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걸 나 혼자 읽을 수 없어!!! 다른 사람들도 봐야 해!!!' 하고 익명님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가려줄 것 하나 없이 바로 내리쬐는 햇볕은 따뜻하다 못해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차양막 아래 자리를 잡고 있어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날 실외 활동은 멍청한 짓인데. 그 멍청한 짓을 스스로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 레기는 일의 원흉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니고 있는 남자들이 자욱한 흙먼지를 만들며 운동장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잔디밭이 있는 옆 동네의 사립학교는 고등학교 축구팀에 빼앗기고 흙만 깔린 운동장을 겨우 빌린 동네 아저씨들의 축구 시합이 한창이다. 말이 축구지 TV에서 보던 멋진 패스나 화려한 발놀림은 없었다. 축구공이 굴러가면 그 뒤를 대여섯 명이 뒤쫓고 누가 멋지게 골이라도 넣으려 하면 개떼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나름 신선하긴 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축구의 정의가 오늘 새롭게 쓰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법자들의 중심에는 바이스가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큰 녀석은 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굳이 키 때문이 아니더라도 촌스러운 형광 티셔츠가 시선을 사로잡긴 했다. 저런 셔츠는 어디서 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남자들이 몰려다니는 곳에서 피어난 흙먼지가 뒤늦게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서둘러 고개를 돌렸지만 훅 끼얹어진 바람은 예상대로 먼지를 가득 싣고 와 친절하게 머리카락과 얼굴에 뿌려주었다.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자 텁텁한 모래 입자가 느껴졌다. 한층 불쾌해진 기분으로 다시 바이스를 쳐다보았지만 축구공 쫓기에 여념이 없는 바이스는 레기 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체 이런 육체노동이 뭐가 즐거운 건지. 한숨을 쉬고 짜증을 내면서도 레기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이스가 끌고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러 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바이스가 조기 축구회에 들고 꼬박꼬박 주말마다 나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녀석이 축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던 차에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원고를 마감했기에 덜컥 따라와 버리고 말았다. 실제 와보니 예상한 것보다 더욱 개판이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즐거워 보이는 바이스 놈을 보고 있자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무표정한 표정은 변함이 없지만 집중하느라 찌푸린 미간이라든지 전력으로 달리곤 난 뒤 숨을 몰아쉬는 바이스는 즐거워 보였다.

레기도 즐거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간질거리는 말이긴 하지만 즐거워하는 바이스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바이스의 허벅지나 달리고 있는 녀석의 엉덩이 같은 것도 좋은 눈요기였다. 셔츠를 말아 올려 땀을 닦을 때는 형광 셔츠가 시선을 강탈해 웃겼지만 꽤 멋있기도 했다. 옷 아래로 언뜻 보이는 근육도 섹시하고. 짜증을 내다가도 홀린 듯이 바라보길 반복하는 사이 시합이 끝났다. 바이스가 속한 A팀은 2:3으로 지고 말았지만 한 골을 넣었기에 개인으로 봤을 땐 나쁘지 않은 경기였다. 시합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바이스는 곧장 레기를 향해 뛰어왔다.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던 탓에 뻐근한 엉덩이와 무릎에 힘을 주며 레기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뒤풀이냐?”
“응. 너도 가자.”
“내가 거길 왜 가. 혼자 갔다 와. 난 집에 가서 씻어야겠어.”

거절하며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자 멀리서 바이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가보라며 손을 휘휘 젓자 바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도 안 갈래.”
“왜?”
“어차피 술 마시러 갈 텐데 뭐.”

하긴 아저씨들의 뒤풀이 현장이야 뻔했기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바이스는 인사를 하고 오겠다며 다시 돌아갔고 녀석의 엉덩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레기는 고개를 저었다. 시합 내내 꿈틀거리는 근육을 본 탓일까. 자꾸만 침대 위의 바이스가 떠올랐다. 땀 냄새를 한껏 풍기며 다가오자 서버릴 것도 같았다. 난 섹스만 생각하는 멍청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해보아도 자꾸만 녀석의 엉덩이에 시선이 갔다. 역시 꼴리게 생겼다니까. 집에 돌아가면 그대로 욕실로 데려가서 같이 씻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씻으면서 그대로 할 수도 있고. 덩치 큰 남자 둘이 들어가면 가득 차버리는 욕실에서 어떻게 요령껏 움직일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바이스가 돌아왔다.

“……?”
“왜?”
“뭘 그렇게 실실대고 있어, 기분 나쁘게.”
“뭐? 씨발, 내가 언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풀어졌던 모양이었다. 서둘러 입을 닫고 짐짓 화난 것처럼 눈썹을 찌푸리자 의심하는 눈초리가 사라졌다. 아니면 말고. 무뚝뚝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는 바이스를 보며 녀석이 둔한 것이 이럴 때만은 고마웠다. 요새 바이스 앞에서 묘하게 풀어진 자신을 탓하며 레기는 입매를 어루만졌다. 뭐, 바이스가 좋은 건 사실이고 애정 표현에 대해서는 후한 편이지만 무표정한 녀석 앞에서 혼자만 실실거리는 건 어쩐지 분한 느낌이 들었다. 땀이 마르자 한층 강해진 녀석의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레기는 먼저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서둘러 따라와 반 발자국 떨어진 옆에 서서 나란히 걸으며 바이스가 자신의 활약상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 멋졌지?”
“멋지긴 개뿔. 졌잖아.”
“내가 골도 넣었다고. 씨발, 너 제대로 본 거 맞아?”
“제대로 봤지. 대머리 아저씨가 어시스트 했잖아.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넣지도 못할 거였어.”
“어시가 아니라 실수로 찬 거였어. 그걸 살려서 넣은 게 내가 대단한 거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바이스는 자신이 얼마나 활약했는지 설명했다. 거기에 하나하나 태클을 걸어주니 인상을 팍 쓰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골키퍼였던 바이스가 공격수가 된 것은 확실히 실력이 있기 때문이지만 쉽사리 인정해주면 우쭐댈 게 뻔했기에 레기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공격을 잘하면 뭐해? 수비가 엉망인데.”
“아까 골문 앞에서 내가 태클 걸어서 공도 뺏었다고.”
“아, 그건 기억난다. 조기 축구에서 무슨 월드컵급 태클을 거냐?”
“보여주는 보람이 없네, 개새끼.”

정곡을 찌르자 분한 듯 욕설을 내뱉은 녀석이 애꿎은 땅바닥을 발로 찼다. 시합 중에 보여준 그 과한 오버액션들이 자기 딴에는 멋지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보여준 거라고 생각하니 퍼뜩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덩치로 투덜거리는 것이 덩치만 큰 애나 다름없었다. 다시 입가가 풀어지려 해 레기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렇게 멋있다는 말 듣고 싶으면 조기 축구회 우승컵이라도 가져오던가.”
“씨발, 그건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럼 평생 못 듣는 거지 뭐.”
“치사한 새끼.”

레기는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가뜩이나 찢어진 눈이라 험악한 바이스의 인상이 더욱 사나워졌다. 홱 손을 뻗어 헤드락을 걸듯이 목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자 바이스가 주먹을 꾹 쥐는 것이 보였다. 싸우자는 거 아니거든? 서둘러 덧붙인 레기는 바로 앞으로 다가온 바이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싹 붙였다. 익숙한 녀석의 체향이 코를 찔렀다. 귀에 입술을 갖다 대자 간지러운 듯 몸을 흔드는 바이스를 놓칠세라 힘주어 껴안았다. 귀를 깨물고 싶은 것을 참고 다분히 의도를 담아 레기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멋진 건 잘 모르겠고 섹시하긴 하더라.”
“…….”
“축구 보다가 꼴린 적은 또 처음이라니까?”
“변태 새끼.”

말을 그렇게 했지만 어느덧 얌전해진 바이스의 주먹에 녀석의 기분 역시 풀린 것을 알기에 레기는 바이스를 놔주곤 슬쩍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역시 유니폼을 입힌 채로 해야겠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완결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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