한테 욕먹어가며 사비 들여 시킨 건데 특별히 나한테만 나눠주겠단다. 오예. 신나서 젓가락을 뜯다가 잘못 가르는 바람에 한 짝이 망치 모양으로 쪼개졌다. 내가 신나게 탕수육을 집어먹는 동안 승훈은 잘 흔든 짜장면의 비닐을 요령있게 삭삭 긁어 벗겨주었다.

 "맛있냐?"
 "응. 근데 좀 불었어. 넌 왜 안 먹어?"
 "이제 먹으려고."

 자리가 너무 좁아서 젓가락질하는 게 불편한가. 입 안 가득 짜장면을 담고 올려다봤더니 승훈의 오른팔이 내 등 뒤쪽으로 뻗어 올라간 게 보였다. 활짝 펼친 손바닥이 작은 파라솔이 되어 정확하게 정수리 위로 자그마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자꾸 긁길래. 햇빛 때문에 따가운 거 아니었어?"

 음식을 씹느라 고개만 끄덕였더니 혀를 차면서 가지가지 한다고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러게 누가 탈색을 세 번씩 하래? 두피 빨개진 거 봐. 가렵다고 긁으면 피고름 난다. 한 번만 더 머리색 가지고 고나리하면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자 코웃음만 친다. 티격태격하느라 언성이 높아졌는지 저만치 떨어져 있던 여자 후배 하나가 우리쪽을 돌아보며 풋 웃음을 터뜨렸다. 신경이 쓰여서 목소리를 낮췄는데도 후배는 자꾸 이쪽을 힐끔거리며 알쏭달쏭만 미소만 흘렸다. 눈치빠른 승훈도 금방 이상한 걸 알아채고는 싸우던 것도 잊고 쟤 뭐냐는 식의 눈빛을 던졌다.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쟤 누군데?"
 "이희수. 신입생이잖아. 넌 후배 얼굴도 모르냐?"
 "당연히 알지. 이름이랑 매칭이 잘 안 돼서 그렇지 알기는 다 안다, 뭐."
 "근데 그건 왜?"
 "쟤 나 좋아하나봐."
 "아 그러세요, 금사빠 씨."
 "아님 왜 자꾸 쳐다보는데? 저것 봐. 지금 날 또 쳐다봤잖아."
 "너 요즘 외롭냐?"
 "어 쫌."
 "눈이 나빠진 건 아니고?"
 "너 진짜 나한테 왜 그...."

 조금 전까지 미소만 흘리던 후배가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고 급하게 말을 멈추었다. 여자 후배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긴 머리를 휘날리며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달리해 애교가 철철 넘치는 미소를 띄우며 우리 사이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너무 당황해 하마터면 짜장면을 쏟을 뻔했다.

 "오빠, 오늘 저녁에 뭐하세요? 별 일 없으면 저녁 사주시면 안 돼요?"
 "그럴까?"

 놀랍게도 희수가 말을 건 쪽은 내가 아니라 승훈이었다. 승훈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한껏 거만해진 태도로 나를 쳐다보았다. 봤지? 하는 눈빛이었다. 후배는 어느새 승훈의 팔에 슬며시 팔짱을 끼고 발끝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승훈이라니. 승훈의 잘난 척하는 표정이 꼴보기 싫어서 훼방을 놓을 맘으로 일부러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와, 희수는 좋겠다. 비싼 거 사달라고 해. 얘 돈 많아."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음 뭐든지 말해. 오빠가 사줄게."
 "오, 이승훈 완전 멋진데? 나도 가도 되지?"
 "그럼. 당연하지. 꼭 와. 와서 니 밥값은 니가 내고 가."

 까르르, 후배의 입에서 지나치게 큰 웃음이 터진다. 나는 기분 나쁜 티도 못내고 영혼없이 따라 웃다가 불어터진 짜장면만 젓가락으로 깨작댔다. 몰랐는데 땡볕 아래 오래 앉아 있으니 자외선에 여과없이 노출된 두피가 엄청나게 따끔거려 눈물이 찔끔 다 났다.

 당장 머리색부터 바꿔야지. 젓가락으로 그릇 바닥을 긁으며 나는 엉뚱한 결심을 했다.





 승훈이는 괜히 편했다. 내가 막 대해도 잘 받아주고 알게 모르게 챙겨줘서 의지도 많이 했다. 친해지고 나니 스킨십이 늘어서 웃긴 걸 봤을 때, 놀라거나 무서울 때, 졸리고 힘들 때, 아무 이유없이 습관적으로 승훈에게 몸을 붙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몸이 친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듣자마자 나도 승훈도 펄쩍 뛰었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라 나는 시도때도없이 승훈이를 때리거나 툭 치거나 매달리거나 끌어안거나 했다. 다른 사람이 그러면 징그럽다고 밀어내기도 하던데, 그런 승훈도 내게는 관대했다. 그래서 편했다. 승훈이 날 봐주고 있다는 걸 알아서.

 소중했다. 편해서.

 허물없이 승훈을 대하는 만큼, 그래서 나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말의 격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알맹이는 조심히 챙겨 들었다. 사소한 불만은 투덜거려도 정말로 힘들고 슬픈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승훈도 그랬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고민상담을 하는 일따윈 우리에게 없었다. 애초에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냥 서로 적당히 갈구면서 아주 약간만 재미있는 농담따먹기를 하고 옆자리가 허전하지 않게 채워주는 그 정도의 사이.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가끔은 궁금하기도 했다. 승훈의 속내가. 하지만 진지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엔 나도 승훈도 소질이 없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건 싫었다. 무거워지면 깨질 것 같았다. 적당한 가벼움으로 붙어 있는 우리 관계가.

 괜히 바꿨어. 승훈의 말 때문인지 거울 속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후회해봐도 이미 늦은 일이다. 좀 칙칙해 보여도, 얼굴이 창백해 보여도, 아쉬운 듯 나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 놔뒀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떤 색으로 바꿔야 승훈이 좋아하는 밝은 머리가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이 정도면 됐겠지 했는데 승훈이는 아니라고 하니 주눅이 든다. 내 머리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남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까 그 여자 후배 머리색이 어땠더라. 승훈의 팔에 자연스레 팔짱을 끼던 하얀 손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여러 번 머리를 털어야 했다.





 탁탁탁탁.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신사납게 울려퍼진다. 앞자리에 앉은 선배가 협박조로 눈을 흘기는 바람에 펜을 내려놓고 이로 손톱을 물었다. 강의실 앞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나는 토끼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불안하게 눈알만 굴려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고 나를 손가락질하고 날 놓고 수군덕대는 것만 같았다.

 "핫핑크로 해주세요."

 어제 희수랑 저녁은 맛있게 잘 먹었냐고, 톡을 보낸 지 여섯 시간이 넘도록 답이 없어서 홧김에 지른 말이었다. 핫핑크요? 디자이너는 두 번을 더 묻고서야 컬러차트를 가져갔다. 한 번쯤 파격적인 헤어 컬러를 해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말을 뱉고도 무를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컬러링이 끝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을 때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와. 진짜 튄다. 미술시간에 쓰던 포스터칼라나 조카의 완구용품에서나 보던 형광형광한 핑크색이 내 머리통 위에 있었다. 이런 머리색이라면 동네에서 짱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손을 달달 떨며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엔 디자이너 명함을 박박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프로의 일이거늘. 손님이 핫핑크로 해달라 그랬다고 이렇게까지 지나치게 충실한 핫핑크로 만들어 놓다니. 이걸 보면 승훈이 뭐라고 할지는 안 봐도 훤했다. 시크릿 쥬쥬다, 시크릿 쥬쥬. 낄낄대며 웃느라 상기된 승훈의 표정과 흥분할 때 튀어나오는 사투리 억양까지 잡힐 듯이 선명했다.

 망신은 당해도 개망신은 피해보려고 주말에 뜨거운 물로 열심히 머리도 감아봤지만, 디자이너가 한껏 솜씨를 발휘한 덕에 머리색은 생각처럼 훅훅 빠지지 않았다. 처음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핑크색이라 1km 밖에서도 나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엔 말 한 번 안 붙이던 선배까지도 오늘은 '길 잃어도 누군가 찾아주겠네'라며 나를 놀려댔다. 내 멘탈은 졸지에 연두부가 되었다. 아 이러다 대인기피가 생기는 거구나. 마음이 아픈 분들의 심정을 나는 오늘에서야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사단의 장본인인 이승훈은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있었다. 곧 수업 시작할 시간인데 보이지도 않고 톡에 답도 없고. 지난주 금요일부터 연락이 안 됐으니까 오늘로 나흘째다. 무슨 일이 있나.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아무도 승훈의 소식을 몰랐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승훈은 나타나지 않았다. 받지 않는 전화를 끊고서 혼자 쓸쓸하게 점심줄이 길게 늘어진 학관 식당으로 갔다. 마침 한 사람 건너 앞쪽에 같은 과 여자 후배들이 쪼로록 줄을 서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러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저절로 이야깃소리가 들려왔다. 대개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 와중에 '희수'라는 이름은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듣자하니 희수도 오늘 수업에 안 나왔다는 것 같았다. 오늘 승훈 오빠도 수업에 안 나왔는데 둘이 뭐 있는 거 아냐? 호들갑 섞인 웃음소리가 화사하게 꽃가루처럼 퍼져나간다. 나는 어깨를 떨구고 줄에서 빠져나와 학관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이 부시다. 머리가 아프다. 승훈이 없으니 이상하게 거슬리는 것들이 늘었다.





 사랑에 눈멀어 공부도 우정도 버리고 어디 여행이라도 떠났나 했는데 희수가 무사히 학교에 복귀한 후로도 승훈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니.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론 너무하단 생각도 들었다. 승훈과 같은 수업을 듣는 (나랑 안 친한) 타과 학생과 기숙사 룸메이트에게도 찾아가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모른다고 했다. 승훈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은 덕에, 내 머리칼은 핫핑크에서 핑크 정도로까지 색이 옅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핑크는 핑크였다. 채도가 떨어졌다 뿐이지 까만 머리 갈색 머리 노랑 머리 사이에서 핑크 머리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증발해버린 승훈을 생각하느라 이제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점점 놀리는 횟수가 줄어드는 걸 보니 사람들도 달라진 내 머리색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대체 어딜 간 걸까. 연락은 왜 안 받지.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흉흉한 뉴스들을 떠올리며 캠퍼스를 걷다가 문득 희수 생각이 났다. 희수라면 승훈의 사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희수를 찾아가서 승훈에 대해 묻는다는 게 도저히 내키질 않았다. 이상한 자존심이란 걸 알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내일까지도 연락이 안 되면 그땐 진짜 희수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휴대폰을 꺼냈다. 분명히 희수 번호를 받아뒀었는데.... 손끝으로 화면을 밀며 연락처를 뒤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신호 때문이 아니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택시 정류장 앞에 희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희수 옆에는 증발했던 이승훈이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이승훈!"

 너무 놀라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린데도 목이 터져라 승훈의 이름을 부르며 와다다 달려갔다. 휙 돌아보는 승훈의 얼굴이 너무나 평온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옆에 있던 희수가 내게 꾸벅 인사를 했지만 후배의 인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다짜고짜 승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학교 언제 왔는데?"
 "좀 전에."
 "그동안 어디 갔었어? 내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숨 넘어가겠다. 천천히 말해라."

 그럼 또 보자. 희수 잘 가. 다정히 손까지 흔들어주며 승훈은 민망하게 서 있던 여자 후배를 돌려보냈다. 조금 전에 무시 당한 복수라도 하는 건지 희수는 승훈이에게만 가볍게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자기가 걱정돼서 숨도 못 쉬고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둘이서 태연하게 인사나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지니 울컥 화가 치민다.

 "둘이 뭐야? 사귀어?"
 "그런 건 왜 묻는데?"
 "너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내가? 너한테? 아니? 왜?"

 교묘하게 정직한 대답을 피해가는 승훈의 태도에 확 빈정이 상했다. 속을 다 터놓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라도 나름 서로를 아껴주고 존중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승훈은 내게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도 공유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별 것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승훈에게 나는.

 "됐어. 말하기 싫음 관둬. 나도 너랑 말 안 해."

 소름끼치게 유치한 말이었지만 그것만이 내가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었다. 나는 홱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승훈에게서 멀어졌다. 스스로의 쪼잔함이 부끄러워서 이어폰으로 귀를 꽉 틀어막고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혹시나 승훈이 던지는 말에 지나치게 솔직하게 반응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후배랑 사귀게 되었다고. 니가 뭔데 상관이냐고. 승훈이 그렇게 말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견디지 못해서 빨개진 눈과 얼굴을, 열 오른 내 속을 다 보여주게 될까봐 무서웠다. 엄청나게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나는 시선을 바닥에 두고서 막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뛰었다.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두 발이 공중에 떠오른 뒤였다.

 끼이이이익-

 이어폰이 빠진 왼쪽 귀로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굉음이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몸이 핑그르르 돌더니 등에 주사를 맞은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리고 어깨와 등이, 머리와 두 다리가 차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러진 목각인형처럼 옆으로 쓰러져서 겨우 첫숨을 쉬고 나서야 천천히 통증이 밀려들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다음이었다.

 "괜찮아?"

 숨이 차서 바람이 잔뜩 섞인 승훈의 목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빙판길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어른들이 그러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옷을 털었다. 군데군데가 얼얼하긴 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온몸이 멀쩡했다. 너무 놀라서 아직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급정지한 차에서 내린 건 음대 교수님이었다. 다행히 자동차에 직접 부딪치진 않아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교수님은 갑자기 그렇게 튀어나오면 어쩌느냐고 한바탕 호통을 치셨다. 그리곤 당장 병원부터 가보라며 명함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학회 일정 때문에 병원까지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얼이 빠진 상태로 멍하니 서 있다가 명함을 손에 꼭 쥐고 승훈을 보았다. 달려온 속도 그대로 나를 완전히 껴안고 넘어져서인지 옷도 더럽고 상처도 많고 나보다 더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뛰어들어서 놀랐잖아. 내가 그렇게 좋냐? 뒤에서 확 껴안게."

 목소리가 좀 떨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농담을 뱉었다. 분위기가 진지해지는 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승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보더니 하려던 말과 함께 침을 꿀꺽 삼켰다. 덕분에 나 혼자만 정신나간 놈이 되었다.

 "교수님 말씀 들었지? 병원부터 가."
 "나 괜찮은데."
 "이렇게 벌벌 떨면서 괜찮다고?"

 떨긴 누가 떤다고....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승훈의 오른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어깨에서 시작된 떨림은 승훈의 손끝으로, 그 손끝에서 다시 내 왼팔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상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놔. 갈 거야."

 당황해서 가슴을 떠밀자 승훈의 입에서 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진다. 승훈은 얼굴을 찡그리며 왼쪽 팔목을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너덜너덜해진 옷감에 빨간 핏물이 들어 있다. 나는 깜짝 놀라 새된 소리를 질렀다.

 "너 다쳤어?"
 "너 오늘따라 질문이 좀 많다?"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말 좀 해봐. 이거 다친 거 맞지? 맞잖아."
 "몰라. 그런가보지."
 "또 다친 데 없어? 여긴 왜 이래?"
 "저기,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막 옷 벗겨도 돼? 굶주렸어?"
 "미친놈아! 장난 좀 그만 치라고!"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악을 쓰고 말았다. 동시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승훈의 놀란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한 박자 늦게 터진 울음에 승훈은 나만큼이나 당황한 것 같았다.

 "야, 야, 왜 그래. 알았어 안 할게. 울지 마."

 승훈은 애한테 하듯이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며 서툰 동작으로 나를 달랬다. 그래도 눈물이 그치지 않자 나중엔 자신의 품으로 내 몸을 끌어당겼다. 괜찮아. 별로 안 아파. 이거 별 거 아니야. 다정한 목소리가 승훈의 가슴을 울림통 삼아 내 몸으로 왕왕 번져온다.

 "이상하다. 니가 우니까 좀 안 아픈 거 같다."
 "그럼 계속 울까?"

 농담이야, 농담. 승훈은 피식 웃곤 내 머리칼 사이로 깊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살랑 나부끼는 바람결에 승훈이 만진 머리칼이 차르르 떨어지는 느낌이 묘하게 놀란 가슴을 달래주었다.

 "머리 이쁘다. 꽃잎 같고 좋네."

 승훈의 체온을 머금은 봄의 공기가 가슴을 꽉 채우고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비로소 나는 편안해진다.

 몸을 샅샅이 파고든 떨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일었던 교통사고로 승훈은 왼쪽 팔을 다쳤다. 두 사람 몫의 체중을 싣고 바닥에 부딪친 게 원인이라 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나 때문이란 생각에 나는 부쩍 승훈의 눈치를 보았다. 병뚜껑을 열어 달라, 문을 닫아 달라, 신발끈을 매달라, 승훈이 잡다구레한 요구를 할 때마다 나는 군말없이 승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수업이 있는 날로 모자라 주말에까지 불러내 귀찮게 구는 건 상당히 약오르는 일이었다. 중간고사 시험 공부를 같이 하자는 핑계로 토요일에 학교로 불려나와 승훈의 커피에 빨대를 꽂아주다가 창 밖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절대로 도서관에 있어서는 안 되는 날씨다, 오늘은.

 "날씨 좋네. 사범대 뒤쪽으로 벚꽃 많이 피었다던데. 같이 꽃 보러 갈래?"

 완전 좋지. 반색해서 대꾸하려다 나오려던 말을 참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좋긴 좋은데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치보느라 그동안 차마 물어보질 못했는데 맘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희수랑 안 가고?"
 "걔 왜 그렇게 신경 써?"
 "아니 뭐 신경쓴다기보다...."
 "갈 거야 말 거야?"
 "가. 갈게. 가면 되잖아."

 환자를 때릴 수는 없어서 가겠다고 대답하고 승훈의 가방을 대신 맸다. 공부도 안 할 거면서 백팩에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넣어놨는지 보기보다 엄청 무거웠다. 사범대 쪽으로 가기 전에 학관 매점에서 김밥 두 줄이랑 사이다도 샀다.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걷는 캠퍼스의 꽃길은 생각 이상으로 예쁘고 향기로웠다. 서는 곳마다 그림이 좋아 승훈과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느라 십 분이면 갈 거리를 삼십 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승훈의 구체적인 지시로 자리를 잡은 곳은 사범대 뒷길 왕벚꽃나무가 크게 자리한 대형 강의동 앞이었다. 지금은 명이 다해 죽어버린 등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잠시 벚꽃을 구경하다 김밥을 깠다. 주말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용하니 분위기가 좋았다.

 "나 이거. 참치 김밥."
 "니가 먹어. 오른손은 멀쩡하잖아."
 "아, 빨리. 입 벌리고 있잖아. 침 떨어진다."

 내가 미쳐. 마지못해 김밥 한 점을 집어 승훈의 입에 욱여넣었다. 목이 막힌다고 해서 사이다 캔도 따주었다. 설마 이것도 먹여달라고 하진 않겠지 했는데 진짜로 먹여달라고 해서 얼굴에 사이다를 뿌릴 뻔했다. 운좋게 그때에 전화가 걸려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음 꼼짝없이 사이다로 세수했을 거다. 이승훈은 진짜 운이 좋다.

 어, 엄마. 승훈은 나와는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애교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힐끔 내 눈치를 보았다. 비켜줘야 하나. 불편하면 자기가 딴 데 가서 받겠지. 신경이 쓰였지만 일부러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김밥만 먹었다. 승훈은 어머니와 아버지 건강에 대한 안부를 주고 받는 것 같았다. 몇 번인가 다행이란 말을 했지만 말과는 다르게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승훈은 쉽게 장난기 많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눈치를 보다가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대어줬더니 됐다며 도리질을 친다.

 "부산 집?"
 "응."
 "아버지가 어디 안 좋으셔?"
 "지난 주에 갑자기 쓰러지셨어. 수술해야 된다고 해서 그때 부산에 며칠 있다가 올라왔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하셨나 봐."
 "지난 주면 그...."
 "응. 맞아. 제때에 연락을 못한 건 미안해. 병원에선 휴대폰 사용금지라 계속 꺼뒀거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적당한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하고 눈만 끔벅였다. 그랬구나. 조금씩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방금 먹은 김밥이 얹힌 것처럼 속이 불편하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아 자꾸 입술만 핥게 된다.

 "왜 이제야 얘기해?"
 "그게 뭐 좋은 얘기라고 굳이 말을 하냐."
 "해도 돼. 나한테는."

 그냥 말해 새끼야, 라고 하려다 최대한 품위있는 말을 고른 건데도 온전히 마음에 차진 않았다. 고민하다 단어를 조금 바꾸어 다시 말해보았다.

 "아니, 해줘. 나한테는."
 "그런 얘기가 듣고 싶어?"
 "응. 듣고 싶어. 그런 얘기도."

 돌려 말한 진심에 승훈은 의외로 좀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분위기엔 서로 익숙지가 않아 하염없이 어색해 하다가 승훈이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희수 아버지가 부산에 있는 큰 병원 의사 선생님이셔. 그래서 우연찮게 아버지 일로 도움을 좀 받았어. 그게 다야."

 썩 대단한 말도 아닌데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스르르 뭉쳐 있던 가슴 한 켠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저은 휘핑크림처럼 말랑말랑해진 마음에 달콤한 기쁨이 섞인다. 너무 웃으면 아버님께 실례가 될까봐 최대한 표정을 감추고 걱정스레 물었다.

 "부산엔 또 안 내려가봐도 돼?"
 "그건 왜?"
 "같이 가게."
 "뭐?"
 "부산 한 번 가보고 싶었거든.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가봐서."

 말하면서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붕 뜬 기분에 마구잡이로 말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 나간 소리를 듣고도 승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어, 하더니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 게 다였다.

 "벌이다."
 "헐, 진짜? 어디, 어디?"
 "완전 큰데? 말벌인가?"
 "잡지 마!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게 냅둬. 알았지? 응?"

 내가 호들갑을 떨어대자 승훈은 알았다며 성의없이 대답했다. 무서워서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몸을 굳혔다. 어릴 때 된통 쏘인 경험이 있어서 벌은 정말 질색이었다. 갔어? 아니, 아직. 승훈의 말에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으응. 벌린 것도 안 벌린 것도 아닌 애매한 크기로 입을 열어 대답하자마자 뭔가 이상한 것이 입술에 와 닿았다. 너무 놀라 머리칼이 다 쭈뼛 섰지만 승훈이 시킨 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확실한 건 벌은 아니란 거였다. 왜냐하면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닿았기 때문이다.

 왜 혀가 닿았지? 공포감 때문에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고력으로 느릿느릿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한 찰나, 훈훈한 봄바람을 닮은 승훈의 숨결이 얼굴에 돋은 솜털을 간질였다.

 "벌 갔다."

 천천히 눈을 뜨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승훈의 얼굴이 또렷하게 시야를 채운다. 여기 꽃잎 묻었네? 진심인지 장난인지 구분도 안 가는 목소리로 머리칼을 잡고 흔들어대는 승훈을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예쁘다. 승훈의 입술에서 흩날려온 말들이 거침없이 내 볼을 발갛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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