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손 대버렸다.’


현앙은 손에 쥔 금화 세 개를 허공에 던졌다가 받아내기를 반복했다. 빈민가 출신으로 항상 없이 살았으니 도벽이 생겼고, 돈이나 탐나는 물건을 보면 슬쩍 훔치는 게 습관이 됐다. 나름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끄응. 미간을 좁힌 채 다시 돌려주러 갈까 고민하던 현앙은 이내 주머니에 금화를 찔러 넣었다.


‘뭐 어때. 사례비라고 생각하면 되지.’


현앙은 하얗고 긴 머리칼을 반 묶음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말갛고 반반한 얼굴을 떠올렸다. 고급 비단으로 만든 한복을 입고 있던 그 남자의 행색을 봤을 때 부잣집 도련님 같았으니 금화 세 개 잃었다고 크게 곤란해 할 거 같지는 않았다. 현앙은 이내 생각을 지워내고는 제가 지내고 있는 향락가로 향했다.


“현앙!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잠시 장터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너 찾는 손님이 와있어.”


지명이야.


직원의 말에 현앙이 입술을 비죽이며 볼을 긁적였다.


현앙은 손님이 있는 방에 가기 전 제 방으로 들어와 작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넣어둔 최음제를 꺼내 고민하다 이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꿀꺽, 달면서도 씁쓸한 맛을 내는 투명색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약을 먹은 현앙은 긴장감에 낮은 한숨을 내쉬곤 손님이 기다리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발바닥에 닿는 마룻바닥이 차게 느껴졌다.


똑똑―.


“저어…지명하셨다 하셔서 왔습니다.”


손님이 기다리는 방 앞에 멈춰 선 현앙이 고민하다 방문을 두드렸다. 마셨던 최음제의 효과가 돌기 시작하는 건지 점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빨리 들어와라.”


허락이 떨어져 문을 열자말자 두터운 손이 현앙의 손목을 잡고 방안으로 끌어 당겼다. 우당탕, 끌어 당겨진 몸이 거칠게 눕혀졌다. 바닥에 부딪힌 등과 팔꿈치가 욱신거려 미간을 좁혔다.


“예전에 이곳에 왔던 내 벗에게 들었다. 네가 매질을 당해도 잘 참는다지?”


현앙을 제 아래에 가둔 남자가 그의 드러난 상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현앙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현앙의 태도가 긍정의 뜻이라는 걸 알았는지 남자는 손톱을 세워 그의 상체를 긁어내며 아래로 내려갔다.


“으윽…!”


약으로 달아오른 몸이 피부가 긁히는 느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듯 움찔였다. 손길이 지나간 곳에는 붉은 손톱자국이 남았다.

허리끈을 풀어 바지를 벗겨내자 아래가 훤히 드러났다. 발기한 성기, 흥분감에 잘게 떨리는 탄탄한 허벅지. 남자는 곳곳을 붉게 물들인 현앙의 몸을 감상하듯 노골적으로 느릿하게 훑었다. 몸에 자잘하게 난 작은 흉터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여리고 부드러운 몸을 안는 것도 좋지만, 역시 이런 몸을 가진 사내를 아래에 두고 휘두르는 건 묘한 정복감이 느껴져 좋았다. 제 아래에서 엉망으로 범해져 망가질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아래가 묵직해지는 거 같았다.


“으음?”


손을 뻗어 흉터들을 쓸던 남자가 현앙의 무릎을 잡아 벌렸다. 오른쪽 다리, 안쪽 허벅지에 난 흉터가 눈에 띄었다.


“귀족 나으리 물건이라도 훔치다 걸렸나?”


그 흉터는 인두로 지진 자국으로, 천민이 양반집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면 내려지는 형벌 중 하나였다. 원래 그 상황이라면 사형이 떨어졌지만, 인두로 끝난 걸 보니 그 집안사람들이 이놈에게 아량을 베풀어 줬을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는 그런 현앙을 비웃듯 웃음을 흘리며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남자의 손이 허공을 가르더니 현앙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둔탁한 타격감 있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맞은 곳이 홧홧했다. 입술은 터졌는지 혀를 내어 핥으면 따가웠다.

현앙은 맞은 곳을 손으로 감싸 문질렀다. 따끔한 고통이 금세 찌릿한 쾌감으로 변해 아래를 자극했다. 그를 증명하듯 발기한 성기에서 맑고 끈적한 전립선 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매질을 잘 참는 게 아니라, 매질을 좋아하는 거였군?”


남자의 손이 다시 허공에 오르더니 현앙의 허벅지를 내리치고 붉게 손자국이 난 자리를 느릿하게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자잘하고 간지러운 쾌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난 천것이라고 아픔만 느끼게끔 하고 싶지는 않구나.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거라. 그럼 그대로 해줄 테니.”


남자의 손이 목울대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현앙은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마른 침을 삼켜냈다. 흥분감에 입술을 달싹이던 현앙이 목소리를 내었다.


“……더, 더 때려주세요….”


기대감 어린 눈, 흥분감에 젖은 목소리. 현앙의 말을 들은 남자는 만족감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


“하여튼. 형님 때문에 못 살아요, 내가!”


호연은 찬물과 수건을 담아낸 대야와 약품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한차례 속을 게워내고는 이불 위에 늘어진 현앙을 보며 혀를 차더니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손님이 때린다고 그걸 다 맞고 있어요? 하이고, 면상 꼬라지 보소…안 그래도 안 좋은 인상 더 안 좋아졌네! 손님들 다 도망가겠어!”

“…손님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거 모르냐.”


현앙은 제게 쏟아지는 잔소리에 투덜거리듯 변명하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솔직히 그런 쪽도 취향이라는 걸 말한다면 호연은 이해 못할 게 뻔했다. 말하기 부끄럽기도 했고. 다시금 쏟아지는 잔소리에 현앙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안 그래도 아픈 몸이 호연의 잔소리에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래. 맞는 건 그렇다 치자. 약은 왜 마셔요, 대체? 부작용 심한 것도 알면서.”

“……으음….”


가게에서 사용하는 최음제는 값이 싼 만큼 부작용이 심했다. 약 효과가 잦아질 때쯤에는 속이 울렁거리고 열병에 걸린 것처럼 열이 올라 하루는 꼬박 앓아야 했다.


‘안는 맛이 없고 감도도 좋지 않으니 약이라도 먹어 손님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야지 않겠느냐?’


지금보다는 어렸을 적 마담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낮은 침음을 흘렸다. 현앙의 옆에 앉아 있던 호연이 그런 현앙이 덮고 있던 이불을 휙, 걷어냈다.


“어우, 당분간은 어디 돌아다니지 마요. 사람들 정말 다 도망가겠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현앙을 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호연이 마른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시고는 현앙의 얼굴과 정액으로 지저분해진 아래를 닦아주었다. 미간을 좁힌 채 능숙한 손길로 몸에 난 상처와 멍 위에 약을 발라주었다.


“아야, 살살 발라줘….”

“맞는 건 참으면서 왜 이건 못 참아요?”


투덜거리는 호연의 목소리에 현앙이 멋쩍은 듯 웃음을 흘렸다. 현앙은 원래 몸을 파는 미동이 아니었다. 그의 탄탄한 몸과 길거리 불량배 같이 생긴 얼굴을 본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그는 기생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 할 거다.


그런 그가 왜 지명을 받고 몸을 팔게 되었을까.


향락가에는 전통이 하나 있었다. 향락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17세에 시험을 본다. 그 시험을 통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을 부여받는다. 호위무사, 요리사, 기생, 미동 등. 하지만 현앙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잡일에 더해서 기생들의 시중을 들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일을 하고 받는 품삯도 남들보다는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 하나가 거리에서 빗질하던 현앙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대로 방으로 데려가려 했다.


‘이 친구는 기생이 아니라 교육이 안 되어 있는 친구입니다.’

‘상관없다. 나는 교육 안 된 놈이 더 좋으니 방으로 들여보내라! 돈은 세배로 주마.’


이 나라에서 세력이 센 부잣집 자제분이라 거절하기엔 뒷감당이 무서웠고, 그가 내미는 돈이 거절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가게를 관리하는 마담도 현앙이 손님을 받길 원하는 눈치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첫손님을 받게 됐다.

문제는 현앙이 미동으로 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교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성교 중간에 손님에게 손찌검을 맞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한 그가 함께 주먹질을 하다가 소동이 나버렸다.


그 후 향락가 거리의 주인, 류천의 귀에 들어가 그에게 하루에 한 번씩 조교를 받으며 남자에게 안기는 법, 아픔 뒤에 오는 쾌락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됐다. 그것이 거리에 소문이 났는지 그 뒤로도 아주 가끔 현앙을 찾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비역을 위해 찾아온 손님과 계간을 하면 미동들과 같은 품삯을 받았다.


“주인 어르신께서도 이렇게 맞기를 원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약을 마시라는 말도 없었고요.”

“…알았어, 다음에는 안 먹을게.”


호연의 말대로 류천이나 마담이 약을 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앙에게 있어 약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류천에게 조교를 받았다지만 모든 손님들이 그처럼 능숙하고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 고통만 주기 위해 아프게 패기만 하는 손님도 있고, 아래를 억지로 열고 들어오는 손님도 있었다. 아무리 교육을 받아 어느 정도 길들여졌다고 해도 고통만 있는 성교에서 쾌락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약을 먹는 방법이었다.


‘어제 손님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똑, 똑―.


“형. 들어가도 돼?”


현앙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호연은 익숙한 목소리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월영이었다. 손에는 복숭아가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다. 현앙이 손님을 받고 뻗어 있다는 걸 알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을 가져온 게 분명했다.


“이제 난 가볼게. 다른 일도 있거든!”


대야를 챙긴 호연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 월영은 문이 닫히자 현앙의 옆에 와 앉았다. 그는 호연과 달리 조용히 앉아 복숭아가 담긴 그릇을 현앙에게 내밀 뿐이었다.


“역시 월영이 밖에 없구만!”


쓰디 쓴 잔소리 대신 달디 단 과일이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앙은 상기된 표정으로 손질되어 가지런히 놓인 복숭아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음, 나름? 열도 좀 가라앉은 거 같고….”


월영의 손이 현앙의 이마를 짚었다. 여전히 열은 나고 있었지만, 좋아하는 복숭아를 먹어서인지 기분은 한결 나아보였다. 묵묵히 옆에서 복숭아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월영을 보며 희죽 웃어보였다.


“아 맞다.”


복숭아를 먹던 현앙은 무언가 생각난 듯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을 뻗어 구석에 곱게 접혀 있던 제 바지를 끌어와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뭐야?”


주머니에서 꺼낸 건 금화였다. 제 손에 놓인 금화 세 개를 보고 월영이 미간을 좁히며 현앙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제 발 저린 현앙이 두 손을 휘저었다.


“아, 아니. 오늘 장터에 갔다가 어떤 도련님이 소매치기 당하는 거 도와줬어. 따지자면 사례금이지.”

“으음….”

“그, 그렇게 못 믿겠으면 나중에 장터 가서 물어보던가.”


물론, 그 도련님이 제게 사례금이라고 쥐어준 게 아니라 제가 그냥 가져온 거지만. 속으로 생각한 현앙이 하핫, 웃어보였다. 월영은 웃는 현앙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금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라고 주는 거야.”

“알았어. 고마워.”


마지막 하나 남은 복숭아를 집어 먹은 현앙이 도로 이불 위에 누웠다. 달달한 복숭아도 먹었겠다. 몸에 올랐던 열이 슬슬 가라앉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작게 하품을 하자 월영이 이불을 덮어준다.


“넌 이제 갈 거야?”

“형이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월영의 말에 현앙이 살며시 웃으며 몸을 옆으로 옮겨 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누우라는 듯 빈자리를 손으로 탁탁, 쳐 보인다. 월영은 고민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고는 위에 걸치고 있던 두루마기를 벗어 곱게 접어 구석에 내려놓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어렸을 때 생각난다.”


제 옆에 누운 월영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준 현앙이 희죽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월영은 처음 제가 이곳에 왔을 때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다니는 아기 오리처럼 현앙만 따라다니던 제 모습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도 방안이 어두워서 현앙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빨리 자.”

“하핫! 부끄러워하기는.”


작게 하품을 한 현앙은 추억을 회상하기도 전에 금세 잠에 빠졌다.


‘어떻게 머리만 대면 잠이 들지?’


조용히 고른 숨만 내쉬는 현앙의 등을 토닥이던 월영이 신기하다는 듯 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 자.”


월영은 웃으며 현앙을 끌어안고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숨결에 달달한 복숭아 향이 남아 있었다.

쓰고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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