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다 : 심해이길 희망하며 

*1회차 날조 



성현제의 집은 달빛이 들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쪽 벽면에 그리도 크게 창을 내어놨으면서, 정작 한 톨의 달빛도 허락하지 않는다니. 송태원은 창을 가린 새카만 커튼을 응시하다가, 제 허리를 부드럽게 감아오는 손길에 고개를 숙였다. 방 안엔 무드등이 옅게 켜져 있어 서로의 얼굴이 꽤나 선명히 그려졌다. 

“태원아.”

송태원은 대답하지 않는 대신 그의 반듯하고 하얀 이마 위에 짧게 키스했다. 성현제의 빽빽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정사의 기운이 남아 있는 얼굴. 흰 얼굴과 대조되게 눈가가 붉었다. 장미꽃잎을 물들여 놓은 것처럼 탐스러운 색이다. 송태원의 입맞춤은 이마에서 끝나지 않고 눈가와 콧등을 지나 입술까지 느릿하게 흘렀다. 성현제는 얌전하게 그 입맞춤을 받아냈다. 

“뭐가 궁금해?

반쯤 쉰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송태원은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뭔갈 들킨 기분이었다. 성현제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고, 송태원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다. 송태원은 잠시 고민했다. 시답지 않은 의문까지 그에게 던질 필요가 있는지.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개성이 있는 만큼 성현제도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송태원의 눈이 금빛 어린 눈동자를 향했다. 굳게 닫혔던 입술 위에 성현제의 손끝이 닿았다. 재촉하듯 쓸어내는 손길에 송태원이 그 손을 잡아 손가락 끝을 얕게 물었다. 

“...창을 가린 이유가 있습니까?”

바로 답을 할 것 같던 성현제는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송태원이 이 집을 드나든 지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저 창문 너머를 본 기억이 없다. 낮엔 방문한 적이 없으니 열려있는지 닫혀 있는지 송태원이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제 앞에 있는 연인에 대한 궁금증일 뿐이다. 입에 문 손가락을 살짝 풀어주니 손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송태원의 손바닥에 성현제가 얼굴을 묻었다. 

“내 모든 것을 숨기기 위함이지.”

성현제의 대답은 송태원의 기준에서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송태원이 그에게 더 다그치거나 대답을 종용할 수 없었던 것은,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이 몹시도 피로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육체의 피곤이 아닌, 정신적으로 고단함을 쌓아온 사람의 얼굴을 하는 성현제. 송태원은 입을 다물고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송태원은 밤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무드등을 껐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속은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사위가 어두웠다. 성현제는 그 어둠 속에서 송태원의 허리를 끌어안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송태원은 그 행위가 상상 속의 괴물을 두려워하는 아이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으나,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

그리고 송태원이 그날의 일을 다시 떠올렸을 때는, 성현제의 오른쪽 눈과 팔이 사라졌을 때였다. 밤늦게 찾아온 성현제는 송태원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반쯤 쉰 목소리로 태원아, 제 이름을 불렀다. 송태원은 깊은 잠에 빠지기 일보 직전에서 건져졌으나 성현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잠이 훅 달아나버렸다. 그의 손을 잡으려 익숙하게 오른쪽으로 손을 뻗었을 때는, 

“…들어오십시오.”

없었다.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익숙한 그 살결이, 팔이 없었다. 송태원은 왼손을 뻗어 그를 끌어왔다. 송태원은 아무런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성현제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반쯤 일그러진 얼굴로 송태원을 따라 걸었다. 송태원의 집 거실에는 유독 밝은 달빛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성현제는 현관 앞에 우뚝 서 움직이지 않았다. 걷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송태원의 어깨를 잡고 제 품으로 꽉 끌어안았다. 

“바다에 빠져 죽으면 숨을 수 있을까.”
“....무슨 소립니까.”
“빛 한 톨 들어오지 않는 저 심해 숨으면,”

그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송태원은 그저 성현제가 안는 대로 그의 몸을 안았으며, 끄는 대로 끌려갔다. 그의 말을 경청했으며 그의 요동치는 무언가가 잠잠해지길 바랐다. 달빛은 여전히 찬란했으며, 성현제는 지독한 피로에 허덕이고 있었다.

“널 구할 수 있을까.” 

송태원은 순간 달빛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연기처럼 피어난 달빛은 성현제가 쓰던 사슬의 모양으로 변모해 빠르게 성현제의 발목을 끌었다. 송태원이 그를 잡았지만, 성현제의 몸이 이끌려 가는 것이 더욱 빨랐다. 달빛이 피어오른 자리에 흐릿한 인형이 비췄다. 성현제의 몸이 사슬에 감겨 허공으로 붕 떴다. 송태원은 고개를 들었다. 

초승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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