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녹우합작

키세 료타 × 미도리마 신타로


키워드 : 붐비는 오후의 번화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미도리마는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는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며 신나하던 키세의 메일을 침착하게 다시 열어봐도 약속장소가 이곳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가는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본인이 얼마나 유명한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주변의 여자아이들에게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절대 아니다) 그냥 자신을 엿 먹이자는 걸지도 모른다. 전에도 한 번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만나줬다가 옴짝달싹 못하고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고생한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때 분명 다시는 사람 많은 시간에 사람 많은 곳에서는 만나주지 않겠다고 신신당부를 했거늘. 키세는 정말이지 학습능력이 부족해서 큰일이다.


또 같잖게 모자랑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설마 고작 그런 걸로 자신이 누군지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어서 어이가 없다. 기적의 세대가 암만 유명하다고 해도 모델을 겸하고 있는 저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데 키세는 본인이 다른 기적의 세대와 큰 차이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 곤란하다.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소유한 빛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적의 세대가 가지는 빛과는 엄연히 종류가 다름을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이 더운 날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는 거리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날 것 같아 미도리마는 손에 들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도착하면 알아서 먼저 말을 걸어오겠지 싶어 책에 정신을 집중했다.

약속시간은 이미 30분 오버했다.





한참 책을 읽던 미도리마는 뭔가 쎄한 기분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얼굴을 구기게 만드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키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턱에 꽃받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 고등학생이라니 진심으로 기분이 나쁘다. 키나 작고 귀여우면 모를까, 한때 자신보다 키도 덩치도 컸던 남자가 코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영 속이 좋지 않다.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라는 것이야.”

“미도리맛치가 책에 푹 빠져 있기에 왠지 방해하면 안 될 것같았슴다!”

“하…?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야. 그래서 지금 몇 시냐는 것이야.”

“방금 2시가 되었슴다! 딱 밥 먹기 좋은 시간임다!”

너한테나 좋은 시간이겠지!!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미도리마는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카페 안은 냉방이 잘 되고 있어서 그런지 얼음이 다 녹았어도 미지근하지 않고 시원한 커피가 생각보다 괜찮아 미도리마는 키세에게 화를 내는 대신 읽던 책을 가방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늦었으니 점심은 네가 사라는 것이야.”

“물론임다! 미도리맛치, 뭐 먹고 싶슴까?!”

“와쇼쿠가 좋다는 것이야.”

“알겠슴다! 이 근처에 괜찮은 집을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여 미도리맛치!”

뭐가 그리 신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들뜬 모습으로 손목을 잡아끄는 체온이 따스하다. 그 감촉이 기분 나쁘지는 않아서 미도리마는 작게 웃었다. 뭔가 어린아이들의 소풍을 떠나는 느낌이다. 사람이 많은 골목을 키가 큰 남자 둘이 손목을 잡은 채 걸어가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느라 바쁜 사람들 속에 키세와 둘이 덩그러니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들이 안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만큼.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 모델 키세 료타 아닌가요?”

“…예??”

“와! 진짜다! 저 완전 팬이에요! 사인 부탁해도 되요? 마침 잡지도 샀는데!”

“에…또… 그러니까…”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던 길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가게에서는 누구도 키세를 알아보거나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알아봤다고 하더라도 예의상 조용히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일단 조용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미도리마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미도리마의 걱정대로 가게를 나오자마자 잔뜩 치장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잡혀버렸다. 호들갑을 떠는 여학생 한 명의 외침을 시작으로 이미 주변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미도리마는 주변에 몰려드는 인파를 내려다보며 극도의 불쾌함을 느꼈다. 어떻게 봐도 사적인 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한 사람에게 굳이 큰 소리를 내 가며 사람을 모아서 몰려드는 여학생들의 행태 같은 것은 예전부터 좋지 않게 보고 있기는 했지만 지난번에 이어 한 번 더 당하게 되자 참을 수 없을 만큼 토악질이 일었다.

“나는 먼저 돌아가겠다는 것이야.”

“에에?!!! 미도리맛치 잠깐만요!!!”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키세를 버려두고 뒤도 안돌아보고 큰 길로 걸어 나왔다. 여학생들을 뿌리치고 키세가 달려올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학생들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오더라도 결국 또 다른 여학생들 무리에게 붙잡힐 것이 뻔했다.
이럴까봐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만나는 것이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키세는 이상하다고 말하겠지만 둘이서 만나기로 했으면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게 미도리마의 마음이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팀 메이트였다는 것을 빼곤 특별한 사이도 아니지만, 미도리마는 그랬다.
딱히 키세를 독점하고 싶다거나 그런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둘이서 만나기로 했으면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사이가 친밀한 편은 아니었지만 둘이서만 만나자고 연락을 해올 정도로는 친해졌다고 생각하자 더 그랬다. 타카오의 말 대로 친구가 얼마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친구들끼리는 만났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친구사이에서 자신에게 집중해주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키세에게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고 말하면 타카오는 그 무슨 싸가지 없는 소리냐며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미도리마는 그랬다. 타카오나 다른 기적의 세대들과 단 둘이 만나게 되는 상황은 아무리 상상해도 키세에게만큼 집중을 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째서? 고민해 봐도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 이런 감정의 찌끄래기가 시작되는 건지, 이 감정의 찌끄래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도 미도리마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미도리맛치 기다려요!”

“……”

“미도리맛치!!!”

“키…세?”

환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다가와 미도리마를 덮친다. 카페를 나와 가게를 향할 때처럼 키세에게 잡힌 손목이 따스하다. 여름의 열기에 덥고 불쾌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어째서일까. 분명 타카오나 다른 녀석들이 이렇게 잡았다면 뜨겁다며 떨쳐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키세는 괜찮은 걸까.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함까!!”

“하지만… 너, 빠져나오기도 힘들고…”

“미도리맛치!”

누군가가 자신에게 버럭거리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필사적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지만 자신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태가 되어 미도리마는 울고 싶어졌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화를 낸다면 자신이 내야 하는데 왜 키세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걸까.

“왜… 왜 화를 내냐는 것이야.”

“미도리맛치에게 화가 난 게 아님다…”

“…키세?”

“이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미도리맛치랑 평범한 연인들처럼 거리를 걷고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제 욕심에 제가 질려서 그렇슴다…”

서러움에 침식되어버릴 것 같던 미도리마의 귀에 키세의 대사에서 몇 가지 정신이 번쩍 들 만한 단어들이 들어와 박혔다. 자신의 발끝만 보고 있던 미도리마는 제 앞에 선 키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설마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싶어 눈을 깜박여 보지만 키세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하다.

“데이트…?”

“미도리맛치?”

“키세. 우리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야?”

“…하아? 미도리맛치! 원숭이임까?!!!”

“워, 원숭이라니! 너무 한다는 것이야!!!”

“전부터 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너무 한다고 생각함다. 모못치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을 때도 굉장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이지”

“키세…?”

“미도리맛치는 너무 대단해서 할 말을 잃었슴다.”

갑자기 진지해지는 키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미도리마는 멍하니 키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얘가 뭐라는 걸까. 어이 없어하던 키세의 얼굴이 이제는 진지하다 못해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미도리마는 자신 때문에 키세가 울려고 한다는 것에 조금이지만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기뻤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한 것 같은 키세의 모습이.

“돌려서 표현하면 미도리맛치는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니까, 제대로 말하겠슴다.”

“…뭐, 냐는 것이야.”

답지 않게 비장한 키세의 모습에 미도리마는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여직 키세에게 잡혀 있는 손목이 불에 데인 것처럼 뜨겁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설렌다고 하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까? 하지만 설레는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설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구체적인 형태는 키세가 말을 뱉는 순간 완성될 것이다.

“미도리맛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는 알 수 없슴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할게여. 저는 미도리맛치가 좋슴다.”

“……”

“저보다 작았던 테이코 시절부터 좋아했슴다.”

“키…세?”

“진심이에요.”

손목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에 의해 몸이 휘청였다. 작은 골목의 틈새로 끌어 당겨진 몸은 좁은 틈새에서 함께 하기엔 너무나 건장해서 가깝게 밀착되어버렸다. 고개 숙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인상을 쓰고 있으려니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 온다.

“미도리맛치는 제가 귀찮고, 싫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을테니까”

그렇지 않아, 키세.

“오늘 하루만, 오늘까지만. 조금 더 제게 휘둘려 주세여.”

닿아오는 입술의 체온이 뜨겁다. 까치발을 해가며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키세에게 맞춰 눈을 감으려던 미도리마의 시야에 맞은 편 도로 건물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을 보고 피식, 웃음이 샜다. 화장품 광고를 찍은 키세의 영상이 흘러나오는 그 앞에서 여학생들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핸드폰으로 전광판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영상의 주인공이 자신들의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2D 2.5D 3D가 통합된 덕질의 망망대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한 마리 덕후

CIEL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