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8.


쿄타니 켄타로 × 타나카 류노스케


- 열병 -


 사랑은 열병과도 같다. 한번 뜨거워지면 쉽사리 열기를 잡을 수 없고 주위마저도 그 열기에 휘말리게 만들게 한다. 오늘 쿄타니 켄타로라는 한 남고생은 그 열병에 휩쓸리고 말았다.



"여어, 광견짱. 또 땡땡이? 3학년도 없으니 조금은 성실히 나오지 그래?"

"......"

"무시냐고!"


 다시 배구부로 돌아올때 3학년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에 불만을 표했던거와는 달리 은퇴를 하고 난 뒤에도 쿄타니는 여전히 부활동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연습에 참가하는 것이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걸음을 체육관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몇 번 얼굴만 비추는 식으로 들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요즘은 뜸해졌다. 새로이 주장이 된 야하바가 조금은 걱정이 되어 선배들에게 쿄타니가 부활동에 참여하도록 해달라며 되지도 않는 부탁을 했지만 역시나이다.


"네 밑의 후배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해, 새로운 에이스."

"...아직 아닙니다."


 3학년들이 은퇴를 하면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쿄타니를 새로운 에이스라며 떠받들듯이 비행기를 태워주곤 했는데 오늘의 쿄타니는 정말로 기운없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와이즈미가 격려의 말을 해줄때면 으레 기쁘게 받아들이며 다짐을 해오고는 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3학년들은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금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 뭐, 고백도 못하는 에이스는 꼴사납지."

"고백을 못하는거였어? 나는 또 지가 누굴 좋아한다는 거도 모르는 줄 알았지."

"헤에- 아무리 개라도 그건 알겠지."

"어이, 네들 선배맞냐."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하는 말에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다가 이만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고 쿄타니를 돌아보는데 쿄타니는 이미 무슨 생각에 빠진 것인지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눈치빠른 선배들은 요즘 쿄타니가 왜 부활동에 나오지 않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게 무엇때문에 그런것인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웃는 얼굴이 개구지고 깨끗하고 순수하다. 순수하다는 말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가 웃으면 주위가 환해지며 눈이 맑아진다. 가끔 도발적인 눈으로 노려봐 올때면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전율이 찌릿하고 느껴지며 저도 모르게 가슴께부터 승부욕이 치밀어오른다. 아니, 그게 승부욕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끌어오르는건 분명했다.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파워와 기합, 그리고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위해 제일 먼저 나아가는 돌격대장.


 평소에는 바보에다 멍청하고 두뇌라고는 쓸 줄을 모르는 그저 남고생이지만 시합중 언뜻 보이는 진지한 모습이 더할나위없이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워...?


 선배들의 짓궂은 말에 곧바로 타나카를 떠올린 쿄타니는 선배들이 자신이 타나카를 의식하고 있는걸 안다는 사실보다도 자기가 그를 좋아하는가 아닌가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그닥 좋지는 않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다 앞에 서 있는 이와이즈미를 본 쿄타니는 당연한듯이 물었다.


"고백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푸흐흡!!!!"


*


"이야아- 설마하니 광견짱이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넌 후배가 고민하는 것이 그렇게나 재밌냐."

"그도 그럴게 광견짱이잖아?"


 쿄타니의 진지하고도 조심스러웠던 질문은 오이카와의 비웃음으로 시작해 각종 놀림으로 끝이 났다. 하나마키는 무작정 들이밀며 사랑을 어필하라면서 다짜고짜 키스부터하라고 말을 했고, 마츠카와는 몸부터 섞고 자기것으로 만들라는 무서운 조언을 했다가 이와이즈미에게 발등을 밟혔다. 오이카와는 "광견짱이 아무리 진심으로 고백해도 받아줄 사람 아~무도 없지롱!" 하며 골려주다 역시나 이와이즈미에게 걷어차였다. 정작 질문을 받은 이와이즈미는 본인도 누굴 좋아해본 적이 없어 고백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해주고 싶은 일들은 몇가지 있어 그거라도 괜찮다면 알려주겠노라 했다.


"뭐 우선은 서로 가까워지는게 우선 아닌가? 같이 등교하거나 하교하면 함께 있을 시간도 많아지고."

"그렇습니까."

"같은 학교라면 더 좋겠지만 다른 학교라면 아무래도 좀 힘들겠지. 산 하나 차이나는 카라스노면 더욱."

"아."


 오이카와가 찬물을 끼얹는 통에 쿄타니가 드물게 시무룩해지며 어깨가 축 쳐지자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은 이와이즈미가 쿄타니를 마주보며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네가 정말로 좋아한다면 얼마나 멀리있든 어떤 상대든 다 쓸데없는 문제니까 신경쓰지마. 진심이 통하지 않을리 없어. 그러니까 힘내라."


 어떠헥 말을 해야할지 몰라 대충 둘러대듯이 말했건만 쿄타니는 귀담아 새겨들었던건지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해왔다. 꽤나 기뻐보이는 얼굴에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든 이와이즈미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오이카와도 저런 쿄타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던지라 놀라며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상대가 타나카라는걸 떠올리자 자신이 그닥 별 도움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남자잖아. 힘들지 않겠어? 상대도 너와 같은 마음이 아니면 더 어려울거고."

"야, 오이카와!"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죽을만큼 힘들어지게 되면 고백할겁니다. 적어도 내가 좋아한다는건 알아주겠죠."


 자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벌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걸 납득한 쿄타니는 대뜸 답을 하고서 서둘러 발을 재촉했다.

 언제나와 같이 카라스노로 향하던 발이 점차 빨라지다가 결국엔 전력질주를 하듯 달려서 도착한 카라스노 체육관의 문앞에서 우뚝 멈춰서버리고 말았다.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호쾌하고 시원스러운 웃음소리. 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 주체를 할 수 없는데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달려와서 그런거다 생각하려해도 귓가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풀무질을 해댄다. 얼른 열어버리라고, 열어서 언제나와 같이 그를 만나라고 머리속에서 아우성을 치는데 정작 손을 덜덜 떨리며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여어- 왔냐? 뭐하고 서 있어? 어서 들어와!"


 창문 너머로 쿄타니를 발견한 타나카가 단숨에 체육관의 문을 열고서 타나카의 팔목을 붙잡아 안으로 이끌자 쿄타니가 크게 움찔거리다 힘없이 끌려 들어가다 자신보다 상당히 서늘한 온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너 꽤나 뜨겁다? 열있냐?"


쿄타니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던 타나카가 뒤돌아 다른손으로 이마의 열을 재보는 시늉을 했다. 쿄타니는 단숨에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며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이 터질듯 뜨겁게 열로 달아올라 있는게 느껴졌다.


이게 열병인가.


주 본진 하이큐 쿄타나, 쿠로다이 타나카 류노스케, 쿄타니 켄타로 그 외 입맛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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