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 도령이 촛불을 켜고 여인을 돌아 봤는데! 눈이 없던거야!!”


“으아아악”




순위 발표식을 앞두고 오전의 강의 외에는 딱히 일과도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저녁이 되자 하나 둘 약속이나 한 듯 지훈의 방으로 모였다. 요즘 들어 정말 단짝이 되어 잘 붙어 

다니는 진영과 대휘, 그리고 지훈의 방에 간다고 하자 냉큼 따라 나선 관린, 

그런 관린을 따라 선호까지 좁은 방안이 북적거린다.



그리고 관린을 따라 오긴 했지만 어쩐지 더 신이 난 선호가 귀신 이야기를 꺼냈는데 

처음부터 귀신 이야기는 싫다며 징징댔던 대휘가 결국 소리를 질러댄 것이었다.




“나 진짜 무섭단 말야. 힝 예전에 집에서도 거울을 보는데 글쎄 처녀귀신이! 

아흑 또 생각나 버렸어. 싫어 싫어 싫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건지 득음 할 기세로 대휘가 소리를 꽥 지르는데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여전히 욕심 많고 지훈을 경쟁 상대라 여기는 대휘지만 일전의 사건을 통해 

이젠 제법 지훈이나 진영 앞에선 솔직하게 애교 많은 본연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대휘는 요즘 진영을 제 가문의 다른 형들보다 잘 따랐다.



크게 웃으며 지훈은 이런 대휘의 변화에 문득 맨 첫날 유생관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던 

소년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마 자신이 보았던 그 뒷모습 중 하나가 대휘였을 것이다. 

하염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괴감까지 들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그들과 자신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형은 뭐 생각 나는거 없어?”




대휘의 반응에 키득거리며 선호가 지훈을 지목 해 왔다. 

그런 선호와 그 옆의 관린에 시선이 멈춘 지훈이 피식 웃는다.




“진짜 무서운 거 이번에 있었지.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알면 너희 정말 다 오줌 쌀 거다.”


“뭔데? 그게 어딘데?”




선호가 신이 나서 재촉을 해 오지만 지훈의 말뜻을 알아차린 관린과 지훈만이 

둘만의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기만 할 뿐이다. 무려 황실만이 사용이 가능한 청룡문을 지나서 

임금님의 왕릉에 다녀왔던 둘이었다. 허가 없이 구경만으로도 사형감인데 그 왕릉의 능선에 앉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훈이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인다.



사람 궁금하게 애만 태워놓고 지훈이 고개를 숙이자 방안이 금세 소란스러워 진다. 

와글와글한 소년들의 그런 소란 속에 지훈과 같은 방을 쓰던 재환이 성가시다는 듯 타박을 주다가 

뭔가 생각 난 듯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지훈과 같은 우 반인 재환은 소속된 국가가 따로 없는 참가자였다. 

학문적인 지식은 단연 연습생 중 최상급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한때 신의 목소리라고도 불렸던 

유명 인사였다. 그런 재환이 이번 이차 경연에서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제법 상세하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 말고 내가 진짜로 무서운 이야기 해 줄게. 

이번 이차 경연 연습 때 우리 조에서 있었던 일이야.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우리 조를 부르고 있더란 말이지. ‘서방님, 서방님’ 하면서.”




제법 얇은 목소리까지 내가며 재환이 처녀귀신의 흉내를 내자 소란스럽던 철부지 무리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에이 그거 형이 지어낸거죠?”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진영이 묻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재환이다.




“못 믿겠으면 성우형이나 다니엘한테 물어봐. 나만 들은 거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재환의 확인 사살에 관린마저 얼어붙어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울상인데 

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 벌컥 방문이 열렸다.




“으아아악!!”


“아 깜짝이야. 뭐하냐? 너네.”




깜짝 놀라 대휘와 선호가 비명을 지르자 방문을 열었던 우진이 더 깜짝 놀라며 방 안으로 들어온다. 

밤이 늦었는데 대휘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아 직접 찾으러 나선 길이었다. 

방문을 연 이가 우진이라는 사실에 다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데




“근데 아까 방 앞에 있던 머리 긴 사람은 누구래? 누구 또 있었어?”




우진의 한 마디에 방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다시 조용해진다. 소년들을 놀리기에 여념이 없던 재환마저 얼어붙어 버렸다.



순위 발표식을 앞 둔 어느 밤의 일이었다.




* * *


“아유 진짜 내가 밤에 뒷간도 제대로 못갔던 거 생각하면”


“니들이 착각한 거지 난 그런 말 한 적 없었다.”




그 귀신 소동이 방을 잘못 찾아 헤매던 장문복 연습생이라는 사실이 밝혀 질 때까지

 한동안 밤출입을 철저히 삼갔던 이들 이었다. 유독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장문복 연습생을 

바라보며 대휘가 투덜거리자 자신은 귀신이라고는 말한 적 없다며 우진이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우진 오라버니~”




동갑이라 급속도로 친해진 지훈이 그런 우진의 옆에 서며 농담을 던진다. 

지훈의 뒤를 이어 진영과 관린 선호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자 이를 지켜보고 섰던 동한이 키득거린다.




“아이고 박지훈과 애기들이 또 늘었네, 3호 4호 5호까지 생긴거야?”




들러붙는 지훈과 실없는 소리를 하는 동한을 아예 상대 않겠다는 듯 우진이 무시를 해 버린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다들 소란스러운 가운데 동한이 지훈을 잡아끌더니 

지훈의 앞 고름을 휙 잡아당긴다.




“니들 이런 건 못해 봤지?”




갑작스런 상황에 지훈이 고름이 풀릴 새라 몸을 살짝 기울이는데 

의기양양한 표정의 동한을 저지하고 나선 것은 관린이었다. 

아무 말 없이 동한의 손에 잡힌 옷고름을 휙 채내며 지훈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는 관린이다. 

서늘한 관린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관린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훈의 태도에 

괜히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지훈 곁으로 올망졸망 모여드는 소년들이 귀여워 한 번 놀려보려 한 행동인데 괜히 무안해진 

동한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을 마친 관린이 묵묵히 

지훈 뒤를 지키고 섰을 뿐이다.



이들이 이렇게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건 

오늘이 다름 아닌 대망의 첫 번째 순위 발표식 날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수련장에는 첫날 보았던 대로 방석들이 놓아져 있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개수가 101개에서 

60개로 줄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경연 여정을 이어갈 연습생은 60명뿐이라는 소리기도 했다.



첫날처럼 같은 출신지 별로 연습생들이 나눠 앉아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소속된 분반도 다르고 이차경연에도 조가 달랐던 협과 지훈은 오랜만에 같이 앉았다. 

연습생들의 착석이 모두 끝나자 보아가 기다렸다는 듯 등장 했다.




“안녕하십니까. 보아입니다. 오늘 생존과 방출을 가리는 첫 순위발표식이 있겠습니다. 

제가 호명하는 연습생들은 순서대로 번호가 적힌 방석 위로 올라와 앉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 60번째 연습생은 맨 마지막에 호명할 것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보아의 설명에 순식간에 어수선한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정리되고 

긴장되는 순위 발표 호명의 순간이 다가 왔다.



가장 먼저 호명되어 이 긴장의 순간을 벗어난 이는 59위의 윤재찬 연습생이었다. 

뒤이어 차례로 50위권 연습생들이 호명되었다. 



2차 경연에서 만세를 외치며 1등을 거머쥐었던 박우담 연습생이 55위에 머물렀고 

태권도라는 대국 고유의 무술을 선보이며 활약한 변현민 연습생이 52위를 차지했다. 

하위권으로 예상 되었던 서성혁 연습생이 51위라는 높은 순위 상승으로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느새 60위 제외한 9명이 방석을 채웠다. 

첫 순위발표식이라 자신들이 몇 위에 위치하고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아 모든 연습생들이 

긴장감에 쌓여있는 가운데 보아의 호명이 계속 해서 이어졌다.



49위의 여환웅 연습생을 필두로 차례로 다시 호명이 시작되었고 

김상균, 우진영, 김예현 등 열 명의 연습생이 마찬가지로 단상 위의 방석에 착석을 마쳤다.



진행되어가는 발표식을 보면서 지훈은 이쯤이면 자신을 부를 때도 되었다 생각했지만 

순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어느 정도 체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협이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건네오지만 극도로 긴장한 지훈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을 뿐이었고 

그렇게 순위발표식은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동한이 37위로 호명 되었고 왜국의 왕자 켄타가 28위로 무사히 살아남았다. 

지훈의 장난에도 흔들림 없이 면박을 주었던 우진이 24위를 차지했으며 

2차 경연에서 지훈의 조의 대표를 맡았던 성운이 21위에 올랐다.



어느새 상위권 등수까지 올라오자 협도 이미 마음을 놓았는지 

관전하는 자세로 순위발표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지훈 역시 이미 포기를 한 상태였다. 

그저 아직 호명되지 않은 진영이나, 대휘, 선호, 재환, 다니엘, 성우 

그리고 관린이 살아남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지훈의 바람대로 재환이 16위 선호가 15위, 진영은 12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당당히 방석에 앉았다. 

경연 첫날부터 화제가 되었던 장문복 연습생은 14위라는 큰하락으로 마무리를 했고 

플레디스 소속인 최민기와 강동호가 각각 19위 20위로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제 최상위권이 11등부터 1등까지의 순위 발표만이 남았다. 

열 명씩 묶어서 호명을 했던 보아가 이제 한명씩 호명을 시작했다.



지훈이 보기엔 연습생을 통틀어 가장 잘났다고 생각되는 참가자 민현이 11등에 호명이 되었다. 

준수한 외모와 잘 다져진 체격은 물론 뛰어난 안목과 지식을 갖춘 민현은 지훈뿐만 아니라 

많은 연습생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짧게 감사의 소감을 전한 민현의 뒤를 이어 지훈과 같은 조를 했던 학년이 10위를 차지했고 

9위는 놀랍게도 관린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당연한 듯 관린이 앞으로 나서며 짤막한 소감을 말했다. 실력을 숨기고 가 반으로까지 

내려가긴 했지만 우석 재상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11위 안에 이름을 올린 관린이었다. 

사정을 미리 알고 있었던 선호만이 관린을 보며 이 건 주최 측의 농간이라 작게 투덜거려 본다. 

그런 선호에게 코웃음을 쳐주며 지나쳐 9위의 자리에 앉은 관린이 체념하고 앉아 있다가 

관린이 호명되자 진심으로 신이 나서 박수를 쳐주는 지훈을 보며 피식 웃는다.



우석 재상을 통해 이미 순위발표식의 결과를 알고 있는 관린이었다. 

물론 관린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투명하고 공평한 결과였다. 

순위 발표를 앞두고 이미 그 등수를 알고 있는 관린은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고 또 참아야만 했었다.



관린에 이어 순서대로 8위 김종현 연습생이 불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체념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지훈이다. 줄곧 시선을 지훈에게 고정하고 있던 관린이 지훈의 표정 변화를 재미있게 바라본다. 

아마 제 등수를 알면 까무러칠테지. 왠지 자꾸만 

히죽히죽 입고리가 올라가는 관린이었다.



이 분위기 속에 이어서 7위로 호명된 것은 대휘였다. 

단연 1위 후보로 늘 거론되던 대휘였기에 연습생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그러나 연연치 않고 대휘가 담담하게 앞으로 나선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밉상으로 보인 것 같은데 더욱 더 노력해서 좋은 모습 많이 보여 드리겠습니다. 

실력적인 부분이나 인간적인 부분에서 좀 더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대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2차 경연을 통해 마음의 짐을 덜고 한층 성숙해진 대휘였다. 

진영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고 지훈과 우진도 박수를 보냈다. 

모두의 성원 속에 대휘가 자리에 앉자 6위로 안형섭 연습생이 호명 되었고 

5위로 드디어 다니엘이 호명 되었다. 

같은 엠엠오 출신자들과 포옹을 나눈 다니엘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다니엘까지 호명이 되자 지훈은 더욱 실망감에 휩싸였다. 

성우도 당연히 남은 네 명 안에 들것이고 자신만 이렇게 다시 마루고을로 돌아가야 하나 자괴감까지 

든다. 좀 전까지 가까웠던 많은 이들이 지금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지훈을 보다 못한 옆자리의 협이 남은 후보들을 손으로 꼽으며 지훈에게 계속 속삭인다.




“아니야. 너 건국 연회에서 활약한 것도 있고 2차 경연에서 기수로 승리까지 이끌어 냈고. 

봐봐 지금 남은 사람 중에 될 만한 사람이 지훈이 너, 성우형, 사무엘 정돈데 너 꼭 된다니까.”




이미 이런저런 생각에 협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지훈인데 보아가 계속해서 호명을 이어간다.




“1위 후보 네 명을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명된 연습생은 자리에서 일어서 주세요.”




이번엔 네 명의 후보를 모두 호명하겠다는 보아의 말에 또다시 연습생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인다.

그런 술렁임을 무시하며 보아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옹성우 연습생, 김사무엘 연습생, 윤지성 연습생 그리고 마루고을 박지훈 연습생.”


“그것 봐. 너 된다니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오고 협이 더 신이 나서 박수를 치는 와중에 

얼떨떨한 표정의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고 나자 

이제야 현실감이 밀려와 손끝까지 저려오는 지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보아의 호명을 기다린다.



소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보아가 싱긋 웃으며 4위부터 호명을 시작했다. 

줄곧 우수한 성적으로 늘 상위권을 유지했던 성우가 당당히 4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3위는 다니엘과 같은 동향 출신인 엠엠오 윤지성이 차지해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최종 1위 후보로 지훈과 사무엘만이 남은 상황이 되었다.



보아의 호명에 맞춰 사무엘과 지훈의 앞으로 나섰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지훈이 주변을 한 번 죽 둘러본다. 지금 지훈에게 중요한 것은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자신도 당당히 서 있는 것이었다.



결과 발표에 보아가 뜸을 들여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지훈은 이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협의 꼬임에 넘어가 도련님을 따라 상경해서 고생한 일, 말에 치여 

죽을 뻔도 했고, 경연장에 와서 새로운 인연도 듬뿍 쌓았다. 임금님의 연회에선 사신과 대결도 

펼쳤으며 2차 경연에선 당당히 기수로써 조의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지훈을 잘 따르는 쟁쟁한 사무엘과 이렇게 1위 후보로 나란히 섰다는 

사실 만으로도 지훈은 감격스럽다.



미소만 지으며 좀처럼 결과 발표를 않던 보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망의 1위는... 마루고을 박지훈 연습생입니다!”




보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축하의 박수와 환호성이 들려온다. 

그러나 정작 지훈은 믿기지 않는 기적에 얼떨떨하게 서있다.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은 지훈에게 옆에 나란히 섰던 사무엘이 가장 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그런 사무엘을 꼭 안아주며 지훈이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보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박지훈 연습생의 소감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처음부터 제가 1위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었는데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기쁘게 소감을 전하는 지훈을 진영이며 대휘, 우진, 다니엘, 성우, 재환, 성운, 선호 

그리고 관린이 모두 진심으로 축하를 건넌다.



모두의 축하 속에 가장 높은 방석을 차지하고 지훈이 앉았다. 

이제야 진정이 되기 시작한 지훈이 서둘러 관린을 찾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지훈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모든 과정엔 관린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60위 연습생을 지목하는 보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지훈이 9위석의 관린을 내려다 봤다. 

관린 역시 순위발표식은 이제 안중에도 없는 듯 지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첫날 보았던 때처럼 입모양만으로 ‘형’이라고 벙긋거린다.



관린의 ‘형’은 진영이 자신을 부를 때, 혹은 지훈 자신이 다니엘을 부를 때의 형의 의미가 아님을 

여전히 잘 아는 지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다른 의미의 ‘형’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은 지훈이다. 

관린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지은 지훈이 입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벙긋거려본다. 

지훈의 반응에 관린이 따라 웃는다. 어느새 그렇게 둘은 미소가 닮아있었다.



60위 김상빈 연습생의 호명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순위 발표식이 모두 끝이 났다.




“형!!”




순위 발표가 끝나자 진영이 가장 먼저 달려와 지훈에게 오른 주먹을 내밀었다. 

밝게 웃으며 지훈도 화답의 의미로 진영과 주먹을 부딪쳤다. 

그런 지훈의 머리를 헤집으며 동한도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성운도 지훈의 등짝을 팡팡 쳐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다음번엔 제가 1등 할거에요!”




밉지 않게 지훈을 흘기며 대휘도 당찬 포부를 건네고

 그 옆에 선 우진도 수고 했다고 짧은 인사를 해왔다.




“지훈이 정말 완전 대박 축하한다.”




지나가던 성우도 밝게 웃으며 지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사람들에 둘러 싸여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도 지훈이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협은 65위의 등수로 방출이 결정 되었던 것이었다. 

협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경연에 도전할 생각도 품지 못했을 지훈이기에 협의 방출이 너무나도 아쉽다.




“저 혹시 협이 못보셨어요?”


“글쎄 모르겠는데.”




2차 경연에 협과 같은 조 였던 남형을 붙잡고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역시 모른다였다. 

인사도 안하고 이리 가버린 것인가 싶어 지훈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역시 협과 같은 조였던 선호가 보다 못해 지훈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아까 전에 발표 끝나자마자 나갔어요. 

방출자들은 이제 유생관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경성에는 더더욱 있을 수가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명백한 선호의 말에 맥이 탁 풀리는 지훈이다. 

자신은 여전히 연습생 신분이다 보니 유생관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협이 이미 유생관을 빠져나갔다면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이리 매정히도 떠나가 버린 것인지 오랜 동무가 원망스럽기만 한데 

그런 지훈을 보던 관린이 결심을 굳힌 지훈의 손을 잡아 끌고 밖으로 향한다.




“폐ㅎ... 아니 형! 또 어디 가는 건데? 아오 진짜. 혼자 다니지 좀 말라고!!”




선호가 절규하며 관린을 쫓아 뒤따르지만 관린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지훈을 잡고 걸음을 옮길 뿐이다. 지훈 역시 이런 제멋대로인 관린의 행동을 자주 겪어 왔기에 

일단 끌려가고 보는데 관린이 또 유생관 문을 제 멋대로 넘어 버렸다.




“그러니까 벌점 오점이라고오!!!!”




지훈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가볍게 무시한 관린이 예의 그 검은 흑마를 꺼내온다. 

지난 번 승마에서도 삭신이 쑤시는 걸 감내해야 했던 지훈이기에 기겁을 하지만 

관린의 힘에 의해 결국 또 지훈은 말 위에 올라타고야 말았다. 

결국 묵묵히 말을 모는 관린의 가슴에 기댄 지훈은 경황이 없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목적지를 이제야 서서히 눈치 채기 시작했다.



출입증 검사 따윈 뒤 따라오는 선호에게 모두 맡긴 채 주작문을 훌쩍 넘어 

그 언젠가 협과 지훈이 도련님을 이끌고 올라섰던 성문 밖 언덕위에 관린이 말을 멈춘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살이 에일 듯 매서운 바람이 불던 그 언덕엔 

어느새 따스한 봄 기운이 감돌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인사도 없이 이리 걸음을 옮긴 것인지 

지훈이 한달음에 달려가 동무의 이름을 불러본다.




“협아.”




생각지도 못하게 제 이름이 불리자 놀란 협이 뒤를 돌아 봤다. 

뜻밖에 지훈이 서 있자 더더욱 놀라 눈이 동그래지는 협이다.




“지훈아. 너 어떻게.”




말문이 막혀 협이 말을 더듬자 지훈이 그런 협을 밉지 않게 흘기며 말을 꺼낸다.




“아니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게 어딨어?”


“아 그야. 뭐 지훈아 늦었지만 축하한다.”




지훈의 타박에 겸연쩍게 웃으며 협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 온다. 

태연한 척 해 왔지만 협은 자신과 처지가 같다 생각 해 왔던 지훈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게다가 지훈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쟁쟁한 연습생들은 

더욱 협을 주눅 들게 했었고 점점 지훈 앞에서 자신은 작아지는 것만 같아 지훈을 피하게 되었던 

협이었다.



오늘 지훈의 1위를 누구보다 빌었지만 자신의 바람대로 지훈이 정말 1위를 하게 되자, 

한편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지훈과 자신은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 지훈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협은 결국 그렇게 서둘러서 짐을 챙겨 경성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지훈이 여기까지 쫓아 올 줄이야! 

자신을 이리도 챙기는 오랜 동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협이 말을 이었다.




“역시 넌 될 줄 알았어. 너 높은 관리님 되더라도 나 모르는 척 하면 안 된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내가 왜 널 모르는 척 해.”




지훈의 볼멘소리에 싱긋 웃은 협이 언덕배기의 바위 위에 걸터앉는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자 많은 생각이 드는 협이다.




“우리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그 추위에 도련님에 진짜 고생 많았는데 그치?”


“진짜 살다 살다 그런 고생은 또 처음이었지.”




협에 말에 덩달아 언덕 아래로 펼쳐진 길을 바라보며 지훈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도련님도 이제는 없고 그 추억만이 아련하게 이 언덕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길로 오늘 또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마을로 돌아 갈 거야?”




지훈이 조심스럽게 협에게 물었다. 지훈의 질문에 말없이 한참을 고민을 하던 

협이 당차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이렇게 큰 세상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탈 마루 해야지. 

경성에서 이렇게 큰 경험도 다 해 봤는데 어딘들 못 가겠냐?”




마냥 순박하기만 했던 협이 어느새 더 큰 세상을 꿈꾸고 있다. 

경연을 통해 연습생 모두는 생존자와 방출자의 경계 없이 한층 성장 해 있던 것이었다.

지훈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협이 다시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그래도 너 여기 와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해서 맘 하나는 편하네. 

경연 계속 잘 해야 되! 당당하게 어깨 펴고 지훈이 니가 있을 곳은 저 곳이니까.”




가늠은 어렵지만 대충 궁궐이 있음직한 높은 방향을 가리키며 협이 말한다. 

협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며 지훈이 협의 양손을 꼭 잡았다.




“건강해야되. 자리 잡고 나면 꼭 기별 넣어주고!”




그런 지훈에게 활짝 웃음으로 화답한 협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길을 떠난다. 그 언젠가 서당으로 

감자를 한 소쿠리 삶아와 순박하게 앞날을 꿈꾸며 경연에 참가하자 졸라댔던 협의 모습이 떠오른 

지훈이다. 그랬던 협이 어느새 듬직해진 뒷모습을 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가고 있다. 



지훈은 그런 협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협의 앞날의 무사와 성공을 기원 할 뿐이었다.



협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제자리에 섰던 지훈이 묵묵히 기다려준 관린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98명의 운명이 갈린 생존과 방출이 결정되었다. 

지훈이나 관린이 얻어낸 생존은 다음 경연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협을 비롯한 떠나가는 38명의 꿈을 짊어지고 가는 험난한 여정임을 세삼 통감하는 지훈이었다.




* * *


지훈이 관린과 서둘러 수련장을 떠나 버린 뒤에도 몇몇 연습생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하고 

수련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중인 것이다. 

그 속엔 다니엘을 포함한 탈락한 엠엠오 연습생들도 있었다.




“끝까지 남아 곁에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방출자로 결정된 태웅과 재한이 송구스럽다는 듯 그런 다니엘에게 말을 건넨다. 

무려 3위를 차지해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지성이 다니엘을 대신해 대꾸한다.




“차라리 잘 되었어. 안에는 우리가 남을 것이니. 

너희는 조직에 합류하여 바깥에서 돕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야.”


“네!”




태웅과 재한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경연장을 나가자 지성이 다니엘에게 묻는다.




“이제 자리를 옮기시지요?”


“아니 진우랑 먼저 나가있어.”




이제껏 말이 없던 다니엘이 지성에게 짧게 답하자 군말 없이 지성이 진우와 자리를 피한다. 

둘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니엘이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바라봤다. 

줄곧 다니엘과 이야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민현이었다. 

2차 경연에서 일명 ‘사죄조’로 같이 활약을 했던 민현이었는데 엠엠오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사뭇 분위기가 진지하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신 겁니까?”


“못 보던 사이 엿듣는 취미까지 생겼나봐.”




그런 민현에게 다니엘이 싸늘하게 답한다.

싸늘한 다니엘의 시선에도 물러서지 않고 민현이 다니엘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섰다.




“황자전하. 아니 의건아.”


“그 이름은 부르지 않는 것이 너나 너희 가문의 신상에도 좋을 거야. 

감히 대(大)신국 배반하고 아바마마와 태자전하를 져버렸던 너에게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아.”


“이제는 이미 다 끝난 일이야. 그만 놓아주란 말이야. 

이렇게 너 하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스스로 화를 자처하지 마.”




진심어린 민현의 말에도 다니엘은 차가울 뿐이다.




“왜 또 저번 2차 경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성우와 엮어서 네 감시 아래 두려고? 

김재환까지 끌어들이고 내가 니 속셈을 모를 것 같아?

 이럴게 아니라 그냥 네 새로운 황제폐하 앞에 가서 고하지 그래? 

나 강다니엘이 실은 신국의 마지막 혈통 의건황자라고!”


“내가 못 할 것 같아?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넌 경연 첫날에 잡혀 갔어! 

제발 이 이상 도를 넘지 마. 그래도 한땐 너의 벗이자 신하였던 내 진심이야.”


“배신자인 주제에 지금 네가 감히 신하를 운운해?”




민현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다니엘이 언성을 높이며 민현의 멱살을 잡았다. 

다니엘의 위협적인 행동에도 민현은 여전히 안타까운 눈빛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눈빛에 더욱 화가 난 다니엘이 민현을 패대기를 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환이었다.




“하 우리 잘나신 신의 목소리 선생 아니십니까?”


“그만하자. 보는 눈이 많아.”




침착하게 재환이 민현과 다니엘을 저지하고 나서자 그제야 주변을 의식한 다니엘이 애써 표정을 

가다듬어 본다. 아직 갈 길이먼데 흥분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음이었다. 

정신을 차린 다니엘이 싸늘하게 민현을 노려보고는 옆에 서 있는 재환을 힐끗 보더니 

뒤돌아 경연장을 나가 버린다. 



이제 경연장에는 망연자실한 민현과 그런 민현을 챙기는 재환 단 둘만이 남았다.




“재환아 우리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딱히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닌 민현의 슬픈 넋두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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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말그대로 혐생이라 ㅠㅠ 한편밖에 못 올리고 갑니다. ㅠㅠㅠㅠㅠㅠㅠ


순위발표식은 새로운 스토리보다는

이전 내용을 정리하고 한 템포 쉬어가는 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협이도 이제 안녕 ㅠㅠ (협이가 형이긴 하지만 친근함을 더 하기 위해 반말 컨셉이었답니다.) 


다음편은 다니엘의 이야기로 찾아 올게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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