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 이미지: @10000_GG (구 님)

*본 글은 감풀 선생님과 함께 쓰는 큰세배세 합작 연재 글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와 감풀 선생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캠퍼스 수인 물

*인간 이세진 X 햄스터 수인 배세진 

*혐관으로 시작하고 썸을 타게 되면서 삽질을 할 예정입니다.

*2023년 1월 아이소 신간 발간 예정

*하트와 댓글 모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트위터: @luvto_nari



기다림의 미학              
        
                                           w. 나리 & 감풀



오늘은 2학기 첫 학생회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그 말인즉슨, 당연한 듯이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다들 예약해 둔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이세진의 눈에 한 사람이 슬금슬금 빠지려고 하는 게 보였다. 배세진 선배였다. 듣자 하니 학생회 일 같은 데는 관심도 없는 아싸였는데, 저 학번 남 동기들이 군대다 뭐다 다 휴학을 해 버려서 울며 겨자 먹기로 뻔대를 맡았다는 것 같았다.

학생회가 하기 싫은 거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역시 취업에 직결된 교수 추천서가 과 학생회장 자리에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학생회 따위 쳐다도 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회의 시간에 발언 한마디 없이 앉아 있는 것 정도는, 짜증이 좀 나도 충분히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저 선배가 제게 이유 모를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단 사실이었다.

내가 선배한테 뭐 잘못한 게 있나? 하는 고민도 해봤지만, 특별히 실례될만한 행동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한테 적대감을 품은 사람 따위, 그냥 무시하고 넘겼겠지만, 그래도 나름 같은 학생회에 소속된 선배기도 하고, 앞으로 계속 얼굴 보며 지내게 될 텐데,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한 이세진이 자리를 뜨려는 배세진을 불러 세웠다.

“어디 가세요, 형! 뒤풀이 같이 가셔야죠.”

“…어?! 아, 아니 난 괜찮….”

“에이. 다들 가는데 형 혼자 빠지면 분위기가 좋지 않잖아요! 그러지 말고, 1차만 같이 가요. 네? 제가 안주 맛있는 술집으로 예약해놨어요!”

“…진짜 괜찮은데….”

결국 이세진의 등쌀에 못 이겨 뒤풀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배세진은 안주로 배를 채우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다. 이세진의 말대로 안주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어서 불편한 술자리를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집이 아닌 이런 곳에 앉아 있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단 말이야! 이쯤 되니 자신을 이 자리에 기어코 끌고 온 이세진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뭐? 다 같이 가는 뒤풀이 자린데, 형 혼자 빠지면 분위기가 좋지 않아?! 나 없어도 충분히 잘들 마시고 놀았을 것 같은데, 웃기고 있네. 너 같은 인간은 최대한 사람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따위 알지도 못하겠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차별이란 걸 받아보지 않았을 테니까.

수인과 인간, 반반의 비율로 어울려 살아가는 폭넓은 세상이라곤 하지만, 흔히들 크게 대형종과 소형종으로 분류되는 수인들 사회에선 남들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소형 종은 차별을 받고 살 수밖에 없었다. 먹이 사슬로 비유하자면 제일 아래 단계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소형종에서도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햄스터 수인인 배세진은 자신들의 이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고 사는 평범한 인간들이 마냥 팔자 좋게만 느껴졌다. 속이 배배 꼬였다 할지도 모르지만, 소형종 수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차별대우 받으며 살아 봐라. 인간이 곱게 보이나. 그러니까 내가 이세진이 싫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이유야.

“다 같이 모였으니까 우리 건배 한 번 할까요~?”

심지어 성격까지 좋아서 주위에 사람이 끊기는 법이 없지. 딱 나와 정 반대 부류의 인간. 건배고 나발이고 그냥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었지만, 이미 끌려 나온 자리, 여기서 싫다고 내빼면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주위 사람과 어울려 지내지 않는 배세진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

적당히 빨리 마시고 빠지자! 그렇게 결론을 지은 배세진이 맥주잔을 맞부딪히며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배세진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술자리는커녕, 음주도 즐겨 하지 않는 자신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이 약하단 것이었다. 몇 잔 비우지도 않았는데, 금세 몽롱해진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배세진이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머리 위로 귀가 튀어나오려는 욕구를 꾹꾹 눌러 참았다. 집, 집에 가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고 치겠다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든 배세진이 가방을 움켜쥘 때였다.

“괜찮아요, 형? 얼굴이 많이 빨가신데. 혹시 취하셨어요?”

아. 이세진이다. 집에 가겠다는 날 붙잡아, 기어코 여기에 끌고 온, 능글맞은 인간 자식! 술기운이 오른 터라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을 하기 힘들었던 배세진은 눈앞에 있는 이세진을 새침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취해, 바보야! 나 하나도 안 취했어!”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은 배세진과 나름 친해져 보겠다고, 술자리까지 데려온 건데, 고작 건배 몇 번에 해롱해롱해진 꼴을 보아하니, 친해지긴커녕, 뭔 얘기도 못 해보게 생겼다. 취했냐 물으니 곧장 바보야 소리가 돌아오는 게, 아까의 그 데면데면한 태도를 생각하면 단단히 취한 듯했다.

“아, 형 많이 취하셨네~ 여러분, 저는 세진이 형 챙겨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무래도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네요.”

“근데 네가 걔를 왜 챙겨? 둘이 친해?”

왜 챙기긴, 대충 얼굴 비췄으니 재미도 없는 술자리 빨리 도망가려고 그런다. 이세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싱글싱글 웃으며 눈앞에 있는 선배의 비위를 맞췄다.

“어휴, 형님들은 오랜만에 재밌게 노셔야죠~ 세진이끼리 어떻게 잘 들어가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신나게 노세요!”

그럼 그럴래? 알코올에 영혼까지 판 듯한 선배는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취한 사람 챙기기는 싫겠지. 이세진은 아예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배세진의 휴대폰과 지갑 등을 잘 챙겨 가방에 넣어 주곤, 그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씨, 나 안 취했다니까…!”

“네네, 그럼요. 형 하나도 안 취하셨죠. 아, 근데 지금 제가 너무 취해서 힘든데. 저 조금만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나갈까요~?”

내가 너 뭐가 예쁘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휘청대며 발을 옮겼다. 나도 너 안 예뻐요, 이 자식아. 이세진은 웃는 얼굴로 그렇게 생각하며 배세진을 데리고 술집을 나섰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택시를 태워 보내려는데, 배세진이 자기 집 주소를 절대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집 주소를 묻는 저를 째려보며 그런 걸 왜 궁금해하냐고 또박또박 따지는 통에, 두 손 두 발 다 든 이세진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의 자취방이란 들키면 곧장 아지트가 되는 법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범하는 건 딱 질색인 이세진은 본인이 자취한단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과 사람들은 모두 그가 집에서 통학하는 줄로만 알았다. 즉, 배세진이 그의 자취방에 들어온 첫 손님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그 손님은 술버릇이 어찌나 고약한지, 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맨바닥에 냅다 드러눕고 말았다. 아, 땅바닥에서 자든가! 이미 여기까지 배세진을 데려오면서 있는 대로 성질이 난 이세진은 그를 버려두고 욕실로 향했고, 자신이 누워 있는 이곳이 이세진 집이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배세진은, 보다 편한 숙면을 하기 위해, 인간형을 풀고, 햄스터로 변했다.

 

 

* * *

 

 

술에 취한 배세진을 어르고 달래며 집까지 데려오느라 온몸이 땀범벅이 된 이세진은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내며 이성적으로 머리를 굴려 냈다. 그러고 보니 저 선배, 공부 열심히 한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 잘 대해 주고 나중에 생색내면서 족보 좀 달라고 해 볼까?

자신한테 적대감을 품은 선배와 친해져 보겠다고 오지랖 한 번 부렸다가, 귀찮은 일을 떠안게 된 건 무척 짜증이 났지만, 이후에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면 주사가 고약한 선배 정도야 제 침대에서 못 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진 이세진은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고, 다음 순간,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가 샤워를 한 그 짧은 순간에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가 입고 있던 옷 무더기만 바닥에 허물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미친, 그럼 알몸으로 밖에 뛰쳐나가기라도 했다는 거야? 이세진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부여잡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술에 꼴아서 어디 옷장 같은 데라도 처박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이었다.

“쮝?”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세진의 옷 무더기 속에서 무언가가 쏙 튀어나왔다. 쥐…? 아니, 햄스터잖아. 그 햄스터는 어쩐지 휘청대며 저를 보더니, 쮝! 하고 성질을 냈다. 묘하게 사람 같은 행동이었다. 그것도 좀…취한 사람.

“…배세진 형?”

그새 옷 무더기 속에 쓰러지듯 누워 있던 햄스터가 다시 고개를 돌려 이세진을 쳐다보더니, 왜 부르냐는 듯 쮝! 하고 성질을 냈다. 몇 번 더 불렀더니 아예 옷 무더기를 비틀거리며 헤치고 나와 뒷발로 서며, 그 앙증맞은 앞발을 허리(햄스터도 허리가 있나? 이세진은 순간 헷갈렸다)에 올리곤 쮝! 쮜지직! 와락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그제야 이세진은 이 햄스터가 정말로 배세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멍하니 성질 더러운 햄스터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술버릇까지 나쁜 이 햄스터가 돌연 술기운이 도는지 휘청, 했다. 어어, 이세진은 얼떨결에 넘어지려는 배세진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배세진은 그것도 못마땅한지 짜증스러운 소리를 냈지만, 곧 이세진의 체온을 난로 삼아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자는 거야? 이렇게? 집에서 개는 키워 본 적 있어도 햄스터는 키워 본 적 없는 이세진이 황망하게 눈을 끔뻑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된 이상, 침대에는 재울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왕 작은 거 침대에서 재우고 옆에 누워 잘까 했는데, 그랬다가는 제가 이 사람을 실수로 깔아뭉갤까 두려웠다. 그래서 이세진은 자신의 베개를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잠이 든 배세진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이세진은 불을 끄고 베개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자리가 조금 불편해진 탓일까, 그는 오래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 * *

 

 

“쮜익….”

다음 날, 이세진의 베개 위에서 눈을 뜬 배세진은 잠이 덜 깬 눈을 깜박거리며, 습관적으로 앙증맞은 두 손을 모아 열심히 그루밍을 하였다. 자그마한 두 귀와, 안쪽 배까지 깔끔하게 그루밍을 해준 배세진은 자신의 방이라기엔 굉장히 낯선 풍경에 당황하며, 그대로 몸을 굳혔다. 여, 여긴 대체 어디야…?! 그러고 보니 자신이 몸을 눕힌 공간 또한 침대가 아닌 베개 위였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한 배세진은 침대 위에 베개 없이 누워서 자고 있는 이세진을 보며 이빨을 덜덜 떨었다. 방금까지 몽롱했던 정신이 확 깨는 순간이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불현듯, 떠오른 어제의 기억에 베개 위에서 팔짝팔짝 뛴 배세진이 재빨리 인간으로 변해, 상 위에서 내려왔다. 옷…! 옷 어딨어. 내 옷…! 빠르게 눈알을 굴려, 자기 옷을 찾아낸 배세진이 곱게 개어진 옷을 다급하게 걸쳐 입은 순간이었다.

“…일어나셨어요, 형?”

등 뒤에서 한껏 잠긴 이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기 전에 튀려 그랬는데, 망했네. 쟤는 수인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잠귀가 밝아?! 다행히 옷은 다 걸쳐 입은 직후라, 나체 상태로 이세진을 마주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햄스터 귀와 꼬리까진 숨기지 못한 배세진이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리는 배세진의 뒷모습을 보며 어제 일 때문에 내 얼굴 보기 민망해서 그러시나? 하고 생각한 이세진은 자신을 향해 뒤 돌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잠이 확 깨고 말았다. 그건, 불안이라기보다는 어떠한 공포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이세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이 수인인 줄을 몰랐던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수인인 걸 숨겼던 거였구나.

이세진은 눈치가 빨랐다. 그건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다는 것은 타인이 상처를 받는 언행의 범위를 잘 파악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영악했지만 악독하지 못해서, 굳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눈앞의 겁먹은 햄스터를 굳이 더 위협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세진은 그의 튀어나온 귀와 꼬리를 지적하는 대신 화장실을 가리켰다.

“형, 얼굴에 침 흘렀어요. 씻고 가세요.”

뭐, 좀 열받게 하는 것도 그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터였다.

“나, 나 그루밍했거든…!!”

하지만 우습게도 배세진은 그런 이세진의 배려를 아주 처참하게 묵살하며, 그루밍을 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었다. 얼굴에 침이 흘렀으니 씻고 가란 이세진의 말에 본능적으로 답을 해버린 것이다. 도대체가 왜 쓸데없는 것에 스위치가 눌려선! 하지만 억울하잖아. 내가 아침마다 얼마나 깔끔하게 그루밍을 하는데! 자신의 머리 위에서 쫑긋대고 있는 햄스터 귀를 두 손으로 가려낸 배세진이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이세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 넌 내가 햄스터 수인인 걸 알았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치부를 가리듯 두 손으로 햄스터 귀를 가린 배세진의 물음에, 이세진은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물어보면 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아무렇지 않을 건 또 뭐고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세진은 꽤 짜증이 난 상태였다. 술 취한 놈 데려다 집에 재웠더니,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소리 대신 한다는 게 저런 소리인 게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 떠나서, 태도를 보아하니 이제 족보 달라고 하면 내가 자기 비밀을 담보로 잡고 협박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얻은 거 하나 없이 귀찮은 일만 했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게다가 일어나자마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 보니, 평소에 해 대는 듣기 좋은 말 대신 제법 까칠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다소 날이 서 있는 이세진의 말에 흠칫 놀란 배세진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려서부터 차별을 받고 살아와서인지, 알게 모르게 남 눈치를 살피는 안 좋은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인간의 눈치를 보는 제 행동이 씁쓸하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밤에 자신이 저지른 추태가 떠오른 배세진은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해 보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민폐를 끼친 건 맞으니까.

“…미안해. 이 말을 하는 게 먼저였는데, 내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실수했네. …이해 못 하겠지만 나한테 이 문제는 매우 예민한 부분이라, 물어봤어.”

넌 이 사회에서 소형종 수인이 얼마나 차별받고 사는지 모르잖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멸시를 받아보지 않은 네가 내 기분을 어떻게 알겠어. 인간으로 태어나, 아무 눈치 볼 것 없이 살아온 이세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해진 배세진이 시큰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냉큼 뒤돌아섰다.

“정말 미안한데, 화장실 한 번만 빌릴게. 신세 진 건 나중에 꼭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은 배세진이 도망치듯,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한숨을 푹 내쉰 이세진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갈무리를 좀 하고 내뱉었어야 했는데, 실수했다. 차라리 배세진이 끝까지 짜증 나게 굴었으면 상관없었을 텐데, 마지막에 가서 팍 기가 죽어 제 눈치를 살피는 바람에 애먼 사람을 괴롭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더 찝찝했다.

“그럼 나 가볼게, 미안했어.”

 

배세진은 세수라도 한 듯 물기 어린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세진은 한층 누그러진 톤으로 대답했다.

“별거 아니었어요. …아침이라 예민해서, 날카롭게 말한 건 죄송해요.”

서로 사과를 주고받았지만 서먹해진 분위기는 풀릴 줄을 몰랐다. 둘 사이에 투명한 벽이라도 놓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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