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훈련 끝, 이제는 자유시간이라 간만에 스트리밍을 하기 위해 하나는 숙소로 향했다. MEKA는 아무래도 군용 장비이니만큼 사용하기 힘든 탓에 그녀는 자가용에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차들이 호버링으로 변했건만, 하나는 여전히 바퀴로 굴러가는 경차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취향이라고 굳이 고집을 피워서 계속 유지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아, 망할... 왜 빨간불이람..."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하나는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륜에 제동을 걸었다. 하필이면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져내리는 하늘, 그 아래에서 빨간 불을 보니 문득 얼마 전 위도우메이커와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옴닉들을 해치우는 임무였나. 일단은 그녀와 함께하긴 했지만 썩 내키진 않았다. 그 때, 마지막으로 위도우메이커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Cheri, 오늘은..."

"바빠, 내일 모레께 밤에 스트리밍 있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돼. 음... 아멜리는 뭐, 할 말이나 부탁할 거 있어?"

"...아니, 없어..."


언제나 그녀와 마주할 땐 가식적인 웃음으로 대했다. 아무래도 계속 그녀의 앞에선 프로게이머 송하나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프로게이머 송하나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MEKA 부대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는 D.Va라는 다른 얼굴도 있었고 위도우메이커는 탈론의 암살자란 신분이라 자기 신분을 들키는 순간 암살 타겟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마냥 친절하기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하나는 그 생각을 잊으려는 듯 자동차의 액셀을 밟았다.


"으, 왜 하필 그 얼굴이 생각난 거람..."


초승달이 뜬 주차장, 그녀를 뒤쫓는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하나는 차에서 내려 리모컨으로 문을 잠그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공기 속에 풍선껌을 불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그 순간, 장갑을 낀 정체불명의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뿔싸, 설마 납치범이라니... 거짓된 웃음이 위험하단 걸 깨달아봤자 이미 늦었다. 서서히 하나의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처음엔 마구 발버둥치며 저항하던 그녀의 힘도 서서히 약해져가고 있었다.


"흐흐, 흐흐흐... 흐흐... !!"


그 순간 쩌렁쩌렁한 총성이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총성이 멎어들자 강도의 전신에 난 구멍으로 피가 뿜어져나와 바닥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서서히 쓰러져가는 그의 시체 뒤에, 하나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여인, 위도우메이커, 아멜리 라크루아가 죽음의 입맞춤 소총을 한 바퀴 빙글 돌려 거두며 미소지었다.


"하아, 늦을 뻔 했네... 이미 늦은 건가... 미안, Cheri..."


그 다음날의 아침, 분명 주차장에서 쓰러졌던 것 같은데, 어째선가 제 방안 침대에서 눈을 떴다는 기묘함에 하나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방 안은 깨끗한 걸 보니, 분명 악몽이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키보드의 ㅂㅈㄷㄱ과 ㅁㄴㅇㄹ자판 사이에 끼워져 있는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기운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하나는 휘청이면서도 일어나 쪽지를 집어들었다.


"아멜리 잘못이 아냐... 그냥, 내가 피하려 들고, 그저 귀찮다고, ... 그래서... 미안. 아멜리. 그러니... 다시 한 번... 내게 와줘... 제발... 으아앙..."


'안심해. Cheri. 난 언제나... 언제나, 네 곁에 있어. 비록 얼굴은 볼 수 없더라도... 난, 네 미소를 여전히 진심으로 믿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볼 날을 기대하며. Adieu, Je t'aime. Mon Cheri.'...프랑스어가 적힌 것으로 보건대 위도우메이커가 남기고 간 쪽지임이 분명했다. 갑자기 그녀에게 가식 미소로 대했던 지난 날들이 물밀듯 하나의 머릿속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심지어 위험에 처한 날 구해주기까지 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눈물이 흘러 편지지를 적셨다. 텅 빈 방 안에 하나의 흐느낌이 울려퍼졌다.

파르페르파의 포스타입입니다 찾아와봤자 별거 없어요 이거저거 할만큼 하는 포스타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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