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mond Heart

#조직물 #마크 #스파이 #킬러


**매주 월/금 오후 6시 업로드

**폭력적 묘사가 불편하신 분들은 다른 글을 봐주세요.

**노래 Alan Walker & Sophia Somajo - Diamond Heart를 바탕으로 창작된 글입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Cause every station is playing our song.

모든 곳에서 우리의 노래가 흘러나오니까.







    며칠 전, 마크는 서랍에 서류를 넣다가 안쪽에 깊숙히 박혀있는 무언가를 보고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제노가 죽었을 때 그의 몸에 있던 음성 기록 장치. 쓰러져 있는 제노의 몸에서 가져왔던 소지품 중 하나였다. 당시에 마크는 조직 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던 여주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기록을 듣지않고 서랍 안쪽 깊이 넣어두었다. 좀처럼 휘둘리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 때만큼은 귀로 들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보다 여주의 눈물을 더 믿고 싶었으니까. 그 일이 있고나서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마크는 그것을 다시 보게되었다. 그는 분명 여주를 믿고 있었지만 그 물건을 보니 그동안 여주가 홀로 있을 때 어딘가 나사빠진 사람처럼 종종 멍을 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하루가 다르게 시름시름 앓아가는 듯한 여주의 상태가 걱정되었는데, 혹시 이 음성 파일에 그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 마크는 처음으로 그런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결국 기록 장치를 밖으로 꺼내 음성 파일을 컴퓨터에 옮긴 마크. 재생버튼을 누르자 마크의 귀에 흘러 들어오는 대화. 그 대화의 주인공은 제노와 신여주였다.



    "신여주..."

    "그러게 왜 나한테 잘해줬어."

     "........"

    "스파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병신같이."

     "............"

    "시티 조직이 스파이한테 절대 뚫리지 않는 곳이라더니. 난 너무 쉬웠는데 말이야."



    그것은 분명 여주의 목소리였다. 여주의 목소리로 '스파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아, 설마. 아닐거야. 어느새 창백해진 마크의 낯빛.



    "결정했구나."

    ".........."

    "날 죽이기로."

    ".........."

    "그래. 죽여."

    "..........."

    "어서 쏴."



    그리고 이내 들리는 총성. 바닥에 툭- 쓰러지는 소리. 한참의 정적 뒤, 여주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날 마크가 전화기 너머 들었던, 숨이 꺽꺽 넘어갈 정도로 목놓아 울던, 그녀의 오열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당시 철렁 내려앉았던 느낌이 데자뷰처럼 그에게 찾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이려나. 신여주가 시티 조직에 들어온 스파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충격에 의한 것이겠지. 마크는 건조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여주가,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여주가 스파이었다니.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이제와서 뭘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여주를 죽이기에는 마크가 그녀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기에. 

    명백한 증거를 귀로 똑똑히 들었음에도 마크는 그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여주가 보여주었던 눈빛, 그녀의 짧은 말 한 마디, 모든 것에서 마크에 대한 사랑을 느껴왔는데 그것이 다 거짓이었을까. 누가 보아도 혼란스러운 눈을 한 채,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대고 눈물 한 줄기를 흘리는 마크.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스파이를 잡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조감보다는, 이런 큰 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사실에 꽤나 큰 좌절을 삼키고 있었다. 그로 인한 눈물이 마크의 큰 눈에서 시작되어 콧대를 따라 흘러서 콧망울에 매달려 있었다. 떨어질 듯 말 듯한 그 모양새가 벼랑 끝에 선 마크와 비슷했다.

    여주의 목숨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그녀에게 뺏기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이 갈림길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마크는 여주를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 그건 마크에게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덫에 걸려버린 걸 수도. 마크는 여주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너무 큰 나머지 아직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다 놓을 수 없었다. 마크에게 내뱉던 말 중에 진심 어린 마음 한 조각도 없을리가. 그럴리는 없다며 마크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았다. 그래서 여주 몰래, 그녀가 자주 입는 자켓에 도청장치를 설치해놓은 것. 그리고 결국 오늘 확실하게 알게된 사실. 그녀는 마크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온 스파이었다.

    귀 너머로 들려오는 여주의 울음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제노의 음성 기록 장치에 녹음되어 있던 여주의 울음보다 더 처절한 소리. 마크는 결국 손을 들어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눌러 소리를 껐다. 남아있는 물기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겨우 잡아낸 이성을 되찾아 마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빠졌다.



    "모레 새벽에 진행하지."

    "ㄴ...네???!"



    방금 마크가 들은 여주의 목소리는 분명 떨리고 있었다. 마치 정재현의 명령을 어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정재현이 떠난 뒤에 목놓아 울었던 이유는 분명 여주도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겠지. 마크는 애써 그렇게 추측해보았다. 그 이유가 아니면 여주의 행동은 설명될 수가 없었으니까. 모레로 앞당겨진 작전에 여주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으니... 분명 그녀도 마크를 쉬이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여주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마크를 사랑하기에. 

    결국 마크는 여주가 스파이라는 걸 알게 된 사실을 숨기기로 결심했다. 남은 기간, 아니, 기간이라고 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시간동안 여주를 회유해 마음을 되돌리고 차라리 이 곳에서 멀리 떠나는 것을 여주에게 제안하기로 다짐했다. 과연 가능할까. 마크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다. 항상 냉철한 두뇌로 본인의 선택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마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결정이 자신의 이성이 내린 것인지, 아니면 감정이 내린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여주와 함께 멀리 도망간다 하더라도 마크가 이끌고 있는 이 시티 조직은 내일 새벽, 그니까 24시간 조금 뒤, 에이스 조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될 것인데 이 조직을 포기할지 확언할 수 없었다. 여주를 위해 조직을 포기할지, 아니면 여주와 조직 모두를 잃을지. 굳이 따지자면 마크는.... 전자였다.

    다시 한 번 마른 세수를 하고는, 마크는 자신의 방에서 나와 로비로 내려갔다. 자신의 연인이자 스파이인 신여주를 만나러.




















-


    여주는 아직도 훌쩍임이 남아있는 자신의 가슴을 겨우내 진정시키며 추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크와의 이별이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 원망의 화살은 이 작전을 지시한 정재현이 아닌 본인에게 향해 있었고, 여주는 끝없이 본인에게 저주를 퍼푸으며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볼에 남아있는 눈물이 차가웠다. 내가 얼마나 울었지, 늦게 들어가는 걸 보스가 알고있으려나. 마크가 몰라야하는 것이 맞는 거였지만, 여주는 내심 자신의 빈 자리를 마크가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안 그러면, 조금은 서운할 것 같아. 여주는 이 와중에도 짧게 스쳐가는 생각마저 마크라는 것을 깨닫고는 짧게 욕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기구한 인생이 있을까. 

    시티 조직 건물에 다다라서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여주는 생각했다. 사라지고 싶다.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하고 이대로 증발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각을 하자 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고개를 세게 내젓고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들을 이끌어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마주한 검정 철문.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진짜 죽을만큼 아팠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와 다른 건, 지금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찢어진 것처럼 아프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문을 열고 조금 더 들어간 로비에서 여주는 누군가를 보고 온 몸이 얼어버렸다. 피부의 솜털들이 바짝 서서 더 오한이 느껴지는 기분. 그곳에는 마크가 서있었다. 



    "이 밤에 어디다녀와."



    마크는 태연하게 여주를 보며 물었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서있는 거지. 여주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멍하니 마크만 바라보고 있는데, 마크는 여주에게 한 걸음씩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 푸른 달빛에 비춰져서 더 푸른 빛을 띠는 마크의 흰 피부와 까만 눈동자의 대조가 여주를 압박하고 있었다. 마크의 표정은 애매했다. 여주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애매함이 만연했다. 여주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 애써 숨기려는 마크의 작전이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 밖에.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마크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읽은 여주다. 마크는 더 이상 여주에게 자신의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주를 와락- 안았다.



    "걱정했잖아."

    ".........."

    "어디 다녀왔어."



    지금이라도 그냥 말해주길. 여주가 솔직하게 말해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곳을 떠날텐데. 도저히 마크 본인의 입으로 여주의 정체를 말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그래버리면 분명 씁쓸함을 맛볼 게 뻔하니까. 그래서 마크는 여주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솔직하게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말할 기회. 하지만 여주는 또 다른 거짓말을 뱉었다.



    "밤산책 좀... 다녀왔어요."



    밤산책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핑계인가. 평소에 산책을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리고 마크도 그런 여주를 알고 있는데 말이다. 여주는 자신이 만들어낸 핑계가 얼마나 하찮고 병신같은지 말을 뱉자마자 느꼈다. 이미 쏟아버린 말들을 담을 수는 없겠지. 눈을 질끈 감으며 내적 비명을 지르는 여주였다. 얇은 티셔츠를 입고 자신을 꼭 안고 있는 마크를 똑같이 안아줄 수는 없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미안해서. 죄책감때문에 그의 등에 자신의 팔을 두를 수가 없었다.



    "....산책.."

    "........"

    "왜 혼자갔어. 위험하게."

    ".....그냥, 잠이 안 와서요."

    ".........."



    이 와중에 마크는 여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마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데. 눈물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아내는데, 묘하게 마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주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의 품을 벗어나 마크의 얼굴을 바라보려 하는데, 그녀의 시도는 마크에 의해 무산되어버렸다. 더 강하게 여주를 끌어안은 마크 덕분에 밀치기는 무슨, 꼼짝도 못하고 갇힌 꼴이 되어버린 여주다.



    "보고싶었어."

    "ㄴ..네??"

    ".... 나 떠나지마."

    "......!!!!"



    여주의 양심을 정확히 겨냥한 마크의 말 한 마디에 여주는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설마.. 눈치를 챈 건가. 생각해보지만 그럴리는 없다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마크는 분명 여주를 안아서 자신의 품에 들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여주는 자신이 마크를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주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는 마크가 오늘따라 작아보였다.



    "....잠깐 산책 다녀온 건데 왜 그래요..."

    "그러게. 왜 이렇게 널 잃을 것 같은 기분일까."

    "............"

    "오늘... 같이 있을까?"

    "..........네?"

    "......오늘 밤에.... 같이 있을까..?"



    마크의 간절한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두 사람에게 닥칠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여주와 마크가 지금처럼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몇 시간만이라도, 몇 분만이라도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뿐.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박을 사람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게 참 비상식적이었다. 

    여주는 마크의 제안에 선뜻 그러자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고 그 말을 삼켜냈다. 여주가 마크 본인의 죽음인지도 모르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눈빛과 손길을 건넬 마크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대가 없는 그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받을 자격이 여주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아니요."

    "왜...?"

    "아.. 오늘은 좀 많이 피곤해서요. 혼자 있고 싶어요."

    "....그렇구나."

    ".........."

    "........"

    "...그럼 먼저 올라가 볼게요. 잘 자요."

    "........."



    여주는 힘이 풀린 마크의 팔에서 벗어나 그를 뒤로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마크는 어느새 텅텅 비어버린 자신의 팔 안을 허망한 듯 바라보며 남아있는 여주의 온기를 놓치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일 초가 지날수록 차가워지는 공기가 이 관계의 미래일까. 금방 날아가버린 여주의 온기에 한기를 느끼는 마크. 제발 이게 우리의 끝이 아니기를 바라보지만 현실을 설득해볼 수는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매정한 새벽이었다. 























-


    마크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자마자 터져나오는 비탄을 오른 주먹으로 꾹- 막고는 빠르게 뛰어서 방으로 들어가는 여주다. 방에 들어가고 나서도 혹여나 자신의 소리가 들릴까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쏟아내었다. 엉망이 된 여주의 꼴. 이렇게 약해져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내지 못하는 자신의 꼬라지가 비참했다. 한 시간을 그러고 있었을까. 웅크려 있어서 저린 팔다리를 겨우 펴고는 자켓을 옷장에 걸고 온 몸에 기운이 빠져 침대에 털썩- 누웠다.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여주 인생의 유일한 사랑을 본인의 손으로 없애버려야 하는 이런 비극을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해보았다. 신을 믿지도 않았고 한 평생 종교같은 걸 가져본 적도 없었지만, 누가 되었든 좋으니 제발 마크와 자신을 이런 식으로 떨어뜨려 놓지 말아달라고 비는 여주였다. 너무 많이 울어서 빨갛게 헐어버린 눈두덩이와 코가 화한 느낌이 들었지만 또 다시 눈물이 흐른다. 구제불능이구나. 

    그녀의 진심어린 기도는 동쪽에서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대체 누가 들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이없이 허공에 말을 뿌리는 바람에, 아침이 되자 여주의 방은 그녀의 소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제노를 죽이던 날 새벽처럼,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염원들이 힘없이 둥둥 떠다니며 여주를 비웃는 듯했다.








'Cause every station is playing our song.

모든 곳에서 우리의 노래가 흘러나와. 







엔시티 나페스 • 모든 글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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