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계에서 푼 썰 백업입니당:)


건국 이래 최고의 부흥기. 모든 백성이 배부르고 행복한 시대. 이 모든 것이 황제 배두훈이 이룬 업적이었다. 18세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정권을 휘둘러 신하들을 구워삶을줄 아는 현명한 자였다. 주변의 모든 나라는 제국을 부러워 했으며 배두훈의 정치를 따라하고자 하고, 환심을 사고 싶어했다. 때문에 황제에게는 다양한 진상품이 올라왔다. 보석, 책, 무기, 동물, 심지어 사람까지. 

배두훈은 그런 진상품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진상품 중 사람이라면 돌려보내고 물건이라면 그저 창고에 넣어 둘 뿐이었다. 그나마 좋아했던건 옆 나라가 친목의 의미로 준 개 한마리 정도였다. 그래, 그 뿐이었었다. 그것이 진상되기 전까지는. 


"폐하, 이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애완용으로 기르셔도 되고 장식품으로 쓰셔도 됩니다. 또한 이것의 심장을 먹으면 영생을 한다고 합니다! 폐하의 안녕을 위해 저희 왕국이 바치는 최고의 것입니다."

"... 무엇인가."


남자는 가지고 온 상자 위 천을 치웠다. 그리고 커다란 수조가 나타났다. 


"인어 성체이옵니다!"


수조 안에는 커다란 인어가 불편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얼굴은 어지간한 미인들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피부는 달빛을 받은 양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와 대조되어 다리 대신 자리 잡은 물고기 꼬리는 밤바다처럼 새카만 비늘을 가진 남성 인어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어의 자태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아름답구나. 일단 인어가 든 수조를 짐의 방으로 들여라 . 그리고 궁 내부에 인어가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라."

"네, 폐하."


두훈은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인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인어는 두훈과 눈이 마주치자 눈꼬리를 접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수조가 움직여 문 밖을 나갈 때까지 두훈은 인어의 수조만을 계속 바라봤다. 그저 머리 속에는 빨리 저 인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


커다란 수조는 두훈의 침실에 당도했다. 수조 안에 있던 인어는 헤엄치기엔 불편한 수조를 왔다갔다하며 이 방의 주인을 기다렸다. 해가 산너머로 사라질 무렵 방 문이 열리고 두훈이 들어왔다. 두훈은 또 다시 수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인어는 다시 꼬리를 살랑이며 두훈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인어는 아까보다 더 아름다웠다. 


"... 안녕."


인어는 화답하듯 방긋 웃어주었다. 


"이름이 뭐야?"


인어는 입을 열어 대답했지만 물 안에 있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두훈은 황급히 수조의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인어가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불빛을 받아 빛나는 눈동자는 까만 흑요석 같았다. 


"형호."

"형호?"

"강형호야."

"난 배두훈."

"알아. 날 바치던 인간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

"거긴 좁지? 조금만 참아. 연못 같은 거라도 지어줄게."

"맞아, 여긴 좁아. 하지만 연못은 싫은데."

"더 크게 만들어줄까?"

"아니, 연못으로 가면 널 못보잖아."


형호의 말에 두훈은 깜짝 놀랐다. 사실 인어는 인간을 싫어해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존재였고, 사나웠다. 때문에 자신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 형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두훈에게 꼬리로 물을 뿌리고 수조 안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수면 위로 나왔다. 


"이거 가져."

"이게 뭐야?"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돼."

"하지만 이건 검은색인데."

"내 눈물은 흑진주가 돼. 희귀한거야."

"이걸 왜 나한테 줘?"


형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수조 아래로 내려가더니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두훈은 수조를 두드리며 대답을 원했지만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은 채 뒤돌아버렸다. 두훈은 손바닥에 진주를 굴리다 서랍 안에 있는 보석 상자 하나를 꺼냈다. 금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상자 안엔 많은 보석이 있었다. 두훈은 창문을 열어 보석 상자를 뒤집어 안에 있는 모든 보석을 버렸다. 그리고 딱 하나의 보석만을 상자에 담았다. 검은 진주는 상자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 되었다. 


*


첨벙- 

일주일 전부터 두훈의 아침은 물이 일렁이는 소리로 시작했다. 물소리에 깨 눈을 뜨면 수조 위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고 햇빛을 받는 아름다운 인어가 보였다. 두훈이 침대에서 일어나면 인어는 눈을 떠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안녕."

"안녕."


그렇게 일어나면 이제 둘은 1시간 동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햇빛이 뜨거운 걸보니 맑을 것 같다, 새가 창문가에 열매를 두고 갔다는 등 실없는 이야기였지만 두훈은 손으로 턱을 괴고 노래를 듣는 것처럼 형호가 조잘거리는 말을 감상했다. 

일방적인 인어의 말이 끝나면 이제 형호는 지긋이 두훈을 바라본다. 그럼 두훈은 화답하듯 입을 연다. 그렇게 서로 자신의 노랫말을 속삭이고 있으면 이제 시종들이 들어와 황제를 가꾸기 시작한다. 화려한 옷을 입히고 가벼운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장신구를 걸치면, 비로소 백성들이 아는 위엄있는 황제가 된다. 이 시간은 형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두훈은 얼굴도 화려한데 그렇게 입으면 더 화려해져."

"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어?"

"응."

"그럼 잘 때도 이러고 자야겠다."

"그건 싫어."

"왜?"

"불편하잖아."

"이 모습이 더 좋다며."

"두훈이 불편한 건 싫어."


두훈은 가볍게 웃으며 수조에 포도 한송이를 던져줬다. 형호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포도가 삽시간에 뼈대만 남아 수조 바깥으로 던져졌다. 시종들은 익숙하게 포도줄기를 치우고 물기를 닦았다. 두훈은 수조로 가  형호에게 인사했다. 두훈이 손을 뻗으면 형호는 자연스럽게 손에 얼굴을 비볐다. 서늘한 인어의 체온이 손을 타고 내려왔다. 


"금방 올게."

"안 믿어."

"하하."

"올 때 그거 가져와. 그 빨갛고 동그란 과일."

"사과? 그래."


두훈은 아쉬움이 가득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문 밖으로 나갔다. 쿵소리와 함께 닫힌 무거운 문을 물끄러미 보던 형호는 다시 수조로 들어갔다. 이제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옆에 계속 있고 싶다."


형호는 살랑이는 자신의 꼬리를 바라봤다. 검고 빛나는 꼬리. 그리고 서서히 비늘이 꼬리 끝부터 사라져갔다. 그리고 하얀 인간의 다리가 조금씩 나타났다. 형호는 다시 수조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모든 몸을 밖으로 내빼 수조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발바닥에 닿는 대리석의 감촉이 차갑고 부드러웠다. 오랜만에 걷는 거라 휘청거리긴 했지만 금방 중심을 잡았다. 그렇게 두훈의 방을 구경하던 형호는 거울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엔 자신이 준 진주를 보관한 상자가  있었다. 

형호는 애초에 그것만 있었던 것처럼 덩그러니 있는 흑진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피를 냈다. 피가 몽글몽글 맺힌 손가락은 흑진주를 향했다. 흑진주는 피가 닿자 서서히 자신의 안으로 피를 빨아먹었다. 그리고 더 검고, 반짝이게 됐다. 


"얼마 안남았어."


그래, 얼마 남지 않았다. 


*


덜컹!

수조 안에서 잠 들어 있던 형호는 수조가 흔들리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버렸다. 눈을 뜨니 수조에 천을 덮어놓았는지 어두컴컴했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고 흔들리는 것을 보니 수레에 수조를 옮기고 있는 듯 했다. 형호는 다급히 수조를 두드리고 위로 나가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수조를 몸으로 부딪히면서 나가려고 애를 썼다. 

쿵! 쿵!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형호가 날뛰는 소리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조에 닿았다. 


"형호야, 진정해."


형호는 두훈의 목소리가 들리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쾅! 하고 유리를 강하게 치는 소리를 냈다. 두훈은 형호가 화가 많이 났구나 싶어 다급히 천을 치워줬다. 역시나 천을 벗기니 뚱한 표정의 형호가 격렬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미안해. 널 옮기는 중이었어. 자고 있길래 깨우기 미안해서."


두훈은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열어주었다. 형호는 재빠르게 수면 위로 나와서 두훈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두훈은 빨개진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형호에게 사과를 건냈다. 


"아야."

"놀랬잖아."

"미안해. 대신 너를 위한 선물이 있어."


형호는 심드렁하게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분명 건물 안이었는데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침대와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은 거대한 수영장과 연결되어있었다. 바닥에는 마력석을 놨는지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물은 맑고 깨끗했다. 

인부들은 조심히 형호를 꺼내 수영장에 내려놓았다. 두훈은 방긋 웃으면서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옷이 다 젖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과감한 발걸음을 옮겼다. 


"어때. 너를 위한 공간이야."

"너무 좋아."

"난 이제 밤엔 저기 있는 침대에서 잘거야. 그럼 형호 너도 나랑 안헤어지고 나 자는거 구경할 수 있어."

"진짜 좋다."


형호는 수영장을 크게 돌면서 유영했다. 충분히 넓고 깊은 수영장 덕분에 형호는 오랜만에 몸을 풀 수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서 기쁨이 실려왔다. 두훈은 뿌듯함을 느끼며 점점 깊게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두훈은 자신의 가슴께까지 오는 곳에 멈춰 형호가 자유롭게 수영하는 걸 지켜봤다. 


"이제 마음껏 수영해. 자유롭게."


그래, 자유롭게. 사실 이 곳은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 수조가 넓어졌을 뿐 인어를 속박하고 있는 곳임은 여전했다. 하지만 조금만 풀어주면 고맙다는 듯 기뻐하는 인어가 멍청하다 생각하면서도 안심되었다. 이걸로 만족하면, 내 옆에 계속 있겠다 하겠지. 불만이 더 생기면 더 큰 수조를 만들어주자. 그렇게 계속 내 곁에 두자. 두훈은 여전히 헤엄치며 행복해하는 검은 인어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형호는 그러다 갑자기 두훈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뭔가 기억났는지 다급한 표정이었다,  


"진주!"

"진주?"

"진주를 전에 있던 방에 두고 왔어."

"아, 가져왔어. 내가 안챙길리가 없잖아."


두훈은 사람을 시켜 상자를 받았다. 상자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검은색의 진주가 있었다. 진주는 빛을 받을 때 마다 은은하게 붉은 빛을 띄었다. 


"이게 원래 이렇게 붉은 빛이 돌았던가."

"... 원래 이랬어."

"그래. 네 말이 맞겠지. 근데 이건 왜?"


형호는 진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두훈의 볼을 강하게 쥐어 입을 억지로 벌리게 했다. 강제적인 행위임에도 두훈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주를 입 안에 밀어넣었다. 혀 끝에 닿는 서늘한 진주의 감각이 소름돋았다. 형호는 두훈의 혀를 꾸욱 누르며 진주를 더 깊이 밀어넣었다. 


"삼켜."


그 말과 동시에 두훈은 진주를 꿀꺽 삼켰다. 형호는 다시 두훈의 입을 열어 정말로 삼켰는지 확인했다. 입 안은 깨끗했다. 


"잘했어."

"삼키면 뭐가 좋은데?"

"뭔지도 모르는데 삼킨거야?"

"네가 하라면 해야지."


두훈은 부드럽게 웃었다. 형호도 눈꼬리를 접어 같이 웃었다. 이제 됐다. 


"별거 아냐. 인어의 진주를 먹으면 몸에 좋거든."

"벌써부터 건강해지는 기분이네."


형호는 그렇게 다시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두훈은 그 모습을 오랜시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종이 걱정하는 소리를 낼 때야 뒤를 돌아 나왔다. 두훈은 옷을 갈아입고 사과를 꺼내 수조 안에 몇 개 넣어줬다. 포도처럼 사과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뼈대만 남은 채 수영장 밖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수영장에 기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어의 노래는 바다 위에서 들으면 무조건 도망쳐야 했다. 아름다운 음색에 빠져 그대로 다가가면 암초에 부딪히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엔 암초도 소용돌이도 없이 오직 두훈과 형호 그리고 시종 한명뿐이었다. 두훈은 침대에 걸터 앉아 아름다운 인어의 노래를 감상했다. 

인어가 노래를 끝내자 방엔 침묵이 가라앉았다. 두훈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자리에 있던 시종을 가까이 오라 했다. 시종은 인어의 노래를 듣고 넋이 나가있다가 두훈의 부름이 두 번 닿았을 때 정신을 차렸다. 시종은 황급히 황제에게 용서를 구했다. 


"걱정마렴. 그런건 별로 신경 안쓴단다."


그 말을 끝으로 두훈은 침대 머리맡에 걸려진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두훈의 유려한 손짓에 시종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형호의 노래는 나만 들어도 모자라거든."


두훈은 시종의 피를 묻힌 채 형호에게 다가갔다. 형호는 손을 뻗어 두훈의 피 묻은 얼굴을 닦아주었다. 


"나는 너를 위해 노래 해."


형호는 달빛처럼 아름답게 웃었다. 


***


반짝이는 해변, 검은 인어는 암초에 기대 멍청한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 하나 잡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인간, 물 속에선 숨도 못 쉬면서 물에 빠져드는 인간들. 보기만해도 지루했다. 인어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인간들을 보다 바다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그를 보기 전까진.

형호의 눈을 사로 잡은 인간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태양이 인간이라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기 넘치는 눈동자, 맑은 미소.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까지 저 멍청한 인간들과는 달랐다. 

형호는 점점 뭍으로 향했다. 저 빛나는 인간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바위 뒤에 숨어 그를 흘깃흘깃 바라봤다. 


"황제 폐하, 이제 돌아가셔야합니다."

"흠, 날씨가 이리 좋은데."


빛나는 인간은 아쉽다는 듯 바다를 바라보다 뒤돌아 사라졌다. 그 눈이 바다에서 빛나는 어떤 진주들보다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목소리마저도 인어 같았다. 형호는 눈을 빛냈다. 가지고 싶다. 옆에 두고 계속 빛나게 하고 싶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심해 깊은 곳에 사는 형호는 항상 태양을 동경했다. 나는 가질 수 없는 하늘 위의 것. 항상 빛나고 따뜻한 태양. 그런데 오늘 동경하는 태양과 같은 인간을 보았다. 너라도 내 옆에 두고 싶다. 


"어떻게 해야 옆에 있을 수 있지?"


황제라고 했다. 분명 인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사람 일 것이다. 너에게 닿으려면, 어떻게? 그때 머릿속에서 스친 것이 있었다. 지난 밤 역겨운 인간들이 인어를 잡으려고 발악을 하면서 내뱉었던 말.


'황제에게 인어를 바치면 우리한테 잘 해줄거야!'


이거다. 빛나는 인간에게 나를 바치자. 역겨운 인간의 거친 손도 숨막힐 듯 좁은 수조도, 태양을 가지기 위해선 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인간은 드디어 인어를 잡았다. 달빛처럼 빛나는 하얀 피부에 밤바다 같은 칠흑의 비늘. 그리고 섬뜩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인어가 아니라 뱀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인간들은 흠칫하면서 인어를 포획하기 망설였다. 하지만 인어는 기다렸다는 듯 순진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두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인간들은 눈치를 보다 밧줄을 가져와 인어의 손을 묶었다. 그리고 질질 끌고가 좁은 수조에 풀어넣었다. 

이제 됐다. 이제,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인어는 기쁨의 눈물 한방울을 흘렸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오다 턱에서 떨어지면서 검은 진주가 되었다. 인어는 그 진주를 소중히 잡았다. 이것만 있으면, 태양을 곁에 둘 수 있다. 


"빨리 만나고 싶어."


바다를 보며 따뜻하게 웃던 얼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루한 나날이 지나고, 드디어 태양을 만났다. 나를 보고 황홀하게 웃는 저 모습. 형호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으로 웃었다. 이 날을 기다렸다. 이제, 태양을 가질 시간이다. 


***


어느날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자꾸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고, 무거운 돌이 가슴을 누르는 듯 했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끌로 머리를 쪼개는 것 같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신하들은 태의를 불러 황제를 진찰 했다. 그러나 아무런 병도 찾을 수 없었다. 황제는 분노하여 무능한 태의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신하들은 벌벌 떨며 다른 소문난 의사들을 데려왔으나 늘어나는건 갖고 싶지 않은 의사들의 머리통일 뿐이었다. 

두훈은 식은 땀을 흘리며 수영장을 바라봤다. 흐린 시야 사이로 하얗고 검은 인영이 보였다. 이 곳을 바라보는 인어의 시선엔 걱정이 가득했다. 두훈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난 괜찮아.'


두훈은 간신히 입을 움직여 자신의 상태를 인어에게 전했다. 괜찮을리 없었지만, 형호가 걱정할까 싶어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강렬한 두통에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그때 무언가 물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틀었으나 고통은 시야를 가렸다. 아무리 크게 숨을 쉬고 있어도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를 봐."


감미로운 소리에 고개를 들어 눈을 떴다. 형호가 두훈의 얼굴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무겁게 두훈의 몸 위에 올라탔다. 서늘한 손이 두훈의 목을 감쌌다. 강한 힘이 목을 감싸고 컥하는 소리와 함께 강제로 눈이 트였다. 마주한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강렬한 불빛을 내며 두훈을 바라봤다. 조여는 숨통에 두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편안해지고 머리의 고통이 사라졌다.

그래, 나를 죽이는 건 너여야지. 너여야만 해.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싶었으면서도 반대로 아름다운 형호의 얼굴을 계속 눈에 담고싶었다. 두훈은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형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형호가 아름답게 웃었다. 주변 시종들의 다급한 제지와 함께 형호가 강제로 황제의 몸에서 떨어졌다.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형호의 목을 벨듯이 소리쳤다. 


"그만."


두훈은 콜록거리며 기사들을 제지했다. 형호는 다시 한번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웃음 같기도 하고 야살스런 여인 같기도 했으며 호탕한 남자 같기도 했다. 그 소름 돋는 웃음 소리에 시종들과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때,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괜찮을거야."


인어의 말이 맞았다. 두훈은 가뿐 숨을 몰아 쉬며 가슴을 만졌다. 답답함이 사라졌다. 지쳤지만 몸에 피가 도는 듯 했고 깨질 듯한 두통도 사라졌다.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목에는 인어의 흔적이 남았지만, 평소처럼 건강한 몸이 된 듯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인어가 해낸 것이다. 

두훈은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형호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있어야할 인어의 꼬리 대신 몸처럼 하얗고 얇은 다리가 있었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작게 비늘이 있지 않았다면 정말 사람일 거라 착각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두훈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천을 가져와 형호의 다리에 덮어줬다. 


"네가 나를 살렸구나."


두훈은 옅게 웃는 형호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얼굴에 댔다. 시원했다. 


"네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두훈이 언제나 내 곁에 있으면 돼."

"다른 건?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사과가 먹고 싶어."

"하하. 건물 하나를 사과로 채워줄까."

"그건 너무 많아."


두훈은 시종과 기사들을 물렸다. 그리고 형호를 일으켜 세웠다. 손을 잡고 천천히 형호의 걸음마 연습을 시켜줬다. 


"원래도 걸을 수 있었어?"

"응."

"왜 안 나왔었어?"

"불편해서. 여기 온 이후론 한번도 안나왔어."


거짓말이다. 형호는 웃으며 가벼운 거짓말을 입에 올렸다. 두훈은 철썩 같이 그 말을 믿었다. 순진한 나의 태양.


"너를 위한 신발을 맞춰야겠다."

"인간의 신발은 불편해."

"다칠 수도 있어."

"난 여기만 다닐 거니까 괜찮아."

"그럼 바닥 청소를 더 깨끗이 하라 해야겠다."


두훈은 천천히 형호를 수영장으로 데려다줬다. 형호의 다리는 물에 닿자 검은 비늘이 올라오면서 다시 인어의 꼬리로 돌아왔다. 천천히 유영하는 형호를 바라보다 두훈도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살짝살짝 스치는 형호의 꼬리가 간지러웠다. 새 삶이 시작 된 기분이었다. 


***


그 이후로도 두훈은 가끔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형호를 바라봤다. 그가 눈을 마주쳐줄 때마다 아픔이 사라졌다. 그렇게 점점 두훈은 회의실보단 침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루한 서류를 보는 것 보다 형호를 보는 것이 더 재밌었다. 신하들은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예전으로 돌아와달라고, 백성을 생각하던 어진 황제로 다시 돌아와달라고. 두훈은 그 말이 의아했다. 자신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저, 형호를 더 오래 옆에 두었을 뿐이었다. 


"난 변하지 않았는데. 왜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할까?"

"넌 여전히 태양 같아."

"하하, 입에 발린 말이라도 좋네. 여기 네가 좋아하는 사과야. 어떤 여인이 주더라."


두훈은 턱을 괴고 형호에게 새빨간 사과를 수영장에 던져주었다. 신하들이 침실로 가져온 서류들은 물에 젖어 보기 어렵게 된지 오래였다. 두훈은 겉옷을 벗고 수영장으로 들어섰다. 형호가 두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쳤다. 둘의 물장난이 계속 될 즈음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리 들어오시면!"

"폐하를 뵈어야겠다."

"무슨 소란이냐. 들여보내라."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두훈의 동생이자 공작인 우림의 표정에선 다급함과 걱정, 분노가 뒤섞여있었다. 우림은 두훈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술을 짓이겼다. 화를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폐하!"

"우림이구나."


우림은 자신의 형님과 인어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형님이 정세를 등지고 침실에만 틀어박힌 이유가 저 인어 때문임을 우림은 잘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얼굴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괴물을 형님 곁에 계속 둘 수 없었다. 우림은 황제의 침실을 지키던 기사의 허리춤에 있던  칼을 뽑아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폐하, 비키시지요."


우림의 칼 끝은 형호를 향했다. 두훈은 형호 앞을 가로 막았다. 두훈은 서늘한 눈빛으로 우림을 바라보았다. 두훈은 단 한번도 우림을 그렇게 쳐다본적 없었다. 항상 무엇보다도 동생을 사랑한다는 듯 웃어주웠다. 그러나 우림은 지금의 얼굴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을 업어주던 형님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째서 이리 변해버린 것일까. 자상하고 너그러웠던, 누구보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던 형님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저 인어에 홀려 미쳐버린 광인이 있을 뿐이었다. 


"비키시지 않으면 같이 베어버릴 것입니다."

"그래."

"네?"

"형호가 없으면 난 살 수 없으니, 같이 죽여라."


칼을 쥔 손이 떨렸다. 요망한 인어는 두훈의 뒤에 숨어 방긋 웃고 있었다. 형호는 두훈의 목에 팔을 감고 귀에다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두훈은 다시 맑게 웃으며 형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형호는 다시 수영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두훈은 계단을 올라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림이 겨누고 있던 칼날을 겁 없이 맨손으로 잡았다. 고통은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서늘하게 우림이를 바라보았다. 손에선 붉은 피가 장미 덩쿨마냥 두훈의 손을 옭아맸다. 우림은 당황하여 칼을 빼려 했으나, 두훈이 더 꽉 쥐는 바람에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폐하!"

"내 눈 앞에서 내 것을 해하려 하다니."

"정신 차리십시요, 저것은 폐하를 홀린 괴물입니다!"

"어서 공작을 내 눈 앞에서 치워라."

"두훈 형님!"


기사들은 황제의 명을 따라 우림을 제압했다. 그리고 문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우림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메아리쳤지만, 두훈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인어가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 될 뿐이었다. 뒤에서 걱정어린 소리를 하는 시종들까지 내보내자 침실은 형호가 첨벙거리는 물소리 말곤 들리지 않았다. 편안하고, 안정되는 소리.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두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훈은 다시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서 번지는 피 때문에 수영장 일부는 붉게 물들었다. 형호는 두훈의 손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두훈은 피가 질질 흐르는 손을 감흥 없이 보다 등 뒤로 숨겼다. 형호가 슬퍼하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좋은 것만 주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자 형호가 두훈이 숨긴 손을 자기쪽으로 끌고 왔다. 손은 점점 형호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형호의 장미 같이 붉은 혀가 손바닥에 닿았다. 천천히 혀가 상처를 타고 올라갈 때, 형호의 눈은 불타듯 타오른 채 두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안에 가득 담긴 것은 소유욕이었다. 

상처는 점점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형호는 아쉬운듯 피가 묻은 입을 핥았다. 두훈은 상처가 사라진 손바닥과 형호를 번갈아 보다 웃음이 터졌다.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한다더니."

"살이라도 뜯어줄까?"

"아니. 필요 없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손가락이라도 뜯어 줄테니까."

"네가 아픈 건 싫어."


두훈은 형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둘의 소유욕과 행복이 늘어날 수록, 태양은 점점 구름에 가려졌다.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예고하듯. 


***


태양은 하늘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하염 없이 비가 내렸다. 작물들은 물에 잠기고 사람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렸다. 산이 무너지고 흙이 마을을 덮쳤다. 건국이래 가장 끔찍한 재해가 당도했다. 사람들은 황제에게 빌었다.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우성쳤다. 하지만 황제는 더더욱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침실에 들어오는 그 어떤이도 허락하지 않았다. 시종마저도 황제의 침실에 들어가면 나오는 건 목뿐이었다. 

결국 궁무는 우림이 대신 처리하게 되었다. 우림은 이대로 형님을 둘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인어의 목을 베리라. 우림은 자신들의 황궁기사들을 데리고 황제의 침실에 도달했다. 얼핏보면 반란 같았지만, 우림은 황좌는 전혀 관심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사랑했던 형님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형님!"


우림은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침실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침실은 고요했다. 흔하게 나던 물소리도, 두런두런 나누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너머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불안한 감정이 마음 속을 뒤흔들었다. 우림은 다급히 문을 열었으나 문고리가 잠겨 있었다. 제기랄! 우림은 문을 발로 찼다. 덜컹거리기만 할뿐 움직이지 않는 문을 장정 3명이 달라붙어 열었다. 억지로 열린 문에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을 때, 모두 입을 벌리고 침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침실은 엉망진창이었다. 침대는 다 찢어져있었고, 프레임은 산산조각 나있었다. 창문은 제대로 붙어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커다란 수영장에는 우뚝 인어가 서있었다. 정신을 잃은 채 인어에게 안겨 있는 두훈과 함께. 


"형님!"

"이제 시간이 됐어."

"시간? 닥치고 형님을 내놔."

 "태풍이 불거야."


그러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궁 밖은 혼비백산이었다. 번개가 내리치면서 나무에 맞거나 깃발에 맞아 불이 났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이미 깨져버린 창문으로 많은 비가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우림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인어를 죽일 듯 바라보았다. 


"형님을 내놔."

"우린 바다로 갈거야."

"그렇게 둘 것 같아?"

"글쎄."


우림은 날카로운 검을 들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형호는 두훈을 꽉 끌어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 벽에 닿은 형호는 수세에 몰렸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두훈을 인질로 잡았으면 위협을 해야하지만 형호는 그러지 않고 그저 두훈을 꽉 끌어안기만 했다. 우림은 기사들과 함께 손쉽게 인어의 품에서 두훈을 빼낼 수 있었다. 

우림은 형호의 머리채를 붙잡고 수영장을 나왔다.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저 사특한 것이 형님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었다. 


"형님에게 무슨짓을 했어."

"아무짓도."

"그럼 왜 의식을 찾질 못하시지?"

"그저 잠든 것뿐이야.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네가 죽을 걸 알고 있었단 소리 같네."

"그렇다면?"


형호는 사랑스럽게 웃었다. 눈꼬리가 휘어지면서 눈이 초승달처럼 사라졌다. 몇몇 기사들은 그 아름다움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찬 우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저 역겨운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를 맞아 축축한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입술을 혀로 쓸며 형호는 여유를 부렸다. 


"죽여."

"뭐?"

"내 목을 베. 성 밖으로 던져버려. 어디든 내 시체를 버려."

"무슨 꿍꿍이지?"

"하하하. 글쎄. 너는 영원히 이해 못할 걸."

"개소리하지마. 넌 오늘로 끝이니까."

"맞아. 난 오늘이 끝일거야. 하지만, 내 태양에겐 끝이 아니야."


우림에겐 인어의 말은 더 들을 가치가 없었다. 날카로운 검을 들어 단숨에 인어의 머리를 내리쳤다. 드디어 인어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소름돋게도 굴러다니는 머리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그러자 기사에게 안겨있던 두훈이 눈을 떴다. 두훈은 눈을 뜨자마자 형호를 찾았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검을 든 동생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형호의 머리를 발견했다. 


"형호야?"


두훈은 다급히 형호의 머리를 주웠다. 눈을 감은 채로 미소를 띈 인어는 머리만 있음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두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형호의 노래를 듣고 잠들었을 뿐인데 눈 앞에 놓인 것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두훈은 그대로 무너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어미를 잃은 아이마냥 울어댔다. 우림은 그런 형님을 볼 수 없어 강제로 인어의 머리를 품에서 떼어냈다. 우림은 그 머리를 수영장에 던져버렸다. 두훈은 울면서 머리를 따라가려 했지만 우림에 의해 저지당했다. 


"날 형호 곁에 있게 해줘!"

"형님 제발, 제발요!"

"놔! 이거 놔!"


그때, 형호의 머리에서 물거품이 일었다. 눈에서부터 시작된 물거품은 점점 얼굴전체를 덮더니 그대로 증발해 사라져버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인어의 시체마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두훈은 허망하게 물거품이 된 형호를 바라봤다. 

그러자 가슴에 커다란 고통을 느꼈다. 누군가 칼로 찌르는듯 날카롭고 거대한 고통이 두훈의 숨통을 쥐었다. 컥하는 소리와 함께 두훈은 쓰러졌다. 온 몸을 비틀면서 몸부림쳤다. 손톱은 바닥을 긁느라 다 깨져 피가 났고 팔다리는 기괴하게 꺾여버렸다. 우림은 당황하여 의사를 다급히 불렀다. 기사들이 두훈의 팔다리를 잡고 발작을 막았다. 시종들은 두훈의 손발을 침대에 묶었다. 의사는 원인 모를 발작에 그저 강한 수면제를 처방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훈은 암흑 속으로 빠졌다. 


***


"폐하."

"..."

"... 두훈 형님."


우림은 대답하지 않는 두훈을 두고 회의장소로 향했다. 두훈의 발작이 끝나고 의식을 차린지 사흘이 지났다. 두훈은 그저 창 밖을 바라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밥도, 물도 먹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존재 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인어가 황제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수근거렸다. 심지어 황제의 존위까지도 자와자와 되는 중이었다. 다음 황제 후보로 지지를 받은 우림은 계속해서 그 의견을 묵살하는 중이었다. 형님이 아직 살아계신다. 어찌 감히. 회의가 끝난 후 우림은 한숨을 내쉬며 두훈의 침실로 향했다.


"... 안녕."

"형님?"

"오래 기다렸지."


두훈이 정신을 차렸다. 우림은 한걸음에 달려가 두훈을 끌어안았다. 드디어, 드디어 형이 돌아왔다. 어린시절 자신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미소를 짓는 형님을 보며 우림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두훈은 우림이를 꼭 끌어 안아주었다. 


"미안해."

"형님, 이제, 이제 괜찮아요?"


두훈은 대답없이 그저 아프게 웃었다. 우림은 형님이 깨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형님, 배고프진 않아요? 목마르다던가, 필요한게 있다던가...."

"나 바다에 가고 싶어."

"네?"

"한번만, 바다에 다시 가고 싶어."


우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다라니. 아직도 그 인어를 그리워하는 것인가? 우림은 말리고자 입을 열었다. 그러나 두훈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펐다. 


"정말, 한번만."

"... 형님."

"한번이면 충분해."


그래, 한번이라면. 인어도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우림은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두훈을 데리고 바다로 향했다. 꼬박 4일을 마차로 이동해 간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반짝였다. 두훈은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옆에서 우림이 부축해주려고 했지만 두훈은 혼자있기를 원했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우림은 어쩔 수 없이 멀리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두훈은 멀리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다 바닷물 속으로 발을 담갔다. 차갑게 밀려오는 바다가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고 그리웠다. 그렇게 두훈은 홀린 듯 바다로 점점 나아갔다. 발목까지 오던 바다는 벌써  허리까지 차올랐다. 뒤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렸지만, 두훈은 신경쓰지 않았다. 더 빠르게, 깊게 두훈은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결국 바다가 두훈을 집어 삼켰다. 


"안녕."

"... 안녕."


어두운 바다에서 눈을 뜨니 앞엔 아름다운 인어가 있었다. 얼굴은 어지간한 미인들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피부는 달빛을 받은 양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와 대조되어 다리 대신 자리 잡은 물고기 꼬리는 밤바다처럼 새카만 비늘을 가진 남성 인어였다.


"기다렸어. 나의 태양."

"나도 기다렸어. 나의 인어."


인어는 손을 뻗어 자신의 태양에 닿았다. 태양도 손을 뻗어 자신의 인어에 닿았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

"그래. 계속 곁에 있을게."


두훈의 얼굴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얼굴에서 떨어진 눈물은 붉은색 진주가 되어 저 깊은 심해로 가라앉았다. 


태양이 바다를 뜨겁게 비췄다. 평소엔 빛조차 닿지 않을 심해까지.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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