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년 X월 XX일.




안녕하십니까?

당신을 펼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군요.

대략... 200년 만에 다시 뵙는게 되나요?


하하... 농담입니다.

당신도 히스이에서 가지고 온 제 짐보따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으니, 제가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아시겠죠?


네, 맞습니다. 저는 마침내 저의 고향, 하나지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전에 히스이지방에서 하행을 만난 후에 쓰려고 했다가 미뤄버린 그 날의 일기는, 그 후로 정신도 없이 계속해서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이 쌓이고 쌓이는 바람에, 결국 이어쓰지 못하고 그대로 줄을 좍좍 그어 지워버리게 되었군요.


제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도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이 조금 한가해진 이제서야 숨을 돌리고, 히스이에서 가져온 짐을 정리하다보니 당신들이 보이더군요.


방금까지 저는 당신 이전의 권, 그러니까 저의 맨 첫 번째 일기장부터 집어들어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히스이에서 보냈던 날들을 이렇게 일기로 기록해 온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 한 일인 것 같습니다.


현대로 돌아와 숨가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배틀서브웨이의 일을 해나가다 보니,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포켓몬들과 함께 살아갔었던 지난 날이 점점 흐릿해져만 갔었는데, 당신들을 펼치니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정말 감개무량했지 뭡니까.


비록 좋은 일만 있던 것도 아니었고 때로는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돌이켜보면 제가 이곳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성장시켜준 훌륭한 발판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신오님께, 원래 제게 맡기시려던 임무가 뭐였는지 묻지 못하고 온 것이라는 겁니다. 월로 님께 대신 시키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궁금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분명 꽤나 중대한 일이었을 것 같은데...


... 과연, 히스이의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요? 비록 지금이 그 이후의 미래 시간대이긴 하지만 신오님께서도 분명 두 세계는 따로 흘러간다 말씀하셨고 제가 그곳에 있을 때 하행 역시 두 세계를 왔다갔다 했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곳 사람들과 연락을 취할 방법을 찾고 싶지만...


저와 하행이 서로 다른 두 세계에서 아르세우스폰을 통해 전화가 가능했던 것처럼, 혹시나 그곳에 남은 윤슬 님과도 연락할 수 있을지 궁금하여 제가 떠나기 전 이것저것 준비할 때 서로 번호 교환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락이 되질 않더군요.


애초에 신오님께서 저희 두 형제에게 아르세우스폰을 주실 때부터 시공간을 넘어 연락이 되도록 한 것은 저희 둘만 가능하게끔 만들어 놓으신건지, 아니면 제게 그곳에서의 미련을 버리고 제 세상에서의 삶을 똑바로 살아가라는 의미로 신오님께서 일부러 차단해 놓으신건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 윤슬 님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윤슬 님께서 제가 이곳으로 오기 직전에 주신 선물을 풀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빛나는 부적' 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전에 윤슬 님께서 히스이의 모든 포켓몬의 조사 단계를 10까지 올리고 단원 랭크를 만천성 단원까지 올림과 동시에 조사대의 금경 대장님께 받으셨다는 그 부적입니다.


그것을 얻느라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귀한 것을 제게 넘겨주시다니...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군요.


...


곧 있으면 장기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하행을 설득해서 신오지방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해봐야겠습니다.


신오님의 성함을 그대로 이어받은 신오지방... 과거 히스이지방이었던 바로 그곳에서, 저는 제가 걸어온 길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둘러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윤슬 님의 어머니시죠. 그분을 만나, 윤슬 님이 제게 맡기신 편지를 반드시 전달해 드려야만 합니다.


제가 신오지방의 과거인 히스이지방에서 살다가 다시 현대로 넘어온 까닭에, 하나지방 뿐만 아니라 신오지방의 언론사도 제법 많이 저를 취재하러 와서 이미 그분께서 제 존재를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만, 지금까지 따로 절 찾지 않으신걸 보면 모르고 계실 확률이 더 많겠죠...?


아직도 그분께는 '빛나' 라는 성함으로 기억되고 있을 윤슬 님이 무사하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윤슬 님이 얼마나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셨는지도 말씀드릴 것입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조사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 멀리 팔데아지방이라는 곳에서 어느날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포켓몬들이 나타났는데, 이상하게도 그 포켓몬들의 외형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포켓몬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군요.


예로부터 팔데아의 대공에 산다는 고대 포켓몬이나 미래 포켓몬인가 했지만 그건 아니라지 뭡니까.


게다가 그 포켓몬들은 그들과 함께 나타난 어떤 인간 남자와 함께 곧바로 신오지방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당연히 신오에서는 그 소식을 듣고 그 남자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마치 고스트 포켓몬처럼 자취를 감춘 상태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이미 신오의 야생에 퍼진 포켓몬들이 혹여 생태계 교란종이 될까 염려하여 조사단을 꾸려 그들을 관찰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은 고향에 돌아온 듯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기존에 있던 포켓몬들과도 잘 어울리고 영역 또한 그들의 생활에 방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공유하고 먹이 활동도 제법 융통성 있게 잘 한다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그들이 지금은 멸종된 히스이의 포켓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을 수 있었던 정보는 딱 그렇게 글로 쓰인 기사 뿐. 그 포켓몬들의 사진 자료는 아직 다른 지방에 보이기에는 비밀 사항인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행과 함께 신오지방에 가게 되면, 원래의 저희 포켓몬은 각자 한 마리씩만 데려가서 그곳의 야생 포켓몬들을 잡아 조금씩 키우며 천천히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마치, 첫 모험을 시작하는 어린 포켓몬 트레이너처럼요.


운이 좋다면, 그 새로이 나타났다는 포켓몬들도 만날 수 있겠죠? 만약 그들이 정말로 히스이의 포켓몬들이라면 누구보다도 그들에 대해 잘 아는 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을겁니다.


가능하다면, 그들 역시 동료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특히, 포푸니를요.


... 예? 왜 콕 집어 포푸니냐고요?

그야, 귀여우니까요! 한쪽이 옴폭 패여 거기에서 뻗어나온 납작하고 팔랑팔랑한 길쭉한 귀! 만지면 몰랑몰랑하고도 쫀득쫀득한 동그란 얼굴! 얼핏 보면 눈매가 사납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의 호기심 넘치면서도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동자! 마치 하행처럼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는 입꼬리! 장인의 손길로 빚어진 듯한 호리병 같은 아름다운 몸매! 여리여리한 팔 끝에 자리한 무시무시하고도 강력한 독을 품은 커다란 발톱! 각을 맞춰 반듯하게 뻗은 세 장의 꼬리!

정말 완벽한 포켓몬이지 않습니까!!!


... 흠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하여튼 신오지방에 가서 그 신종 개체들에 대한 것을 확인하고 히스이지방에 서식하던 개체들이 맞다면, 아마 제가 그쪽 야생 포켓몬 연구팀에 여러모로 도움도 드릴 수 있을겁니다.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그곳을 여행할 날이 기대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하행과 단 둘이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군요.


물론 저나 하행이나 서브웨이마스터로서 기어 스테이션에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만큼 보람도 있으니, 딱히 휴가를 내서 어딜 놀러가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있는 동안 그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게다가, 이제 하행은 얼마 안 있어 카밀레 님과 결혼할 약속도 잡았으니, 그 후로는 더더욱 저와 함께 할 시간을 따로 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


분명 축하해야 할 일인데, 마음 한 켠이 시려오는 것은 왜일까요... 이제 더 이상 하행과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을 했군요. 제가 없을 때 하행의 마음 속 빈자리를 채워주신 고마운 카밀레 님께, 순간적었이지만 질투라는 감정을 가지다니... 형으로써 굉장히 못된 생각을 해버렸군요.


... 괜찮습니다. 언젠가는 제게도 좋은 인연이 나타나 함께 할 수 있을겁니다.


슬슬 마무리 해야겠군요. 아까부터 하행이 침대에 먼저 누워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당신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당신에게 제 일과를 적어나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을 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예전처럼, 그리고 지금과 같이 여유가 생길 때가 아니라면,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서 일기를 작성하는데 오랜 시간을 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탓입니다.


앞으로는, 하행이 알려준 온라인 사이트에서 하루에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이나 겪는 일들을 짧게 써 나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영영 이별은 아니니, 너무 슬퍼 마세요. 이전의 추억이 그리워질때면, 오늘처럼 당신들을 꺼내 들여다보며 함께 웃을테니까요.


제 하루의 마지막을 책임져 주시던 당신들.


저의 일기장,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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