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이 쏟아지는 한낮. 

저마다 붉고 윤기나는 딸기를 매단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렸다. 간택을 받기 위해 치장하는 궁녀들처럼 요란스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딸기들. 누가 그들을 주의깊게 봐주는 것도 아니다만 뭘 그리 유난들인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간택하는 이는 분명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태형이었다. 

딸기들의 아버지, 거창의 아들. 
그가 바로 김태형이라는 작자였다.

눌러쓴 밀짚모자 아래로 제멋대로 자란 뒷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노란 체크무늬 상의에 밑으로는 휘양찬란한 무늬의 몸빼바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도 그늘진 얼굴에 그려져있는 이목구비가 어찌나 화려한지 이 모든걸 소화해내기에 이른다. 흙 속에 파묻힌 진주가 아니라 흙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였다. 딸기들도 저들의 주인의 외모를 아는건지 매일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며 태형을 환영해준다. 사람이나 딸기나 외모를 밝히는건 똑같다. 태형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딸기들이었지만, 사실 태형의 사랑이 진정 마구 쏟아지는 곳은 따로 있었다.




"딸기 아빠~"




딸기들을 하나하나 섬세한 손길로 살피고 있던 태형이 저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퍼뜩 돌렸다. 곧 보이는 지민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환해진 얼굴로 하던 것을 전부 내팽겨치고 딸기밭을 달려갔다. 

짐나!! 주인을 보고 신난 강아지마냥 보이지 않는 꼬리를 마구 흔드는 태형. 새참을 머리에 진 지민에 팔이 아플까 걱정되어 얼른 그것부터 받아든다.




"들고 오느라 안 무거웠나?"
"태태는 땡볕에서 일하는데 훨씬 덥지. 도와준대도 안된다고만 하구.. 이런거라도 해야지!"
"아이다. 내는 단련이 돼가 괜찮은데 짐니는 안된다. 썬크림은 발랐나? 봄햇볕이 은근히 따가워가 안 바르면 다친다."
"웅. 꼼꼼히 다 바르고 와찌!"




당연하다는듯 샐쭉 웃으며 자그만 손으로 얼굴 옆에 브이를 만드는 지민에 태형이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짐짓 바보같이 보일 정도로 헤벌쭉한 얼굴이다. 역시 울 짐니 꼼꼼한것 좀 보라며 예뻐죽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태형.






딸기밭 옆에있는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위치한 정자에 앉아 지민이 가져온 새참을 먹기 시작한다. 너무 맛있다면서 제대로 씹기도 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부터 세우는 태형에 지민이 웃음을 터뜨린다. 밀짚모자를 벗기고 태형의 앞머리를 넘겨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지민. 아따 잘생겼다. 이마를 완전히 올백으로 넘기고도 잘생긴 얼굴에 지민이 흐뭇한 얼굴을 했다. 태형은 눈앞의 지민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실실 웃고있었다.




"우리 아들딸들은 잘 크고 있어?"
"엉. 짐니를 닮아가 하나같이 다 예쁘게 컸다이가."
"이번에도 태태딸기 대박 나는거야?"
"당연하지!"




아 이러다 금방 부농 마누라 되겠다면서 장난스레 말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지민에 태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얼른 돈 더 많이 벌어가 짐니 다 주겠다며 말하고서 새참을 입에 와앙 밀어넣고 우물거리는 태형. 

누구 마누라인지 음식까지 너무 잘한다면서 한입 먹을때마다 칭찬 열마디를 내뱉는 태형에 지민이 부끄러운듯 웃는 낯으로 그만 칭찬하고 먹어~ 하고 전을 먹여주자 그걸 얼른 받아먹고서 우물대며 두 눈이 사라질정도로 웃고있는 태형이다.


오늘도 사랑이 송송 피어나는 느티나무 아래를 바라보며 딸기들이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흔들었다.




















마을 토박이 어르신들과 간간히 은퇴 후 귀농하신 분들로만 채워진 거창의 어느 고령마을에 유일한 20대 부부가 바로 태형과 지민이었다.

태형은 딸기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늘 애정을 가득 주며 사랑으로 키워낸 덕분인지 예쁜 비주얼과 더불어 높은 당도의 달콤한 맛까지 더해져 맛좋은 유기농 딸기로 입소문을 타 인터넷 장사로 꽤나 쏠쏠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사실 입소문을 탄 계기는 지민이 블로그 [태태딸기]에 올린 딸기를 들고 웃고있는 태형의 사진 때문이었다. 시작은 잘생긴 딸기농부로 유명해졌지만 얼굴에 홀려 딸기를 주문했던 사람들도 그 맛에 반해 이제는 딸기의 높은 품질과 달콤한 맛으로 더 유명한 집이 되었다.

딸기농사가 조금 한가할때는 마을 어르신들의 농사일을 돕거나 여러 잡일을 앞장서 도맡아해서 마을의 평판도 꽤나 좋은 태형이었다. 지민도 이웃 어른들을 곰살맞게 챙기며 싹싹하게 구니 다들 제 아들딸처럼 태형과 지민을 예뻐하곤 했다. 그렇게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젊은 부부는 결혼한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이 넘치는 신혼이었다. 특히 태형은 어찌나 지민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지. 소문이 자자한 팔불출이었다.




"농촌체험 언제 온다고 했지?"
"움.. 다음주 화요일에 온다켔다."
"애기들 오는데 뭐라도 사서 먹여야겠다. 주말에 시장 갔다오자."
"우리 짐니는 우째 이리 마음도 이쁘노."




지민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하고있는 태형. 엄지손가락을 턱에 댄체 우음... 뭘 사와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하는 지민이다. 워낙 시골에 살다보니 트럭을 몰고 나가야만 갈 수 있는 시장에 가기가 힘들어 한번 나갈때 필요한걸 전부 사와야했다. 메모장을 꺼내와 자그만 손으로 펜을 쥐고 꼼질꼼질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 시작하는 지민.

헤벌레 귀여운 지민의 얼굴만 보고있던 태형도 너도 얼른 생각하라며 다그치는 지민에 금새 또 고민에 빠진 얼굴을 했다. 음.. 필요한거, 필요한거. 그러다 옆에서 기침을 하는 지민에 커진 눈으로 지민을 보는 태형. 콜록거리며 제 입을 가린채 꽤나 오래 기침을 하는 지민이다.




"콜록콜록...콜록콜록....."




눈물까지 그렁히 맺혀 기침을 하는데 계속 멈추질 않자 놀란듯 안절부절하던 태형이 재빨리 부엌으로 뛰어가 물컵을 가져왔다. 그걸 받아 마시고서야 겨우 진정된듯 몇번 기침을 더하고서 그제야 멈춘 지민이다.




"괘안나? 기침이 와이리 심하지."
"으응.. 감기 다 나은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얼른 보건소 가서 약 받고 주사 한방 맞고오자."
"6시 넘어서 지금은 문 닫았을거야. 내일 아침에 갔다올게."




지금 당장 지민을 들쳐업고 보건소로 달려갈 기세의 태형에 지민이 푸스스 웃으며 괜찮다며 그를 달랬다. 그냥 감기일텐데 뭐. 그래도 여전히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민을 보고있는 태형이다.




"아프지마라. 내는 니가 아프면 마음이 진짜 찢어진다.."




속상한듯 고개를 숙인채 중얼거리는 태형을 빤히 바라보던 지민이 태형의 손을 꼭 잡았다. 자그만 손에 붙잡힌 제 손에 그제야 지민을 바라보자 지민이 배시시 웃는다. 알았어. 대신 태태두 건강관리 잘하기. 나도 태태 아프면 마음 찢어져. 그에 아.. 하고 눈을 꿈뻑이던 태형이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운데 눈앞에서 예쁜 말까지 해주며 웃고있는 지민이 정말 참을 수 없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태형도 결국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짐나, 진짜, 진짜 많이 사랑해.


지민을 당겨 제 품에 끌어안고서 벅찬 목소리를 내뱉는 태형. 나두 사랑해.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참지 못하고 곧장 지민에게 입맞추자 자연스레 얽혀오는 열기가 너무도 좋았다. 백년천년이 가도 이 사랑이 식지 않을것 같았다. 아마 이 생이 끝나도 자신은 바득바득 지민의 뒤를 쫓아갈 거라고.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딸기는 인제 약간 꼭지가 위로 솟아있는게 싱싱한거랍니다."




노란 유치원복을 입고서 주르륵 줄맞춰 앉아있는 아이들 앞에 서서 딸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태형. 그 모습을 멀리 앉아 지켜보며 푸스스 웃고있는 지민이다. 귀여워 진짜. 들고온 사진기로 태형의 사진과 아이들의 모습을 몇장 담아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태형인지라 텐션이 올라있는게 느껴졌다. 농부 아니었으면 유치원 교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시시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이구, 오늘 또 아가들 딸기 체험하러 온거여?"
"아, 회장님 안녕하세요."




지민이 반갑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자 부녀회장 김씨 아줌마가 날이 갈수록 예뻐진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남편이 아주 예뻐해주나 보다고 호호 웃자 당황하더니 하얗던 얼굴에 금방 홍조가 올라 뺨이 발그스름해진 지민.




"둘은, 아직 계획 없어?"
"네?"
"결혼한지도 꽤 됐고, 아이 생각 없냔 말이여~"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듯 눈만 깜빡거리는 지민. 응? 응?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김씨 아줌마이다. 워낙 촌락이다보니 아기를 못 본지 오래되어 마을 어르신들이 가끔씩 이렇게 지민에게 아기계획을 묻곤하는데 그때마다 늘 똑같이 당황하는 지민이었다. 태형과 이런 얘기를 제대로 해본적 없기도 했으니까.




"회장님 또 우리 짐니 와 괴롭히십니까"
"아유, 괴롭히긴 무슨. 그냥 얘기하고 있었는데."




한 번 생각해보라고. 아이가 정말 인생의 기쁨이 된다며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김씨 아줌마였다. 김씨 아줌마가 가고 그제야 숨이 좀 트여 피유 한숨을 쉬는 지민. 벌써 강의 끝났어? 묻자 웅. 고개를 끄덕이는 태형이다. 아이들은 쉬는시간을 받아 제자리에서 자기들끼리 꽁냥대며 놀고 있었다.

곤란했는데 고맙다며 배시시 웃자 다음부턴 김씨 아줌마 보면 도망가라며 자기도 종종 그런다고 속닥거리는 태형. 그 말이 웃겨서 꺄르르 뒤로 넘어가는 지민을 태형이 자연스럽게 받쳐 안아주었다. 겨우 웃음을 그치고선 눈앞의 태형을 바라보는 지민. 웃고있는 태형을 잠시간 바라보다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너는 어때?"
"??"
"아기 말이야."
"내는 짐니랑 둘이 지금처럼 오순도순 사는게 젤로 행복한데."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곧장 돌아오는 대답에 잠시 놀란듯 태형을 바라보던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르르 눈을 접어 예쁘게 웃음 짓는다.




"음.. 나두."
"....."
"태태랑 둘이 노는게 제일 재밌어."



결혼한지 한참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둘만의 시간이 좋은건 마찬가지였나보다.










































콜록콜록....

끊이지 않는 기침소리에 태형이 걱정으로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약 먹었다며 태형을 달래려 괜찮다고 애써 웃어보이는 지민에 뭐라 더 말하지도 못하고 따뜻한 차를 끓여와 갖다주고 봄날씨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일러 온도를 높이는 태형이었다.




"내일 해뜨자마자 읍내 병원 가자."
"아니야아.. 요즘 딸기수확철이라 엄청 바쁘잖아. 마을 보건소 갔다오면 돼."
"내한테 니보다 중요한게 어디있는데."




드물게 단호한 얼굴을 하는 태형에 지민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사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요즘 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였다. 고개를 숙인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지민. 그런 지민의 심정을 다 안다는듯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태형이 아플땐 자면서 회복해야한다고 얼른 자자며 지민을 데리고 침실로 향했다.

콜록콜록.. 자그만 기침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높은 온도로 맞춰놓은 보일러로 인해 땀이 삐질삐질 새어나와 윗옷을 벗고 지민의 옆에 눕는 태형. 힘없이 축 늘어진 지민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그게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민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며 품에 안고 토닥거리는 태형. 감기 옮는다며 지민은 태형을 밀어내려 했으나 태형은 차라리 자신에게 옮기를 바라고 있었다. 

결국엔 포기하고서 태형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지민.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지는 노래에 지민이 눈을 감았다.








콜록콜록콜록.. 심한 기침 소리에 태형이 잠에서 깼다. 지민이 저에게 등지고 누워있었다. 자그맣지만 끊이질 않고 계속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확 깨는 기분에 벌떡 일어나는 태형이다. 지민이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채 기침을 억지로 눌러참고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짐나, 짐나. 괜찮나?!"




급하게 지민을 겨우 일으켜 앉히자 지민이 괴로운 얼굴로 제 입을 막은채 간혈적으로 기침을 계속 하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태형이 다급히 부엌으로 뛰어가 물컵에 물을 따랐다. 마음이 초조하여 그것마저 잘 되지 않았다. 지민이 물을 받아 마셨지만 그럼에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는 태형에 지민이 힘겹게 약을 가져다달라하자 태형이 아, 하고 얼른 뛰어가 부엌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민이 늘 약을 넣어두는 통에서 얼마전 지민이 보건소에서 처방 받은 약을 찾아내어 방으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쨍그랑.

날카로운 유리 깨지는 소리에 사색이 된 태형이 방으로 달려갔다. 물컵이 바닥에 깨져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지민이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로 제 가슴을 손으로 쿵쿵 내리치고 있었다.




"짐나 왜 그래!!"
"나, 숨, 숨을, 못 쉬.... "




지민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며 꽉 막힌듯 느껴지는 제 가슴을 자꾸 내리쳤다. 와중에 기침은 계속 되었다. 태형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가슴을 내리치는 지민의 손을 막으려던 때였다. 지민이 그대로 힘없이 태형에게 쓰러지며 축 늘어졌다. 

지민아... 지민아? 심장이 저 바닥까지 떨어진 태형이 급히 지민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을 잃은듯 아무리 흔들며 소리쳐봐도 눈을 뜨지 않는 지민에 손이 마구 떨려왔다. 정말 온몸을 벌벌 떨며 지민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댄 태형이 미약하게나마 심장이 뛰는걸 확인하고 그대로 지민을 이불로 감싼채 들쳐업고 달렸다.

신발조차 신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맨발 그대로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내달리면서도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살면서 이토록 필사적인 적이 있었던가 싶을정도로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것 같았지만 계속 달렸다. 뒷목에 닿는 지민의 호흡이 너무도 가늘고 얄팍하여,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 문 좀 열어주이소!!!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제발 열어주이소!!!!!!!!"




닫혀진 보건소 문을 쾅쾅쾅 주먹으로 마구 내리치며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태형.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제발 열어달라며, 지민이 좀 살려달라고 주먹이 새빨개질 정도로 문을 두드려대는 태형이었다.

새벽의 소란에 보통 일이 아닌걸 직감한 보건소 당직 담당이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왔고 의식없는 지민을 등뒤에 업고 눈물범벅인 얼굴로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울고있는 태형을 보게 되었다.


































-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봐야할 것 같은데...




다행히 아침이 되어 무사히 의식을 되찾은 지민이었다. 보건소의 의사는 지민의 상태에 대해 말끝을 흐리며 그저 대학병원 추천서를 작성해 건내줬다. 그걸 받아든 태형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닐거라고. 아니라고 믿고싶었다. 별거 아닐거라고,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지민과 가끔씩 부산에 놀러간적 있었다. 지민의 고향이였으니까. 언제나 부산으로 지민과 향할때는 늘 웃으며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오늘은 너무도 끔찍했다. 자꾸만 무서운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가는 길이 너무나도 짧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지민은 별거 아닐거라며 오히려 의연한 얼굴로 태형을 달랬다. 그럼에도 태형은 자꾸만 불길한 기운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불길한 것은 처음이었다. 접수대에서 접수서를 쓰면서도 손이 덜덜 떨려 결국 지민이 자신이 하겠다며 태형을 만류했다. 기다리는 내내 너무도 두려웠지만 그래도 희망이 더 컸다. 이렇게나 큰 병원인데. 무엇이든 다 낫게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의사의 침통한 얼굴을 본 순간, 태형의 심장이 조각났다.





























돌아오는 내내 태형도 지민도 아무말이 없었다.

트럭에서 내린 태형은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성큼성큼 향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지민. 태형아... 불러보아도 태형은 멈추지 않았고 아무런 답이 없었다. 



태형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제 딸기밭이었다. 그대로 딸기밭으로 직행한 태형이 딸기나무의 뿌리를 마구 헤집어 뽑아내기 시작했다. 잘 익은 딸기를 매달고있던 나무가 태형에 의해 그대로 뽑혀져가 흙바닥에 형편없이 쓰러져갔다. 손에 닥치는대로 딸기나무들을 헤쳐놓는 태형에 뒤늦게 달려온 지민이 사색이 되어 지금 뭐하는 거냐며 소리쳤다. 흙을 마구 파헤치던 태형의 손이 뚝 멈췄다. 지민이 태형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있었다.




"다 이 딸기 때문이다....."
"......."
"이 딸기만 없었으면, 그러면....."




태형의 목소리가 떨려오는게 그대로 느껴졌다. 멍해있던 지민의 눈에서 의식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




다... 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며 울음기가 가득 섞여왔다. 일어선 태형의 어깨가 덜덜 떨리며 들썩거리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내 때문이다....."
"......"
"내가....."
"......"
"병원에 좀만 더 일찍 데리고 갔으면....."




돌아서는 태형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잔뜩 젖은 얼굴로 새빨간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틀비틀 다가오던 태형이 지민 앞에 멈춰섰다. 태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니한테 반해가, 결혼하자고 안 했으면..."




여기서 나와 같이 평생 살자고 하지 않았으면, 그랬다면. 넌 진작 도시의 병원을 갔을테고,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거라고.




"내가 니를, 사랑하지만 않았으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 길어야 2년 남았습니다.

- 병세가 이미 심하게 악화되어 이제와서 하는 치료도 별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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