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서 그래.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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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지금 좀 난감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머리가 도무지 돌아가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일지도.

 

“진짜야? 진짜? 배진영이 그랬다고? 대박.”

 

멍하니 가만히 듣고 있는 (물론 머릿속에서는 수십 개의 자아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훈 옆에서 형섭이 끼어들어 더 난리다. 오늘 조 모임에서 멘티로 만난 진영과 있었던 일을 무슨 무용담 마냥 줄줄 읊고 있는 반장 주위로 땀 냄새 범벅인 사내 녀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권혁이 어느 날 갑자기 전학을 가버린 뒤, 진영은 숱한 가십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뜩이나 진영은 늘 오만한 무표정을 장착하고 있으니 소문은 밑도 끝도 없이 부풀었다. 알고 보니 대단한 싸움꾼이었더라. 부모님이 정계에 유명한 인물이라더라. 아니면 폭력조직과 관련이 있다더라. 진영은 늘 그렇듯 무덤덤했고 자신을 둘러싼 말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지훈은 더 신경이 쓰였다.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시하는 진영이 사실은 속으로 누구보다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을 이제 지훈도 알기 때문인가 보다. 내면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 나이에 감당하지 못할 상처가 생겨 일찍이 감정의 문을 닫아버렸겠지. 그래서 그렇게 진영은 지독하게 순수했다.

 

“와, 나 진짜 그런 앤줄 몰랐네. 사실 나 소문만 듣고 쫄았었는데 완전 애야. 애. 나보고 선배는 그런 춤을 어떻게 추냐면서 눈 동그랗게 뜨는데 순간 진짜 심쿵했다.”

“미쳤냐? 심쿵할 데가 없어서 남자한테. 오바는!”

“아오 너네가 그 표정을 봐야 된다니까. 여하튼 앞으로 형 동생 하자고 했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떠? 형 동생? 지훈은 차라리 안 듣는 게 낫겠다 싶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럽게 떠들던 반 녀석들은 오늘따라 반장의 입만 쳐다보며 걸그룹 이야기라도 듣는 듯이 귀를 기울인다. 덕분에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다. 저 어이없는 무용담을. 배진영은 대체 어떤 표정을 보인 걸까.

 

“박지훈, 너도 알고 있었어? 걔 그런 애인 거? 너 같이 살잖아.”

 

모두의 시선이 지훈을 향한다. 지훈이 또 새로운 무용담을 읊어주기라도 바라는 표정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지훈은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한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지고 다시 시선은 반장에게로 모아졌다. 반장이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숙소 방문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지훈의 귓바퀴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저…”

 

갑작스런 진영의 등장에, 신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반 녀석들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 마냥 눈만 꿈뻑꿈뻑 하며 진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들려온 진영의 목소리가 지훈은 소름 끼치도록 어색했다. 싫은가 좋은가 굳이 골라야 한다면 싫었다. 그래, 이 감정이 난감한 거다. 반장이 앞장 서서 진영의 밝은 모습을 말해주는데 지훈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독한 모순 아닌가. 집에서는 둘도 없는 동생 마냥 챙겨주면서, 볼 때마다 그 순수함이 귀엽다고 흐뭇해하면서, 정작 학교에서는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 짝사랑하는 소녀를 들키기 싫어서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는 진부한 소년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감정이다.

 

“아까 샴푸…빌려달라고 하신 거요.”

 

샴푸? 그제야 지훈은 벽에 기댄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숙여 기둥에 가려졌던 방문 앞을 살핀다. 막 샤워를 마쳤는지 삐죽삐죽한 앞머리가 작은 얼굴 여기저기 제멋대로 내려와 있고 그가 즐겨 입는 하얀 면티가 여전히 더운 김이 올라오는 작은 몸을 덮었다. 자신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이 당황스러웠는지 손에 들고 온 샴푸를 만지작거리며 또 그 순진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저거 또 졸린가 보다.

 

“반장 너 샴푸 있잖아. 뭐야?”

 

한 녀석이 옆에 있는 반장을 툭 치며 묻자 반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아니, 그게. 진영이가 쓰는 샴푸 향이 되게 좋더라고.”

 

못 들어주겠네. 지훈은 문가에 서 있는 진영에게로 가서 아무 말 없이 손에서 샴푸를 빼앗아 방 안에 대충 던져주고는 진영 옆을 비켜 복도로 나갔다. 곧 있으면 취침 점호를 할 시간이니 그전에 강화의 밤 공기라도 잠깐 쐬고 싶어서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라고 지훈은 생각하고 싶었다. 저 방 안에는 땀냄새만 가득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렇게 지훈은 생각했다. 진영을 뒤로 하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지훈은 문득 궁금해졌다. 진영이 쓰는 샴푸가 뭐였더라? 같이 사는 내가 오늘 하루 만난 반장 녀석도 아는 걸 모르다니 지훈은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부르르

 

바지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리자, 우습게도 지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진동만 울렸을 뿐인데 가벼운 두근거림도 아니고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 누가 보낸 문자일지 안 봐도 알겠는데.

 

[어디 가요?]

 

발신자에 찍힌 배진영이라는 이름을 보고 지훈은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까부터 지훈을 괴롭혔던 그 난감함이 다시 찾아왔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답답하고, 짜증도 난다.

 

[밖]

 

그렇게 한 마디를 보낸 후 대충 바지에 휴대폰을 찔러 넣고 걷던 지훈은 이내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빼어 든다.

 

[나와]

 

지훈의 발은 숙소가 있는 건물 앞 마당, 운동장 흙 바닥으로 들어서는 경계선 위에 멈춰 섰다. 지훈은 그 경계선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흙 바닥이다. 참 가깝다. 밖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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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집을 밖보다 못한 곳으로 여겼다. 애초에 진영에게 집이란 공간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주변의 시선과 명예 유지를 위해 마치 애완견 고르듯 진영을 선택한 양부모는 그나마 괜찮았다. 애완견 역할 정도야.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호모인 양아버지,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집안의 부를 위해 결혼을 선택한 양어머니. 그들은 진영에게 때로는 더러운 색욕의 장난감 역할을, 때로는 남들이 부러워할 스포츠 스타 아들 역할을, 때로는 자신들의 치부를 마음껏 드러내고 퍼부을 샌드백 역할을 요구했다. 차차 그 무게는 버거워졌고 양부모는 파양을 선택했다. 그렇게 막 거리에 내몰렸을 때,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어보지 않겠느냐는 캐스팅 실장의 제안을 받았고 진영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았다. 우선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지훈과 동거를 시작했을 때도, 진영은 단 한 번도 그곳을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무표정 뒤에 자신을 숨기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훈은 자꾸만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뒤에 숨은 진영을 끌어냈다. 뭘 이렇게 가려놨어? 하며 비웃기라도 하듯 가볍게. 그렇게 서툴게 꺼내진 감정은 생각보다 아프거나 흉측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움켜쥐고 버텨왔던 지난 날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진영이 넌 멘토 누구야?”

“모르는 사람.”

“어? 이 선배 반장일걸?”

 

진영은 멘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받아 들고 저 멀리 강당 끝쪽에 있는 지훈을 슬쩍 살폈다. 학교 슈퍼스타답게 여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 중이다. 간간히 수줍어하는 표정도 짓는다. 나왔네, 아이돌 표정. 다른 사람들은 알까. 지훈이 사실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란 것을. 마냥 “좋아요”만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싫은 건 곧 죽어도 하기 싫다고 딱 잘라 말하는 지훈의 매력을 알까. 생각에 잠기면 말없이 가만히 상대방을 쳐다보는 그 깊은 눈을 알까. 멘토인 선배와 오후 내내 짝이 되어, 함께할 조를 짜고 연습을 하면서 진영은 새로운 흥미를 찾았다. 선배가 추는 춤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선배님은 그런 춤을 어떻게 추시는 거예요?”

 

진영의 표정은 진지했고, 선배는 잠시 당황하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이거? 별거 아닌데. 지훈이가 더 잘 추잖아.”

“본 적 없어요.”

 

정말이다. 진영은 기본기만 배우는 탓에 늘 구석진 연습실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고 지훈과 대휘는 3층에 마련된 널찍한 연습실을 사용했다. 지훈이 춤을 잘 춘다는 것은 대휘에게 매번 말로 들었지만 지훈과 같은 반 선배가 추는 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지훈도 이렇게 추는 걸까? 그런데 ‘지훈이가 더 잘 추잖아’라는 선배의 말에 진영은 괜히 입 꼬리가 올라간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좋다. 멘토 선배가 부탁한 샴푸를 가져다 주러 3학년 숙소로 올라가면서 진영은 지훈에게 꼭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훈이 춤을 그렇게 잘 춘다고 다들 그러더라고. 그리고 나도 궁금하다고. 보여달라고.

 

“아까 샴푸…빌려달라고 하신 거요.”

 

노크라도 할 걸 그랬나. 방문이 열려 있어서 문가에 선 채 그냥 말을 걸었더니 방 안에 있던 시선이 일제히 진영을 향한다. 갑작스럽게 모두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자 진영은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샴푸를 꼭 쥐었다. 차라리 지훈에게 연락해서 대신 전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별의별 생각을 하며 덩그러니 서 있는데 방 한쪽 구석에서 지훈이 나오더니 손에 든 샴푸를 빼앗아 방 안으로 던지고 휙 지나쳐 간다. 어, 할 말 있었는데. 지훈이 스쳐간 공기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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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밤 공기라고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인적이 드문 이름 모를 계곡 근처 수련장이라 그런지 너무 한적해서 오히려 오싹하기도 한 밤 공기였다. 진영은 얇은 반팔티 사이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서늘했는지 드러난 양팔을 이따금 비벼댔다. 지훈은 그걸 알았지만 굳이 자신의 가디건을 벗어주진 않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진영의 머리카락이 바들거리며 떨려도 애써 시선을 돌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건물은 둘의 뒤로 저만치 멀어졌고 눈 앞에는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울퉁불퉁한 흙 길이 어둑하게 이어졌다. 생각보다 먼 곳으로 나오자 진영의 걸음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지훈은 뒤에서 꾸역꾸역 따라오는 진영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갑자기 멈추고 뒤를 돌았다. 앞서 가는 지훈의 발만 보며 고개를 숙인 채 걷던 진영은 그대로 지훈과 부딪혔다. 세게 부딪혔으면 놀라 뒷걸음질이라도 쳤을 텐데, 이건 거리가 적당했는지, 진영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지훈의 오른쪽 어깨 위에 얹어져 흡사 안긴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지훈이 두 팔로 진영의 등을 안은 것도, 진영이 손을 뻗어 지훈의 허리를 감은 것도 아닌. 그냥 굽힐 줄 모르는 통나무 두 개가 가만히 서로 기대는 조금 우스운 꼴이 되었지만. 지훈은 바지에 찔러 넣은 두 손을 빼지 않은 채 자신의 오른쪽 뺨에 닿은 진영의 귀와 머리카락을 느꼈다. 이런 자세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진영의 샴푸 향이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실려왔으니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향이었구나. 시원하지 않고 따뜻한. 진영을 닮은 무채색의 향. 아, 아니면 갓 빨래한 티셔츠 향일 수도 있지. 지훈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턱으로 진영의 뒷머리를 지긋이 누르며 자신의 어깨에 더욱 밀착시켰다. 길게 뻗은 진영의 뒷목에 얼굴을 묻고 숨을 마셔보니 또 다른 향이 난다. 예전에 맡아봤던 비누 향 섞인 살 냄새다. 진영의 표정이 보이질 않아. 궁금한데.

 

“간지..러워요.”

 

진영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말 표정이 보고 싶었다. 지훈은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 양 팔을 진영의 목에 두르고 자신의 몸을 뒤로 살짝 젖혀 진영의 얼굴을 살폈다. 이렇게 잡고 있지 않으면 진영은 분명 표정을 볼 기회도 주지 않고 뒷걸음질 칠 테지. 하지만 그 거리를 유지한 건 실수였다. 가까이서 본 진영의 얼굴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예의 그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둑해서 눈코입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이 하필 이 순간 이렇게 밝게 보일 수 있을까. 달빛을 반사한 진영의 동그란 이마에, 그 처연한 눈에, 그 작고 붉은 입술에. 지훈은 시선으로 그것을 찬찬히 훑었다. 지훈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진영은 불에 데인 듯 화끈 달아올랐다. 지훈은 늘 이렇게 빤하게 자신을 본다. 이마를, 눈을, 그리고 입술을. 느릿하게 하나씩 옮겨가는 지훈의 시선을 진영은 계속 좇았다. 진영은 지훈의 올라간 눈꼬리가 좋았다. 엄밀히 말하면 눈꼬리가 아니라 쌍꺼풀 끝이 올라갔는데, 쌍꺼풀 끝부분이 살짝 각도를 틀어 올라간 게 묘한 짜릿함이 있었다.

 

“배진영, 추워?”

 

지훈의 얼굴에 웃음기가 언뜻 스치더니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양 팔로 진영을 가까이 당겨 입술을 덮는다. 그저 살짝, 진영의 붉은 입술에 닿았을 뿐인데,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미칠 듯이 좋아서 지훈은 자신의 입술로 진영의 입술을 몇 번이고 누르고 비볐다. 진영의 다문 입술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더니 이따금 맥없이 벌어졌지만, 지훈은 그저 입술 위를 느릿하게 옮겨 다녔다. 지훈은 고개를 틀어 진영의 입술을 더 강하게 누르며 반팔티 아래 드러난 진영의 마른 팔을 감싸 안았다. 가디건 너머로 진영의 낮은 체온이 전해진다.

 

“추워?”

 

지훈은 진영의 입술 위에서 묻는다. 입꼬리 끝이 올라간 게 아무래도 지훈은 웃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질문은 아니었나 보다. 진영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술을 눌러온다. 진영의 작은 입술을 입 안에 담아보니 은은한 딸기 향이 나는 것도 같다. 가끔 벌려진 입으로 진영의 신음소리가 들리면 지훈은 얼른 입술로 덮어 소리를 막았다. 쇳소리처럼 목을 긁는 그 신음소리가 적막한 계곡에 울리면 큰일이다. 지금도 애써 참고 있다. 지훈은 고개를 반대로 꺾으며 진영의 마른 몸을 안았다. 너무 말라서 안고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아 지훈은 더더욱 손에 힘을 주어 꽉 끌어 안았다. 맞닿은 진영의 가슴에서 체온이 전해져 온다.

 

“아파.”

 

진영은 입술이 열리는 틈새로 간신히 말을 내뱉고 지훈의 등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제야 지훈은 입술을 떼고 진영의 얼굴을 자신의 어깨에 얹은 뒤 그의 뒷머리를 가만히 토닥였다. 지금은 진영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제야 정신이 퍼뜩 든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권혁과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빤히 알면서. 진영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싫어했는지 빤히 알면서. 분명 싫겠지. 지금이라도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겠지.

 

“미안.”

“…”

“미안.”

 

그래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아. 그래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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