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식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도적 떼가 마을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 걱정이에요. 아이는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습니다.

 

─나리꽃아, 설마 도적 떼가 우리 마을도 거쳐 갈까? 땅 울림이 느껴져?

 

도적 떼가 멀리서 오고 있다면, 땅을 통해서 진동이 느껴질 테니까요. 나리꽃은 잎사귀를 날갯짓하듯 살랑이며 말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안 느껴져!

─이상하네. 나는 희미하게 말발굽 진동이 느껴지는데.

 

화단 바로 옆 나무가 중얼거렸습니다. 아이는 의아해졌습니다. 식물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까요.

 

큰일이 났어요. 몇 분 후, 도적 떼가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나리꽃은 뿌리가 얇고 짧았어요. 다만 나무는 흙바닥에 깊숙히 박힌 뿌리로 진동을 느꼈던 것이었죠.

 

마을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화가 난 아이는 마을의 꽃을 모조리 뽑아버렸답니다. 아이에게 베인 나리꽃은 꽃봉오리가 바닥에 툭, 떨어진 채로 울었습니다.

 

나리꽃의 줄기에서 녹색 진액이 퐁퐁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사실만 말했어, 아이야.

─이 거짓말쟁이!

 

아이는 나리꽃의 봉오리를 발로 밟았습니다. 씩씩거리며 폐허가 된 자신의 집에 돌아갔습니다. 집 안에 키우던 화분도 전부 깨져 있었어요. 쩔쩔매며 바닥에서 엉금거리는 꽃 뿌리들…… 가엽고 징그러운 뿌리들.

 

아이는 아차, 했답니다.

 

당장 죽은 나리꽃 곁에 있던 나무에게 향했답니다. 나무는 아이를 보고 이파리를 떨며 어쩔 줄 몰라 했어요.

 

─나 때문에 나리꽃이 죽은 거냐, 아이야?

 

아이는 나무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혼란스러워진 아이는 마을을 떠돌았습니다. 꽃을 죄다 베어버린 이야기를 다른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나무들은 하나 같이 ‘우리 때문이야’라는 마음에 시름시름 앓았지요.

 

아이는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지. 나무들의 반응이 이해갈 때까지.

 

아이는 배낭을 챙겨 여행을 떠났어요. 보라색 장미꽃도, 안개꽃도, 튤립도 만났죠. 나리꽃을 베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꽃들은 아이를 미워했습니다. 아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년이 지났어요. 소년이 된 아이가 고향 마을로 돌아왔어요. 씨앗 상태였던 꽃들이 피어나 화사하게 잎사귀를 흔들었지요. 아이는 기분이 이상해졌어요. 자신이 오는 발소리를 들었을까요.

 

집 근처의 나무를 보고 마을의 꽃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이 년 전, 나무에게 사건을 들은 새싹은 날 때부터 열심히 뿌리를 늘리려 노력했지요. 자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는 이유로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모든 꽃이 땅 진동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소년은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멍청한 꽃을 벌주고 싶었는데. 스스로가 멍청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아직도 나는 배울 것이 많구나.

 

소년은 다시금 여행을 떠났습니다. 더, 훨씬 더 많은 식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다시 몇 년이 지났습니다.

 

─도적 떼가 여러 차례 왔다. 마을이 더 망가졌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어.

 

나무가 눈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청년이 되어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부모님과 모든 집들이 이사 간 후였답니다.

 

─그리고 또…… 자, 나리꽃. 이번에는 네가 말해보아라.

─응. 그리고, 지금도 멀리서 도적 떼가 오고 있어. 너의 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여럿이야. 느껴져. 나는 뿌리가 나무만큼 깊은 나리꽃이야.

 

청년이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만.

─응?

─그만 말해도 괜찮아, 나리꽃아.

 

이것이 식물만 남은 마을의 전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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