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럼 런웨이 위의 아츠시는 빛이 났다. 앞자리에서 바라보고 싶었지만 나카하라는 멀리 불이 켜지지 않은 기둥앞에서 가만히 기대어 런웨이를 바라보았다. 아츠시의 첫 해외 워킹이였다.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아츠시는 생각했던 대로 잘 해내었다. 너무도 많이 성장했다. 비상하기위한 끝없는 날개짓이 만들어낸 성체의 나비는 어떠한 것보다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더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이 녹아들어가 있었다. 


"잘했어"


뒤에서 조용히 되뇌이는 말들이 아츠시에게 닿기를 바라며 나카하라는 아츠시가 시야에서 없어질때까지 소리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네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도망치듯 온 지난날들이 후회되지 않을 쇼였다. 자꾸만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독이고 붙잡았던, 이제는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그 때의 나에게 나는 조그맣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나카하라 츄야라는 존재가 어쩌면 '모델' 아츠시의 빛에 그림자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더랬지. 넌 게임의 주인공처럼 너에게 왔던 난관들을 뛰어넘고 성장했지만 그 난관들이 없었어도 넌 충분히 성장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허들을 만들어버린건 나였었다. 


아, 눈이다. 


내가 없어야 너는 더욱더 빛나고 완성될거라 생각해. 그 마음하나에 저는 모든걸 정리하고 여기 프랑스로 날아왔다. 발밑에 쌓인 눈들이 뽀득 거렸다. 우산이 없어 자꾸만 머리위로 떨어지는 눈들에 손을 들어 툭툭 쳤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였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첫 눈이 오는 날 너의 첫 해외 워킹이였으니 앞으로는 더더욱 잘 될거야-라는 근거없는 바람을 담아서 나는 너에게 보냈다. 내 바람이 눈송이 하나하나를 밟고 건너건너 너에게 닿을것임을 의심치 않아. 


-


"일어났었네?"
"아, 응. 오빠 뭐먹을거예요? 엄마가 물어보래요"
"넌 뭐 먹고 싶은데?"  
"아이참, 오빠 먹고 싶은거 물어보라고 했는데..."
"난 아무거나 괜찮아. 자 여기 이건 오늘 못 놀아줘서 주는 선물"
"우와!! 이번에 새로생긴 가게 마카롱이다!! 고마워요!"


콩콩 뛰어 계단을 내려가는 귀여운 꼬마아가씨를 보며 나카하라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었다. 자신이 프랑스에 처음 왔을때 정말로 막막했더랬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알지 못했으며 이 지역의 이름조차 알기 힘들었으니까. 캐리어를 옆에두고 근처 벤치에 앉아있던 저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준것이 이 꼬마아가씨였다. 그 당시 아이가 무슨 말을 하며 건네주었는데 불어를 하나도 못하니까 그냥 땡큐- 하고 받았었다. 나란히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더니 데리러온건 이 천방지축 꼬마아가씨의 부모님이셨다.


"여기서 뭐해요?"


아, 영어다. 저 말을 듣고 처음든 생각이였다. 


"아, 저 아시아..쪽에서 비자받고 오긴 왔는데 지낼 곳이 없네요"
"관광객인가요?"
"아...그건 아니고 사실 정말 아무 계획없이 왔어요. 멍청이같죠?"
"그럼 우리집으로 갈래요?"
"네?"


실은 자그마한 카페를 하나하는데 일손이 필요했던 참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저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말이었는데 솔직히 외국에서 아무나 덥썩 따라가는건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건 밑져야 본전뿐이였고 별다른 선택도 없어서 무작정 감사하다고 따라갔었다. 솔직히 말하면 평생 쓸 운을 다 쓴것 같기도 했다.  뭐라도 도와줄거없나 계단을 내려갔더니 이 귀여운 아가씨가 제 무릎을 붙잡고 놀자고 칭얼대고 있었다. 


"떼쓰는거 아니야- 나카하라상 금방 나갔다 왔잖니"
"괜찮아요. 저녁시간전까진 들어올께요, 얼른 준비하고 와"


요 아가씨가  아까 건네주었던 마카롱만 부엌에 후딱 놔두고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내려왔다. 덕분에 벗어놓았던 윗옷과 목도리를 다시 두르고는 부츠를 신느라 낑낑 대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리줘. 신겨줄께. 벌써 이집에서 2달째 살고 있었고 하루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신발을 신겨주자마자 문을 열고 나서는 저 폴짝폴짝 뛰고 있는 아가씨가 자신을 데리고 오자는데 크게 한 몫 거들었다고 들었다. 


"멀리가지 말고 집앞에서 놀아야지. 그래야 엄마도 걱정안하고 우리도 실컷놀고 들어가지. 안그래?"
"나 저기 놀이터가서 놀구싶은데"
"그럼...내일 가는게 어때? 약속! 나 약속 안지킨적 한번도 없잖아"


잠깐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뛰어다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


"안녕히 가세요"


기지개를 쭉펴고는 간단하게 뒷정리를 하고는 문밖을 나서는 발걸음이 신이났다. 오늘로써 주말의 시작이였다. 딱히 주중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일이 없는 날이 기분이 좋은 날인건 틀림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제 얼굴과 맞부딛쳤다. 어제만큼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대신 차가운 공기덕에 어제 온 눈이 얼어있었다. 그냥 어제 데리고 놀러 갈껄그랬다. 오늘 데리고 가더라도 진짜 눈한번 안떼야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반복하며 들어선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카하라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벌써 준비를 하다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집에 들어온 자신을 그대로 뒤돌아서 문밖으로 낑낑대며 미는게 귀여워서 그대로 밀려주는 척을 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 있을까. 


"조심해서 놀아야 해. 오늘은 많이 미끄러우니까."
"응응, 알았어"


손을 꼬옥 잡고 신신당부를 한게 무색하게 도착하자마자 달려가는걸보니 아마도 자신의 당부는 까먹었지 싶다. 별수 없지. 정말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쫒을 수 밖에.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벤치에 있는 나뭇잎을 대충 바닥으로 슥 밀쳐내고는 엉덩이를 붙였다. 


나카하라는 자꾸만 가라앉는 눈커플을 손으로 문질렀다. 가만히 앉아서 조그마한 여자아이하나를 삼십분이 넘도록 바라본다는건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였다. 하품까지 나오는 마당에 이러다 자겠다 싶었지만 아가는 갈 생각이 없는건지 혼자 노는데도 잘만논다. 하품과 함께 눈물까지 나와서 이제는 가자하자 싶어서 일어나는 찰나에 눈물사이로 헛발질을 하는게 보였다. 저기 높은...


"...!!!!!"


순간 정말로 심장이 멎은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놀라면 아무것도, 아무소리도 못한다는게 이런건가 싶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그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곁에 있던 짙은 남색 패딩을 입으신 분이 받아주지 않으셨다면...상상도 하기 싫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저..."
"이렇게 될거라고는 생각...아"


정신이 없어서 제 모국어가 들리는줄도 몰랐고 지금 자신이 하는말이 무슨 언어인지도 몰랐었다. 다만 내 눈앞의 아이의 무사함이 내가 신경을 쏟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제 눈앞에 서있는 누군가가 제 신경을 뺐었다. 아츠시다. 이 아이를 받아준이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은 어제 자신이 런웨이를 본 아츠시였다. 분명 쇼는 끝났고 돌아갔을터였다. 여기 있을리 없었다. 아니 돌아갔어야했다. 지금 너와 내가 만나서는 안되었다. 말없이 4개의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이 영겁같았다. 둘 다 입을 떼지 못했고 그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


"너 왜 여기있어"
"작가님, 아니 츄야 당신보러 여기 있는거예요"
"쇼 없어?"
"다다음주에 국내에서 두개"
"당장 돌아가. 뭐하는 짓이야 이게. 너 이제 나같은 작가랑 작업하던 아마추어 모델 아니잖아. 니가 얼마만큼 유명해졌는지 내가 모를거라 생각하지마. 멍청한 짓 그만두고 돌아가"
"같이 가요"
"싫어. 안가"
"왜. 여기서 딱히 고정적인 일이 있는것도 아니잖아"
"알바는 일로도 안치냐?"
"비자도-"
"나 안돌아갈꺼야. 무슨 좋은 기억이 있어서 내가 다시 가겠냐"
"알아요. 당신 아프고 고생만 한거. 그래도 나랑같이가요. 내가 만들어주면 되는거잖아. 좋은 기억"
"아츠시"
"응"
"너 어린애 아니잖아. 이런일이 떼쓴다고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해?"
"떼라도 써보는거예요. 무슨 방법을 써야할지 모르겠으니까"
"됐다. 너 쇼날짜 다가오면 알아서 가겠지. 다들 고맙다고 저녁먹고 가라고 하니까 저녁이나 먹고 가"


문이 닫히는것과 동시에 아츠시는 두 손을 꽉 쥐었다. 한번쯤은 이기적이여도 괜찮지 않을까. 나 열심히 당신 찾아다녔는데 그랬는데 얻은건 당신이 프랑스로 갔다는 거. 그거말고는 당신의 발끝조차 보기 힘들었어. 나카하라상 당신은 아마도 모르고 있을거였다. 일찍부터 들어온 해외 요청들에 전부 거절해버린건 아츠시였다. 츄야가 어디있는지 알길은 없었고 적어도 국내에는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 같은 하늘, 나라에 있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제 수고들이 죄다 수포로 돌아간건 당신이 프랑스에 있다는 소식이였다. 나 그동안 어떤 누구랑도 자본적도, 좋아해본적도 없어. 칭찬받고 싶었는데 제가 마주한건 츄야의 화난 얼굴이 다였다. 꼭 처음에 저와 그의 만남같아서 마음한구석이 아린건 어쩔수 없었다. 


아츠시는 정말로 저녁만 먹고 갔다. 예상외로 그는 서툴긴하지만 일반적인 불어정도는 할줄알았다. 통역을 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저로써는 한편으로는 맥이 빠졌다. 공항으로 바래다 주겠다는걸 아츠시는 한사코 거절을 하더니 대신 조그마한 수첩같은것을 내밀었다. 


"선물이예요"
"뭔 선물이야. 이거 새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선물이예요. 나 갈게요"


뭐야. 아츠시는 아무런 설명 없이 예의 그 소년같은 웃음을 띄고는 돌아섰다. 시야에서 없어질때까지 녀석의 뒷모습을 응시했지만 아츠시는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


침대옆 스탠드만 남기고 나는 아츠시가 건네주고간 수첩을 들었다. 한장을 넘긴 수첩의 날짜는 내가 내 나라를 떠나온 그 다음날이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가을즈음. 장마다 짤막한 일기들이 흰 공간을 채웠다. 반을 읽고서 나는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아니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무거웠다. 너의 마음이. 나를 잊어달라 멀고먼 여행을 했던 나를 너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생각했다. 너의 글은 나를 잠식시키고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모델인 나카지마 아츠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로서 나에게 건네는 고백들은 하루도 빠짐없었다. 써야할 장 수보다 썼던 장들이 점점 늘어갈 때 , 꾹꾹 눌러쓴 너의 글씨들이 마지막 하드커버에 자국이 남기시작했을때 너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불씨를 없애려 들이부은것이 물이 아니라 기름이였던걸까. 사그러들거라 생각했던 불씨는 좀처럼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커져만 가서 너를 삼켜버렸다. 


'당신이 나 대신 무거움을 짊어진 것인걸까'


'당신의 겨울을 나의 봄으로 녹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였던거같아'


아츠시


'당신을 놓친 그 사이 공기의 적막함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


넌, 도대체 


'그림자 정도는 보여줘요. 제발'


떨어진 눈물방울에 느낌표가 번졌다. 아츠시의 일기의 글자들이 주홍글씨처럼 온몸에 새겨지는것 같아서 너무 아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흐려진 시야를 닦아내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가 한장이 넘어갈때마다 나는 목놓아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봄날의 벚꽃과 같았던 소년의 웃음이 너무도 보고 싶어졌다.  


'나는 단지 나란히 서고 싶었던 것 뿐인데 한발자국이 무섭게 달아나는 당신을 나는 쫓아갈수 있을까'


-


네가 다녀간 뒤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너를 가득 담은 일기장을 몇번이고 버리려고 했으나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너가 떠올라서 도저히 버릴수가 없었다.  나는 너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를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너와 나, 둘 모두를 위한 길이였고 그래야만 했었다. 너는 내가 없는 기간동안 네 날개를 닦느라 여념이 없는 줄 알았다. 갈고 닦아서 누구보다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근데 그 과정속에 내가 녹아들어가 있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나같은건 잊었어야했고 나는 너가 나를 보아도 지나치길 바랬다. 욕을 할지언정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정작 만난 너는 그 동안 변함없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곧 시들어버릴 화려한 꽃다발이라 생각했던 너는 커다란 고목의 묘목이었고 어느덧 크게 자라서 나에게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를 감싸주고 보듬어주던 네 손길이 금방 사그라들것이 아니라는걸 나는 정말, 몰랐던걸까. 아츠시, 난 이제 내가 한 일에 확신이 들지 않아. 모든 선택들이 낸 결론들이 어그러져버렸다.   


-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 매니저형이 일없다고 했는데? 그리고 애초에 연락없이 찾아올 형도 아니다. 타니자키라면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누구세요?"


다시금 초인종이 가볍게 두번을 울렸다. 뭐야 비오는데 괜히 무섭게 누구길래 이 밤에 찾아온거야. 


"누구시냐고요"
"아츠시, 문열어"


작가님이다. 죽어도 못 잊을 목소리였다.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혹은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채 나는 문고리로 가는 손을 막을수 없었다. 아니 막을 생각도 없었지만.


"왜...이렇게 젖었어요"
"..."
"얼른 들어와요. 뭐해요"
"들어가도 되냐"
"얼른,"


말을 끝맺지 못한 너는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축축하게 젖은 나는 너를 물들여갔지만 나도, 그리고 너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다녀온다는 말은 안했지만... 다녀왔어"


웅얼거리며 반쯤은 씹어버린 말을 내뱉는 당신이지만 이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쑥쓰러움과 부끄러움을 감내했을지 알아서 나는 그저 아무말없이 웃었다. 고마워요. 당신이 나에게 온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나카하라상"
"...어"
"좋아해요. 내가 정말 많이"
"뭐래...도대체 어디가 좋다는거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너한테 했던 모진 말들과 행동을 잊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걸까. 죽도록 미워하라고 한 행동들인데 너는 도대체.
 
"이거 마셔요. 몸 좀 녹이고 있어요"


자신의 앞에 놓인 코코아잔에 자그마한 마쉬멜로우가 동동 떠다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걸 보면 내가 씻고 나오는 시간까지 생각한게 아닐까 싶었다. 아츠시라는 사람은 늘 그랬다. 자신보다 내가 먼저였다. 저 아이의 모든 신경은 내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되어있었다. 내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피곤할 정도로 신경을 쓰던 아이였으니까. 


"안 물어봐?"
"뭘요"
"왜 돌아왔는지"
"물어보면 말해줄거예요?"
"..."
"봐요. 과일이라도 가져올께요"


서로가 서로를 보지 않고 말하는 이 순간조차도 나는 너무나도 좋아서, 지금 사실 가슴이 떨려서 나는 뒤로돌아 당신과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당신이라는 존재는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걸까.


"말안해줘도 괜찮아요. 왔잖아요"
".."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요"


눈물이 맺힌 눈으로 아츠시는 그 어느때보다 해사하게 웃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야. 걱정의 고리들을 맴돌아서 결국 도착점이 이 곳이였다. 네 옆으로 왔으니 더이상 이것 저것 따지고 싶지 않아. 


"...좋아해"
"..."


제 눈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내뱉은 말의 진심은 빨개진 귀가 대신 전해주었다. 코코아잔에 얼굴을 묻고 대답한 탓에 대답이 울렸지만 그 또한 좋았다. 그 파동들이 집 곳곳을 감싸안았으니까. 기분좋은 울림이니까 그러니까 행복해요 난. 


"알고 있어요"
"..."
"그러니까 온거잖아요"
"...정말이지 넌.."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신이 낸 결론은 틀리지 않았고 당신은 행복해 질 수 있을거예요. 네가 그렇게 말해주는 듯해서 나는 눈물대신 너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고맙다고. 알아주어서 정말 고마워.


-


눈을 뜨고 본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가벼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려 준비중이였다. 석양이 지긴 이르지만 햇빛의 색은 진해졌다.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이 든 연인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는 슬핏웃었다. 드디어, 당신이 나에게로 왔다. 위태롭던 사랑의 종지부는 다행히도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많이도 돌아왔다. 마음고생도 많이했다. 나도, 당신도. 그래도 괜찮다. 지금 느지막히 눈을 뜬 오후에 가장 먼저 보이는, 내 눈앞에 담기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나는 이제 아무것도 바랄것이 없어. 


"야 그만봐. 얼굴 닳겠다"
"닳으면 어때요. 내껀데"
"안돼. 니꺼 아니고 내꺼야"
"...고마워요"


츄야는 눈을 감은채 가만히 웃음을 지었다. 저 말에 담겨오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아서. 고생했지. 이제 괜찮아- 와 같이 도닥거려주는 힘이 있는 말이 심장 깊숙히 전해져왔다. 


"나도 고마워"


내 눈앞의 애달팠던 소년은 이제 어디에도 없고 남자인 소년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그는 내 날개가 젖어간다면 기꺼이 우산이 되어줄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우산속으로 아무 의심없이 뛰어 들어갈 것이다.








 (完)















 추신, 당신에게 보내는 그들의 조그마한 이야기 




P.S 1



"근데 너 여기 왜 사냐?"
"이제 집도 골라주려고 그러는거예요?"
"그게 아니라. 왜 이 집이냐고. 너 돈 많잖아 좋은데로 충분히 갈 수 있잖아"
"오늘 아침 뭐 먹을래요?"
"너 이제 내 말도 넘겨듣고 많이 컸다? 어?"


발갛게 되어버린 아츠시의 귀에 츄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귓볼을 손가락으로 통통 튕기며 놀려대는 츄야에 아츠시는 뒤돌아 거실로 나가버렸다. 뭐야. 삐진거야?


"아츠시이 아츠시이 삐졌어?"
"아니 내가 이 집에 살면 안되나. 아니 그러면 애초에 프랑스같은데 안갔으면 되는거잖아"
"뭘 그렇게 투덜거리냐 아츠시이"




P.S 2 


"야 아츠시 너 기억나냐"
"...?"
"너 나 첨만난날 기억하냐고"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거의 7년?전 아니예요?"
"헐헐 야 8년이야 미친!!!"
"뭔 소리예요!"
"이 새끼봐라? 야 됐다 됐어. 니 사랑이 거기까지인가보지"
"아 츄야...!"
"츄우야아아-?! 너 지금 반말했냐?"
"사람이 뭐 그래요?"
"뭐?! 내가 뭐!"
"엄청 유치해졌어. 막 옛날에는 혼자서 시크한척 도도한척은 다하더니"
"뭐 그래서 뭐! 싫냐? 싫냐고오!"
"아니...그런건 아니지만. 아 근데 8년전에 나 어디서 봤는데요. 나 진짜 7년이라고 완전 확신한단 말이예요"
"하긴. 사실 7년전 맞아. 뭐 8년전에는 스쳐지나갔었지. 너 그 때 아쿠타가와 작가랑 작업 한 번 했었지?"
"아아 신인때요? 그 여러명이서 한거?"
"어어 그거. 너 존재감 제로일때"
"그렇...아? 잠시만. 내가 무슨 존재감 제로예요!!"
"또 이상한데로 빠진다- 무튼! 그 광고할때 아쿠타가와랑 찍을 때 너 나랑 화장실가다가 부딛쳤어. 그 때 너 입에 물고 있던 칫솔떨어뜨려서 완전 울상이었잖아"
"...? 그랬어요? 나 기억안나는데..! 와 치사해! 자기만 기억하고!!"
"??그게 나한테 화낼일이냐? 너가 기억력이 나쁜거지!! 나보다 8살이나 어린게 어떻게 나보다 기억력이 쓰레기냐?!"
"아 몰라요!! 츄야씨랑 살다보니 뇌가 동화해서 늙었나보지!!"
"너 이리와. 오늘 맞아야하는 날인가보다. 나카지마 아츠시 이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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