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사족: 개인적으로 a Hisa의 별의 자장가(星のこもりうた)라는 음악이 브금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

* 콜의 동료 퀘스트 약스포 있습니다.

* 트레벨리안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람이 차다.


인퀴지터는 문득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았다. 낮에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을 아직 닫지 않았던 것이다.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있었고, 그 옆에서 조그만 촛불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녀는 책상에서 일어서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닫고 돌아설 생각이었지만, 밤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순간 그녀는 지금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한동안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녀는, 뒤를 돌아서 책상을 한 번, 그리고 침대를 한 번, 또 밤하늘을 한 번 보더니,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높은 성벽은 인퀴지터가 아주 좋아하는 장소였다. 자신의 침소 발코니 역시 경치를 즐기기엔 그만이었지만,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이 뻥 뚫린 성벽을 그녀는 더 좋아했다. 


높은 곳을 찾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 세라는 귀족답지 않은 취미네, 라며 놀리듯이 웃었었다. 그렇지- 인퀴지터는 그렇게 대답하며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집인 오스트윅에 있었을 때부터 종종 시계 첨탑이나 건물 꼭대기 같은 높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쨌든 귀족 가문이라 어렸을 적부터 공부와 할 일이 많았던 그녀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취미였다. 물론 절대로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높은 곳을 찾는 것은 밤일 때가 많았다.


오스트윅에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딱히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었다. 가끔 '그러고 보니 오스트윅은 어때요' 같은 식으로 문득 그쪽으로 화제가 옮겨질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적당히 얼버무렸다. 딱히 말할 필요도 없었고, 뭣보다 그리 떠올리고 싶은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콘클라베 참석을 위해 챈트리로 왔을 때도, 졸지에 죄수 신세가 되었을 때도, 갑자기 안드라스테의 전령으로 추앙받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인퀴지터가 되어 테다스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지금도, 전혀 집은 그립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했다. 규칙에, 가문에, 전통에, 그 자신에게, 그리고 그의 자식들에게. 세상 모든 것에. 트레벨리안 가문은 대대로 독실한 챈트리 집안으로, 전통과 명예를 그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녀 역시 그러한 신조를 교육받으며 자랐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신조에 대한 부분이 아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는 부분이다. 트레벨리안 가문을 잇는 장남, 그에겐 그것만이 중요했다. 가문을 이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막내딸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몇 살 때였을까. 생각보다 상당히 최근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을 몰랐다. 아버지가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은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능력이 모자라서, 아직 자격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녀에게 하나뿐인 아버지는 특히 더 중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온갖 지식을 쌓았고 여러 언어를 배웠고 귀족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들을 모조리 익혔다. 무술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진정한 트레벨리안 가문의 일원으로서 문무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선천적으로 신체 능력이 출중하지는 못해서 방패를 들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작은 몸집과 유연함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어느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챈트리로 갈 것을 결심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가문을 이을 가능성이 없는 자식은 챈트리로 가는 것이 전통이지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는 이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결심이 서자 그녀는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버지는 "그런가, 그럴 때군." 한 마디만 했을 뿐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의 나이를 알고는 있을까 궁금했다.



인퀴지터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바람이 차다. 스카이홀드의 밤바람이 새삼스럽게 그녀의 옛 기억을 일깨우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성벽을 올랐다. 좀더, 좀더 높은 곳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정쩡한 높이여서는 밤 산책을 나온 컬렌이 그녀를 목격하고 걱정스레 내려오라고 소리칠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싶은 곳에 다다르자, 그녀는 차분히 앉을 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때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콜?"


소년은 인퀴지터가 적당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장소에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듯이 앉아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움직임으로,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말없이 빤히 인퀴지터를 바라보던 콜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늦었네."


인퀴지터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다가, 밤이 늦었는데 일어나 있느냐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음, 자다 깨서 물 마시러 나왔다가 기왕 나온 김에 산책하는 거야."


소년은 인퀴지터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차, 싶었다.


"안 잤어. 요 며칠 간 한숨도. 잘 수 없다. 계속, 계속 계속, 불안해서."


소년은 단조로운 어조로 마디를 끊어 가며 말했다. 인퀴지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깜빡했어. 너한텐 거짓말이 안 통한다는 거."

"아무한테도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특히 컬렌한테. 그래서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거짓말한다."

"……."


인퀴지터는 말없이 웃음지었다. 콜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꾼 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다가가 앉았다.


"그래서 여기 있었니?"


소년은 대답 대신 작게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웃어보이고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찬 바람이 불었다.


"…에블린은 나쁘지 않아."

"콜, 네가 정말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아무 말 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쯤 알 수 있었을 텐데."


긴 침묵을 깨고 소년이 입을 열자마자 인퀴지터가 대답했다. 하지만 콜은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에블린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 생각이 계속 괴롭힌다. 전령으로 칭송받을 때도 인퀴지터가 되었을 때도.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 속에서 계속 떠오른다. 그 많은 칭송과 갈채 속에서도, 사실은, 진짜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콜."


인퀴지터는 평소에 없던 낮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콜은 멈칫하며 말을 멈추고는, 이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이라고 사과했다.

또 다시 침묵. 바람은 여전히 찼고 하늘이 밝아오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계속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의외로 인퀴지터였다.


"…노래 좋아하니, 콜?"


콜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인퀴지터를 바라보았다. 먼저 말을 걸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인퀴지터는 계속 시선을 하늘에 둔 채로 말했다.


"오스트윅에 있었을 때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야. …얼굴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 얘기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러주셨던 자장가는 왠지 모르게 기억하고 있어. 그 노래를 떠올리면 오스트윅의 밤하늘이 생각나. 그것만은, 그립다고 생각해."


콜은 가만히 인퀴지터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녀는 콜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리 와볼래, 콜."


그녀는 겨우 고개를 돌려 콜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콜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앉았다. 콜이 가까이 오자 그녀는 살포시 그를 끌어안았다. 한쪽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토닥이면서.

그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 내린 후 저 멀리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

밤하늘을 바라보면 항상 우리를 지켜봐주는 아이.

가끔은 부끄러운지 구름 뒤로 숨어버리는 아이.

깊은 밤 들리는 소근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새 편안히 잠이 듭니다.

고요하고 조용한 밤 들리는 노래.


노래가 끝나도 그녀는 팔을 풀지 않았다. 손은 계속해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어르듯이.


"노래는 잘 못하지만."


여전히 콜을 끌어안은 채로 에블린이 말했다.


"응. 메리든이 훨씬 잘 불러."

"넌 가끔 불필요하게 솔직해서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

"하지만 따뜻해."


콜이 조용히 말했다. 에블린이 소리 죽여 웃었다.


"너도 따뜻해. 정말 인간다워졌네. 이대로 잠들어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나는 잠을 안 자."

"으음, 아직 조금 멀었나."


에블린은 잠시 사이를 두고서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그를 쓰다듬으면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간다워서 정말 다행이라고, 콜은 속으로 생각했다.





==============================


중간의 노래 출처는 소이캔들 브랜드 에테르 캔들의 '별의 자장가(lullaby of star)'의 소개 구절. 







그때 그때 좋아하는 것을 막 씁니다.

Maria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