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안다. 아니, ‘안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이니까. 첫 번째의 ‘그’와 두 번째의 ‘그’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의미가 있을 내게도 과연 그 둘의 구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묻는다면 뚜렷하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의 구분이 현실에 등장하는가 꿈에 등장하는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꿈속의 인간과 현실의 인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습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꿈속의 등장인물에게 대체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가 비웃는다고 해도, 이해한다. 이것은 결국 내 인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꿈이 단순한 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그 연속성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시리즈를 보듯 꿈은 매번 이어졌다. 시간 순대로는 아니었으나 그 각각의 꿈들에 매번 일치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와서는 같은 시간대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꿈을, 나는 계속해서 꿔오고 있다.

꿈속에는 나와 ‘그’가 등장한다. 당연하지만 둘만의 세계는 아니다. 그 외에도 등장인물은 여럿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둘만의 세계라는 것도 틀리진 않다. 그 꿈들은 나와 ‘그’, 아마도 연인으로 보이는 그 둘에 관한 것이므로. 꿈이란, 참으로 묘하다. 요망하다.

꿈에서의 여운이 가시기 전까지는 나는 꿈속의 ‘나’다. 현실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남자의 연인으로의 감정에 흠뿍 젖어있는 또 다른 ‘나’.

꿈에서 깨면 연인이라는 단어는 몸을 긁고 싶어지는 낯설고 간지러운 것으로 변한다. ‘연인’이라는, 듣는 것만으로도 달착지근한 단어에 쓸데없는 환상을 아직껏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꿈속의 둘이 하는 것이 연애임을 알아도 연인들이라고 부르기에는 기묘한 거북함이 먼저 나선다. 더구나 그중의 하나가 ‘나’와 같은 얼굴을 한 도플갱어같은 존재일 때는 더욱 더.

꿈속의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나’가 아니었다. 나는 꿈속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꼈지만 꿈속의 나는 현실의 나와는 달랐다. 본질은 같다지만 살아온 삶이 달랐기에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나’. 그렇기에 나는 꿈속의 ‘나’를 ‘나’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로 인정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나조차도 내 꿈속의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괴리를 느끼는데 그의 경우라고 다를까. 오히려 그가 꿈속에만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현실에도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위화감은 상당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땐 우스운 얘기지만 첫사랑을 십년 만에 다시 만난 듯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니 현실의 나와 그는 접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꿈이 아니었다면 그냥 스크린이나 잡지를 통해서나 보고 말뿐인,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꿈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연인이라지만 그것은 꿈에서 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 꿈을 꿈이라 부르는가. 꿈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연속성을 지닌 현실 같은 꿈이라 해도 꿈은 꿈이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될 수 없다. 꿈에서 아무리 사랑을 한다 해도 꿈은 눈을 감고 잘 때, 그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허상이다. 현실에는 그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렇기에 꿈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꿈.

누구도 모르고, 오로지 나만이 아는, 꿈속의 ‘쿠로코 테츠야’의 연인인 ‘키세 료타’의.







“그래서?”

“헛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꿈, 그리고 꿈속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카가미의 첫마디는 ‘그래서?’였다. 뭔가 놀라거나 이상하게 보는 듯한 반응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덤덤한 반응 또한 쿠로코의 예상에는 없던 것이었다. 식탁에 앉아 카가미가 간단한 요리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쿠로코는 그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카가미는 덤덤하게 쿠로코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손을 놀렸다.

편견이겠지만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요리하는 모습은 붉은 그리즐리 베어가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볼 때와 유사한 일종의 감동을 선사했다. 어쨌거나 그런, 신기하고도 감동스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다.

쿠로코가 그런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카가미는 정말로 마술처럼 뚝딱 요리를 만들어냈다. 저의 말로는 손이 많이 가는 건 귀찮으니 간단하게 해먹자였지만, 쿠로코의 눈에는 어디 별이 빛나는 레스토랑에 내놓아도 꿇림 없을 수준이었다.

“헛소리 같지만 넌 그런 헛소리를 할 성격이 아니잖아.”

카가미는 여차, 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네 그 증상의 원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입안에 음식을 볼이 미어져라 하나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는다고 하면 으레 연상되는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밉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의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쿠로코는 저 자신도 깨금깨금 포크를 놀리며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성급하군요, 카가미군.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너 말야, 쿠로코-” 꿀꺽, 하고 입안의 내용물을 한번에 목구멍 너머로 삼키곤 카마기는 포크로 쿠로코를 지적했다.

“난 전문상담가가 아니라고. 그런데 왜 내가 네 고민 상담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그렇게 말한 것치곤 크게 마음에 두는 기색도 없이 카가미는 쿠로코의 앞접시를 보고 혀를 찼다. 새모이도 아니고 그게 대체 뭐냐고 구시렁대며 음식 집게로 한 움큼 크게 집어 쿠로코의 접시를 채웠다. 채우다 못해 산처럼 쌓는 수준이라 그를 보며 쿠로코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만 먹어가지고 어디 쓰겠어. 꿈도 힘이 있어야 꾸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카가미를 보며 쿠로코는 들키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많이 못 먹는 거 알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꿈에서와 같은 말을 하네요, 카가미군은.”

그 짧은 사이에 카가미는 접시를 싹 비우고 이제는 집게가 아니라 남은 걸 통째로 들고 가서 먹고 있었다. 먹다말고 응? 하며 깜박이는 눈과 함께 쿠로코를 보는 얼굴은 세상만사 걱정근심이라곤 없어 보였다.

“나도 꿈에 나온다고?”

제 그릇에 쌓인 음식을 덜어 건네면서 쿠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농구를 하고 있던데요. 먹성이야 지금이랑 똑같았고 그것밖에 못 먹냐고 못마땅해 하며 타박하던 것도 똑같네요, 그러고 보니.”

“신기한 꿈이네. 거, 뭐냐.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도 하잖아.”

“…….”

“뭐야, 그 우리 애가 이렇게 머리가 좋을 리가 없는데 하는 듯한 시선은.”

“……아뇨, 그냥 순수하게 감탄했을 뿐입니다.”

얼버무리는 쿠로코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면서도 카가미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근데 그래서 그 계속 이어진다는 꿈 시리즈에는 나 말고도 누구 아는 사람이 나와?”

“글쎄요. 워낙에 구체적이어서 꿈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생이나 평행세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친분 있는 아는 사람이라곤 카가미군 뿐이네요.”

“문제의 그 녀석은 모르는 사람이고?”

“…….”

딱히 기다 아니다 하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입을 조개처럼 딱 닫아버린 쿠로코 덕분에 카가미는 손을 멈췄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은 카가미도 안다.

“누군데?”

“……말하면 너무 한심한 기분이 들 것 같아 말 안 하렵니다.”

카가미는 미간에 내 천 자를 그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기도 그렇고.”

“근데 그게 굳이 누군지 감출 필요가 있는 일이야?”

“…….”

쿠로코는 한참동안 대답 없이 포크로 그릇을 휘휘 젓기만 했다. 카가미에게는 쿠로코의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답을 기다리던 카가미가 슬슬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쯤에야 쿠로코는 입을 열었다.

“이쪽의 기분의 문제예요. 말해놓고 보면 한심하달까요. 게다가 말로 해버리면 꿈보다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 같잖아요. 내가 정말로 무의식중에 상대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버린달까요. 말을 하지 않으면 그건 단지 꿈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뭔가, 말로 해버리면 더 이상 웃을 수 없이 진지한 무언가가 되어버릴 것 같지 않습니까?”

카가미는 이미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진지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입으로 내어 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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