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쓸건데 좀 나가면 안돼요? 뭘 보고있는거에요?”

“구더기가 들어올까봐요.”

“하, 겨우 그런 이유에요? 여자들이란. 이 정도면 되게 깔끔한 편이에요. 구더기라니. 그 쪽이 여자화장실을 못 가봐서 그러는데-”

환영은 옆에서 시끄럽고 장황하게 떠드는 남자에 대충 끄덕여주었다. 아침이 밝아서도 그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고, 환영은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한 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그 좁은 틈으로 구더기들이 기어들어와 자신들을 먹어치울 것 같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남자가 나가는 소리도 듣지못했다.

여자화장실 문은 그들이 처음 올 때부터 닫혀있었다. 남자들은 그 안에 그 괴물을 가둬놨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했고, 여자들은 남자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같이. 환영은 자신들이 남자화장실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거냐며 불평했다. 화장실사용시간을 나눌 수도 없었기에 하루에도 종종 못 볼 꼴을 보았지만(그들은 아무리 말해도 칸을 사용하질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져 여자들은 남자가 들어와도 별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줄어든 반응에 점장은 실망이라도 한 듯 일부러 여자가 들어오면 놀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들이 얼굴 붉히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걸 처음 경험한 사람은 경서였고, 얼굴 붉히는 사람은 점장이 되었다. 이제 점장은 화장실에 여자가 있으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다.

환영은 경서에게 어떻게 한거냐 물었지만, 경서는 재수 없을 정도로 씨익 웃으며 대답해주지 않았다. 환영은 점장이 이제 타겟을 바꿔 자신을 건들이기 시작한다는 말은 하지않았다. 그는 아직 서늘한 눈빛의 경서와 그날 밤을 기억했다.

점장은 남아도는 시간을 누군가에게 시비걸고 화풀이하는 짓거리로 보냈다. 주로 그 대상은 아주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주었던 경서였다. 허나 그는 첫인상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고, 그들의 말싸움과 기싸움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은 늘 점장쪽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점장이 경서를 붙들었던 것은 오기에 가까웠지만, 그 자존심도 세우기 지쳐버렸는지 편한 상대를 고르는게 뻔했다. 서아에게는 뭐라 하려들 때마다 남자가 하극상을 부리는데 자기보다 젊고 힘 센 남자는 또 못버티겠는지 겨우 눈을 돌린 게 자신이었다. 애초에 하나 남은 선택지이기도 했고.

환영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으로 진상과 상사에는 익숙했지만, 작정하고 하루종일 덤벼드는 중년의 배배꼬인 남자는 참고만있기 어려웠다. 오늘은 화장실에 붙박이가 된 자신에 청소용품을 바닥에 던져주며 점장은 할 짓없이 그러고 있을거면 청소라도 하라 소리쳤다. 딱 아래 계급을 대하는 태도에 환영은 헛웃음도 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 태도에 화가 난 점장은 그가 서있는 창문 아래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아채 뒤돌아 그를 보게 했다. 주름 진 얼굴이 가득 찡그려져 구겨진 종이같이 보였다. 괜히 반항심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도 저렇게 될텐데. 어차피- 환영은 손가락을 들어 창문을 가리켰다. 점장은 그 손가락을 따라 창문의 작은 틈새를 올려다보았다.

환영은 세상 떠나가라 소리지르는 점장덕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 밖에서 문을 열고 남자와 경서, 그 뒤로 서아가 우르르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이에요!” 걸렛대를 든 남자가 소리쳤다. 점장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저기에-” 모두가 점장이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일상처럼 그들에게 드리워져있었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비명을 들었는지, 길게 무언가 끊는 듯한 소리를 냈다. 칠판을 긁는 것처럼 불쾌한 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들었다. 허겁지겁 화장실을 빠져나가는 점장을 따라 남자가 따라나갔다. 경서는 남아있는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초조하게 입술을 물었다. “여기서 나가야하는데..나가야하는데..” 낮게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경서는 제 머리를 헤집다 나가버렸다. 화장실에 남은 사람은 환영과 서아뿐이었다. 한참을 창문 너머를 쳐다보던 서아는 환영에게 손을 뻗었다. 환영은 어쩐지 안도하며 저를 이끄는 서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봤어?” 

“..응, 너가 어제 본 게 저거구나.” 

서아는 놀랍게도 떨지도, 울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 둘 지금 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아. 제가 서아를 안아주고, 서아가 떨면서 저에게 기대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일상이었는데. 너가 날 안아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환영은 서아에겐 아직도 좋은 향이 난다고 생각했다.

징그러워. 동백의 유일한 감상이었다. 이미 사람 몸이 꽈배기처럼 꼬인 것도 본 그였지만 벌레는 거부감이 들었다. 서현이 부순 그것의 머리에 가득 찬 구더기들을 본 동백은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을 접었다.

“더 붙어있어요. 여기만 벗어나면 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서현이 그런 동백을 돌아보며 말했다.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로는 조용했다. 동백은 창문이 깨진 조수석에 앉아있는, 안전밸트에 매인 채 온몸을 떨어대며 자신들에게 달려들고 싶어하는 그것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차의 수에 비해 사람도, 그것도 적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안가 그들은 맨 앞에 세워진 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사거리에 옆으로 누워있는 커다란 트럭도. 차가 왔을 방향으로 까맣게 바퀴 자국이 나있었고 운전자석은 텅 비어있었다. 피로 얼룩진 깨진 앞유리와 바퀴에 끼여있는 빨갛고 까만 덩어리에 동백은 대강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현이 영화에서 볼 법한 방식으로 차의 전선을 뽑아내고 있는 사이, 동백은 차 루프 위에 올라 망을 보았다.

비명소리와 폭발음, 차의 빵빵거리는 클락션음조차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우리만 갇혀버린걸지도 몰라. 멍하니 도로 너머를 바라보던 동백은 생각했다. 그 가족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지도를 따라 길을 떠났을까,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마주친 기숙사의 여자는? 산처럼 쌓여있던 그것들이 떠올랐다. 그 여자가 창문을 닫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과거로 흘러가는 머릿속을 잡지 못하던 동백이 오랜 집을 떠올리려던 순간, 그의 시선 끝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그를 잡아주었다. 그들이 가려한 방향이었다. 동백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 형상을 똑바로 보려 노력했다. 그 무언가가 조금 더 가까이오고나서야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볼수있었다. 동백은 입을 열었다.

“-서현씨?”

“오, 지금 이름 처음 불러주는거 알아요?”

고개를 든 서현은 동백이 저를 보고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선을 따라 몸을 돌린 서현은 무의식적으로 욕을 내뱉었다.

저 멀리 그것들이 무리지어 떠밀려내려오고있었다.

“저것들은 무리생활을 하나요?”

단체로 몰려다니네. 차를 버려두고 달려간 건물의 맨 옥상까지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백이 물었다. 거리 전체를 꽉 채우며 그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을 쫒는게 아니라 마치 목적지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 같았다. 대답이 없자 동백은 뒤를 돌아보았다. 멈추지않고 계단을 오르며 동시에 그것들까지 처리해야 했던 서현은 아직 숨을 고르고있었다. 아예 들어눕는 그를 내버려두고 동백은 작게 보이는 그것들이 가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그것들이 도시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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