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악. 다이치는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눈이 떠졌다.

“우아아아아아!”
다이치의 비명에 놀란 누군가가 다이치보다 크게 고함을 쳤다.
“으악!”
거의 동시에 또다른 누군가가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그러더니 다이치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깜짝 놀랐잖아!”

낯익은 목소리가 다이치를 타박했다.


윽, 몸을 움츠렸던 다이치는 멍하니 옆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스가……?”
다이치가 앉아 있는 곳은 승합차 안이었다. 다이치의 왼쪽에는 스가가, 스가 왼쪽의 1인용 좌석에는 아사히가 앉아 있었다. 


스가는 다이치의 옆구리에 한번 더 춉을 먹이고 이번에는 아사히의 어깨를 팍 때렸다.
“너도! 다이치보다 네가 소리질러서 더 놀랐다고!”
“미안…….”
아사히가 난처해하며 스가에게 사과했다.


아, 꿈이구나.


다이치는 승합차의 좌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앞 좌석에서는 야치가 키요코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우카이는 창문에 기대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타케다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운전대를 잡고 밤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쳤다. 소란에 잠이 깬 듯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다이치와 눈이 마주치자 츠키시마는 잠자코 창 밖을 보며 눈을 감았다. 츠키시마 옆에서는 야마구치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뒷줄의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맨 뒤에 앉은 니시노야와 타나카도 마찬가지였다. 그 옆의 엔노시타는 깨어 있었다. 다이치와 눈이 마주치자 엔노시타는 입모양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위험해요, 앉으세요, 라고.


다이치는 자리에 앉았다. 


“자는 사람을 막 깨우고 말이야…….”
스가가 투덜거렸다.


“스가.”

“응?”

“……꿈이지, 이건.”


스가는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박였다.


“꿈?”

스가가 되물었다.
“나는 호송차에 탔어. 타자마자 수면 가스 때문에 잠이 쏟아졌고……. 지금 나는 호송차에 탄 채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다이치는 차분하게 말했다.
“무슨 차? 호송차?”

스가는 얼떨떨해했다.


“너는…….”
다이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스가가 다이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희는…….”
아사히도 다이치와 스가를 바라보았다.
“지금 스테이지에는…….”
말을 잇지 않고 다이치는 그저 미소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뒤에서 히나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 깬 듯 목소리에서 졸음이 묻어났다.
“다이치가 이상한 꿈을 꿨나 본데.”

스가가 뒤를 보며 말했다.
“무슨 꿈이요?”
“호송차랬나? 스테이지가 어쨌댔나?”
“아, ‘게임 스테이지’요? 저 그 괴담 알아요!”
“괴담?”
“네. 야치 씨가 얘기해줬어요.”
히나타는 신이 나서 말했다. 스가도, 다이치도 히나타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히나타는 긴장한 듯 한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느 깊은 산 속에 아무도 모르는 ‘게임 스테이지’라는 곳이 있대요.”
맞아.
“거기서 ‘게임’이 벌어진대요.”
맞아.
“끌려간 사람들은 ‘참가자’가 된대요. 각자 하나씩 무기를 지급받고 그걸로 서로를 죽여야 한대요.”
맞아. 마요네즈가 무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 한 명만 ‘우승자’가 되어서 살아남을 수 있대요.”
맞아.
“살아남은 사람은 분명히, 아주…….”
……맞아.

“유행하는 거야? 그런 괴담이?”
아사히는 영 속이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저도 들은 적 있어요. 최근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는 것 같아요.”
엔노시타가 거들었다.
“맞아요, 그리고 그 ‘게임’ 결과를 가지고 도박이 벌어진다고 했어요.”

생각났다는 듯 히나타가 덧붙였다.


“도박?”
스가가 되물었다.
“악취미잖아…….”
아사히가 질색했다.
“누가 ‘우승자’가 될지를 가지고 엄청난 돈을 건대요.”
히나타가 말했다. 아사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우승자를 걸고 도박을 한다고? 이상한데.”
스가가 말했다.
“뭐가요?”
엔노시타가 물었다.
“아니 왜, 원래 도박은 걸 항목이 많을수록 재미있잖아? 스포츠 베팅만 봐도 승패에만 걸 수 있는 정식 베팅보다, 각 타자별 안타 숫자라든지, 그런 온갖 항목에 거는 불법 도박이 더 중독성 있다잖아.”
“네.”
“네가 그 ‘게임’을 주최하는 사람이라면 이왕 판 크게 벌이는 거, 다양한 항목에 걸 수 있게 하지 않겠어? 누가 우승하는지만 가지고 도박을 열기엔 좀 밋밋하잖아.”
“네……. 듣고 보니…….”
스가의 말에 엔노시타가 수긍했다.

“다양한 항목이라니?”
아사히가 물었다.
“뭐, 많지 않겠어? 누가 제일 먼저 죽이나, 누가 제일 먼저 죽나, 제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건 누군가……. 자살은 나오나 안 나오나…….”
스가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네요. 음, 죽이는 방법도 가능하겠네요. 목을 졸라 죽이는 경우는 발생하나, 찔러 죽이는 건, 때려 죽이는 건……. 이렇게요.”
엔노시타가 말했다. 

스가와 엔노시타의 얘기를 듣던 아사히는 식초를 마신 것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사히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둘은 주거니받거니 말을 이었다.
“그렇지. 고작 누가 끝까지 살아남는지 보려고 그런 큰 판을 벌이는 건 아닐 테니까 말야. 그보다는 뭔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어떻게 죽어갈지…….”
“공포, 고통, 절망…….”
“그래. 그런 것들. 아니면 그 와중에 얼마나 서로를 믿을지, 인간다움을 지킬지…….”
“그런 걸 보려고 하겠군요.”
“응.”
“‘엔터테인먼트’라고 했어요, 게임의 목적은.”
“그래. 그런 게 진짜 엔터테인먼트 아니겠어? 우승이야 뭐 힘 센 녀석이 하겠지. 이런 녀석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스가는 아사히 쪽으로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스가, 그만…….”
아사히가 울상을 지었다.
“왜? 하긴 너는 우승자보다는 첫 번째 희생자가 어울린다. 무슨 무기가 있어도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걸.”
스가는 웃었지만 아사히는 표정이 나빴다. 아차 선을 넘었구나, 싶었는지 스가는 다이치에게 화살을 돌렸다.
“아까부터 왜 그래? 말 한 마디도 없이.”
“…….”
“뭐야 그 미소, 기분나빠.”
스가가 인상을 썼다.


“그 ‘게임’을 하는 꿈을 꾼 거예요? 다이치 선배.”
엔노시타가 물었다.
“진짜 그 꿈이었어요? 참가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우승자는 누구였어요?”
히나타가 고개를 쭉 빼고 다이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땠어요?”
엔노시타가 상기된 얼굴로 다시 물었다.
“…….”

다이치는 침묵했다.
“……앗, 저, 죄송합니다. 그, 저라면, 선뜻 남을 죽이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가만히 양보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
다이치의 안색을 살피며 엔노시타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차체가 한번 덜컹 흔들렸다.

창밖의 새까만 어둠을 잠시 바라보던 다이치가 사람들을 향해 선언했다.


“지금이 꿈이야.”


“어…….”
엔노시타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당황했다.
“흐응?”
스가가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스테이지를 나와서 호송차를 탔어……. 수면 가스 따문에 잠이 들었고……. 꿈 속에서 너희를 만나고 있는 거야.”
“뭐야 그게. 무슨 리액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타나카가 포토 카드 내놓으라고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까 꿈 속에서 제가 그라비아 아이돌 포토 카드를 빌려가고 안 돌려줬는데, 그게 꿈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엔노시타가 말했다.


“모두들.”
타케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미안하지만, 아무리 작게 말해도 자는 사람들한테는 방해가 될 테니 이제 조용히 합시다. 그리고 사와무라 군, 위험하니까 뒤를 보지 말고 바르게 앉으세요.”
타케다가 말했다. 운전대를 잡고 정면을 바라보는 채였다.
“앉으라잖아.”
스가가 다이치를 쿡쿡 찔렀다. 아사히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치는 미소지었다.
“지금이 꿈이야.”


“얘 어떡하니?”
스가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했다.


“너희가 있으니까 이건 꿈.”
“흐응. 너 꿈에서 우리랑 그 ‘게임’을 한 거야? 그래서 우리는 다 죽고 너 혼자 살아남은 거고?”
“이쪽이 꿈이야. 그쪽이 현실이고.”
“그러니까 뭔 소리냐고, 그게.”
“너희가 있으면 꿈이야. 앞으로는, 언제든…….”
“우리가 있으면 꿈이라고? 그럼 다이치, 앞으로 평생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래?”
“그래. 너희가 눈앞에 있다면.”

“뭐냐 얘. 볼 꼬집어 줘?”
스가가 꼬집는 시늉을 했다.
“다이치, 어……. 음……. 그러니까……. 뭐라고 하면 좋지…….”
아사히가 난감해했다.
“어떻게 하면 꿈이 아니라고 믿을래?”
스가가 말했다.


“꿈이 아니야?”
“아니지.”
스가는 잘라 말했다. 


다이치는 미소지었다.

어느새 손이 떨렸다.

다이치도 속아주고 싶었다. 스가를 믿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
다이치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스카프 풀어 볼래, 스가.”


스가의 목에는 붉은 스카프가 매어져 있었다.
아사히도. 엔노시타도. 히나타도. 모두가.

스가가 미소지었다.
아사히도 미소지었다.
다이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다이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다시 스가를 보았다.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스가의 이마와 관자놀이로부터 붉은 꽃이 탐스럽게.
아사히의 목에도.
니시노야의 상반신 곳곳에도.
타나카의 이마에도.
엔노시타의 목에도.
…….

꽃이 피어올랐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꽃이 스가를 덮었다.

향기가 지독하게 짙어졌다.

미소만은 끝까지 꽃에 가려지지 않았다.


덜컹덜컹. 붉은 꽃으로 가득한 승합차가 언제까지고 밤길을 달렸다.

트위터 @eggacc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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