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피터를 제 집으로 데려가서 달래는 해리. 울음을 멈춘 피터의 상황설명을 듣고 토닥토닥 해준다. 내심 기분 좋았어. 피터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준다는 거니까. 해리는 피식 웃고 뭘 그런 거 가지고 우냐며 난 괜찮다고 하면서 피터 부둥부둥 해줬어. 그리고 피터가 좋아하는 레고를 같이 맞추고 피터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사주고 하면서 기분 풀어줌. 피터는 해리와 놀고나니 마음이 많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지. 그러다가 벤이랑 메이가 걱정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쯤 해리의 집에서 나왔어.

벤과 메이는 별말을 하지 않았어. 그저 왔냐, 수고했다. 스튜 먹고 씻고 쉬어라. 라고 했지. 자신을 이해하는 듯 했어. 피터는 벤이 만든 스튜를 먹고, 씻은 다음 방에 들어가 잠시 생각하다 꾸역꾸역 잠들었어.

그 시각 토니는 울고있던 피터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웠지. 또 학교에 안 오려나. 토니는 자신이 사과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어. 자존심 이전에 그게 맞는거니까. 그리고 스스로 인정해야했어. 제가 피터에게 반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인지하지 못해서 큰 실수를 저질러왔다는 것. 밀려왔던 후회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아줄까. 아마 아닐거야. 어떻게 받아줄 수 있겠어? 토니의 머릿속에 해리 오스본의 냉담한 눈빛이 스쳤어. 피터를 감싸안는 그의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웠지.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어. 모든 게 처음이었어. 관계에 있어 후회를 느끼는 것도,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피터보다 배는 더 많은 시간동안 고민하다 잠드는 토니.

다음날 피터는 다행히, 학교에 나왔어. 손은 괜찮아? 네드의 물음에 괜찮다고 말한다. 사실 다 나았지만 부러 붕대 친친 감고 나옴. 하루만에 나으면 이상하니까. 그리고 곧 선생님께 불려나갔어. 수업 도중에 뛰쳐나갔으니 당연하지. 애들에게 상황설명을 들은건지 선생님은 피터를 크게 다그치지는 않았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말 뿐이었지. 그리고 토니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려는데 피터가 질문을 듣기도 전에 대답해버렸어. 개인적인 갈등이 있었다고, 둘이서 해결했어야했는데 순간 화를 참지 못했던 것 같다고, 수업 분위기 흐려서 죄송하다고 말이야.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피터의 완고한 태도에 알았다며 나가보라고 했어. 피터가 교무실을 나서는데 문 앞에서 토니와 마주친다.

피터는 잠시 놀랐다가, 시선을 피하고 토니를 지나치려하는데 토니가 대뜸 피터를 붙잡았어. 자기가 잡아놓고 자기가 놀라는 토니... 여기서 교무실은 좀 외진 데 있다고 치자. 그래서 복도에 둘 뿐이었어.

"뭐야?"

피터가 표정을 굳히고 토니를 바라봤어. 토니는 잠시 망설이다

"...미안해."

하고 사과했어. 피터는 잠시 침묵했지. 조금 혼란스러워보였어. 그러다가 단호하게 답한다.

"너랑 말섞고 싶지도 않고, 사과도 받고 싶지 않아."

그리고 토니를 뿌리치고 지나쳐갔어. 생각보다 더 냉담한 피터의 반응에 그 자리에 서서 황망히 서있는 토니 ㅂㄱㅅㄷ.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의 훈계 비스무리한 걸 받으며 토니는, 상처가 그득한 피터의 갈색 눈, 굳게 다물린 입술, 그리고 붕대가 감긴 손을 떠올렸어. '너랑 말섞고 싶지 않아.' 그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지. 당연하지, 토니 스타크. 너라도 그러고 싶겠어? 제 목소리를 한 무언가가 속삭였어. 무거운 자책감이 토니의 등에 기어올라왔지. 피터가 받아줄 때까지 사과해야했어.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슬프게도, 토니는 그렇게 자신을 용서해달라 요구하는 것도 특권이라는 사실과, 상대방을 더 괴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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