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018년 다이어리를 샀다. 4월 끝자락에 다이어리가 무슨 말인가 싶지만 그냥 사 봤다. 기록하는 데 순서 없고, 날 보내는 데 순서 없고, 떠오르는 데 순서 없으니까. 몇 년 전만 해도 꾸미는 데 중점을 뒀는데 이번에는 열심히 기록하려 애쓰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되씹고 뱉어내는 것. 그림이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고 싶으면 음표를 남긴다. 4월의 내가 고스란히 드러났으면 좋겠다. 고전 시가 공부를 하다 사월에 꼭 어울리는 시가를 찾았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졔 일지춘심을 자규ㅣ야 아랴마난 다정도 병인 양하야 잠 못드러 하노라 하얀 배꽃 맑은 달빛 은하수는 한밤인데 아직 남은 푸른 내 맘 소쩍새가 어찌 알까 정 많음이 병이라서 잠 못 들고 뒤척이네 

초여름까지 내 마음을 달래줄 것 같다. 다정도 병인 양 하야 잠 못드러 하노라. 무던하고 다정한 사람. 특별한 거 하나 없이 평범한 사람. 싫은 소리 들어도 표정조차 구기지 못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꾸역꾸역 삼킨다. 어쩌다 힘든 얘기를 꺼냈을 땐 일주일 간 후회한다. 분명 상대도 힘든 일이 있을 텐데, 내 얘기를 얹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기대는 건 아닐까. 나는 왜 아직도 홀로 버티지 못하는 걸까. 좀처럼 과거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쥐지 않고 놓으면 그만인 것을 6년이 지나도 놓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 시절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게 아닐까. 이왕이면 돌려놓고 싶다. 내가 아니라 다른 아이였다면 무너지지 않았겠지. 그냥 그런 헛된 생각이 종일 동동 떠다닌다. 

 내 글이 평가받는 게 나는 정말 무섭다. 중학생 때 아빠가 했던 말이 글을 쓸 때마다 떠오른다. 네가 쓴 글을 누가 읽겠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좋은 글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오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나온다. 나는 그닥 좋은 사람이 아니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기에 아빠의 말을 떠올리면 한숨만 뱉는다. 우울과 동거한 지 6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슬픔과 우울을 지어다 예술해 먹어라 하더라. 나는 누군가의 밥을 지을 자격이 없어 평생을 굶는다.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으면 피어나는 나의 갈비뼈 사이사이에 내가 삼킨 눈물들이 새어나온다. 나의 울음을 빼 내려면 평생을 굶어야 한다. 외로움도 외롭지 않았던 사람이 안다고, 나에게서는 울음 뿐만 아니라 사랑을 앗아야 한다. 잃는 게 무서워 시작이 두렵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쓰고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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