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틴 썰을 리메이크해서 쓰는 글입니다.


명계 입구. 망자들의 기숙사, 여명(黎明).


“김단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 차사님!”


저 멀리서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찬을 본 김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재판에 갈 시간이었다.


“죄송해요, 일이 생겨서 늦었어요. 명부가 이상하게 작성되는 바람에..”

“괜찮아요. 그나저나, 오늘은 어떤 재판을 받게 되나요?”


지난 07월 31일, 명계로 온 망자 김단은 망자의 생활에 적응한 듯했다. 그가 명계로 온지도 3일이나 됐고, 벌써 3개의 재판을 받았으니 말이다.


“오늘은 인간관계에 대한 재판이에요. 살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인연들, 즉 가족이나 친구를 소중하게 여겼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준 적은 없는지, 잘못된 행동으로 인간관계를 끊어낸 적은 없는지 생전 기록을 살펴보고, 만약에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따른 처분을 받게 될 거예요.”


김단의 담당 저승사자는 혼령관리부 소속, 이찬이라는 차사였는데 순~둥한 얼굴에 야무지고 꼼꼼한데다, 친절하기까지한 저승사자였다.


18살이란 이른 나이에 죽어 비통해하던 자신을 달래주던 다정한 얼굴과 목소리는 꼭 형..같이 느껴져서 단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의지했다. 


키도 덩치도 자신보다 작은데..연륜 때문일까, 찬은 꼭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큰 형 같았다.


“아..그럼 혹시, 걸리면 지옥에 가게 되나요..?”

“아뇨, 아뇨. 이 저승에도 융통성이라는 게 있답니다~? 앞뒤 상황을 보고 그럴만 했다 싶으면, 웬만하면 넘어갈 거예요.

“정말요..?”

“네. 요즘은 워낙 인간관계에 관한 사건 사고가 많아서 재판관님들도 그런 건 감안하신답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변호할 테니 걱정 마세요.”


혹 재판 결과가 잘못 돼 지옥에 갈까 안절부절하는 단에게 한쪽 눈을 찡긋한 찬이 이제 슬슬 재판장에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자~ 이만 가볼까요~”

“네..!”


찬이 어깨에 두른 두루마기를 한 번 펄럭이자 곧 두 사람의 형체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명계 동쪽. 시간과 깨달음의 숲. 그 한 가운데 위치한 재판장은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여기서 인간사, 인간관계에 관한 재판이 열리는구나..여기 인간은 나밖에 없는데. 단은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이젠 인간이 아닌 망자에 불과하다는 게 사실이었다.


“망자, 김단은 앞으로 나와 서시오.”


재판장이 단의 이름을 불렀다. 단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삐걱삐걱 움직여 그 앞에 섰다. 단의 곁에 선 찬이 작은 소리로 힘내라고 속삭였다.


망자의 인적사항 기록지를 든 찬은 무시무시한 재판장들 앞에서도 하나도 떨리지 않는 듯했다.


“망자는 또래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했구나. 왜 그런 건지 그 이유를 궁금해 한 적이 있는가?”

“아..아니오. 사고..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아쉽긴 하지만 궁금하진 않습니다.”

“그래? 그대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단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재판장 중앙 구슬에서 빛이 나더니 단의 지난 생의 순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저건..”

“이건 그대의 지난 생의 장면들이다. 그대가 행한 행동과 말을 확인할 수가 있지. 이곳은 인간관계에 대한 업을 가려내는 곳. 어디, 그대에게 찾아온 인연을 소중히 여겼는지 확인해볼까?”


재판장이 손을 휘두르자 공중에 두둥실, 떠오른 장면 중 하나가 크게 확대되었다. 교복을 입은 단이 10년지기 절친에게 달려가서 어깨동무를 하는 상황이었다.


“야아아, 이민처어얼-!”

“악! 야, 김단 이 미친놈아! 갑자기 확 뛰어들지 말라고~!”

“뭐래, 덩치도 큰 게. 됐고, 오늘 급식 뭐임? 맛 없으면 제끼고 매점 가려고.”

“내가 니 급식표냐, 몰라.”

“그러지 말고 좀 이야기해봐, 새꺄. 엉?”

“꺼져라, 좋은 말로 할 때.” 


절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재판장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단은 사색이 되었다. 편한 사이에 나눈 대화를 이넌 식으로 보니 꼭 친구를 막 대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대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진 않았나 보군?”

“그건...민철이는 저와 10년지기에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봐 와서 자연스럽게 편하게 대한 거예요..”

“죽마고우란 건가? 그렇게 긴 인연이라면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함이 맞거늘. 언제 죽음이 찾아올 줄 알고. 봐라, 지금 딱 그렇게 되었지 않나.”

“.....”


단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또 다른 재판장이 이번에는 가장 가까운 인연인, 부모와의 관계를 확인해 보자며 다른 장면을 확대했다.


“아들..! 도시락 챙겨 가야지..! 야자하기 전에 먹어, 응? 매점 음식 건강에도 안 좋고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걸 먹어?”

“아, 싫어! 매점에서 라면 먹을 거야. 됐어!”

“얘, 그래도..”

“됐어, 됐어. 친구가 오늘 쏜다고 했으니까. 나 갈게!”

“단아! 김단! 어휴..”


재판장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단은 이번에도 사색이 되었다. 무심코 한 말이었고, 평소 같은 하루였다. 그 평범한 말 한마디가 엄마가 저런 표정을 짓게 했을 줄은..몰랐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단.”

“저는..저는..저런 표정일 줄은..몰랐어요..제가 저런 식으로 말을 한 줄은..”

“그래. 지금도 그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을 그대의 어미에게 말이지.”

“죄송합니다...”


이제 단은 완전히 풀이 죽어버렸다. 풀 죽어서 거의 울 것 같은 단을 찬이 슥, 막아섰다. 계속 지켜보던 찬이 때가 됐다 싶어 나선 것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김단 씨 담당 차사인 혼령관리부 소속 이찬입니다. 반론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경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찬은 허리를 곧게 펴고, 재판장들을 응시하더니 반론을 시작했다.


“자, 먼저 김단 씨는 약관의 나이에 이른 죽음을 맞이한 점 감안 부탁드립니다. 인간세계에서는 태어난지 19년이 지나야 성년이 됩니다.”

“그렇군. 허나-”

“김단 씨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장님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언행을 할 수 있습니다.”

“으음...”

우두머리는 새끼들과 약한 개체를 보호하고, 어른은 아이를 가르쳐 성숙하게 합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에게 그리 가혹하게 구실 겁니까?”


단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멋쟁이 변호사에 빙의한 듯 몰아치기 변론을 하는 찬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사의 답은 잘 알았네. 하지만 남들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에는 부적절한 언행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네. 죽마고우에게도, 피를 나눈 어미에게도 더 다정하게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이니 말이다. 보아하니 망자도 인정하는 듯하고.”

“맞소, 언제 죽을지 모르니 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있지. 죽고 나서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네.”


재판장의 일리 있는 말에 찬은 차분하게 숨을 고르더니, 단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재판장님.”

“인정한다고?”

“예. 하지만, 김단 씨는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누군들 알 수 있겠습니까, 평소와 같이 나섰던 집과 평소와 같이 만난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요.”


단은 이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찬의 말이 맞았다.


누군들 알았겠나, 이러리라는 것을.


엄마를 다시 못 볼 줄 알았듸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현관을 나섰을 거다. 친구들을 다시 못 볼 줄 알았다면 좀 더 재미있게 놀았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최선을 다하라는 말,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해 다채로운 것이 인생이고, 그렇기에 소중한 것 또한 인생이지요.”


장내가 고요해졌다. 어느새 재판장들은 숙연한 얼굴로 찬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김단 씨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았지만 평생 사랑을 받다가 왔습니다. 또한, 주위에 오래된 인연이 많다는 것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

아직 어린 이의 철 없는 실수이니, 어린 망자가 다음 생을 향해서 걱정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격려해주십시오.”


찬은 그 말을 끝으로 반론을 마치고, 다시 단의 곁으로 돌아왔다. 수고했다며 어깨를 감싸는 그 따뜻한 손에 단은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판결을 내리노라. 망자, 김단은 다소 미성숙한 언행으로 주위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상처를 준 바가 있으나..아직 나이가 어린 것과, 가족 및 친우와 오랜 시간 긴 인연을 이어온 것을 감안하여 유벌하지 않도록 하겠다.”


판결은 무죄였다. 단과 찬은 그 자리에서 서로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고생 많았다며 씩, 웃는 찬에 단은 팅팅 부운 눈을 하고 자신보다 작은 그를 꽉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차사님..아니, 찬 형..고마워요..”


형이라는 살가운 호칭에 잠시 멈칫한 찬은 곧 어깨 부근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곤 단을 토닥여주었다.


“..그래, 단아. 수고했어.”


어째, 이번 망자는 헤어질 때 좀 아쉽겠노라고 생각하면서.


**


“어? 단이 씨다! 김단 씨!”

“아, 권차사님!”


여명으로 돌아가는 길, 단과 찬은 명계의 입구에서 망자를 인도하는 순영과 마주쳤다. 연세가 제법 된 할머니 망자를 친절하게 모시던 순영은 자신이 모시는 망자인 이춘옥 씨를 잠시 편한 곳에 앉게 한 후에, 그들에게 달려왔다.


“안녕, 안녕~ 오랜만이네요, 단이 씨!”

“그러게요!”

“형, 망자 인도 중인 거 아니에요? 얼른 가요. 어르신 기다리게 할 거예요?”


아유, 우리 찬이 진짜 똑 부러지네. 너 너무 FM이다. 안 그래두 할머니 앉혀드리고 왔잖어. 응? 순영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고, 찬은 새침한 얼굴로 괜히 단을 제게로 끌어당겼다.


“오늘 받아야 할 재판 다 받고 나서 와도 되는 거잖아요.”

“이잉..인사만 하는 거잖아..너랑 단이 씨는 3일만에 보는 거니까..힝..”

“..아유, 알았어, 알았어. 인사했으니까 빨리 가 봐요. 어르신 여명에 데려다 드리고 이야기를 하든 뭘 하든 해요.”


단은 친형제 같이 닮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양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대화가 마무리 되는 듯하자 이춘옥 씨에게 가 봐도 되는지 물었다.


“저 분이 권차사님이 담당하시는 망자죠? 가서 인사해도 돼요?”

“아, 그래. 나도 같이 가서 인사하자, 단아. 형, 괜찮죠?”

“그럼! 너무 좋아하실 걸? 단이 씨 만한 손자가 있으시다고 했거든. 사실 손주 때문에 명계에도 3일이나 늦게 오신 거야.”


단은 이춘옥 씨에 대해서 말하는 순영의 표정이 순간, 슬퍼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걸까? 3일이나 늦게 왔다고 했는데. 아냐, 이 저승에 오는 사람들 중에 사연 없는 이가 있을 리 없어.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걸 거야.


단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순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단 씨. 혹시 여명에서 지내는 동안 할머니의 말동무를 해줄 수 있나요?”

“말동무요..?”

“그냥 마주칠 때 몇 마디 나누면 돼요. 대부분의 시간에는 제가 붙어있을 거니까.”


그래서 단은 순영의 부탁을 수락하기로 했다. 자신이 사흘이나 먼저 들어왔으니 길어야 한 달 좀 넘게 보고 헤어질 거였으니까.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단아, 무리하진 않아도 돼. 기숙사 층도 다를 텐데..”


그리고..


“괜찮아요, 저 할머니랑 이야기 많이 해봤고..또 저만한 손자가 있으셨다니까, 저랑 대화하면서 즐거우시면 좋겠어요. 저처럼 어린 망자는 드무니까요.”


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는 게 가장 좋았다.


당찬 단의 말에 순영과 찬이 미소를 지었다. 긴 시간 저승사자 일을 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는 김단이에요..! 저기 있는 저 작은 차사님 담당 망자고, 18살이에요. 할머니는 어떻게 오셨어요?”

“으응..? 나는..그냥..나이 먹어 왔지. 늙은이가 다른 이유가 뭐 있누..”

“진짜요~? 근데, 뭔가 분위기가 우아하신 게..혹시 부잣집 사모님이셨어요?”

“아이구, 요놈..말도 예쁘게 하네. 우리 손주랑 동갑이라 그런가, 이쁘네 이뻐.”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렇기에 망자들 또한 다양하다.


“근데 뭐가 그렇게 급해서 18살에 왔어, 응?”

“헤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래도 제가 할머니 보다 명계 선밴데요? 제가 3일이나 먼저 왔다구요!”

“허허..그래, 그래. 이 할머니는 걸음이 느려서 늦게 왔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이 세계. 명계는 죽음의 세계이나 영 차갑기만한 곳은 아니었다.


“단아, 슬슬 가자.”

“앗, 네!”

“할머니~ 저희도 재판 받으러 가요~!”

“아이구..그럽시다, 저승사자 양반.”


찬과 순영은 그렇기 때문에 이곳 명계에 계속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각자 담당하는 망자들에게 다가간 찬과 순영이 이만 갈 길 가자며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아직 환생까지 한참 남았고, 그렇기에 명계에서의 생활을 잘 마치고 환생할 수 있도록 끝까지 잘 도와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


“오늘은 재판이 없는 거야?”

“네. 신체무탈에 관한 거였는데, 망자가 밀려서 내일 오라고 했나 봐요. 그래서 찬이 형이 내일 보자고 했어요.”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 오늘은 재판이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단은 춘옥에게 붙어 앉아서 신비한 색으로 내리는 비를 구경했다.


“저승에 비라..뭔가 비도 안 내릴 것 같았는데. 내린다고 해도 검은색이라던가, 빨간색일 줄..근데 이 신기한 색은 뭐냐고요..”

“그래. 꼭 무지개 같구나.”


망자들의 기숙사, 여명은 기왓집의 형태를 한 건물로 단과 춘옥은 처마 밑에 앉아 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으, 다리 저려..엉?”

“으앙!”

“악! 뭐야?!”


그때, 잠시 다리가 저려 일어섰던 단의 다리에 뭔가가 부딪혔다. 놀란 단이 비명을 지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엥..흐이이잉..”

“엉..?”


단과 부딪힌 것은 단의 반토막도 안 되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였다. 대여섯 살은 됐을까 싶은 꼬마 말이다.


“으아앙..아파..”

“헉..울지 마, 애기야..! 오..오빠가 미안해..”


이마를 움켜쥐고 울려는 아이를 본 단은 졸지에 저린 다리를 뒤로 하고, 무릎 꿇은 채로 아이를 달래야만 했다.


“채린아!! 채린아!! 어디 갔지?”

“아, 오빠아!”

“..! 채린아!”


그때였다.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리더니, 낯이 익은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혼령관리부 소속 차사, 석민이었다. 첫날, 마주친 기억이 있어서 낯이 익었다.


“안녕하세요, 차사님. 저 김단이에요. 요 꼬마 애가 차사님 담당 망자인가요?”

“헉, 고맙습니다! 아..단이 씨? 단이 씨였구나..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갑자기 사라져서..”


후다닥 달려온 석민은 채린을 품에 안고는 연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얼마나 뛰어다닌 건지 머리카락과 얼굴이 흠뻑 젖어있었다.


“아니에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단은 인간세계나 저승이나 육아는 힘들다는 걸 석민을 보고 깨달았다.


“이석민! 채린이 찾았어?”

“아, 민규야! 찾았어!”


조금 뒤, 똑같이 작은 아가를 품에 안은 민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민규는 단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를 알아보고는 살갑게 인사했다.


“단이 씨, 또 만나네요! 잘 지냈어요?”

“네, 네.”


이렇게 넓은 명계에서 이렇게 자주 마주치다니. 만나면 인사하자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단은 새삼 며칠만에 첫날 만났던 저승사자들을 전부 만난 것이 놀라웠다.


“재판이 없나 봐요, 오늘은?”

“맞아요. 망자가 밀려서 내일 오래요.”

“그렇군요.”


춘옥에게도 살갑게 인사를 하고 날이 춥다며 제 옷까지 덮어준 민규가 단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은 그의 품에 달라붙어있는 자그마한 아기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차사와 함께 있다면 분명 망자겠지..? 채린이도 그렇고, 저 아기도 그렇고, 너무 어려...이렇게 어린 아기도 죽은 걸까?


“저..안고 계신 아기가 혹시..”

“아, 네. 맞아요. 이 아이는 제가 담당하는 아가령이에요.”

“아가령이요..?”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거나,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서 죽은 영혼을 아가령이라고 해요. 어린 나이에서 죽어 그런가, 아가령은 대체로 이름이 없어요. 이름을 짓기도 전에 이곳에 오니까요.”


민규는 단의 마음을 눈치 챈 듯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채린을 품에 안고 둥기둥기하던 석민 역시 슬쩍 거들었다.


“민규랑 전 아가령이나 채린이처럼 어린 나이에 죽은 영혼을 주로 인도해요. 채린이는 백혈병을 앓다가 5살의 나이에 죽어서 여기에 왔어요.”

“저보다도 일찍 죽는 사람들이 있군요..”

“네, 그럼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오니까요.”

“이렇게 어린데..안쓰러워요.”


어쩐지 일찍 죽은 것이 억울하다며 운 게 부끄러워서, 단은 해맑게 웃고 있는 채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안쓰럽죠. 하지만, 저번 생이 괴로웠으니 다음 생은 행복할 거예요. 그를 위해서 저희가 있는 거니까요.”

“다음 생..” 

“하하, 물론 환생관리부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이 아이들은 달리 지은 죄가 없으니, 분명 잔뜩 축복 받고 갈 거예요.”

“또 염라대왕께서 8살 보다 어린 나이에 죽은 영혼은 재판 없이 환생 시키라고 하셨거든요. 별일이 없다면, 아마 일주일 뒤쯤 환생하겠죠.”


단은 꼭 자식을 보는 눈으로 채린과 아가령을 바라보는 석민과 민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열흘, 길어야 50일 정도면 헤어져야 하는 사이인데도 저런 애정 가득한 얼굴을 할 수 있구나.


그리고 단은 늘 자신을 향해서 웃어주는 찬과 춘옥을 친할머니처럼 대하는 순영을 떠올렸다.


“헤어지기 아쉬울 것 같아요.”


삶의 끝과 새로운 시작에 함께하는 사이라..

어떻게 정을 안 붙일 수 있겠어.


김단은 다가오는 이별의 날이 벌써부터 아쉽고 서운해서 괜히 툭, 한마디 했다.


끝.

꿈꾸는 일은 즐겁다. 얼렁뚱땅 굴러가는 글방 주인장 & 초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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